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일군은 무엇을 위하여 세우는가?
본문 : 사도행전 6장 1 - 7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사도행전 6장 1 - 7절(개역개정)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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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현대교회는 교회의 원형이 되는 사도행전의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의 부흥의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부흥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크게 부흥했습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모여서 10일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실 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나타났고 다락방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120문도는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소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3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시고, 교회를 부흥시키십니다.
둘째는 본질에 충실한 교회가 되어야 부흥합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본질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교회가 구제하는 일을 하다가 시험이 듭니다. 그 당시 교회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과부들이 있었는데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일로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이 때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 일곱 사람의 일군을 세우기로하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을 쓰게 됩니다. 교회가 구제를 하고 지역 사회에 착한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본질인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자 부흥이 일어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말합니다.
셋째는 교회에 좋은 일군들이 세워져야 부흥합니다. 일곱 집사가 세워진 후에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할 것을 요청합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요청에 따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합니다. 그리고 세워진 일군들이 제몫을 감당하니 사도들은 교회의 분질인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게 되고 그 결과 교회가 더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교회의 부흥의 원인 세 가지 중에 좋은 일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말씀의 초점은 교회에 일군을 세우는 목적입니다. 제목은 “교회에 일군은 무엇을 위하여 세우는가?”입니다. 교회의 일군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목적을 상실하면 문제입니다.
옛날 부잣집에서 하루는 주인이 종에게 “내일 읍내에 있는 장에 좀 다녀와야 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주인이 종을 부르니 종이 집에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심부름을 시켜야 하는데 종이 없으니 화가 잔뜩 났습니다. 오후 쯤 되었는데 종이 헐레벌떡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야, 이 녀석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라고 물으니 종이 “어제 주인님께서 오늘 읍내에 있는 장에 다녀와야 겠다고 해서 장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리석은 종은 주인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장에 보내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장에만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교회의 일군들도 무엇 때문에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 그럼 교회의 일군은 무엇을 위하여 세우는지 살펴봅시다.
1. 공동체의 화평을 위하여 세웁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지역감정이 작용하였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두 파가 나타납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입니다. 헬라파는 유대인 혈통이지만 헬라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살게 되는데 그 숫자가 본국에 계속 살고 있던 사람의 수와 비슷합니다. 지금도 유대 나라의 이스라엘 인구가 5백만입니다. 그런데 나가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선 미국에만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6백만이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본국에 있는 사람 숫자나 헬라 문화권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나 비슷했습니다. 히브리파는 전통 유대인으로 히브리 문화권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공통적 특징이 파벌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나뉘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대도 안합니다. 왜? 지역감정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라셨다고 굉장히 무시를 당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안에서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나뉘어서 하나가 되지 못했습�! 求�. 그 외에도 분열, 분파주의가 많이 나타납니다. 유대인 못지않게 한국 사람도 분파주의가 강합니다. 학연, 지연 등으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슨 놈의 당도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붙었다 갈라졌다도 잘합니다. 미국에는 100년이라도 당이 두 개밖에 없는데 우리 한국은 100년에 100개가 생기고 100개 없어지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편 가르기에 능숙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분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때 갈라진 틈을 누가 메꾸어야 합니까? 교회의 일군들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도 틈이 생길 수 있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틈을 교회의 일군들이 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극복해야 여러분의 신앙은 성장합니다. 기독교적인 갈등극복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상대를 공격해서 박살내면 이기는 것 같지만 영적인 면에서는 함께 죽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도 해롭다고 무조건 박멸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입니다. 부르나이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더운 지방이니까, 모기가 많습니다. 모기를 박멸하려고 정부에서 디디티를 대량 살포했습니다. 생각대로 모기가 없어지고, 모기가 없어지니까, 모기가 가져오는 학질이나 말라리아에 걸릴 일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모기가 사라지고 난 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말벌이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이 말벌은 모기 뿐 아니라 나방도 잡아먹었는데, 말벌이 죽자, 나방이 급격히 번성하게 되고, 이 나방이 주민이 사는 집 지붕에 들어가 뜯어 먹기 시작합니다. 지붕이 남아나지 않아 비가 새고, 많은 오두막들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번엔 나방을 죽이려고 지붕에 대량의 디디티를 살포했습니다. 그래서 나방과 파리가 죽었는데, 파리를 잡�! 틘都� 도마뱀이 디디티 먹은 파리를 먹고 죽게 되고, 쥐들을 잡아먹던 도마뱀들이 죽게 되자, 그 결과 쥐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쥐들이 많게 되자, 페스트라는 질병이 창궐합니다. 곤경에 빠진 정부는, 곳곳에 고양이들을 풀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상대를 박멸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 원수는 아니지만 원수 비슷한 사람을 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시키는 하나님의 교육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성경 말씀대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십시오(롬12:18).
