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로마서 8장 26절(개역개정)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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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목회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누군가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행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선교하러 갔을 때 큰 사업가였던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그 마음을 열게 하셔서 바울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감동이 되어서 바울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였으며 다방면으로 도왔습니다. 바울은 루디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사역이 수월했고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롬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도왔던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주변에서 그를 돕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가장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감사입니다. 제 목회에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감사합니다. 둘째는 성도 여러분들 때문에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감사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제 목회는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는 주의 일이며 동시에 믿음의 형제자매를 섬기는 사랑이며 또 저를 대신해서 저의 짐을 덜어주시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전에 차량 봉사로 섬겨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예배시간마다 차량운행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지도해주는 교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분들은 저를 대신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섬겨주는 것입니다. 구역을 맡아주시는 구역장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구역별로 주방 봉사를 하시는 여전도회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주차관리로 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교회 청소를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서 하시는 이정팔집사님에게 감사합니다. 예배 위원들도 감사합니다. 제가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헌금위원 일도 하고 찬양단도 한다면 얼마나 분주하겠습니까. 찬양단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우리 예배의 기름부음은 많이 약해질 것입니다. 방송팀에도 감사합니다. 예배 후에 늦은 시간까지 재정을 맡아서 수고해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역자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네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는 교회 일을 하는 분들에게만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회의 일을 하지는 않아도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다면 제가 얼마나 쓸쓸하게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있기에 제가 큰소리치며 설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사역을 하고 있네요.
신앙생활은 반드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여러분은 저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사람의 도움보다 더 중요한 도움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령님의 도움은 절대적인 도움입니다.
요 14:26에서는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로클레토스라는 말인데 우리말로는 ‘돕는 자, 중재자, 변호자, 위안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주시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설교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도움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므로 담대하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1.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신다(2절).
2절에 보니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키셨다고 말씀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사람들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지옥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끄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보혈, 예수님의 공로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사망에서 해방시키고,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지옥을 향해 가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고난,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 때문에 당하신 고난이요 죽으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우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그가 지게 하셨는데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엡 2:8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이 우리의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어서 구원을 얻었는데 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내가 종교성이 강해서 믿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고전 12:3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님의 공로가 믿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나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믿음이 참 희한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분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도 못한 분들도, 천국도 구경도 못한 분들도 다 믿어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성령님게서 우리 속에서 증거해주시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16절을 봅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님게서 우리 속에서 증언을 해주셔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선물이고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라는 믿음을 갖도록 도우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켜주시는 분입니다.
2. 생각나게 하신다(5-7절).
사람에게 생각은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려면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가를 보면 됩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품고 산다면 육신적인 사람이고 영적인 생각을 품고 산다면 영적인 사람입니다. 잠 23:7에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의 정체는 그 사람의 생각과 동일한 것입니다.
5-7을 읽어봅시다. 여길 보면 사람 속에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을 하고 영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을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면 그 결과가 사망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영의 생각을 따르면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 2가지입니다. 우선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단이 우리 속에 육신적인 생각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요 13:2에 보면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육신적인 생각을 넣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마 16장에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며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죽으시고 부활하실 주님을 말린 것은 베드로의 마음에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집어넣은 것인데 베드로는 그것이 자기 생각인줄 알고 주님을 막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생각은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영의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 역시 2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의 영은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기능을 할 수 없었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죽었던 우리의 영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영 안에 성령님께서 와 계십니다. 고전 3:16에서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우리 몸을 성전 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오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여러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영의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 14:26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14절에 보면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면서 사용하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시키실 때 나의 마음에 어떤 일에 대한 소원을 갖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꾸만 생각나게 하십니다. 기도할 때도 생각나고 예배할 때도 생각납니다. 평상시에도 자꾸만 생각나게 하시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려고 할 때 내 영이 평안합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실 때도 그 일이 자꾸 생각나게 하시면서 마음에 불편함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도 생각나고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은 그 일을 좋아해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는 깔려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서 누구를 돕게 하실 때에도 생각으로 역사를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들고 그를 도울 방법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방법은 생각나지 않더라도 내가 그를 도와야 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생각인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권사님 한 분은 기도하던 중 어떤 분이 생각나면서 그분이 막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성령의 감동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신발이 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앞에 약봉지와 물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바람이 나서 가출한 것에 충격을 받은 남편이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권사님이 “○○ 아버지, 이러면 안 돼요.” 하며 약봉지를 빼앗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와 아들을 살렸습니다. 만일 그때 권사님이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감동을 받고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면 그 아버지와 아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붙잡을 수 있는 훈련을 하십시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내가 생각,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마귀가 주는 생각을 잘 분별하면 신령한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면 육신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26절).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반드시 그 사람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이겠지요. 내가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도 내 말을 들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이고 설교나 성경읽기는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대화를 주고받는 종합적인 방법입니다.
