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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한응목사

[스크랩] <8.22.주일낮설교>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라

 

 

 

 

 

(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041)337-4865, Fax(041)338-4865, H.P 011-452-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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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8.22. 주일 낮예배 설교문
        【교 역 자 보 건 주 일】
본  문 : 출애굽기 3:1-10, 로마서 15:30-33
제  목 :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라
찬  송 : 297, (341) 390, 569, 570.
복음성가 : 서쪽하늘 붉은 노을(122)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연일 30도를 넘나드는 찌는 듯 한 폭염도 어느새 한 고비 꺾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더위는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다가 올 것입니다. 내일이 절기상으로 處暑입니다. 處暑가 지나면 모든 식물들의 물오름이 멈추고 생장이 멈춘다고 합니다.
        내 고향교회에 허장로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 장로님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리를 베어다가 광주리를 만들고 채반을 만들고 여러 가지 가구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處暑 전까지는 싸리를 베어오면 껍질이 잘 벗겨지는데 處暑가 지나면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서 큰 가마솥에 넣고 삶아야 껍질을 벗길 수가 있기 때문에 處暑 전에 싸리가지를 많이 베어 온다고 합니다.

 

        아직도 한낮에는 폭염이 계속되는데 이와 같은 더위 속에서도 연일 밤낮 없이 계속되는 농사일에 얼마나 고통이 많으십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은 믿음이 식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분발하여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믿음이 식어졌거나 열심히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회개하고 처음 믿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지키는「교역자 보건 주일」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매년 8월중에 한 주일을 정하여 지키는 것인데 이날은 특별히 교역자 즉 목사와 사모님의 건강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사랑으로 헌금도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출애굽기와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목회자 즉 목사가 누구이며 그를 위하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출애굽기의 말씀은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에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본문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오늘 교역자 보건주일에 꼭 맞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의 심령의 문이 열려져서 큰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그러면 먼저 모세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는 한 때는 대단한 야망을 가지고 애굽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큰 꿈을 키워 나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건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고 그는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도망을 하여 미디안의 이드로 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서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화려했던 애굽의 왕족의 옷을 벗고 목동의 옷을 입고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서 모세는 결혼도 하고 아들딸도 낳습니다. 그러기를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평범한 사람으로 일생을 마치는가 싶었는데 하루는 호렙산 기슭에 이르자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너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름을 받은 모세는 그 후에 어떻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까? 과연 모세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목회의 모델을 누구로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모세를 꼽습니다. 모세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1) 모세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백성들이 모두 연합을 하여서 모세를 반대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씀하기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고 하였습니다.

 

(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목자요 인도자입니다.

 

        애굽에서 430년을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만 전하여 듣던 가나안땅에 갈려면 반드시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길만 아는 인도자가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인도할 인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도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3)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왔지만 모세에 대하여 항상 불평하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도가 지나치면 작당을 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모세를 돌로 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럴 때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4)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들을 멸하시려고 할 때 목숨 걸고 중보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출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누구를 위하여 대신 중보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기도하였고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7:60)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2. 그러면 목사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목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목사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종이 아닙니다. 돈 많은 장로의 종도 아니고, 속 썩이는 권사의 종도 아닙니다. 까시러진 집사의 종은 더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대로 행하고 그 말씀에 따라서 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사람이 판단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사람이 판단하게 되면 반드시 상응하는 하나님의 벌이 있습니다.
        민수기 12:1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들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목사는 성도들을 천국까지 인도하는 인도자요 성도들을 푸른 초장으로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요10:15절 말씀에 보면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면 좋은 직장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는 교회를 위하고 성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는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신학대학을 나왔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못합니다. 그래서 목회는 목숨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딴 길로 가게 됩니다. 딴 길로 가면 반드시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초원에 무리지어 살고 있는 초식동물들은 항상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이 되면 맹수의 공격을 받아 잡아먹히게 됩니다.

 

(3) 목사는 생활의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참으로 생활의 제약이 많이 있습니다. 행동과 활동이 부자연스럽습니다.

 

(4) 목사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업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목사라는 직분은 직업이 아니고 사명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직업이란 말을 종종 쓰게 됩니다. 세상에 수천수만 가지의 직업 중에 목사라는 직업은 그리 대우받지 못합니다.
        한 가지 예로써 우리가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직분인데도 목회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목회자를 제외한 일반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자기의 자녀들 중에 목회자를 만들겠다고 하는 일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의 자녀들 중에서도 목회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친구 목사 중에 과년한 딸을 둔 목사가 있는데 중매가 들어오는 곳 마다 목회자에게서 중매가 들어오고 이 딸은 한사코 목회자에게는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노처녀가 되었습니다.

