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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창 12:1-3,39:1-6)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창 12:1-3,39:1-6)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갈릴리 바닷가에서 ‘나사렛 사람 예수’는 불과 12명의 20대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가슴에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심으셨습니다. 그분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였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에게 시간을 지나면서 그가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여러 사건을 통해 깨우쳐 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나사렛 예수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이었고, 그의 사명은 ‘인류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의 비전, 그의 사명으로 인하여 오늘 이 땅 수많은 열방 민족들과 족속들 가운데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백하는 헤아릴 수 없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시간도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 수천 수만의 크고 작은 교회들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의 힘이고, 사명의 힘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2000여년이 지난 주후 1993년 11월 지금은 없어진 한국 분당에서 수지로 나오자마자 건너편 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선경 스매트 회사 강당에서 65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새 교회의 열망을 안고 하나의 지역 교회를 출생시키기 위한 준비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약 7번의 주일 모임을 통하여 그들은 요한 계시록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 7교회의 장점과 단점을 공부하면서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건강한 새 교회의 세워짐을 열망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꼭 15년전인 1994년 1월 첫 주일 300여명의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격려와 축복속에 지구촌 교회 탄생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동원 목사를 한국으로 파송한 워싱톤 제일 침례 교회는 한국에서 개척되는 교회와의 협력 선교 사역을 갈망하며 교회 명을 미국과 한국이 동일하게 ‘지구촌 교회’라고 부르기로 하였고, “공동 목회에 의한 세계 복음화”를 두 교회의 공동 비전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후 이렇게 탄생한 한국 지구촌 교회는 지구촌 교회가 소속한 기독교 한국 침례회 교단에서 탄생 15년 만에 가장 많은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교회가 되었고, 단일 지역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의 숫자로는 아마도 한국 교회 전체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탄생 시점에 이런 비전의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위 333비전 목표를 설정한 바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3이라는 숫자는 우리 교회가 위치한 수지 분당 지역에 당시 인구가 약 30만을 넘고 있었는데 그 중에 10분이 1에 해당하는 적어도 3만 명에게는 전도의 책임을 다해보고자 한 것이었고, 두 번째 3은 3만 명의 성도중 다시 10분이 1에 해당하는 3천명은 평신도 리더로 양육하여 어디에서든 선교사적 사명을 다하는 평신도 선교사로 키워 보겠다는 것이었고, 마지막 3은 다시 3천명의 리더중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백 명을 우리 교회를 통하여 타문화권으로 선교사로 파송하기를 열망한 것이었고, 그것을 우리는 ‘333비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1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탄생 15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95이상이 성취되었음을 비전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께 보고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의 힘이고 사명의 힘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는 숫자가 지시하는 어떤 목표의 실현만으로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다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탄생 7년이 경과되는 주후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비전과 사명이 지금 우리의 주보, 그리고 모든 교회 문서에 기록된 지금 우리 교회의 비전과 사명입니다. *우리의 비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명령과 사랑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민족 치유. 세상 변화) *우리의 사명: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소속된 목장 교회를 통하여 선교사적 삶을 살아가는 평신도 선교사로 훈련되어 나아가고자 한다. (목장교회를 통한 평신도 선교사 육성과 파송)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속적인 목장 교회의 배가를 통하여 우리는 가정과 학교 직장 일터에 적어도 3,000명의 목자를 세우는 방법으로 3,000명의 평신도 선교사 파송을 실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로 나아가는 모든 지구촌 성도들이 목자가 되어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일터가 우리가 파송 받은 우리의 선교지라는 평신도 선교사의 의식으로 일하고 섬긴다면 우리 민족이 치유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바로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은 본래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희망이었다고 믿습니다. 창12:2-3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땅이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2절에 “복이 될지라”라는 표현입니다. 옛날 번역에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만 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웃들에게 복이 되어주는 인생,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이 당신 때문에 우리가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인생을 위해 주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 신약에서는 교회라고 부르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구체적으로 이런 인생을 살아간 샘플, 즉 이웃들에게 복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간 대표적인 사례를 요셉이라는 인물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가 39장은 제가 우리 지구촌 교회의 비전을 전달하고자 할 때마다 가장 많이 인용했던 본문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창세기 39장의 주인공 요셉은 제가 생각해온 지구촌 교회 교인들의 모범적 전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요셉 같은 교인들이 계속 일어나고만 있다면 저는 민족 치유, 세상 변화의 희망은 결코 가상적인 희망이 아니라고 믿어 왔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요셉은 ‘운명의 장난’(실은 하나님의 섭리)으로 애굽에 팔려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서 첫 번째 직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창39:5은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삶을 산 결과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기 주목할 대목이 ‘요셉을 위하여’라는 표현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because of Joseph’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요셉을 고용하고 있던 보디발이 요셉을 불러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셉, 당신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 우리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우리 집의 축복입니다. 