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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일반 예화

[스크랩] 예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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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


로키 산맥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 한계선이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서 있다. 이 고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무서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을 꿇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낮엔 따뜻하고 밤엔 추운 날씨가 계속될 때 가장 선명한 단풍이 만들어지듯 우리 인간도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다듬어진다. 성경을 보라. 연단을 받지 않고 쓰임받는 사람이 있는가? 모세도 쓰임받기 전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훈련을 받았다. 다윗 왕도 광야의 훈련을 받고난 다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쓰임받았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었던 사람들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이다.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목표와 집중


스키를 배우고 싶어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주위에서는 말리며 걱정과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본인은 코치를 찾아 개인지도를 받아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어느 분이 그 어른께 얼마나 스키를 잘 타고 싶냐고 묻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타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모두들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함께 스키를 타게 되었다. 그분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다들 놀라워하며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목표를 높게 잡으니 훈련에 집중하게 되고, 집중해서 훈련했더니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목표도 열정도 없이 입에 발린 말로 그칠 때가 많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고 했다. 높은 목표와 열정, 그리고 집중이야말로 진정한 성장과 향상의 비결이다.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진정한 효도


요셉의 가슴 속엔 아버지가 있었다. 어린시절에나 성년이 되어서나, 평안할 때나 환난의 때나 그의 가슴 속엔 언제나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요셉에게 있어서 아버지 야곱은 허물 많고 불완전한 부모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힘을 다해 아버지를 섬긴 이유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아버지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고 순종하며 살았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해도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고 온 힘을 다해 봉양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바울은 이런 이들을 향해 효도야말로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중에 예수를 닮은 것보다 더 위대한 은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위대한 예수의 은사를 닮기 원한다면 십자가상에서까지 효를 보이신 예수를 닮아야 한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성령의 인도


영국의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부인과 가족을 보고 오라고 했다. 존 번연은 고마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가다가 되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 후 간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제가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셔도 좋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옥사장과 존 번연은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순간순간 어려움에 갇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자유롭게 될 것이다.

윤여풍 목사(충성교회)

 

 

 

 

누가 노인인가


모든 사람은 젊음을 갈망한다. 젊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게 보이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다. 그러나 육체가 젊어지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늙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육체는 젊은데 마음이 늙은 젊은이들을 본다.

누가 노인인가. 열정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이 노인이다. 달팽이처럼 자기의 성 안에서 안주하려 하거나 소신 없이 바깥 눈치만 살피는 사람은 젊었어도 노인이다.

진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젊은이다. 가슴이 뜨겁고 피가 끊으면 누구나 젊은이다. 인생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꿈을 꾸고 그 꿈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젊은이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걷고, 외치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제자의 발을 씻겨주셨다. 예수님의 이름은 동사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는 동사의 연속이었고 그의 복음은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김은호<오륜교회 목사>

 

 

 

 

하나님의 해피엔딩


미소가 멋진 집사님이 계셨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삶은 힘겨운 하루하루였다. 잘 되던 사업이 부도로 어려움에 처하고, 새로 시작한 사업도 될듯 하면서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분은 더 환한 웃음을 보여주셨고, 그 웃음 뒤에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가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하나님이 그 분을 데려가셨다. 모두들 그 소식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면 주님을 위해 더욱 헌신하겠다던 그 분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그 분의 미소는 모두에게 전염됐고 이제는 더 멋진 미소들이 교회 안에 태어나고 있다.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서번트 리더십


요즘 경영학에서 ‘서번트 리더십’이 회자된다. 섬김의 지도자란 말이다. 로버트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아이디어를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으로 가는 여행’에서 얻었다. 단체여행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심부름꾼 레오가 없어지자 여행이 계속될 수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몇년 만에 레오를 만났는데, 레오는 사실 심부름꾼이 아니라 여행을 후원한 교단의 책임자이자 정신적 리더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서번트 리더십은 인간에 대한 자세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이 리더십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예수 정신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섬김이다. 그 사랑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크게 키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웃과 세상을 바르게 섬기기 위한 복음적 방법이 뭔지 고심하며 생활해야 한다.