사람의 인체에는 360개가 넘는 뼈가 있습니다. 그 뼈들을 인대와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몸의 뼈들이 인대와 근육을 통해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뼈와 같은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일군들은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와 근육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대와 근육은 단단한 뼈와 달리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대와 근육이 뼈처럼 단단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뼈와 뼈를 연결하기는 해도 움직이게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벽돌을 시멘트로 붙여놓은 것처럼 단단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군들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부드러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기술사회이면서 고도의 경쟁사회화 되어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람들이 더욱 찾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이터치입니다. 현대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은 하이터치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하이터치란 한 마디로 마음의 부드러움, 따사로움,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고도기술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하이터치입니다.
하이터치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전투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령은 부드러운 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성령의 열매는 부드러움 따스함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온유 등의 열매를 보면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 같이 단단한 마음이 빠져나가게 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2. 목회자의 사역을 위하여 세웁니다.
본문에 나오는 일곱 집사는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도록 돕기 위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부흥하는 인간적인 원인 중에 제일 중요한 원인은 목회자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목회자 때문에 교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훌륭한 목회자 곁에는 훌륭한 평신도 리더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주변에 바울로 하여금 목회자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롬 16장에 보면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바울로 하여금 목회자의 분질에 충실하도록 도왔던 사람들입니다. 롬 16장에 나오는 일군들 중에 제 눈을 끄는 부부 일군이 있습니다. 롬16:3,4에 보면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언급합니다. 그들이 어떤 일군이었는지 두 가지 특징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는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들 부부를 ‘나의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바울에게 굉장히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라도 내놓았나니”라고 말합니다. 목숨을 걸고 바울의 사역을 후원했던 헌신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사용했던 단어 중에 제가 사용해 보고 싶은 단어가 있습니다. ‘심복’이라는 단어입니다. 몬 1:12에 보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는 내 심복이라”고 했습니다. ‘심복’이라는 말은 가슴과 배를 뜻하는데 그 의미는 가슴과 배처럼 꼭 필요한 사람을 말합니다. 국어사전적 의미를 보면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목회자가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일군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무슨 일을 맡기려고 해도 맡길 사람이 없다면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그런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헬라어로 ‘심복’은 ‘창자’, ‘내장’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내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주인의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해주는 종이나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면 마음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왔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보면 마음에서부터 사랑하는 감정이 올라왔던 것입니다. 즉 목회자가 그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마음속에서부터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일군이 심복입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축복하고 싶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좋은 감정이 올라오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힘들고 짜증이 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목회자가 생각하면 감사하고, 사랑스럽고, 목회자의 깊은 곳에서부터 축복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회자의 사역이 비행기처럼 날아오르려면 드러나지 않게 협력하는 일군들이 많아야 합니다. 교회에 좋은 일군이 있어야, 목회자는 주의 종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때마다 기장만 수고하는 게 아닙니다. 그 비행기 한 대가 뜨기 위해서는 돕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역할은 새떼를 쫓는 사람입니다. 비행기가 이. 착륙을 할 때에 새가 날아가다가 비행기 엔진 안에 들어가서 사고가 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고 합니다. 한 해 동안에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5만 6천 건이나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약 20년 동안에 일어난 통계에 의하면 Bird strike가 73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새 한 마리 관리를 잘못하면 비행기가 큰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1994년에 제주공항에서 실제로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KAL이 이륙을 했는데 엔진 부근에서 불이 나서 급히 회항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사고원인을 조사를 해보니 핏자국이 비행기 날개에 묻어있고 새 깃털이 엔진 안에 있었습니다. Bird strike였던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 수리비가 40억 원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는데도 새를 쫓는 그 사람의 최선을 다하는 역할이 없어서는 안 되듯이 목회사역에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일군들이 있어야 합니다.
