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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신명기 10:12-19)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신명기 10:12-19)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 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 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 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 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 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 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 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 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 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 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 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 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 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 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 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 었음이니라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정성 껏 치료한 다음에 환자가 어 느 정도 건강하게 되어서 퇴 원을 시켜서 집으로 돌려보 내게 되는데 이 사람을 돌려 보낼 수 있을까? 혹은 아직 도 미급해서 돌려보내지 말 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정도를 정신 건강의 정도를 시험하는 시험방법을 개발한 한 의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건강 정신 건강 측정 방법은 이렇다합니다. 그 환자가 있는 방에 수도 장치 를 해놓고 그리고 수돗물 꼭 지를 적당히 열어놓아요. 그래 수돗물이 '줄줄줄' 흐릅 니다. 방으로 흘러서 방에 물이 가득히 고입니다. 이 때에 환자에게 걸레를 주고 물을 닦으라고 합니다. 이 렇게 될 때 정신적으로 건강 한 사람은 먼저 척 보고는 수도꼭지부터 먼저 잠그고 다음에 엎드려서 물을 닦습 니다. 이렇게 되면은 퇴원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아직 미급한 환자는 수도꼭지는 돌아보지 않고 방에 흘려 놓 은 물만 열심히 닦는답니다. 이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무슨 생각이 듭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내가 당한 현실 만 가지고 잘됐느니 안됐느 니 뭐 죽겠느니 살겠느니 그 저 몸부림을 치고 이 사람 원망 저 사람 원망하지요.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 도대체 그 근원이 어디 서부터 왔는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를 깊이 추적 해 들어가면서 원인에서부터 고치려고 해요. 그리고 좋 은 결과를 기다리게 되는 것 이에요. 이것이 건강한 사 람 이예요. 왜 이런 말이 있지요. 사람은 사십이 넘 으면 주변환경에 책임을 지 라는 거예요. 자, 이제 사십 이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 이 나에게 친절하게 하면 좋은 일이요. 내가 남에게 친절하게 했다는 거예요. 왠지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 하는 것 같아 영 나로부터 멀어지고 반가워하지 않아 요. 그렇다면 'something long with me'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주 변 환경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이 주어지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내 책임이 있는 거예 요. 그 원인을 생각해요. 경제고 정치고 무엇이든지 그 근본원인으로 돌아가서 먼 뿌리에서부터 생각할 줄 아는 그것이 정신적으로 건 강한 사람에 모습이다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그가 '무 엇을 가졌냐?' 에 따라서 평 가되어서는 안됩니다. 뭐 부자를 높이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그 가진 소유대 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가장 잘못된 평가 기준 입니다. 그래서 소유에 의 해서 평가 하는게 아니라 그 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 라서 평가해야 됩니다. 그 에 철학, 그에 지식, 그 속 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 라서 평가되는 것이 당연합 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평 가입니다. 그러나 좀더 나 아가 생각해 보면은 '무엇을 아느냐? 무엇을 생각하느 냐?'에 따라서 평가할 것이 못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 한 것은 그가 무엇을 행하느 냐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알기는 아는데 행하는 것이 없어요 머리에 든 것은 많아 가지고 생각은 많아요. 말 도 많아요. 실천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런 사람 이 문제예요. 누구라고 말 안 하겠습니다만, 그 부인은 가정학과 교수요. 가정을 어떻게 꾸미고 가정을 어떻 게 하고 이것은 아주 도사예 요. 그런데 그 집은 그저 '돼지우리 같다'고합니다. 그 남편의 말에 의하면 아무 상 관이 없데요. 저 나가서 가 르치는 것하고는 집에서 사 는 모습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그래 어디서 평가 해야 합니까? 