신경하<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물증과 심증




오만불손하고 불의한 부자들의 재산을 훔쳐다가 의롭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의적이 된다. 실정법으로는 의적도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마음의 법으로는 칭찬의 대상이다. 우리 고전 가운데 홍길동 이야기가 아름다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서양에는 로빈 후드 이야기가 있다. 홍길동이 조선사람이고, 로빈 후드가 영국인인 점만 다를 뿐 의적으로 추앙받기는 똑같다. 또 하나, 둘 다 실재 인물인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는 않는다. 감동적인 일화의 주인공으로 우리 삶에 가르침을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작들이 반드시 사실적 역사물일 필요는 없다. 물증이 아니라 심증으로도 독자와 만날 수 있고, 감동을 주며, 독자의 삶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이야기가 과학일 필요는 없다. 다만 삶을 움직이는 감동이어야 한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마음의 동요


어느 시대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문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빈곤과 질병, 계층간 갈등, 환경 재해 등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다. 그 많은 문제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 그러면 우리가 직면한 마음 속 내면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동요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동요하는 민심에서 지도자의 비극은 싹트듯 모든 불상사는 바로 이 마음의 동요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흔들리는 마음부터 다잡아야 한다. 주님은 세례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시고서도 전혀 마음의 동요 없이 빈들로 가셨다. 성경은 작은 불행에도 마음의 동요를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다. 과연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채워야 한다.

길자연(왕성교회 목사)

 

 

 

 

힘차게 경주하라


어렸을 때 언덕 위의 높은 나무에서 언덕 밑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지금 그 높이를 생각해보면 아파트 10층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죽지 않고 크게 다치지도 않게 지켜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때의 상처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떨어질 때 느꼈던 공포가 내면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층의 복도식 아파트를 지날 때면 극도의 두려움으로 살금살금 기다시피한다. 특히 당시의 높이로 느껴질 때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다.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세계 속에 그대로 남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과거에 매여 있을수록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좋지 않았던 과거는 빨리 잊어야 미래를 향한 힘찬 경주를 할 수 있다.

윤여풍 목사(충성교회)

 

 

 

 

들보를 빼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동정적이지만 남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하다. 자식에 대한 태도를 보라. 남의 자식이 흘리는 코는 불결하고 내 자식이 코 흘리는 것은 귀엽기까지 하다. 자기 자식이 집안에서 뛰어놀면 씩씩하게 보이고, 남의 자식이 뛰어놀면 예의없게 보인다. 자기가 말을 많이 하면 필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남이 말을 많이 하면 수다스럽다고 한다. 자기가 비싼 물건을 사면 필요해서라고 말하고, 남이 고급 물건을 사면 사치스럽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자신에게는 후하고 남에 대하여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눅 6:41∼42).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재물과 은총


재개발을 기대하고 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한 분이 있었다. 원금과 이자에 대한 부담은 컸지만 시세가 오르자 기뻐했다. 그러다 부동산경기가 하락하고 매매시점을 놓치면서 대출상환 시한까지 다가와 물질적인 압박감에 정신적인 고통마저 더해갔다. 늦게나마 집을 매물로 내놓았으나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내 욕심의 산물이었고, 물질이 우상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피를 말리는 회개기도를 드리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렇게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여기는 순간 하나님은 움직이셨다. 계약금이 도착한 것이다. 물질적인 손해가 컸지만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성경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언 22:1)고 말씀하신다.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재물이 우상이 될 때 은총과 명예를 잃기 쉽다.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콩 심은 데 콩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은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가게의 주인은 자기가 믿는 신이었다. 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 여인이 무엇을 파는 가게냐고 묻자 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다”라고 말했다. 여인은 외쳤다. “제게 행복과 부, 아름다움과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조용히 웃으며 “미안하네. 여기서는 열매를 팔지 않고, 다만 씨앗을 팔 뿐이네”라고 대답했다.