3. 봉사를 위하여 세웁니다.
2절에 보면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봉사의 일을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는 명예직이 아닙니다. ‘멍에직’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착각합니다. 멍에를 씌워놓았더니 면류관으로 착각합니다. 멍에는 영광을 위하여 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라고 씌우는 것입니다. 소에게 멍에를 매우는 이유는 소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가 압니다. 소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멍에를 씌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려고 반에 들어갔는데, 그 반의 학생들이 막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왔는데도, 학생들이 조용히 하지 않고 계속 떠듭니다. 보니까 반장도 계속 떠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화가 나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반장을 일으켜 세워 반장의 직책이 뭔지 할 일이 뭔지를 가르치려고 반장에게 물었습니다. “반장, 너 이 반의 뭐야”, 당연히 ‘반장입니다’라고 답해야 하는 반장이 “네, 껌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놈이 반장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껌이라니. 반항까지 해’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다시 “너 이 반의 뭐야” 물었더니 이 학생이 또 “껌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 선생님은 “나와. 선생님이 말씀하는데 농담하는 거야”하고 빰을 한대 쳤는데, 학생의 입 안에 있던 껌이 톡 튀어나와 선생님의 얼굴에 딱 붙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오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반장의 역할이 뭐냐 하는 것을 묻고 싶어서 “너, 이 반의 뭐야”하고 물었는데, 그때 마침 입안에 껌을 씹고 있던 반장은 껌 씹은 것이 들켰구나 하고 생각하고 “껌입니다”라고 대�! 鄂杉� 것입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 집사는 명예직이 아니라 멍에직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많은 섬김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교회를 섬기고, 목회자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일군은 봉사를 위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마당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주인이라야 마당을 쓸지 나그네는 마당을 쓸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그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봉사하지 않습니다. 직분자는 교회의 주인의식을 갖고 봉사하는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세웁니다.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죽을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부담을 질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 누가 더 많이 희생할 것인가를 뽑는 것입니다.
일군의 사명이란? 교회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사역의 본질을 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일군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집사가 되었으면 우리 교회에 문제가 없도록 어떤 문제라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사로서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안 나온 것이 하나 있는데 스데반과 일곱 집사는 다 헬라파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이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당신들의 지혜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미로 헬라파 사람 7명이 집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 세 가지 선택 조건입니다. 먼저 교회의 일군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봉사하면서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디어와 잔머리 굴려가면서 교회 봉사하려고 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는 겁니다. 기도해서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이민교회에서 집사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안건으로 뭐가 나왔는지 아십니까? “주일 예배 없애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꼭 일요일에 드려야 하느냐 말입니다. 일요일에는 가족들과 놀러가서 시간 보내야 하는데 이민사회에서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없으니 그렇게 일요일에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금요일 저녁에 예배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대학 교수들이 많이 나오는 교회였고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금요일 따지고 일요일 따지며 그러시느냐 말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헤어져서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행하려고 하니 “�! � 이런 교회가 다 있어?” 교인이 다 떠나가 버려서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는 아이디어는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말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군 첫 번째 조건이 성령충만입니다.
