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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 (마 5:10)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 (마 5:10)

 

 

   [국제오픈도어선교회]는 매년 기독교 박해국가를 선정하고, 그 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습니다.

 


   금년 발표를 보면,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를 박해하는 국가로 북한이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9년째 1위를 고수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기독교 박해국 1위로 선정된 이유를 론 보이드 맥밀란 오픈도어의 리서치 담당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북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숨겨야 하고, 부모조차 자녀들에게 신앙을 숨겨야 하는 처지이다. 그리고 북한에 40여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는데, 그 중 5만-7만 명 정도가 강제수용소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만 해도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돼,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했다”

 

 

 

 


   이런 북한에 이어 박해국 순위에 오른 나라들은 대체로 이슬람국가들이었습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박해하는 나라가 50개국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1억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며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저 북녘 땅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지구상에 가장 혹독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지금 박해를 받으며 믿음을 지켜가고 있는 저 1억 여 명의 기독교인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저들은 복을 받았고, 그리고 장차 더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본문 말씀은 저렇게 공적이고 직접적인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특별한 박해를 겪어보지 않고 평안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일까요?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그러니까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 믿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요 15:18-19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 곧 예수를 믿어 예수의 사람이 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는데 저들의 예수를 믿어 예수의 사람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미워하는 세상이 예수 믿는 예수의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도 영적 어둠의 강도에 따라 박해 정도가 다릅니다. 영적 어둠이 가장 짙은 곳 즉 우상이 지배하거나 무신론 이데올로기가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저 북한과 이슬람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얼마 전 새가족 한 분이 등록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나눠보니까 이분은 원래 예수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교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혼 후 시어머니가 워낙 강경하게 반대를 해서 교회 출석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TV로 예배 드리고, 시어머니 몰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께 정성껏 효도를 다했답니다. 그리고 이제 시어머니가 나이 들고 병들어 이분의 간병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답니다.

 


  최근에 기도하며 당당하게 시어머니에게 말했답니다. 이제 교회에 나가겠고, 교회에 가서 어머니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선포했답니다. 시어머니가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끄떡이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영적인 어둠이 짙은 곳에서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박해가 심합니다.

 


둘째, 예수처럼 살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딤후 3: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예수 믿고 예수처럼 경건하게 살려 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갈 4:29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예수 믿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을까요?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게 됩니다. 그런데 주변에 바르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볼 때 불쾌합니다.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의 바르지 못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의 양심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한 예수를 잘 믿는 교사의 고민을 상담한 일이 있습니다. 기한이 돼서 한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갔답니다. 늘 소신대로 학부모의 촌지를 거절했답니다. 그리고 사심없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답니다.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이분을 칭찬하면서 이 소문이 학교 안팎에 두루 퍼지게 됐답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교사들이 남몰래 촌지를 챙기던 때입니다.

 


  그후부터 이분이 다른 교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처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습니다.

 


셋째, 예수를 전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마 10:16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박해를 미리 예고해 주신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를 전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복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듣고, 선선히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전도해 보면 정 반대입니다. 대부분 외면합니다. 많은 경우 애를 먹이다가 거절합니다. 어떤 경우는 격하게 반응합니다. 욕을 하기도 하고, 심할 경우 물리적으로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령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선선히 떠날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막게 합니다. 교묘한 논리로 반박하게 조종합니다. 미워하게 하고, 욕하게 하고, 심하게 박해하도록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박해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영적 전쟁을 치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 것과 예수 믿는 자신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잘못과 죄 때문에 박해 받는 것과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 법을 어기거나 불의를 행해서 박해를 받게 될 때, 이것을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이 지나친 신앙생활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과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이라는 핑계로 마땅해 해야 할 책임을 등한이 하면서 비난을 받게 될 때, 이것을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무관한 일 때문에 박해 받는 것과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하여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을 때, 이것을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 10:16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비본질적인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본질적인 일에 연루되어 본질적인 것이 훼손되지 않도록 순결함을 지켜가야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예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온통 잘 믿는 사람들뿐이어서 저를 박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목사인 저를 세워주고 높여주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제게 문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찾지 못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박해를 받을 상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의를 위해 박해를 받고 계십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왜 의를 위해 박해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사람들이 받는 복

 


   그러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복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받을 복은 천국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이라는 것은 저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장면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행 16장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주인이 여종이 귀신이 나가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자 바울을 고발하게 됐습니다. 관리가 주인의 말과 무리들의 말을 듣고 바울을 체포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옷이 찢기고 많이 매 맞고 발에 차꼬를 차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행 16:25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가 그 모진 박해를 받고서, 한 밤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한 찬송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바울의 나이가 노년기를 바라보던 때입니다. 수 없이 맞았습니다. 치료는 커녕 차꼬를 발에 차고 감옥 깊은 곳에 투옥됐습니다. 온 몸 구석구석이 아팠을 것입니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잠도 청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주를 위해 모든 것 다 버리고 나섰습니다. 원치 않는 유럽 땅까지 성령의 인도 따라 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이렇게 매맞고 힘겨운 고통에 내던져 놓으십니까?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두렵고 불안합니다. 혹시 더 매 맞고 그 심한 박해로 몸이 더 심하게 상하지는 않을지, 혹시 이 상태로 정말 오랜 세월 여기에 수감되지는 않을지, 혹시 여기서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지는 않을지... 불안하고 염려가 돼서 절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한 밤중에 일어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누리는 그 어떤 복보다 차원이 다른 복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복이라는 것들은 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구하는 복들 역시 다 이 세상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복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저 천국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살면서 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삶이 다릅니다. 우선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담대하게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 세상 것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복 중의 복인 이 천국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저 천국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깊이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저와 여러분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주님의 바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잘 믿을 때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처럼 살 때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할 때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더욱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누릴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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