 

(5) 목회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당시 노예 한 명을 살 수 있는 가격인 은30냥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믿었던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당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끝까지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믿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잠만 잤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믿고 기대하였던 교인들이 실망을 주고, 또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준 교인에게 배척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교인이 좀 믿을 만하고 그래서 교회 일을 좀 하리라고 믿고 일을 맡기면 여지없이 실망을 안겨 주곤 합니다. 저사람 집사 직분 맡겨주면 잘 하겠지, 저사람 권사 직분 맡겨주면 잘 하겠지 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여지없이 실망만 안겨줍니다.

 

(6) 목사는 항상 긴장하고 쫓기는 생활입니다.

 

        잠시도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잘 수가 없습니다. 밤중에 전화벨 소리만 나도 깜짝 깜짝 놀랍니다. 교인들 중에 무슨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또는 성도들의 가정에 환난이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힙니다. 교인 중에 누가 병이 나서 앓게 되면 혹시 내가 앓아야 할 것을 저 성도가 대신 앓는 것은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까지 들곤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느 성도가 하루만 교회에 안 나와도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성도의 가정에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7) 목사는 항상 약자입니다.

 

        교인들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 교회 안 나간다’ 는 말입니다. 분명히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니요, 목사를 위하는 것도 아니요,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기 위한 것입니다. 목사나 교회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구원을 책임 져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믿음 가지고 자기가 구원받아 자기가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툭하면 ‘교회 안 간다’ 는 말을 떡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집안에 무슨 일만 있어도 ‘교회 안 간다’ 부부 싸움만 해도 ‘교회 안 간다’ 자식이 속만 썩여도 ‘교회 안 간다’ 고 합니다. 그러면 또 목사는 심방을 가서 “왜 그러십니까? 나오셔야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며 온갖 말로 설득하고 해서 다시 나오게 하니까 이제는 이것이 큰 무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럴 때 목사의 심정이 어떤지 아십니까? 목사직 당장 그만두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그만두고 싶은 목사, 그만 둘 수 없는 목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것이 목사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대부분 권투를 좋아합니다. 왜냐 하면 링에서 코피 터지며 때리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를 키워도 코뚜레 하는 것이 없지만 전에는 송아지를 사다가 코뚜레를 하여 코뺑이를 매놓으면 그 소는 죽을 때까지 그 코뚜레를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작은 아이라도 그 코뺑이만 당기면 등치 큰 소도 끌려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사라는 코뚜레를 한번 해 놓으면 평생을 끌려 다닙니다. 집사가 끌어도 끌려가고 권사가 끌어도 끌려가는 것이 목사입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낚시를 하는 목사님도 있고, 또 어떤 목사님은 볼링을 하고, 어떤 목사님은 바둑을 두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 할 줄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못합니다. 그런데 소비할 시간이 있으면 난 책 한 장이라도 더 읽습니다.

 

(8) 목사도 사람입니다. 신이 아닙니다.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도 있을 수 있고 또 잘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도 있고 또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병도 날 수 있습니다. 목사를 신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목사보고 신앙생활 하면 실족함을 느낍니다. 절대로 사람보고 목사보고 신앙생활 하면 안됩니다. 예수만 바라보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실수하고 잘못할 때 그 실수를 잘 감싸줄 수 있는 차원 높은 믿음의 성도가 필요합니다. 바람 불 때 바람막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성도가 교회에는 있어야 합니다.
        롬16:2절 말씀에는 겐그리아 교회의 뵈뵈를 사도 바울은 ‘나의 보호자’ 라고 하였습니다. 또 4절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무슨 말을 못합니다. 꼭 어린애 같이 무슨 말만 하면 혼났다고 하고 야단맞았다고 하며 삐집니다. 마치 임금님 뾰루지 같습니다.
        목사가 가장 괴롭고 힘들 때는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이 어려울 때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목사의 진심을 몰라줄 때 가장 괴롭고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그 아픔을 몰라줄 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요12:27) 라고 탄식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눅22:40) 고 하셨습니다.

 

(9) 목사는 항상 교회와 교인 생각만 합니다.