두 번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지혜가 동반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성령 충만이 또 교회의 문제가 됩니다. 성령이 시켜서 했다고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느 교회에 성령이 충만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성령충만한 것은 좋은데 대표기도 할 때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대표기도를 하셨는데 24분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도 길게 하니까 장로들 기도하는 시간만 재는 집사님이 따로 이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설교를 7분 했습니다. 목사님은 신앙 지도를 해야 하는데 목사님 보다 나이가 많으신 장로님이 그렇게 길게 하셨으니 얼마나 곤란합니까? 하지만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오늘 24분이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다음부터는 4분 이내로 끝내세요”(저는 2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내용 기도할 필요 없습니다. 설교에 은혜가 되도록만 기도하면 됩니다) 목사님의 말을 들은 장로님이 자존심이 상하셔서 “아니, 성령님께서 하시는 기도를 가지고 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아니 그럼 저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매주일 2시간씩 설교해도 됩니까!”라고 받아쳤습니다. 이 장로님은 성령은 충만한지 몰라도 지혜는 부족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지혜가 동반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한국교회는 성령은 충만한지 모르지만 지혜가 부족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충만은 지혜가 동반 될 때 더 빛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성령 충만과 지혜는 공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똑똑한데 교인들은 한 사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말하는 대로 했다가는 교회 망해! 저 사람은 혼자 믿는 것처럼 항상 성령 충만하다고 그러는데 인정할 수 없어.” 한국교회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일군은 온 교인들이 칭찬하고 공인성으로 인정할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군은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교회가 필요로 할 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나타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 때문에 곤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40일간 조롱을 당하지만 골리앗과 싸울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다윗이 나타나서 이스라앨 백성들의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짋어진 다윗을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일군들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앞으로 일군을 세울 것입니다. 곧 안수집사와 권사 투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다음 주에 장로님들과 상의하고 2주 후에는 교회가 원하는 조건이 유인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일군을 뽑으실 때 공동체의 화평을 위하여, 목회자를 위하여, 붕사를 위하여,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일할 일군들을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들은 모든 분들도 자신이 그런 일군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본문 : 사도행전 6장 1 - 7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사도행전 6장 1 - 7절(개역개정)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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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현대교회는 교회의 원형이 되는 사도행전의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의 부흥의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부흥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크게 부흥했습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모여서 10일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실 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나타났고 다락방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120문도는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소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3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시고, 교회를 부흥시키십니다.
둘째는 본질에 충실한 교회가 되어야 부흥합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본질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교회가 구제하는 일을 하다가 시험이 듭니다. 그 당시 교회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과부들이 있었는데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일로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이 때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 일곱 사람의 일군을 세우기로하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을 쓰게 됩니다. 교회가 구제를 하고 지역 사회에 착한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본질인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자 부흥이 일어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말합니다.
셋째는 교회에 좋은 일군들이 세워져야 부흥합니다. 일곱 집사가 세워진 후에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할 것을 요청합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요청에 따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합니다. 그리고 세워진 일군들이 제몫을 감당하니 사도들은 교회의 분질인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게 되고 그 결과 교회가 더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교회의 부흥의 원인 세 가지 중에 좋은 일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말씀의 초점은 교회에 일군을 세우는 목적입니다. 제목은 “교회에 일군은 무엇을 위하여 세우는가?”입니다. 교회의 일군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목적을 상실하면 문제입니다.
옛날 부잣집에서 하루는 주인이 종에게 “내일 읍내에 있는 장에 좀 다녀와야 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주인이 종을 부르니 종이 집에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심부름을 시켜야 하는데 종이 없으니 화가 잔뜩 났습니다. 오후 쯤 되었는데 종이 헐레벌떡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야, 이 녀석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라고 물으니 종이 “어제 주인님께서 오늘 읍내에 있는 장에 다녀와야 겠다고 해서 장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리석은 종은 주인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장에 보내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장에만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교회의 일군들도 무엇 때문에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 그럼 교회의 일군은 무엇을 위하여 세우는지 살펴봅시다.
