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Ⅰ. 본문해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킨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혜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지만 그 은혜에는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Ⅱ. 영적 회복과 하나님의 계획
A. 의의 길로 인도하심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소생시킨 것은 그를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본문에서 “의”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맞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은 ‘불의’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자녀 삼으신 그 의도를 율법을 통해서 계시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 율법에 부합한 삶이 의로운 삶이고, 율법에 어긋나는 삶은 불의한 삶이 된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은 신약 시대에 와서 복음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삶이다.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자 시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가득하여 기쁨이 밀려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자체만을 느끼고 즐거워하라고 은혜를 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하늘의 생명과 은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의 난관들을 극복하며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부정직과 불의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진리가 살아 있고 인간의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여주기를 바라신다. 그렇기에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힘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한 줄기 빛으로, 의로운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 이 세상에서 존재의 울림이 있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것이다.
하지만 의롭게 사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의한 세상을 욕하기 위해서는 혀에 침만 바르면 되지만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삶에 피를 흘려야 한다. 때로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하고 사람들의 험담을 감수하여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우리의 힘으로는 의의 길을 걸어갈 때 당하는 수고와 고난,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에 하늘 자원을 주셔서 넉넉히 감당하도록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 주신다. 그 사랑의 힘으로 고난을 이기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로운 길을 걸어갈 때에야 어두운 이 세상에도 희망이 있다.
B.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우리가 그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성경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이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두셨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열심은 하나님 자신을 향한 열심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과 완전히 동일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는 말과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도 같은 말이다.
이 시를 기록한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물매와 돌로 쓰러뜨렸다. 이것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외쳤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극히 사랑하였기에 그 이름이 짓밟힐 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존재의 울림이 있는 의로운 삶을 산다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저렇게 고난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저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구나. 저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이것이 바로 선교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 때 어쩌면 사업에서 성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기쁨이 있다. 하늘나라의 신령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기쁨이 있다.
Ⅲ. 결론
이 세상이 어둡고 불의하다고 불평하지 마라. 이 세상이 이처럼 어둡기에 여러분의 빛은 이 세상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것이다. 조금만 의롭게 살아도, 조금만 정직하게 살아도, 조금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도 여러분의 빛은 환하게 어두움을 밝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는 성도들이 되길 빈다.
김남준목사
Ⅰ. 본문해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킨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혜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지만 그 은혜에는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Ⅱ. 영적 회복과 하나님의 계획
A. 의의 길로 인도하심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소생시킨 것은 그를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본문에서 “의”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맞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은 ‘불의’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자녀 삼으신 그 의도를 율법을 통해서 계시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 율법에 부합한 삶이 의로운 삶이고, 율법에 어긋나는 삶은 불의한 삶이 된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은 신약 시대에 와서 복음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삶이다.
하나님이 시인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자 시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가득하여 기쁨이 밀려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자체만을 느끼고 즐거워하라고 은혜를 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하늘의 생명과 은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의 난관들을 극복하며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부정직과 불의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진리가 살아 있고 인간의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여주기를 바라신다. 그렇기에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힘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한 줄기 빛으로, 의로운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 이 세상에서 존재의 울림이 있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것이다.
하지만 의롭게 사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의한 세상을 욕하기 위해서는 혀에 침만 바르면 되지만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삶에 피를 흘려야 한다. 때로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하고 사람들의 험담을 감수하여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우리의 힘으로는 의의 길을 걸어갈 때 당하는 수고와 고난,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에 하늘 자원을 주셔서 넉넉히 감당하도록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 주신다. 그 사랑의 힘으로 고난을 이기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로운 길을 걸어갈 때에야 어두운 이 세상에도 희망이 있다.
B.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우리가 그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성경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이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두셨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열심은 하나님 자신을 향한 열심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과 완전히 동일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는 말과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도 같은 말이다.
이 시를 기록한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물매와 돌로 쓰러뜨렸다. 이것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외쳤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극히 사랑하였기에 그 이름이 짓밟힐 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존재의 울림이 있는 의로운 삶을 산다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저렇게 고난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저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구나. 저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이것이 바로 선교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 때 어쩌면 사업에서 성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기쁨이 있다. 하늘나라의 신령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기쁨이 있다.
Ⅲ. 결론
이 세상이 어둡고 불의하다고 불평하지 마라. 이 세상이 이처럼 어둡기에 여러분의 빛은 이 세상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것이다. 조금만 의롭게 살아도, 조금만 정직하게 살아도, 조금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도 여러분의 빛은 환하게 어두움을 밝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는 성도들이 되길 빈다.
김남준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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