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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을 건축하라! (학개 1:7~11)

전을 건축하라! (학개 1:7~11) 
       
학1:7∼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전을 건축하라." 8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키소, 코소, 카아소"라고 부릅니다.
첫째 기준은 "키소"입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그의 주머니"라는 뜻입니다. 돈 주머니, 곧 전대를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온통 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옷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장가도 느지막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 안에서 늘 성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활 신조는 이러했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는 어려운 교회들을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모든 교회가 최상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교회에 전자오르간을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가 기증한 전자오르간의 수는 7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전 재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 다오."
우리도 돈을 벌든지 쓰든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준은 "코소"입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그의 잔"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물됨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잔에 술을 부어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육신의 향락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그런 데에서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 두면서 살아갑니까? 대소요리문답 제1문답을 보면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Men's chief a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기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셋째 기준은 "카아소"입니다. 문자적으로는 "그의 노여움"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 사람의 감정 조절 능력과 인내력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또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습니다. 왜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그 지렁이가 아직은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지렁이가 완전히 죽으면 밟아도 꿈틀거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육신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적은 일에도 화를 벌컥벌컥 냅니다. 온갖 성깔을 다 부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완전히 장사지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면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한번 평가해 보십시다. 우리의 물질 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 두면서 살아갑니까?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우리의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 살아갑니까?
오늘 본문 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다. 우리의 잘못된 삶의 습성이 있으면 반성하고 바른 길로 돌아서십시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우리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 은혜가 우리 모드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8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8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하게 방치할 때의 결과입니다. 9절∼11절 말씀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전을 건축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즐겨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자자손손 누리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살펴봅니다.

8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학교나 병원을 지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왕궁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전만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만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건물들은 아무리 화려하게 잘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전은 화려하게 지은 왕궁보다도, 오늘날의 웅장한 종합청사 건물보다도 몇천 배, 몇만 배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84:10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의 성전을 이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물질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당시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 사람들에게서 은금 패물을 다 받아서 나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금 패물을 가지고 출애굽을 하도록 하셨습니까? 그들이 광야에서 그것으로 음식을 사 먹어야 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광야에서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오르는 생수를 마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금 패물을 허락하셨습니까? 그것들을 가지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라고 하심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저런 귀한 물질을 넉넉하게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필요할 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우리에게 물질을 맡기신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려한 대리석이나 레바논의 값비싼 백향목을 수입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는 명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가 있는 7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산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어디까지나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와나메이커가 한번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언덕 위에 아주 예쁘게 지은 예배당 건물이 있었습니다. 언덕 밑에는 웬 농부가 쌍발이 소를 몰고서 쟁기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쪽은 소인데 다른 한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농부에게 그 연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농부는 언덕 위에 있는 예배당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저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예산이 부족해서 지붕을 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소를 팔아서 하나님께 헌금으로 바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기가 건장한 청년이 되었으니 소를 다시 살 때까지는 얼마든지 쟁기질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의 말대로 소 한 마리를 팔아서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저 교회의 지붕을 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나메이커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그 농부 가족처럼 자기에게도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뜨거운 감격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사업을 해서 물질을 벌 때마다 해외에 많은 선교 헌금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종로 2가에 있는 YMCA 건물도 그가 보내 온 선교 헌금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 건축은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도 충분하게 채워 주십니다.
학2:8의 말씀입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세상 은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전 건축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앞장서 가시면서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즐겨 순종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할 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8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성전을 건축할 때 영광을 얻으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쪼그라들어서 있는 땅도 팔아야 되고 건물도 줄여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날로 부흥하고 성장해서 온 교우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신축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경멸히 여기고 마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윤택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십니다.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학2:18∼1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지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도 역시 황무했습니다. 그러나 학개 선지자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들은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날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복을 주리라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 건축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큰복을 받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보스턴 시에 가면 그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가 있습니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대학입니다. 그 캠퍼스가 얼마나 큰지 도시 전체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넓은 캠퍼스 안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부속 건물 가운데서 가장 중간에 위치한 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니까 하버드 대학교는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수많은 부속 건물들이 빙 둘러 서 있는 셈입니다.
하버드 대학교는 하버드라는 이름의 목사님이 세었습니다. 그 학교의 설립 이념은 학교의 중심에 하나님의 성전을 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한 학교를 어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버드 대학교가 명실공히 세계 제일의 학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성전을 그만큼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영락 교회를 건축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의 교인들의 수가 약 150명 가량이었습니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서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건축을 하려면 하나님께 헌금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위해서 십일 동안 먹을 양식만 남겨놓고 하나님께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성전 기공 예배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150명의 교우들 가운데 53명이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건물이 바로 지금의 영락 교회 예배당 건물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30년 전에 십일 먹을 양식만 남겨놓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위해서 다 헌금으로 바쳤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해 보았습니다. 다 굶어 죽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국의 지도자가 되어 있거나, 또는 한국의 300대 재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8절 끝 부분의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해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또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십니다. 그 결과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은 한량없는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축복을 자자손손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하게 방치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도 역시 황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6절 말씀대로 그들은 밭에 나가서 많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들은 땀흘리면서 열심히 일했기에 많은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형편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는데 어떻게 농사가 제대로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거두어들인 것은 적엇습니다.
양만 적었던 것이 아닙니다. 질도 나빴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쭉정이처럼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는데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불어 버리시면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잿더미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농사가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새로 짓고, 그 속에 곡식을 가득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수고했노라.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어 버리시는데 무엇이 남겠습니까? 하나님이 불어버리시면, 우리의 건강, 재물, 지식, 명예 등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하나님이 불어 버리시면 우리의 생명도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물으셨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황무한 삶을 살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묻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소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하셨습니다.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각 자기 집에는 빨랐습니다. 자기의 집을 짓고, 자기의 집을 치장하는 일에는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둔 채 자기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 받을 짓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에게 무슨 복이 주어지겟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하나님은 특별한 일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맺은 그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비가 자주 내리지 않습니다. 우기에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오고, 그 중간에 큰비가 한 두 번 올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받아야 제대로 자라서 영글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 이슬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땅의 산물도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것뿐입니까?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한재를 불러."

히브리말에 "한재"라는 단어와 "황무"라는 단어의 어근이 같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그 결과 그들도 하나님이 보내신 한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한재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봅시다. 학개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산에." 곡물이 자라는 낮은 밭에도, 그리고 나무들이 자라는 높은 산에도 한재가 임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전역에 한재가 임했습니다.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 땅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입니다. 한재는 밀과 보리와 같은 곡물뿐만 아니라, 포도나무에도, 감람나무에도 임했습니다. 이들 세 가지 대표적인 농산물뿐만 아니라, "땅의 모든 소산에"도 한재가 임했습니다. 그 정도로 한재가 극심했습니다.
식물에만 한재가 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육축에게"도 역시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먹을 양식이나 마실 물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한재가 너무나도 극심하였기에 아무리 그들의 손으로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여도 얻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체적인 환난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황무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같은 공동운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처해 있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할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총체적인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7∼8절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전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도 큰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전을 건축하라." 이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즐겨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다. 성전 건축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은의 주인이시요 금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가시면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슥4:6의 말씀처럼 성전 건축은 우리의 능으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됩니다. 성전 건축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했던 다윗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 엄청난 축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에 믿음으로 즐겨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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