모든 열매는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씨앗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씨앗은 조그맣고 주름지고, 씨눈은 작고 보잘것없다. 게다가 땅 속에 깊이 묻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씨앗 속에는 생명이 있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화이부동(和而不同)




2008년은 화해가 넘실거리는 해로 만들자.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안고 살고 있고, 인간 삶에 있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모두가 갈등을 해소하려 하지만, 공동체 구성원으로 사는 한 갈등은 해소되기 쉽지 않다. 갈등해소를 내세우며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 갈등은 해소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서로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고, 상생을 북돋우며, 파괴가 아닌 생산적 경쟁을 통해 새로움과 공동선을 만드는 관리의 기술이 필요하다.

갈등관리를 ‘화해’라고 일컫고 싶다. 화해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다양한 주장이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 수는 없지만,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똑같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즉 ‘부동(不同)’이다. 하지만 서로 모여 화음을 만들어 합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사람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사람이 만든다. 요나단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만든 것처럼 사울을 바울로 만든 것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사울간의 오해를 풀어준 것도 바나바였고, 길리기아 다소성에서 사울을 안디옥교회에 불러 함께 일한 것도 바나바였다. 솔로몬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말했다.

한 포털 사이트는 오늘날 직장인들의 41.15%가 직장의 상사나 동료, 후배와의 마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실패하면 공들여 쌓은 탑도 무너진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힘들여 쌓았던 행복이 일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바나바는 어떻게 사람 세우는 일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까. 그의 인격이 예수의 품성과 닮았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용서


헤밍웨이의 소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을 한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 신문에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원하고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서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용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고 김인수 장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90%는 순종이며 사람에 대한 사랑의 90%는 용서”라고 했다.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욕심과 심술


두 나그네가 광야를 지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욕심쟁이고 또 한 사람은 심술쟁이였다. 마침 천사가 나타나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단, 두번째로 소원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첫번째 사람의 소원을 두 배로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욕심쟁이는 두 배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심술쟁이는 상대가 두 배를 더 받는 것에 심술이 나서 눈치만 살폈다. 결국 서로 먼저 소원을 말하라고 싸움이 붙었고 마침내 심술쟁이가 소원을 빌었다. “저에게는 두 눈이 모두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심술쟁이는 소원대로 애꾸눈이 되었고, 욕심쟁이는 두 눈을 모두 잃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잠 28:25). 욕심과 심술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때 그리고 시간


2008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같은 해가 뜨고, 변함없이 한 살 나이를 먹지만 언제나 낯선 사건을 대하듯 때를 맞이하고 시간을 환호하는 사람들은 복되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덕담하는 일은 좋은 풍속이다. 덕담은 앞으로 될 일을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그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미래완료형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새해,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 “올해는 손주를 보셨다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로 오늘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축하하는 일, 이것이 바로 덕담의 매력이다.

기독교의 시간에는 목적이 있다. 세월은 쏜살같이 빠르게 날아가지만, 그 방향과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때가 꽉 찬 경륜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언제나 ‘코앞의 일’에만 머물러 시시비비를 가리면 힘들다. 지금 우리네 사람살이와 사회가 겪는 진통은 시간과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데서 온 것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새 하늘 새 땅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한다. 세상 만사 돌고 돈다고도 한다. 유행도 돌고 도는 것 같다. 그런데 복고풍 옷이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실제 느낌은 전혀 다르다. 디자인은 같거나 비슷하더라도 옷의 질감이 다르고 입는 사람들의 풍모와 멋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래된 새 것’의 맛이 감칠나고, 멋스럽기까지 하다. 역사는 돌고 돌지만 똑같은 원을 그리며 돌지 않는다. 용수철처럼 나선형을 그리면서 위를 향해 높아지고, 아래로 보면 깊어지고, 옆으로는 넓어지는 방식으로 성장하면서 돈다. 이런 성장이 우리가 바라는 선진(先進)적 성장이고, 그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창조적인 성숙이 꽃핀다. 그것은 하늘의 뜻으로부터 온다. 땅이 새로워지려면 하늘의 뜻을 심어야 한다. 땅의 사람이 새로워지고자 한다면 하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박종화<경동교회 목사>

