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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하늘이 쓰는 사람(창세기 24:1-9)
92년 미국 LA 올림픽이 끝난 얼 마후 미국으로부터 오신 목사님 한 분을 만나 아침 식사를 함께 되었습 니다. 그 목사님께서 텔레비젼에서 보셨다며 한국의 아이들이 10만원이 넘는 운동화들을 신고 다닌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를 제에게 물어 오 셨습니다. 저는 그때 그렇게 비싼 운동화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보통 만원정도하는 운동화 를 신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기껏 비싸야 한 3-4만원 정도 하는 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정말 10 만원 짜리 운동화가 있는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 운동화가 있다고 아이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 면 너희 학교에도 그런 운동화를 신 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가를 물었 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이들은 '우 리만 빼고는 다 신어요'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그 런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지 않았느 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래봤자 안 사주실텐데요 뭐'라고 아이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교회 사무실에 나와서 아이들에 게 그런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 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운동화를 신어서는 안되는지를 나름대로 설명 했습니다. 제가 그 때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10만원 짜리 운동화 는 너희들에게 필요가 없는 물건'이 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황영조 선 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이었는데 그때 그 선수가 속 해 있던 코오롱에서 황영조 선수를 위하여 1억원을 들여서 신발을 개발 해 주었었습니다. 신발에 적응하는 시간이 짧아서 결국 그 신발을 신고 뛰지는 못하였지만 1억원 짜리 운동 화는 당시에 토픽중에 하나이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아이들 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더 해 주었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1억원 짜리 운동 화를 신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 는 그만한 신발을 신어도 될만한 사 람이다. 왜나하면 그만한 필요가 있 고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10만원짜리 운동화 도 신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얼마 짜리 운동화를 신느냐가 중요한 것 이 아니라 그 신을 신고 다니는 사 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사실은 더 중 요한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사람이 자신을 자랑할 수 없음으로 운동화와 같은 것들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있는 것을 소유하 는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삶 의 행복은 소유가치에 있는 것이 아 니라 존재가치에 있습니다. 다시말 해서 가치있는 것을 소유할 때 행복 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는 존재가 될 때 인간은 행복 을 느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그 어떤 것을 소유한다고 하여도 행복할 수 없습 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다라 고 하여도 우리의 존재가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고 할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은 가 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치란 유용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순한 우리말로 '쓸데 있음' '쓸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 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면 존재하는 목적과 존재가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 앞에 있는 마이크는 상당히 비싼 마이크입니다. 그것은 마이크 가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관리하는 분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 며 잘 보관을 합니다. 그 까닭은 이 마이크가 고장이 나지 않아서 존재 하는 목적과 존재가 일치하고 있으 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마이 크도 고장이 나게 될 것입니다. 다 시말해서 존재의 목적과 존재가 일 치하지 않는 때가 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 마이크를 내다 버리게 될 것입니 다.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쓸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도 마찬가지입 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 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 도와 뜻을 가지시고 창조하신 하나 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가 바로 우리의 존재 목적이 됩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 스스로에 게 존재의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 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생각하고 그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비 로서 가치있는 존재가 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행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삶을 사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늙었 을 때의 이야기인데 아브라함이 약 140세 가량 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 다. 아브라함은 그 때 100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장가 들이고 싶어 하였 습니다. 당시의 풍속으로 아브라함 이 직접 그 일을 하여야 했지만 아 브라함은 너무 나이가 많아서 그 일 을 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아주 신뢰하는 늙은 종 을 불러서 그 일을 대신하게 하였습 니다. 그 종은 엘리에셀이라고 하는 종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수많은 종중에 가장 신뢰하는 종이 었습니다. 한 때 그는 그를 자신의 양자로 택하여 후사를 삼을 계획까 지 가졌으리만큼 신뢰하던 종이었습 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종을 불 러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일을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엘리에 셀은 흔쾌히 그 일을 수락합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엘리에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 니다. 보통 사람 같았다면 별로 달 가워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삭만 없었다면 자기가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 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그 멀 고 험한 길을 다녀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 하필이 면 나인가?라고 불평을 하고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에셀의 마음은 그렇 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인정받고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기쁜 일 인가를 그는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늙은 종이었으나 그는 없어서 는 아니되는 가치있는 존재이었습니 다. 