그의 지식,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 동, 그의 행동거지가 문제예 요. 뭐 안다고 떠드는지 행 하는 것이 없어요. 그러므 로 그의 행위에 따라서 평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 은 행동만이 아닙니다. 그 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서 평가될 것이 아니고 그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왜냐하 면 행동은 있는데 사랑이 없 거든요. 가령 우리 결혼생 활 할 때 부부간에 살면서 어떤 부인들 보면은 참 한평 생 남편을 위해서 수고 많이 하고 아이들 위해서 치닥거 리 하고 정말 수고 많이 했 어요. 그러나 가슴에 사랑 이 없어요. 억지로 했어요. 팔자 타령 신세 타령 다 해 가면서 운명이 어떠니 해가 면서 죽지 못해서 한 거에 요. 그것은 평가될 가치가 없어요. 그런고로 무엇을 행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했느냐? 그 속에 얼마 나 사랑이 담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기독교 윤리학에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오직 사 랑만이 그의 행동방법을 정 당화 할 수 있다 . 그렇습니 다. 사랑! 사랑이 있었느 냐? 없었느냐? 가 문제입니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 했느냐? 아니냐? 사랑에 소재가 문제입니다. 한 젊 은 목사의 어렸을 때에 있었 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 님이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님 을 사랑했대요. 너무너무 사랑하고 어머니가 너무 고 맙고 가난한 살림에서 자기 들 위해 주는 것이 너무 고 마워서 어머니를 사랑해서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야지 해서 어떻게 용케 돈을 모 아 가지고 어머니를 위해서 연시 감을 하나 샀어요. 딱 하나를 사 가지고 어머니께 가지고 가서 "어머니,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이것을 샀 습니다. 이거 잡수세요." 하 고 드렸는데 드리면서 보니 까 자기 여동생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어요. 게가 먹 고 싶어하니까 어머니가 "얘 야 네가 먹어라. 뭐 이것 하나 가지고 그러느냐? " 하 니까 "아닙니다. 이건 꼭 어 머니가 잡수셔야 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 구하고, 어머니는 이것을 받 아서 그 품에 있는 여동생에 게 주더라. 이거야 이 목사 님이 화가 나가지고 그것을 뺏어 가지고 땅에다 던져버 렸어요. "이것 왜 네가 먹 냐? 어머니가 드셔야 될텐 데" 빼앗긴 동생은 울고 자 기도 속상해서 울고, 어머 니는 넉넉지 못한 살림 때문 에 울고, 다 울었돼요. 이젠 묻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린 것입니까? 도대 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입 니까? 어떻게 하자는 것입 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 다. '성어거스티' 는 말합 니다. 인간은 알고 있는 것 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 아 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에 따 라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무엇을 사랑하느 냐? 누구를 사랑하겠느냐? 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람 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큼 밖 에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 아니올시다. 경험이 아 니라 사랑한 것만큼만 압니 다. 사랑해서 행한 일 만큼 만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벼랑에 선 것같이 많 은 위기를 느끼고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 각을 다시 돌려서 우리는 무 엇을 사랑하고 있느냐? 누 구를 사랑하고 있느냐? 내 가 지닌 사랑을 제 점검해야 되겠다는 말이요. 그것에 따라서 내 존재의 가치가 오 늘 평가되어야 하니까 말입 니다. 적어도 내 운명은 여 기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런고로 말씀합니다. '하나 님을 사랑하라' 여러분이 즐겨 읽었었던 책 '눈의 혁 명'이라는 책을 보면, 과학자 의 과학적 이론입니다. 이 우주에는 어떤 신비로운 의 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연법칙이 아니라 높은 차원 에서 신비로운 강한 의지가 있는데 그 의지로부터 받은 유전인자가 우리 몸에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의지에 가 까이 가며 살면 건강할 수 있고, 이에서 멀어지든가 역 행하면은 그 몸에서부터 악 한 호르몬이 나와서 그를 병 들게 한다. 이것은 의학적 이론입니다. 그 신비로운 의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그 사랑에 의지가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그리 로 향하고 그것을 받아들이 고, 그 같은 길로 갈 때 육 체도 정신도 건강할 수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한 현실 여기에 몰두하지 말고 생각을 돌려서 내 마음 속에 깊이 있는 사랑을 재점 검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오늘본문 15절에 보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 랑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 하고 깊이 깨닫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은 사 랑에 대한 바른 응답을 해야 합니다. 