당신을 우리 가정의 청지기로 삼겠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정 총무로 삼고 모든 것을 그가 관리하도록 위탁했다고 본문은 증언합니다. 39:4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여기서 사용된 ‘은혜’라는 단어를 좀 더 보편적인 용어로 바꾼다면 ‘신뢰’가 아니겠습니까? 요셉이 주인의 신뢰를 입어 그는 보디발의 집의 모든 가사 일을 책임지는 리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이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일상의 모습으로 우리는 그의 성실성과 탁월성(전문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성실하게 맡은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주인이 그를 가정 총무로 임명하겠습니까? 또한 그가 맡은 바 일을 탁월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를 그런 책임 있는 위치에 두었겠습니까? 저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이런 성실성과 전문성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진실로 지구촌 교회의 교인들 특히 리더들이 교회에서만 큰 소리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일터 곧 세상 한 복판에서 우리의 성실성과 탁월성으로 인정받는 사람들, 그리하여 참으로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요셉이 이런 삶을 살아간 배경으로 단순한 그의 인간적인 성실성과 탁월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39:2-3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서 성경은 요셉의 삶의 형통함의 비밀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요셉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증거하고 다녔다는 말이 아닙니다. 3절의 놀라운 증언을 주목하십시오. 그의 주인 보디발(하나님을 믿지 않았던)이 요셉의 삶을 지켜보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보디발이 어느 날 요셉을 불러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지켜보니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보스에게 그의 삶이 인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을 가르쳐 우리는 영성이라고 합니다. 요셉의 삶의 모든 비밀은 이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성에서 비롯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촌 교회의 모든 제자 훈련과 영성 훈련은 바로 이런 평신도 선교사를 만드는 일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요셉의 드라마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이어지는 드라마는 요셉이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도 여전히 성실했고 탁월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옥의 책임자인 간수장이 그에게 감옥의 제반 사무를 그에게 위탁합니다. 틀림없이 간수장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셉, 당신은 감옥의 축복이오.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있소.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소. 되도록 감옥에서 나가지 마시고 나를 도와주시오” 그는 드디어 가정 총무에서 좀더 스케일이 큰 감옥 총무가 됩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도 39:21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거기에서 요셉의 드라마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온 장관들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동기가 되어 마침내 그는 바로의 꿈을 풀어주고 애굽의 총리로 임명됩니다. 가정 총무가 감옥 총무가 되고 드디어 나라 총무가 된 것입니다. 애굽이 7년 동안 풍년이었을 때 그는 곡식을 낭비하지 않게 잘 저장하여 다가올 경제 위기의 때를 준비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7년의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하게 합니다. 그는 애굽을 구원하고 자기 조국 이스라엘에도 많은 도움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통치자 바로는 어느 날 요셉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진실로 이 나라와 이 세상의 축복이오” 이런 요셉을 만들어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 그것이 지나간 15년간 하루도 빠짐없는 저와 우리 공동체의 기도 제목이었고 지구촌 교회 목회의 유일한 초점이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중순 전주에 가서 집회를 하면서 분당 KT에 근무하시다가 전주로 파송되어 일하고 계신 우리 교회 출신 부부 집사님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 교회의 모든 제자 훈련과 전도 폭발 훈련을 이수하고 그리고 부부 목자로 수년간을 섬기시다가 지방 근무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 집사님은 우선 그가 근무하게 된 전주의 직장에 신우회가 없는 것을 보고 부부가 함께 기도하면서 신우회를 만들고 직장 동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여 신우회가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에서 내려 온 사람이라는 배경이 위협이 되지 않도록 조용한 섬김으로 신뢰를 얻고 목사님의 허락을 얻은 다음 교회 내에 새 생명반을 만들고 교인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 전도 훈련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전도하며 전주의 평신도 선교사로 일하고 계시는 끝없이 이어지는 간증과 함께 이런 말씀을 덧 붙여 주셨습니다. “지구촌 교회의 모든 훈련의 열매를 이 곳 전주에서 맺게 되어서 너무도 감사하다고.” 제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집사님, 지구촌 교회의 비전의 샘플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사님이 바로 우리 교회가 파송한 요셉이십니다. 집사님이 바로 우리의 축복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요셉들이 계속해서 일어나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지구촌 교회가 지난 15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입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교회의 머리요 주인이신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할렐루야!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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