주인이 가장 귀히 여기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아 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며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 았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았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 다. '하나님 저를 엘리에셀과 같은 종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가장 귀히 여기시는 일에 쓰임받는 종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지난 한 주간은 정말 바빴습니 다. 정말 10분을 쪼개서 써야만 하 리만큼 바뻤습니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때문에 포항에서 아이들도 다 올라오고 했지만 함께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몸은 지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쓰 임 받는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이 루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훌륭하고 위대한 사 람을 향하여 '하늘이 낸 사람'이라 고 이야기 하거나 '하늘이 쓰는 사 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제가 바로 지금 그와같 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 방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 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금 사용하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그 일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쓰임을 받고 이런 마음 으로 살아가는한 세상적인 지위야 높거나 낮거나 관계없이 저는 하늘 이 낸 사람이요 하늘이 쓰는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 러분들도 모두 하늘이 낸 사람이요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창조하신 존 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얼 마든지 그와같은 삶을 사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 동안 교회를 쓰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 께서는 때마다 특별한 몇 교회를 선 택하시어 그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교회로 사용하십니다. 그동안 우리 교단을 살펴본다면 영락교회 소망교 회 명성교회 온누리교회같은 교회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 다음의 맥과 대를 잇는 교회중의 하나로 우리 동안교회를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동안교회가 혼자서 그 막중한 일을 감당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몇가지 목회 분야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 동안교회를 들어 쓰실 것이 분명합 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우리 동안교 회 교인들만 빼놓고는 거의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사역과 청소년사역 그리고 교회를 개혁하고 제도를 바꾸는 일 그리고 문화선교와 직장선교 쪽에 우리 동안교회의 사명이 특별히 크 다는 사실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받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우리 동안교회안에 엘리에셀처럼 하나님 께 쓰임받을 수 있는 교인들의 숫자 가 많아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만은 않습니다. 교회는 점점 커져가 는데 엘리에셀과 같은 충성스러운 종은 점점 그 수가 줄어가고 손님같 이 부담없이 교회생활을 하려고 하 는 사람들의 수만 늘어가는 것이 아 닌가하는 우려를 아니할 수 없습니 다. 물론 교회에는 손님같은 교인들 이 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는 새로워지고 부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손님같은 교인들이 늘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었던 교인들도 교회가 점점 커감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놓고 손 님같은 교인이 되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추수감사절 헌금을 하였 는데 제가 부임한 후 아마 최고로 적은 추수감사헌금이 아니었는가 싶 습니다. 물론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어느정도 헌금이 줄리라고는 생각하 였지만 그 생각을 넘어서 정말 상상 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감소하였습니 다. 그것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헌금 액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었 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나라도 내 몫을 해야지 하는 주인이 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부담없이 교회 에 대한 부담을 버렸습니다. 저는 그와같은 모습을 보면서 손님을 많 으나 주인은 적구나하는 생각을 하 였습니다. 솔직히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7년동안 목회를 잘못했 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상 속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한 반 응을 보이면서도 힘들고 어려운일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발을 빼는 모습 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 동안교회에 는 엘리에셀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 님과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직분을 맡은 사람은 그리고 중직을 맡은 사람은 교회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재정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지기 위하여 자신 은 이번에 얼마나 헌금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헌금 을 하신 것을 살펴보면 그런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장로와 권사 그리고 집사 선거는 그토록 과열이 되는데 어떻게 책임을 지고 감당하 는 일에는 이렇게도 무심할까를 생 각하니 정말 맥이 빠졌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 리 동안교회를 쓰시려고 하실 때 엘 리에셀처럼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군 이 되도록 헌신하고 싶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저 하나만의 헌신으로 이 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 저 와 함께 하나님께 엘리에셀과 같이 헌신할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저와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있어 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은 힘든 일 입니다.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 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 큼 나의 존재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라고 주신 물질과 시간과 재능 그 리고 명예와 권력을 주를 위하여 쓰 지 아니하고 그것을 소유만 하려고 한다면 부자는 될 수 있을는지 몰라 도 정말 잘 사는 사람은 될 수 없습 니다. 사람들은 그냥 부자를 잘 사 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그렇지 않 습니다. 부자와 잘 사는 사람은 언 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잘 사는 사람은 가치있는 것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자 신의 존재가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는 사람이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을 의미 합니다. 엘리에셀과 같이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일에 쓰임받는 종이 되어 언제나 기쁘고 복된 삶을 살아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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