사랑에 응답할 줄 아는 존재요, 사랑을 알고,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받아 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 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님께서 여러분 개개인을 얼 마나 사랑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현 재와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돌이켜서 과거에 그것을 생 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계속 말씀합니다. 내가 너 를 애굽에 종 되어 있을 때 에 너를 구원해 냈느니라. 자꾸만 강조합니다. 우리 민족이 어려움 당할 때 그 많은 혼란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셨어요. 그 엄청난 사랑을 다시 확인해 야 됩니다. 주께서 나를 위 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다시 마음 에 불러 일으켜야 되고, 확 인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 제의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 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 섯 번 사선을 넘었습니다. 자주 꿈을 꿉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너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서 우리 민족과 여러분 개개 인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재확인하고, 더 깊이 깊이 깨닫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 다. 그러기에 오늘 두 번째 로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명 령, 그의 계명에 대해서 오 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계명이라는 것은, 그 깊은 사랑에 고백 속에서 계명을 대할 것이요. 그 점 을 생각해야 됩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 느 목사님이 교회 젊은이들 과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됐더랍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중에 그 젊은 사람이 모처럼 목사님 옆에 앉았어요. '뭐 좀 물어 봐야 겠다.' 질문을 하는데 질문 이 맹랑한 질문이요. "목사 님, 나는 십계명을 싫어합 니다." "그건 왜?" 십계명을 보니까 하지 말라, 하지 말 라, 여러분, 몇 가지 하지 말라 하고, 몇 가지 하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렇게 물 으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 니다. 일곱 가지나 하지 말 라고 했어요. "뭘 하지 말 라, 뭘 하지 말라, 나는 이 렇게 하지 말라는 것은 질색 이요, 나는 자유를 좋아하 기 때문에 뭐 하지 말라, 뭐 하지 말라. 나는 십계명 을 싫어합니다." " 그래, 그 렇구먼" 하고 한참 가는데 모르는 길을 가는데 이정표 가 나왔습니다. 이쪽으로 가 면 부산, 이쪽으로 가면 광 주, 이쪽으로 가면 뭐 어디 가 나왔단 말입니다. "자네, 저 이정표를 좋아하나? 저 것도 저 어디로 가라고 그 러는데..... " "그거야 그것 따라가야지... 우리 갈곳을 가니까요." "마찬가지야. 저 이정표를 고마운 줄 알아야 해. 저 이정표를 세워주신 분들에게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해야해. 저것이 아니면 내가 모르는 길을 어떻게 찾 아가겠는가? 그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행 복하게 하기 위해서 너희 잘 살고 너희 잘되라고 가르쳐 준거야. 이것하지 말라, 이 것하지 말라. 누구를 위했던 것이냐?" 십계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예수님 은 당시에도 이 계명을 놓고 바리세인 교인과 서기관들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은 아 주 이것을 어려운 법으로 가 르쳤어요. 그래서 이 법을 지키는 것 자체를 괴로워했 어요. 하나님은 무서운 하 나님이요. 공포에 하나님이 요. 저주하는 하나님이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이 렇게 느끼면서 그 계명 앞에 벌벌 떨었어요. 그러나 예 수님은 자유의 법을 가르쳤 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 라.'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 신 계명이다. 그래서 안식 일 날을 놓고 보더라도 사람 이 안식일을 위해 있느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 냐? 안식일 지키는 것 그렇 게 억지로 지킬 것이 아니 요. 너희들 잘 살고 너희들 복 받으라고 너희 행복 하라 고 주신 율법인데 왜 이것을 마치 저주나 심판처럼 억지 스럽게 생각하느냐? 여러분 그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 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해 라. 철 난다는 것이 뭡니 까? 부모님에 잔소리가 그 렇게 싫습니까? 철이 나고 보면 그게 다 누구를 위한 거요. 나 자신의 복을 위해 서 말씀하는 것이기에 이것 은 고마운 말씀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바로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에 요. 그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좀더 나아 가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관심 을 두어야 돼요. 내 소원이 아니라 그의 소원입니다. 효자로 말하면 내 소원보다 부모님의 소원 내 처지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그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 이것이 부모에게 대한 사 랑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 니까 내 욕망이 많지만은 이 욕망은 잠깐 두고 우리는 그 의 뜻, 그의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거기 에 관심의 초점을 모아야 된 단 말입니다. 