 

        목사는 어디를 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저는 기도원을 가든지 지방에서 교역자 부부 수양회를 갔을 때도 자꾸만 교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별 일 없느냐고 하는 것을 보고 다른 목사가 나보고 하는 말이 이런데 나오면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모든 교인들은 똑같이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 모든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옛 말에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 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여럿을 키우다 보면 그 중에 유독 몸이 약한 자식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렵도 많이 떨고 다른 아이보다 오히려 더 먹이려고 애쓰는데 이상하게 병약한 자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소아마비나 어떤 이유로 장애자가 될 수도 있고 간혹 정박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그런 자식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사랑을 쏟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가 교인들을 어찌 차별하고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를 더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기도하는 중에 이런 기도도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면 나는 새벽마다 제단에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데 성도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병원을 옯겨도 퇴원을 해서 집에 와도 전화 한 통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병원까지 심방을 갔는데도 왜 왔느냐고 핀잔을 주고 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때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3. 이제는 목사의 건강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 과거에는 목회자의 건강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사는 쫄쫄이 굶어야 하고, 가난해야 하고, 병들어 죽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뿐만이 아니라 목사가 병이 나면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 ‘영력이 약해졌다’ ‘은혜가 떨어졌다’ 는 등의 말로 목사를 매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목사의 건강에 대하여 인식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목사가 건강해야 교회 일도 잘 할 수가 있고 교인들을 잘 돌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과거에는 단순하던 목회가 현대의 목회는 점점 다양화되고 다원화되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1960년대의 통계에 의하면 목사의 하는 일이 104가지로 나와 있는데 현대의 목사가 하는 일은 254가지로 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방면에 팔방미인으로 뛰어야 하니까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그 많은 일들을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3) 목사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교인들의 지식과 수준이 향상되고 현대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서 반대로 목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현대 목회자들의 70%가 신경성 위장병을 비롯하여 성인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는 각종 성인병과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국민 일보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왜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 목사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앓고 있는가?」 그 원인은 바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목사는 육체적인 노동자가 아니고 정신적인 노동자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해야합니다.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교인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긴장의 대상자입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모두가 시어머니입니다. 교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예>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의 사모님은 큰 꿈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신학교에서 뜻 맞는 전도사님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첫 목회를 나왔는데 아주 가난한 교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교인이 열 명도 되지 않았는데 그 교인 중에 속장 한사람이 교회만 오면 교회와 주택을 삿삿히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 댑니다. 어찌나 사사건건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지 그 사모님은 어린 나이에 주일날이 돌아오는 것이 겁이 났고 수요일이 돌아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교인들 만나는 것도 겁이 났습니다. 교인들만 보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고 겁부터 났습니다. 급기야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감리교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기독교 세계」가 있습니다. 그 잡지에는 매월 별세하신 목사님들의 사진이 실립니다. 내용을 보면 40대 50대 목사님들이 지병으로 앓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목사님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충청연회에서는 교역자가 돌아가시면 연회 내 800여명의 전 교역자가 10,000원씩 상조비를 거두어 돕고 있는데 거의 매월 한 명 꼴씩 돌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목사는 각종 질병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염의 위험이 항상 뒤따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병원 입원실에 가보면 어린아이들은 절대로 병실에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 하면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아무리 성인이라고 하여도 교인들의 아프다면 무슨 병이라도 찾아갑니다. 그 병이 전염성이 있든지 없든 지를 막론하고 심방을 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병이라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장례식장이 생겨서 거의 초상이 나면 장례식장에서 처리를 하고 상조회에서 합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인들 중에 초상이 나면 수세를 거두는 일이라든가 염습을 하는 일 등 이런 일도 해야 합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고향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 여자 청년이 죽었는데 폐결핵으로 오래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까 토혈을 하고 죽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신을 거둘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할 줄도 모르는 내가 바깥에 있는 어른들에게 물어물어 시신을 수습한 적이 있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동안도 여러분들이 부족한 저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여 주신 것을 잘 압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목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저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아 멘>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부탁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롬15:30-32)고 간곡히 당부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부족한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에 여러분이 받을 상급과 목사가 받을 상급은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받을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꼭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마10:41절의 말씀입니다.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목사의 이름으로 목사를 영접하는 자는 목사의 상을 받을 것이요” <아 멘>
        아무쪼록 제가 대우 잘 받으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믿으시고, 오해 없으시기 바라며, 한 심령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중 단 한번 지키는「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고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서 이 부족한 종이 받을 상급을 여러분들도 모두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제주에서 우도가는 도항선을 타고 가면서 찍었습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아모스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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