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한응목사

[스크랩] <3.14.주일밤설교> 주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자

      위 사진은 1998년 태국을 방문하였을때 라끄라방 교회의 신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건축하는 현장에서 잠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격려를 하는 사진입니다. 

 

 

(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041)337-4865, Fax(041)338-4865, H.P 011-452-4865
홈페이지 :
www.amospark.com  &  cafe.daum.net/43ch
E-Mail :
park043@hanmail.net  &  park043@chol.com
*************************************************************************************
     2010.3.14. 주일 밤예배 설교문
                  
본  문 : 마태복음 10 : 34 - 39
제  목 : 주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자
찬  양 : 102, 365, 367, 412, 513, 519.
복음송 : 30, 32, 39, 49, 49, 122.

 

        할렐루야!!
        항상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오늘밤에도 하늘 문을 열고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조금 전에 부른 367장 찬송 “십자가를 내가 지고” 라는 찬송은 영국의 헨리 프란시스 라이트(Henry Francis Lyte) 목사가 지은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은 라이트 목사님께서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 폐병과 천식으로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그의 목회지인 바닷가의 억센 어부들을 상대로 전도 사업을 하다가 임종 시에 “평화와 기쁨” 이란 말을 하고 죽었습니다.
        라이트 목사님은 가난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어도 고백하기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모두 잃어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얻겠네”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고초를 겪어도 주님이 사랑하면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신앙입니다. 본받아야 할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를 수십 년씩 다녔어도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서 세상 사람들의 핍박이 두려워서 수십 년씩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하면서도 주일성수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자식 결혼식도 주일날하고, 생일잔치도 주일날하고, 손주들 돌잔치도 주일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처럼 예수님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 밖에 부인을 안 했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수를 셀 수 없이 예수를 부인하고, 저버리고, 배반하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뜻을 생각하면서 찬송가 412장을 다시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늘 빌으시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왔노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가족 간에 불화가 일고 그로 인하여 원수가 되고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아비나 어미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치 않고,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고 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도 주님께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①여러분들은 부모님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②여러분들은 자녀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 시간 회개하여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의 인연 때문에, 세상의 체면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 한다면 그는 당연히 예수님에게서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 과실나무는 봄에 전지(剪枝)를 합니다. 과실을 얻기에 합당치 않은 가지는 모두 잘라버립니다. 잘려진 가지는 모두 죽고 맙니다. 불땔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 합당한 생활과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그러나 예수님께 합당한 생활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본문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자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희생하신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저마다 져야 할 십자가는 바로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우리의 희생과 봉사와 충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간절한 기도를 하셨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라고 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십자가일지라도 예수님께서「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지신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1. 십자가를 지고 어디로 가야합니까?

 

         마27:33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해골’ 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골고다를 해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①그곳에는 사형 당한 시체의 두개골이 널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고
        ②그 동산 모양이 마치 해골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③또 전설에 의하면 아담의 두골을 이곳에서 찾았다고도 합니다.
        십자가는 버려진 땅, 소외당한 곳, 알아주는 이 없고 인정해 주는 자 없는 외롭고 고독한 곳에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서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골고다는 죽은 자들이 모인 곳이요, 인골(人骨)이 널려 있는 곳이요, 냄새가 진동하는 곳입니다. 독수리들과 육식동물들이 들끓는 곳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 곳에 십자가를 세우시기 위하여 오셨고 그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이와 같은 세상에 십자가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죄악이 관영한 골고다와 같은 이 세상에 주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고 내가져야 합니다. 십자가 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2. 십자가를 누가 지고 갈 것인가?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질 때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지기 전에 내가져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도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를 남에게 미루지 않고 당신께서 지셨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길을 향하여 가실 때에 뒤따라가면서 구경을 하다가 억지로 지워주는 십자가를 예수님 대신 지고 골고다에 갔습니다. 얼마의 거리, 얼마의 시간동안 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성경에 없으나 그의 이 행함은 인류 역사상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가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희생과, 충성과, 봉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누가 다른 사람이 질 때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바로 신앙의 열매요 행함의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선다싱은 말하기를 “십자가는 호도와 같다 거죽은 단단한 것 같으나 깨뜨리면 속에는 맛있는 열매가 들어 있듯이 십자가의 고통은 단단하고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외로워도 그 과정이 지나가면 참으로 값진 보화가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아리마태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자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감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신앙입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고,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하겠습니까?(방법)

 

(1)십자가는 눈물로 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가끔씩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지고 가셨는데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이 어찌 십자가를 웃으면서 지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 없이 질 수 없는 길이요 또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를 하시다가 옥중에서 순교를 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복음성가 122장 3,5절>
3. 눈물 없이 못가는길 피- 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5. 십자가에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어찌 못가오랴
  주님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아오니
  고생이라 못가오며 죽음이라 못가오랴.  아 멘.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며 희생의 길입니다. 눈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골고다를 올라가는 심정으로 울며 울며 천국을 향하여 쉬지 말고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십자가는 감사한 마음으로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의 구령사업에 동참하는 축복된 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짜증과 불평과 원망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원망을 하시던가요? 불평을 하시던가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3) 십자가는 기도로 지고 가야 합니다.

 

       눅22:40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놓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고 부탁하시고 예수님도 친히 엎드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을 맞이하여 새벽기도 하라고 계속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질 자격이 없습니다. 성도라 불리 울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교회에 충성하는 것 본 일이 있습니까? 그래도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고, 감사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주님의 권능으로 져야 하고, 주님의 권능은 성령이 임할 때 선물로 주시는 것이며,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는 능력을 받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받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4) 십자가는 죽음으로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죽을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생의 구원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막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10:27)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사도 바울은 롬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고 고전 15:31절에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지는 것이며 철저하게 자기를 죽이는 자라야 온전하게 승리의 십자가를 감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골고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지고 눈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지고 갈 때 주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주님의 종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께 합당한 사람은 누가 되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종합하여 볼 때 주님께 합당한 사람은

 

(1)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뜻대로 하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자기의 가족도 부인해야 합니다.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잘못 들으면 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버리라는 것은 가정이나 가족을 방치하고 완전히 등한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가족이라도 내 신앙에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면 가족의 생각과 가족들의 행동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3) 그리고 모든 재산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어느 날 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젊은 한 관원이 찾아와서 영생의 도리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고 하였을 때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면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4)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라야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고 가족도 재산도 모두 버려도 십자가 없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고 예수 없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믿음도 없이 일시적으로 자신의 어떤 인기로써 혈기로서 무엇을 하는 것 같이 하다가는 스스로 실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셨을 때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창정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우리 주님께 합당한 성도가 되어서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아모스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