1. 공동체의 화평을 위하여 세웁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지역감정이 작용하였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두 파가 나타납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입니다. 헬라파는 유대인 혈통이지만 헬라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살게 되는데 그 숫자가 본국에 계속 살고 있던 사람의 수와 비슷합니다. 지금도 유대 나라의 이스라엘 인구가 5백만입니다. 그런데 나가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선 미국에만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6백만이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본국에 있는 사람 숫자나 헬라 문화권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나 비슷했습니다. 히브리파는 전통 유대인으로 히브리 문화권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공통적 특징이 파벌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나뉘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대도 안합니다. 왜? 지역감정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라셨다고 굉장히 무시를 당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안에서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나뉘어서 하나가 되지 못했습�! 求�. 그 외에도 분열, 분파주의가 많이 나타납니다. 유대인 못지않게 한국 사람도 분파주의가 강합니다. 학연, 지연 등으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슨 놈의 당도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붙었다 갈라졌다도 잘합니다. 미국에는 100년이라도 당이 두 개밖에 없는데 우리 한국은 100년에 100개가 생기고 100개 없어지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편 가르기에 능숙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분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때 갈라진 틈을 누가 메꾸어야 합니까? 교회의 일군들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도 틈이 생길 수 있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틈을 교회의 일군들이 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극복해야 여러분의 신앙은 성장합니다. 기독교적인 갈등극복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상대를 공격해서 박살내면 이기는 것 같지만 영적인 면에서는 함께 죽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도 해롭다고 무조건 박멸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입니다. 부르나이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더운 지방이니까, 모기가 많습니다. 모기를 박멸하려고 정부에서 디디티를 대량 살포했습니다. 생각대로 모기가 없어지고, 모기가 없어지니까, 모기가 가져오는 학질이나 말라리아에 걸릴 일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모기가 사라지고 난 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말벌이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이 말벌은 모기 뿐 아니라 나방도 잡아먹었는데, 말벌이 죽자, 나방이 급격히 번성하게 되고, 이 나방이 주민이 사는 집 지붕에 들어가 뜯어 먹기 시작합니다. 지붕이 남아나지 않아 비가 새고, 많은 오두막들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번엔 나방을 죽이려고 지붕에 대량의 디디티를 살포했습니다. 그래서 나방과 파리가 죽었는데, 파리를 잡�! 틘都� 도마뱀이 디디티 먹은 파리를 먹고 죽게 되고, 쥐들을 잡아먹던 도마뱀들이 죽게 되자, 그 결과 쥐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쥐들이 많게 되자, 페스트라는 질병이 창궐합니다. 곤경에 빠진 정부는, 곳곳에 고양이들을 풀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상대를 박멸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 원수는 아니지만 원수 비슷한 사람을 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시키는 하나님의 교육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성경 말씀대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십시오(롬12:18).
사람의 인체에는 360개가 넘는 뼈가 있습니다. 그 뼈들을 인대와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몸의 뼈들이 인대와 근육을 통해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뼈와 같은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일군들은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와 근육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대와 근육은 단단한 뼈와 달리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대와 근육이 뼈처럼 단단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뼈와 뼈를 연결하기는 해도 움직이게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벽돌을 시멘트로 붙여놓은 것처럼 단단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군들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부드러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기술사회이면서 고도의 경쟁사회화 되어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람들이 더욱 찾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이터치입니다. 현대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은 하이터치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하이터치란 한 마디로 마음의 부드러움, 따사로움,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고도기술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하이터치입니다.
하이터치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전투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령은 부드러운 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성령의 열매는 부드러움 따스함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온유 등의 열매를 보면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 같이 단단한 마음이 빠져나가게 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2. 목회자의 사역을 위하여 세웁니다.
