제 목 : "모든걸 죽음과 함께 가지고 갈께요" 신창원의 마지막 공판기(엄상익변호사)
이천년 일월 마지막 월요일 이른 새벽. 부산행 기차는 서울역 플랫폼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나갔다. 잠시 후 기차는 한강을 넘었다. 차고 검게 번들거리는 강물위로 가로등의 불빛들이 기둥을 이루며 흔들렸다.
나는 탈주범 신창원의 마지막 공판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경찰을 따돌리고 절묘하게 도망 다닐 때 그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마치 열광적인 스포츠 경기와도 같이 언론들은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 한 인간으로서 절규하는 법정은 썰렁했다. 도망 다니다 잡힌 쥐는 더 이상 아이들의 흥미 거리가 아니었다.
기차는 단속음을 내면서 어느덧 조치원을 지나고 있었다. 겨울 빈 들판과 야트막한 구릉 위에는 여기저기 눈이 덮여 있었다. 지난번 접견 때였다.
그는 씩 웃으면서 "왜 무료로 저를 변호해 주는지 이유를 알았어요"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을께요"라고 했다. 미결수들은 구형이나 선고를 앞두고 변호사인 내게 매달렸다.
절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때 나는 기도하라고 한다. 한 살인범은 하나님과 부처님에게 다 기도하겠다고 했다.
무조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구형을 앞둔 신창원의 말은 이랬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죄를 저질러 왔습니다. 내가 봐도 저는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믿습니다' 한마디 한다고 저의 죄를 모두 용서해준다면 그건 예수님이 공평치 못한 거예요. 죄에 해당하는 오랜 고통과 반성하는 행동이 있은 후에 용서받아야 마땅할 것 같아요."
희망의 빛이 그의 눈에 잠시 보이다 사라졌다.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이미 그는 무기수였다.
끝없는 회색의 세월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 젊은 그는 그 세월이 너무 벅찼다. 나는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신창원씨는 시하고 수필을 좋아하잖아? 감옥 안에서 문학을 한번 해보지.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서 활짝 열린 마음의 물결을 시나 수필로 찍어낼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징역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인에게는 감옥의 담장은 이미 없는거니까."
내 말을 듣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맞아요 청송교도소에도 책은 오천권이나 있어요. 열심히 읽을께요. 그리고 매일같이 불량청소년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쓸께요. 내 과거를 얘기하고 나같이 되지 말라고요. 나같은 놈도 할 일이 있네요."
그의 가슴속 깊은 곳은 살고 싶은 불길이 타올랐었다. 어느새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부지런히 부산법원 103호법정으로 갔다. 넓은 법정 안은 썰렁했다. 이제는 기자도 관심을 가진 시민들도 거의 없었다.
"검사 의견진술하시죠"
재판장이 말했다. 공판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어조로 먼저 증거관계와 범죄전력, 탈주동기와 범행을 자세히 설명해 내려갔다. 이윽고 마지막에 얼굴이 굳어지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피고인 신창원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출소한 후에도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교도소 안에서의 기록을 보면 난동을 부려 징벌을 받는 등 선량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피고인 신창원은 지금까지도 경찰과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완수하지 못하여 후회스럽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정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일기장에 쓴 것들은 탈주범행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피고인 신창원은 오랜 수감으로도 교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는 교화라는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땅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런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우리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만이 적정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보았습니다."
검사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피고인 신창원을 사형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의 구형이 끝났다.
"변론하시죠"
재판장이 내게 말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신창원이 소리쳤다.
"변호사님! 차라리 아무런 변론도 하지 마세요."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순간 법정은 얼음장 같은 긴장이 맴돌았다. 검사석 판사석앞 등 요소요소에 배치된 날렵한 경교대요원들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보였다. 재판장이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변론하세요"
재판장의 명령이었다. 나는 변론을 시작했다.
"광주사태가 터진 무렵 열네살의 신창원은 과수원에 가서 복숭아를 땄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독재정권의 순화교육은 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전과만 보고 흉악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후배들이 이미 사람을 죽인 후에 현장에 합세한 바람에 흉악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청송교도소 무기수시절 고열과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약보다 처절한 매와 고문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마저 상실된 이런 무기수에게 어쩌면 탈주는 자유를 그리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탈주 중 그는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거나 생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날을 지켜본 변호인의 결론으로 신창원은 가장 평범하고 싶은 보통의 인간입니다. 정 한번 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내주는 감성적인 인간입니다. 공소장에 그는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엄청난 인간으로 묘사했지만 사실 그는 강아지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위인입니다."
신창원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나에게 재판에서 절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변호사였다. 내가 본 진실은 밝혀야 하는 게 소명이었다. 내가 계속했다.
"피고인 신창원의 죄는 중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춥고 뼈저리게 고독하게만 살아온 피고인에게 세상의 따뜻함과 법의 관용이 어떤 형태로든 공평하게 비추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론이 끝났다. 신창원에게 최후진술의 기회가 주어졌다. 고해성사같은 그의 과거가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 교도소 높은 철창에 수갑으로 채워져 대롱거리던 대목에서 그는 오열했다. 그에게 천사같이 해주던 피해자들에 대한 참회와 감사가 나왔다. 한없이 관대한 대통령의 아들과 철저한 천덕꾸러기인 자신에 대한 한도 터졌다.
"저에게 조금의 인정도 주지 마시고 죽이세요. 사형선고 내려도 절대로 항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변명이나 동정 받을 가치가 조금도 없는 놈입니다. 전 강간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구하신다면 그것도 죽음과 함께 가지고 갈께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2000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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