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가?
본문 : 디모데전서 3장 13절 마경훈 목사
본문 : 디모데전서 3장 13절(개역개정)
집사의 직분을 잘 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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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준비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일의 많은 부분이 지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셨습니다. 모세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그르치고 4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대신한 입이요, 손이요, 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일이 크던지 작던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산다면 주님이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이 세상이 밝아지고,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헌신도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을 의지하면 안 되겠지만 돈이 없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회를 짓는 데도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운영하는데도 돈이 필요합니다.
중보기도사역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또 지역사회를 위하여, 선교사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능력의 천사를 움직이셔서 이루어지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생각과 말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예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긍정적인 일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 6:29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중요한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행동이나 일을 변화시키려면 믿음을 변화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지면 믿음에 따르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 무슨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식의 설교는 잘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설교보다는 하나님을 소개하거나 믿음을 갖게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거나 믿음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고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보여주시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사울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변하니 그의 생각도 변하고, 그의 언어도 변하고, 그의 행동도, 일도, 인생의 방향과 목적까지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까? 오늘 설교는 그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1. 은혜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면 그를 위하여 자발적인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상대를 위하여 일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 과부가 동네 부자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부자는 과부가 불쌍해서 농사지을 땅도 빌려주고, 자녀들 학비도 해결해주고, 과부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 집에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부자가 과부에게 와서 일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도 과부는 가서 일할 것입니다. 대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자의 은혜가 감사해서, 지난 날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니 고마워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해결하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아무런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은혜를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 21장에 보면 종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만약 히브리인을 종으로 샀을 경우 안식년이 되면 그를 풀어줘야 합니다. 종들은 안식년이 되면 주인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종들 중에는 안식년이이 되었지만 주인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종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난 날 주인을 섬겨오면서 주인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은 종들입니다.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 되어 주인과 헤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종의 신분이지만 주인을 떠나지 않고 주인을 섬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주인은 종을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갑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종을 문이나 문설주로 데리고 가서 송곳으로 종의 귀를 뚫게 됩니다. 그러면 종은 평생 주인의 종으로 주인을 섬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원하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서, 고마워서 주의 일을 하는 자발적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2.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주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양떼들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의 일을 맡기시기 전에 베드로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가족을 위하여 일합니다.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집인 교회 일에 관심이 없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요?
진정한 신앙생활은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주님을 사랑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 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도움만 받고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아들을 통해서라도 그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놓고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유지를 받들어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까?
3.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민 18:6, 7에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회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도록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의 직분자들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회막에서 일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직분은 일을 위하여 주신 직책인 것입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직분을 맡아 놓고 일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입니다.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딤전 3:13에 보면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을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직분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직분을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모셔야 할 상전이라면 모시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아닙니다. 집안일을 도와주고 나를 섬겨줄 사람이라면 선물일 수 있습니다. 또 한 차원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직분자를 잘 섬기면 복이 될 수 있기에 선물입니다. 어느 할머니 한분이 부인은 없고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병간호를 못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극진히 돌봐드렸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에게 선물이라면서 수표 한 다발을 주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집을 한 채 사고도 남을 돈이었습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전 4:2에서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직분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직분은 일을 위하여 맡겨진 것입니다. 마치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의 특별한 지혜나 능력이 없는 부모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은사나 달란트가 없는 직분자도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은사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가 은사와 달란트입니다. 여러분 집에 부엌칼은 왜 사셨습니까? 부엌일을 하려고 산 것입니다. 톱은 왜 사셨습니까? 망치는 왜 사셨고, 청소기, 세탁기는 왜 사셨습니까? 전시해놓고 구경하려고 사신 것이 아닙니다. 일하려고 산 것입니다. 은사와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자랑하거나 자신에게 남다른 것이 있다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셔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에 다녀옵니다.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달란트를 활용한 종들은 칭찬을 받았지만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은 일을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놓고 결산하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잘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신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게 되면 종들과 결산한 주인이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한 종들에게 더 큰 것을 맡깁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들에게 큰 것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5. 몸된 교회의 지체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모든 지체는 자기만의 고유한 일이 있습니다. 만약 많은 지체 중에 한 지체만이라도 일하지 않는다면 그 몸은 병든 것입니다. 