본문에 나오는 일곱 집사는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도록 돕기 위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부흥하는 인간적인 원인 중에 제일 중요한 원인은 목회자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목회자 때문에 교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훌륭한 목회자 곁에는 훌륭한 평신도 리더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주변에 바울로 하여금 목회자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롬 16장에 보면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바울로 하여금 목회자의 분질에 충실하도록 도왔던 사람들입니다. 롬 16장에 나오는 일군들 중에 제 눈을 끄는 부부 일군이 있습니다. 롬16:3,4에 보면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언급합니다. 그들이 어떤 일군이었는지 두 가지 특징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는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들 부부를 ‘나의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바울에게 굉장히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라도 내놓았나니”라고 말합니다. 목숨을 걸고 바울의 사역을 후원했던 헌신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사용했던 단어 중에 제가 사용해 보고 싶은 단어가 있습니다. ‘심복’이라는 단어입니다. 몬 1:12에 보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는 내 심복이라”고 했습니다. ‘심복’이라는 말은 가슴과 배를 뜻하는데 그 의미는 가슴과 배처럼 꼭 필요한 사람을 말합니다. 국어사전적 의미를 보면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목회자가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일군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무슨 일을 맡기려고 해도 맡길 사람이 없다면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그런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헬라어로 ‘심복’은 ‘창자’, ‘내장’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내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주인의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해주는 종이나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면 마음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왔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보면 마음에서부터 사랑하는 감정이 올라왔던 것입니다. 즉 목회자가 그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마음속에서부터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일군이 심복입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축복하고 싶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좋은 감정이 올라오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힘들고 짜증이 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목회자가 생각하면 감사하고, 사랑스럽고, 목회자의 깊은 곳에서부터 축복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회자의 사역이 비행기처럼 날아오르려면 드러나지 않게 협력하는 일군들이 많아야 합니다. 교회에 좋은 일군이 있어야, 목회자는 주의 종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때마다 기장만 수고하는 게 아닙니다. 그 비행기 한 대가 뜨기 위해서는 돕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역할은 새떼를 쫓는 사람입니다. 비행기가 이. 착륙을 할 때에 새가 날아가다가 비행기 엔진 안에 들어가서 사고가 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고 합니다. 한 해 동안에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5만 6천 건이나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약 20년 동안에 일어난 통계에 의하면 Bird strike가 73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새 한 마리 관리를 잘못하면 비행기가 큰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1994년에 제주공항에서 실제로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KAL이 이륙을 했는데 엔진 부근에서 불이 나서 급히 회항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사고원인을 조사를 해보니 핏자국이 비행기 날개에 묻어있고 새 깃털이 엔진 안에 있었습니다. Bird strike였던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 수리비가 40억 원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는데도 새를 쫓는 그 사람의 최선을 다하는 역할이 없어서는 안 되듯이 목회사역에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일군들이 있어야 합니다.
3. 봉사를 위하여 세웁니다.
2절에 보면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봉사의 일을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는 명예직이 아닙니다. ‘멍에직’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착각합니다. 멍에를 씌워놓았더니 면류관으로 착각합니다. 멍에는 영광을 위하여 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라고 씌우는 것입니다. 소에게 멍에를 매우는 이유는 소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가 압니다. 소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멍에를 씌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려고 반에 들어갔는데, 그 반의 학생들이 막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왔는데도, 학생들이 조용히 하지 않고 계속 떠듭니다. 보니까 반장도 계속 떠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화가 나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반장을 일으켜 세워 반장의 직책이 뭔지 할 일이 뭔지를 가르치려고 반장에게 물었습니다. “반장, 너 이 반의 뭐야”, 당연히 ‘반장입니다’라고 답해야 하는 반장이 “네, 껌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놈이 반장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껌이라니. 반항까지 해’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다시 “너 이 반의 뭐야” 물었더니 이 학생이 또 “껌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 선생님은 “나와. 선생님이 말씀하는데 농담하는 거야”하고 빰을 한대 쳤는데, 학생의 입 안에 있던 껌이 톡 튀어나와 선생님의 얼굴에 딱 붙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오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반장의 역할이 뭐냐 하는 것을 묻고 싶어서 “너, 이 반의 뭐야”하고 물었는데, 그때 마침 입안에 껌을 씹고 있던 반장은 껌 씹은 것이 들켰구나 하고 생각하고 “껌입니다”라고 대�! 鄂杉� 것입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 집사는 명예직이 아니라 멍에직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많은 섬김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교회를 섬기고, 목회자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일군은 봉사를 위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마당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주인이라야 마당을 쓸지 나그네는 마당을 쓸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그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봉사하지 않습니다. 직분자는 교회의 주인의식을 갖고 봉사하는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세웁니다.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죽을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부담을 질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 누가 더 많이 희생할 것인가를 뽑는 것입니다.
