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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혜사 성령님 환영합니다.

보혜사 성령님 환영합니다.
+ 설교본문 : 요한복음 16장 5-14절
+ 설교자 : 마경후목사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니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주님의 인격과 능력에 감동을 받았지만 주님의 오신 목적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했으며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아버지에게로 가셔야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실 수 있는데 제자들은 이걸 몰랐던 것입니다. 현대교인들 중에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인격과 능력을 보고 주님을 존경하지만 십자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제자들이 십지가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주님이 가신다는 말씀 때문에 근심하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보혜사 성령님을 이해한다면 그분을 사모하게 되고, 그분이 오신다는 약속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을 텐데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왜 제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들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성령님은 책망하는 일을 하십니다(8-11절).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사람들은 책망 받기를 싫어하지만 사실은 책망하는 분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책망하는 것을 즐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책망하면 상대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책망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는 책망을 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책망을 잘 받아드리면 회개가 일어나고 믿음의 길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쁜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의 가책이 견딜 만합니다. 그래서 바람도 피우고 못된 짓도 하고 죄를 많이 지어도 그냥 그대로 얼굴 두껍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좀 다릅니다.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양심에 강한 찔림을 주시는데 그 찔림은 견딜 수 없는 찔림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돌이키게 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책망을 하십니까?

1) 죄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9절에 보면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믿지 않는 죄를 가장 큰 죄로 보십니다.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어도 주님의 공로를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부도덕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자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구원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는 자신의 주변 사람이 도덕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예수 믿자는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진짜 큰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 그 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믿지 않은 죄가 그 사람을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2) 의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10절에 보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로 가시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입니다.
작은 죄라도 범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는데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선하게 살아서 의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므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1:30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11절에 보면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임금은 사단마귀를 말합니다. 사단마귀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형을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를 통해서 마귀를 심판하셨고 마귀에게는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일만 남았습니다. 마귀는 주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이미 심판 받은 마귀를 따라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심판 받은 마귀를 따라가는 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 마귀는 최후의 발악을 할 것입니다. 마귀를 따르는 자들은 결국 마귀와 함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작은 유혹도 용납하지 마시고 마귀를 대적하기 바랍니다.
불가사리가 조개를 어떻게 잡아먹는지 아십니까? 불가사리가 처음에는 조개 가까이에 접근하여 재미있게 놀면서 친구가 된답니다. 그러면 조개가 마음을 놓고 무언가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조금 벌린답니다. 바로 그때 불가사리가 조개의 살을 살살살 간질이며 애무를 한답니다. 그러면 조개가 기분이 좋아서 입을 딱 벌리는 순간 불가사리가 조개의 심장을 팍 찍어서 잡아먹는답니다. 불가사리는 마귀 같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흉악한 얼굴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주 매력 있는 친구처럼 나타나서 우리를 살살살 간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틈을 보이면 우리를 꽉 찍어서 삼키는 것입니다. 세상 임금인 마귀가 유혹할 때 성령님의 책망을 따르십시오. 그래야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성령님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13절).
진리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 17:17절에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원하는 것처럼,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진리인 말씀을 자꾸 당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나서 엄마가 아기에게 젖먹이는 법을 가르칩니까? 아기에게 그런 교육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태어나면 젖을 찾습니다. 그리고 젖꼭지를 물려주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힘차게 빱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아기는 젖을 먹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적으로 아기가 됩니다. 그러면 먼저 찾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젖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먹고 싶어서 자꾸만 설교를 들으려고 합니다. 말씀을 먹고 싶어서 성경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더 강하게 역사하면 얼마나 열심히 성경을 읽게 되는지 모릅니다.

2)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요 14:6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성령님은 신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꾸만 예수님을 찾게 만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수님과 연애를 하게 됩니다. 제가 아내를 만나다가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이상합디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지면 너무나 만나고 싶은 겁니다. 아내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만나서 걸어서 천호대교를 건너오고 함께 밥을 먹고 한강고수부지에 가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아내의 집에 데려다 주는데 바로 집에 들어가질 못하고 동네를 몇 바퀴씩 도는 겁니다. 그러다가 버스도 끊기고 너무 늦어서 할 수 없이 집에 들여보내주고 저는 걸어서 돌아갑니다. 그 때는 교회에서 생활을 했는데 교회에 돌아가면 아내가 제가 도착할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교회 들어서자마자 전화를 걸어서 또 통화를 합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가 있으니 일찍 자야 하는데 더 통화하고 싶어서 1분만 더 1분만 더 하다가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도 즐겁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즐겁고, 주님을 증거하는 일도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십니다.