장애자는 몸의 모든 부분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부분만 이상이 있어도 장애자인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는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기에 비전교회는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처럼 저와 여러분은 몸된 교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지체들이 하나님의 일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깃들면서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기 위해 예전에 자기들이 살았던 마을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교회도 흩어졌던 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쓰러진 예배당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교회 건물을 잔해 속에서 예수님의 동상을 찾아냈습니다. 예전에 교회 정원에 서 있던 두 팔을 벌린 예수님의 동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날아든 포탄에 의해서 동상은 두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정원 입구에 예수님의 동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두 팔을 잃은 동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동상을 없애버리고 새로이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떨어져나간 두 팔만 다시 만들어 붙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 동상을 그 모습 그대로 세워놓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런 제안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대로 세우십시다. 팔 없는 예수님의 동상 그 모습 그대로 세우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팔 노! 릇을 하십시다." 그래서 지금도 그 동상이 밑에는 "당신이 예수님의 팔입니다"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사실 머리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지체들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팔이고 다리고 입이고 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6.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가진 것도 능력도 없지만 특별한 사명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가진 것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데 모세를 사용하시길 원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하며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은 입이 뻣뻣하여 말도 잘 못하고 이미 늙어서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족함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가 부족해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아론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보편적인 사명이 있고 개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사명은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전도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지만 전도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전도의사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전도의 은사가 없어도 보편적인 사명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중보기도의 사명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기도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중보기도 사명자처럼 중보기도에 깊은 헌신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보편적인 사명으로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사명만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사명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사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합당한 사명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명을 따라서 목회에 헌신하고 세계선교에 헌신을 합니다. 저는 목회와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받으셨습니까? 자신의 사명을 확신한다면 그 사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됩니다.
본문 : 디모데전서 3장 13절 마경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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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준비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일의 많은 부분이 지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셨습니다. 모세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그르치고 4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대신한 입이요, 손이요, 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일이 크던지 작던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빛으로 소금으로 산다면 주님이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이 세상이 밝아지고,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헌신도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을 의지하면 안 되겠지만 돈이 없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회를 짓는 데도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운영하는데도 돈이 필요합니다.
중보기도사역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또 지역사회를 위하여, 선교사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능력의 천사를 움직이셔서 이루어지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생각과 말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예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긍정적인 일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각과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 6:29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중요한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행동이나 일을 변화시키려면 믿음을 변화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지면 믿음에 따르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 무슨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식의 설교는 잘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설교보다는 하나님을 소개하거나 믿음을 갖게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거나 믿음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고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보여주시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사울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변하니 그의 생각도 변하고, 그의 언어도 변하고, 그의 행동도, 일도, 인생의 방향과 목적까지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까? 오늘 설교는 그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1. 은혜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면 그를 위하여 자발적인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상대를 위하여 일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 과부가 동네 부자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부자는 과부가 불쌍해서 농사지을 땅도 빌려주고, 자녀들 학비도 해결해주고, 과부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 집에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부자가 과부에게 와서 일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도 과부는 가서 일할 것입니다. 대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자의 은혜가 감사해서, 지난 날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니 고마워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해결하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아무런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은혜를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 21장에 보면 종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만약 히브리인을 종으로 샀을 경우 안식년이 되면 그를 풀어줘야 합니다. 종들은 안식년이 되면 주인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종들 중에는 안식년이이 되었지만 주인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종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난 날 주인을 섬겨오면서 주인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은 종들입니다.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 되어 주인과 헤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종의 신분이지만 주인을 떠나지 않고 주인을 섬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주인은 종을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갑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종을 문이나 문설주로 데리고 가서 송곳으로 종의 귀를 뚫게 됩니다. 그러면 종은 평생 주인의 종으로 주인을 섬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원하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서, 고마워서 주의 일을 하는 자발적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2.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주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양떼들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의 일을 맡기시기 전에 베드로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가족을 위하여 일합니다.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집인 교회 일에 관심이 없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요?