유명한 작곡 가 '베르디'라고 했습니다. 그가 오페라를 많이 작곡하 는데 맨 처음으로 첫번 작품 오페라를 작곡을 해서 '플로 랜스'에서 연주를 하게 됩니 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이제 연주가 시작이 되었고 연주 가 끝났습니다. 모든 사람 이 갈채를 보내고 있지만은 '베르디'는 자기를 향해서 박 수치는 관중에 대해서는 흥 미가 없고 저 높은 데 VIP 석에 앉아 있는 한 분, '로 신이'라고 하는 대선배가 되 는 작곡가가 있어요. 그 '로 신이'를 뚫어져라 하고 쳐다 보고 있더랍니다. 그 얼굴 이 어떤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여기 많은 사람들 이 박수를 치던 말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대 선배 작곡가인 '로신이'가 이 곡을 '어떻게 평가해주느냐?' 가 중요한 것이에요. 세상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중요하 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 당한 현실을 어떻게 평가 해 주시느냐? 가 중요해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내 행위를 어떻게 평가해 주 시느냐?' 가 관심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하나님이 뭘 기뻐하시는지 오늘 이 많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그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 를 기뻐하고 그를 섬길 것입 니다. 섬긴다는 말은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에 자세를 바 로 해야 합니다. 들락날락 하던 일 가지고는 안됩니다. 전심전력해서 하나님을 경의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 자 세부터 먼저 바로잡아야 합 니다. 여기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그를 사랑 한다는 것은 그가 사랑한 자 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가 기뻐하는 자를 내가 기뻐해 야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 성경말씀에 " 나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나는 나그 네를 대접하는 자다. 그런 고로 너희도 나그네를 대접 하라. 그것이 바로 내 뜻이 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고 몸부림칠 때 1919년 3월 1일 참 자유를 위하여 온 국민이 둘러서서 만세를 불렀습니 다. 이것이 이 나라를 구원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 였다면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에 우리는 조용히 일본에 속국으로 평가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독립된 민족이라 고, 일본 속국에서 부터 떼어 놓는 일이 바로 이 삼일 운동에서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모든 제국주 의자들이 서로 나누어 먹기 운동을 할 때입니다. 그런 고로 모든 나라가 '이 나라 는 일본에 속한 것이다' 그 것으로 끝인 것이요. 그러나 3.1 운동이라는 이 사건이 온 세계에 알려지면서 "아 니다 이것은 독립된 민족이 다 독립된 나라다" 하는 것 이 만방에 알려지고 이것이 8.15 해방과 함께 독립을 찾 게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이 삼일절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에, 천도교 가 2백만, 불교가 3백만, 기 독교가 삼십오만, 전 인구에 1.2% 밖에는 안됩니다. 그 러나 민족대표 33인 중에 16 명이 기독교인 1.2%입니다. 그리고 만세 운동으로 인하 여 체포된 사람의 수를 일본 정부가 말해 준대로 보면 기 독교인들이 2,039명, 천도교 가 1,063명, 유교가 55명, 불교가 41명, 이것뿐입니다. 예배당이 불타고 순교를 당 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 데, 그 희생된 사람의 60% 이상이 기독교인이에요. 그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릅니다 만은 이 애국가는 그 당시에 있었던 찬송가 14장입니다. 14장이 애국가입니다. 교회 에서 찬송을 부르고 애국가 를 부르며 우리는 민족운동 과 신앙, 교회운동과 애국 운동을 하나로 생각했어요. 그런고로 이 상제 선생님 같 은 분이 체포되고서 고문을 당할 때 " 네 배우에 누가 있느냐? 대라! 하니까 간 단하게 '하나님이 시켰다" 그래요. 하나님이 하라해서 하는일이지 누가 시키는 것 도 아니다 말합니다. 이 런 신앙적 운동으로 애국운 동을 승화 시켰더란 말입니 다. 여러분, 우리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뜻도 있고, 우리의 바램도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의 소원이라서 이루어질 수 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 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를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 고, 그의 법도를 그의 계명 을 지켜나가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사랑하 는 길이요. 이 민족을 사랑 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기 뻐하는 것이니라. 이 민족 을 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잊어 서는 안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말씀합니 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 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 니라.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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