3) 교회가 진리입니다.
딤전 3:15에 보면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고 진리의 터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충만 받지 않은 사람은 교회를 우습게봅니다. 자기 집도, 회사도 중하게 생각하는데 교회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으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자주 찾습니다.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합니다.
대전에 사는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집사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예배당을 새로 지을 때입니다. 목사님의 심방 날이 가까워오자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목사님, 이번 심방 때는 저희 집으로 오지 마시고 저희 가게로 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을 심방 때도 봄 심방 때와 마찬가지로 가게로 와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가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속으로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집에서 심방을 받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님의 장인이 목사님에게 “목사님, 우리 사위가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아십시까?”하고 물었습니다. “예?” “목사님, 따라와 보세요.” 그 장인을 따라가니 어느 언덕 아래 비닐 종이로 만들어 놓은 비닐하우스가 있었습니다. “이게 제 사위가 사는 집입니다.” “아니? 그 좋은 집 어떻게 하고 그래요?” “목사님. 모르셨군요. 그 집은 팔아서 교회당 짓는데 다 바쳤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닐로 집을 지어 놓고 삽니다.” 목사님도 하지 못하는 충성을 집사님이 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교회를 지은 후 집사님의 사업이 잘 되어서 지금 십일조를 그 때보다 이십 칠 배로 한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집사님의 충성이 미친 짓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 미쳤구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들은 “귀하다. 귀하다. 귀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을 받으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자기 땅도 바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자기 집보다 교회가 더 중한 것입니다. 내 일터, 내 사무실보다 교회가 더 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권사님 중에 한 분의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병간호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가장 힘든 부분이 병수발하거나 찾아오는 손님들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오지 못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 권사님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니 그렇게 교회를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은 주일입니다. 명절이 주일이면 목사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성도들 중에 본 교회에서 주일 지키지 않고 추석을 보내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일 지키는 것입니다. 친척들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주님 만나는 일입니다. 다녀오실 곳이 있는 분들은 미리 다녀오시든지 후에 다녀오세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인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3. 성령님은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13절).
사람은 결국을 모르고 장래 일을 모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래 일을 알려주시거나 우리가 지각하지 못해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행 2:17에 보면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비전이란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비전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비전을 받은 사람은 받지 못한 사람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해서 장래를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비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장래 일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으로부터 비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참된 성공은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성령에 충만해서 성령이 주신 비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한 축복은 하나님의 비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축복은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분들 중에는 ‘이 나이에 무슨 비전...’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이에 제한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100세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고 그를 열국의 아비로 만드신 분입니다.
미국의 웬디스 햄버거의 창업자 데이브 토마스(Dave Thomas ; 1932~2002)는 『나는 10억 배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간증 책을 펴냈습니다. 그는 사생아 출신으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없이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도 중퇴하였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60세가 될 때까지 간이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고 비록 금액은 많지 않지만 십일조도 먼저 드렸습니다. 그의 나이 60이 되었을 때 햄버거 가게를 하나 차렸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좋은 가격으로 더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60세가 되어서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여 6조원 규모의 대 기업가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나는 10억 배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60세에 시작하고 나서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매달려 기도하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에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투자하십시오, 성령님은 장래 일을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4. 성령님은 예수님을 높이는 일을 하십니다(14절).
14절에 보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을 높이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주님을 높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본성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몇 십 분 혹은 몇 시간을 찬양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를 높이지 않고 주님만을 높이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적인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변합니다. 전에는 친정 중심으로 살았는데 결혼을 한 후부터는 시집 중심이 됩니다. 부모에게 잘하던 딸이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 밖에 모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부모는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입혀 주고 먹여 주며 사랑을 다 바쳐 길러주고 공부시켜 주었는데도 딸은 결혼을 하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편과 짝짜꿍이 되어서 부모는 관심 밖에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여동생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께도 잘하고 부모님 얼마나 끔찍이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집을 가더니 변해서 친정에 오면 하나라도 더 가져갈 생각만 하고 맛있는 음식만 보면 자기 남편 생각만 했습니다. 한 번은 여동생 남편이 외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그 목사님 집을 방문했습니다. 사모님이 여동생을 생각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온 가족이 식사를 하는데 여동생은 먹지 않고 그냥 앉아 있더랍니다. 목사님이 “왜 안 먹니?”하며 쳐다보았더니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오빠, 맛있는 것 보니 신랑 생각난다”고 하더랍니다. 어디 그 목사님 여동생뿐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바뀝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적인 결혼 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헷가닥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꿈, 자기 인생의 계획이 없어집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돈도 주님을 위해 쓰고, 시간도 주님을 위해 쓰고 무엇을 하든 주님을 위해 하게 됩니다. 자신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 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고나니 그에게는 오직 주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야 어떻게 되든 주님께서 높아지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없어지고 주님 밖에 없다면 나는 뭐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가장 최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널뛰기와 같은 것입니다. 널뛰기는 이쪽에서 굴려주면 저쪽에서도 굴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영광 받으세요” 하고 주님을 높여 드리면, 주님께서 “너도 귀해져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주님만 영광을 받으세요”라고 하면, 주님께서는 “너도 귀해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4:8에 보면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나는 주님만 위하여 삽니다”라고 하며 그렇게 살고 나면 내가 잘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만 높이리라” 하는데 어느 날 내가 높아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종종 시험에 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섭섭함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자기를 높여주지 않아서,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시험에 듭니다. 교회에서 항존직(장로, 안수집사, 권사)을 세우기로 해놓고 목사가 근심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택이 되지 못해서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았다고 시험이 드는 사람이 있을까봐서 걱정입니다. 교회 건축을 하고나면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헌신했는데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아서 시험에 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시험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들지 않아서 시험에 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항존직에 피택이 되지 못했어도 시험 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많은 돈을 헌금하고 남 보다 더 봉사하고 더 충성했는데도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시험에 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입시다. 성령님은 오직 주님만 높이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시므로 바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과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장래일을 알려주시며 비전을 공급하셔서 하나님 앞에 참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나의 이름보다 예수님만을 높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바른 신앙생활을 원하신다면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R. A. 토레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내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나는 말을 조심한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내가 하는 말은 종종 실수일 수가 있고 실언 일 수가 있고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성령 충만 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유보한다. 내가 성령 충만하지 않고 결정을 할 때 종종 내 결정은 잘못 될 수가 있고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꼭 마찬가지의 이기적인 결정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모한다. 나는 목이 타도록 사모한다. 목마른 사슴처럼 사모한다. 성령 충만을 사모한다.”
성령을 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하나님께서 너희의 밤낮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매달 첫 번째 금요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고 모여서 10시간 동안 기도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 이번 달 기도의 날입니다. 오셔서 기도하십시오. 성령을 구하십시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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