기도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말로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잘 되려면 말하는 나의 입장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내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육신적인 생각과 감정을 따라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다면 문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에게는 언제나 힘든 일들과 상처 받을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게 하면 됩니다.
고전 2:10에 보니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수 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주시는 것일까요? 방언기도입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님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방언기도를 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은 우리의 방언 기도를 사용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권사님이 구역예배에 참석하려고 가방을 들고 집 문을 채워 놓고 나왔습니다. 한참 길을 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들 끌고 짓누르고 큰일이 생긴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지더랍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는데 기도가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이 권사님이 기도하고자 하는 강력한 성령의 인도를 이기지 못하고 할 수 없어서 가로등 옆에 앉아서 힘을 다해서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서 눈을 떠 보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미친 여자가 이상한 말 한다고 구경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나와서 구역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구역예배를 잘 마치고 집에 가보니 아이고 큰일 났더랍니다. 도둑이 들어와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안방 문이 다 열렸는데 서랍도 다 열리고 옷가지가 방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중요한 것은 한 가지도 건드리지 않았더랍니다. 서랍 안에는 금붙이와 돈이 들어있는 보따리가 있는데 그것은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놔두었더랍니다. 그때 이 권사님에게 깨달아진 것은 좀 전에 구역예배 갈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방언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도둑놈의 눈을 가려 버렸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둑질을 잘 하는 도둑놈도 훔칠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훔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방언기도로 큰 유익을 보았던 것입니다.
어느 자매의 간증입니다. 쌍둥이를 낳았는데 둘째 애가 밤에 잠을 자다가 깨면 밤새도록 웁니다. 무서운 꿈을 꾸기 때문에 꿈꾸고 나면 일어나서 새벽까지 벌벌 떨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달리며 우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어린아이가 완전히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 자매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저녁에는 또 일어나서 막 울고 보채는 아이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나는 왜 이런 일이 얘에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아시니 고쳐 주십시오.”하고 방언으로 한 시간쯤 기도하니 애가 그냥 조용히 가라앉더니 잠을 자더랍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다시는 밤에 깨어 일어나서 울지 않더랍니다. 늘 무서운 꿈을 꾸고 울던 아이를 엄마가 머리에 손을 얹고 한 시간 쯤 방언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아이가 치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셔서 어린아이가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간증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주시는 것입니다.
4.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28절).
28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문제를 만나도 그것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내려간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7년 흉년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이주시키셔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기도원에 가서 만났던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새벽기도 나간지 이틀째에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로 인하여 뇌수술을 했는데 그 목사님의 지병이 고쳐졌습니다. 간질병이 있던 분인데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하고 났더니 교통사고 후유증도 없고 간질도 치료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다윗은 유대인들에게는 성왕으로 칭송을 받는 분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 몇 가지 치명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죄는 전쟁 중에 전쟁터에 나가 있는 신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간음을 한 후에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벌을 받아서 아기를 잃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셔서 다윗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노처녀가 결혼하고 싶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결혼하고 싶어요. 하나님, 결혼하고 싶어요.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자기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매력 있게 보이려고 애써도 3년 동안 눈길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외진 도로를 달리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바람이 빠져버렸습니다.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모든 자동차들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외진 도로에서 “어떻게 하나?”하고 서 있는데 멋진 자동차 한 대가 ‘끼익’ 하고 서더니 매력 있는 젊은 남자가 내렸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 펑크가 났군요.”라고 하더니 타이어를 교환해 주었습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데이트를 하다가 1년 후에 결혼을 해서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외진 도로에서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터져도 그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무슨 뜻이 계실까?’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사단의 역사일 수도 있고, 우리의 죄악이나 실수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때와 시기 때문에 만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담대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 중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예수님을 닮게 만드시는 목적입니다.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닮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안배하심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우리가 당하는 문제도 하나님의 안배하심임을 아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건과 고난들을 통해서 자신을 예수님을 닮도록 변화시키는데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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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443-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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