 

 

 

 

하나님을 모신 사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잘되는 사람도 있고 안되는 사람도 있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좋은 가문과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별 볼일 없는 학벌과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잘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런가?운명의 장난일까, 아니면 우연의 결과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되게 하시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되게 하시면 안된다.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유혹에 동요하지도, 고난에 쓰러지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산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어주심을 체험한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말씀대로 믿는 자


스탠더드 오일은 이집트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유명한 미국계 회사이다. 이 회사가 하나님 은혜로 이집트에서 석유를 퍼내게 된 비화 한 토막을 생각해 보자.

이 회사의 중역 가운데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성경 출애굽기 2장을 읽을 때였다. 모세의 어머니가 100일 된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내야만 했을 때 잠시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역청을 가져다가 갈대 상자에 칠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중역은 역청이 굳은 상태의 석유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 기름이 날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장소에 지질학자를 보내 조사하게 했고 드디어 석유를 캐내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스탠더드 오일회사는 세계적인 석유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성경말씀대로 믿는 자는 복을 받게 된다는 교훈이다.

윤여풍 목사(충성교회)

 

 

 

 

구두가 문제야!


어떤 교회에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한 형제가 있었다. 이 형제는 목사님의 설교 도중 감동이 되면 언제나 큰 소리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 이 소리 때문에 힘들어하던 목사님은 어느날 형제를 불러 아무리 설교가 감동적이어도 속으로만 “아멘”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번번이 허사가 되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형제를 불러 “다음 주일 조용히 예배를 드려주면 구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던 이 형제는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음 주일 예배 시간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증거되자 교회당 전체에 우렁찬 소리가 울려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두가 문제야! 나, 구두 필요 없어! 할렐루∼야!” 그렇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면 구두가 문제이겠는가.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약함이 곧 통로다


자폐아 판정과 함께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증세를 보인 아이가 있었다. 세살 때 검사했더니 지능이 12개월도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상의 선입견을 아는 엄마는 직접 교육하기로 결심하고, 눈물로 아이를 껴안고 가르쳤다.

우여곡절 끝에 증세가 완화되어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말도 잘 못하고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17 대 1의 경쟁을 뚫고 과학고에 합격하는 영예를 얻었다. 세상의 놀림감이던 그 아이가 부모의 눈물어린 교육과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에게 자랑과 기쁨이 된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는 바로 우리의 약함이다.

정삼지<제자교회 목사>

 

 

 

 

 

태안의 성탄


기름 유출로 검게 물든 태안의 앞바다는 재앙의 현장이다. 한없이 넓은 바닷물에 비하면 지극히 소량의 기름이지만 피해 현장에 서보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백사장과 바위와 자갈뿐만 아니라 철새도 오염의 늪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어업 종사자들은 먹고 살 길이 막혔다. 기름제거봉사에 동참해봤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자원봉사에 나선 수만, 수십만명의 정성과 헌신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봉사자들은 예쁘고 작업하기 쉬운 돌만 찾아 기름기를 닦아내는 것이 아니고, 아주 못생기고 작은 돌들도 똑같은 정성으로 대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는 초라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탄생한 아기 예수는 세계와 인류를 구원하신다. 신분과 힘, 출신, 생김새를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 죄악의 때를 벗겨내시고 구원을 베푸신다. 악을 선으로 이기신다. 그래서 성탄을 기다린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출처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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