일군의 사명이란? 교회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사역의 본질을 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일군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집사가 되었으면 우리 교회에 문제가 없도록 어떤 문제라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사로서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안 나온 것이 하나 있는데 스데반과 일곱 집사는 다 헬라파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이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당신들의 지혜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미로 헬라파 사람 7명이 집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 세 가지 선택 조건입니다. 먼저 교회의 일군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봉사하면서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디어와 잔머리 굴려가면서 교회 봉사하려고 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는 겁니다. 기도해서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이민교회에서 집사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안건으로 뭐가 나왔는지 아십니까? “주일 예배 없애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꼭 일요일에 드려야 하느냐 말입니다. 일요일에는 가족들과 놀러가서 시간 보내야 하는데 이민사회에서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없으니 그렇게 일요일에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금요일 저녁에 예배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대학 교수들이 많이 나오는 교회였고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금요일 따지고 일요일 따지며 그러시느냐 말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헤어져서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행하려고 하니 “�! � 이런 교회가 다 있어?” 교인이 다 떠나가 버려서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는 아이디어는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말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군 첫 번째 조건이 성령충만입니다.
두 번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지혜가 동반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성령 충만이 또 교회의 문제가 됩니다. 성령이 시켜서 했다고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느 교회에 성령이 충만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성령충만한 것은 좋은데 대표기도 할 때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대표기도를 하셨는데 24분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도 길게 하니까 장로들 기도하는 시간만 재는 집사님이 따로 이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설교를 7분 했습니다. 목사님은 신앙 지도를 해야 하는데 목사님 보다 나이가 많으신 장로님이 그렇게 길게 하셨으니 얼마나 곤란합니까? 하지만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오늘 24분이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다음부터는 4분 이내로 끝내세요”(저는 2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내용 기도할 필요 없습니다. 설교에 은혜가 되도록만 기도하면 됩니다) 목사님의 말을 들은 장로님이 자존심이 상하셔서 “아니, 성령님께서 하시는 기도를 가지고 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아니 그럼 저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매주일 2시간씩 설교해도 됩니까!”라고 받아쳤습니다. 이 장로님은 성령은 충만한지 몰라도 지혜는 부족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지혜가 동반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한국교회는 성령은 충만한지 모르지만 지혜가 부족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충만은 지혜가 동반 될 때 더 빛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성령 충만과 지혜는 공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똑똑한데 교인들은 한 사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말하는 대로 했다가는 교회 망해! 저 사람은 혼자 믿는 것처럼 항상 성령 충만하다고 그러는데 인정할 수 없어.” 한국교회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일군은 온 교인들이 칭찬하고 공인성으로 인정할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군은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교회가 필요로 할 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나타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 때문에 곤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40일간 조롱을 당하지만 골리앗과 싸울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다윗이 나타나서 이스라앨 백성들의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짋어진 다윗을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일군들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앞으로 일군을 세울 것입니다. 곧 안수집사와 권사 투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다음 주에 장로님들과 상의하고 2주 후에는 교회가 원하는 조건이 유인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일군을 뽑으실 때 공동체의 화평을 위하여, 목회자를 위하여, 붕사를 위하여,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일할 일군들을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들은 모든 분들도 자신이 그런 일군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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