진정한 신앙생활은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주님을 사랑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 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도움만 받고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아들을 통해서라도 그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놓고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유지를 받들어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까?
3.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민 18:6, 7에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회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도록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의 직분자들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회막에서 일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직분은 일을 위하여 주신 직책인 것입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직분을 맡아 놓고 일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입니다.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딤전 3:13에 보면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을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직분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직분을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모셔야 할 상전이라면 모시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아닙니다. 집안일을 도와주고 나를 섬겨줄 사람이라면 선물일 수 있습니다. 또 한 차원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직분자를 잘 섬기면 복이 될 수 있기에 선물입니다. 어느 할머니 한분이 부인은 없고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병간호를 못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극진히 돌봐드렸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에게 선물이라면서 수표 한 다발을 주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집을 한 채 사고도 남을 돈이었습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전 4:2에서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직분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직분은 일을 위하여 맡겨진 것입니다. 마치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의 특별한 지혜나 능력이 없는 부모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은사나 달란트가 없는 직분자도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은사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가 은사와 달란트입니다. 여러분 집에 부엌칼은 왜 사셨습니까? 부엌일을 하려고 산 것입니다. 톱은 왜 사셨습니까? 망치는 왜 사셨고, 청소기, 세탁기는 왜 사셨습니까? 전시해놓고 구경하려고 사신 것이 아닙니다. 일하려고 산 것입니다. 은사와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자랑하거나 자신에게 남다른 것이 있다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셔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에 다녀옵니다.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달란트를 활용한 종들은 칭찬을 받았지만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은 일을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놓고 결산하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잘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신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게 되면 종들과 결산한 주인이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한 종들에게 더 큰 것을 맡깁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들에게 큰 것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5. 몸된 교회의 지체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모든 지체는 자기만의 고유한 일이 있습니다. 만약 많은 지체 중에 한 지체만이라도 일하지 않는다면 그 몸은 병든 것입니다. 장애자는 몸의 모든 부분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부분만 이상이 있어도 장애자인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는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기에 비전교회는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처럼 저와 여러분은 몸된 교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지체들이 하나님의 일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깃들면서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기 위해 예전에 자기들이 살았던 마을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교회도 흩어졌던 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쓰러진 예배당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교회 건물을 잔해 속에서 예수님의 동상을 찾아냈습니다. 예전에 교회 정원에 서 있던 두 팔을 벌린 예수님의 동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날아든 포탄에 의해서 동상은 두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정원 입구에 예수님의 동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두 팔을 잃은 동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동상을 없애버리고 새로이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떨어져나간 두 팔만 다시 만들어 붙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 동상을 그 모습 그대로 세워놓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런 제안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대로 세우십시다. 팔 없는 예수님의 동상 그 모습 그대로 세우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팔 노! 릇을 하십시다." 그래서 지금도 그 동상이 밑에는 "당신이 예수님의 팔입니다"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사실 머리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지체들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팔이고 다리고 입이고 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6.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가진 것도 능력도 없지만 특별한 사명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가진 것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데 모세를 사용하시길 원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하며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은 입이 뻣뻣하여 말도 잘 못하고 이미 늙어서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족함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가 부족해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아론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보편적인 사명이 있고 개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사명은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전도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지만 전도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전도의사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전도의 은사가 없어도 보편적인 사명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중보기도의 사명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기도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중보기도 사명자처럼 중보기도에 깊은 헌신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보편적인 사명으로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사명만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사명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사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합당한 사명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명을 따라서 목회에 헌신하고 세계선교에 헌신을 합니다. 저는 목회와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받으셨습니까? 자신의 사명을 확신한다면 그 사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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