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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가복음 안으로의 첫걸음! (막1:1)

마가복음 안으로의 첫걸음! (막1:1)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그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는 것을 푯대로 삼고서, 그 푯대를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는 것을 우리 삶의 푯대로 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선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더 많이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차례대로 살펴보면서, 예수님을 보다 체계적으로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마가복음 전체를 차례대로 살펴보는 일을 친히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마치는 날, 우리는 놀랍도록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묵상했기에, 그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 다함께 마가복음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째로, 마가복음의 기록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은 마가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자체는 그 사실을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마가라는 이름 자체가 마가복음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은 다른 복음서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마태가 등장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누가라는 이름이 아예 나오지를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도 요한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단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등의 익명으로만 나올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때부터 각 복음서의 사본 맨 위에는 언제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라는 책명이 붙어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도 그 책명에 있는 인물이 그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복음서의 기자들은 자신들이 그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복음서를 기록만 했을 뿐, 모든 복음서의 원 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모든 영광을 오로지 하나님께만 돌리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기서의 예언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 모든 복음서의 원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도대체 어떠한 인물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가라는 이름이 마가복음에는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도 그의 이름은 전연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2장입니다.


행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행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행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행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이 큰 흉년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을 위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이제 바나바와 사울이 그 구제비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행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여기의 “그 때”는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구제비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몹시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스데반 집사도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 가운데서는 야고보가 제일 먼저 순교한 셈입니다. 아무튼 헤롯 왕은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 이번에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행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 왕은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즉시 그를 죽이지를 않고, 일단 옥에 가두었습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끝나면,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의 동요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를 군인 넷씩 네 패에게 맡겨 지키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루에 여섯 시간씩 네 교대로 해서, 온 종일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 때 교회는 어떤 작전을 세웠습니까? 감옥을 공격해서 베드로를 구하려 들지 않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행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12: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행12: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베드로가 처형을 당하기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자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를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이끌고서 감옥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미 환상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심을 받기 전에, 주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환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때도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행12: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행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천사는 필요한 곳까지만 베드로를 인도하고서는 그를 떠났습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서, 헤롯 왕은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를 바랐으며, 또한 유대인들은 베드로를 죽이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행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드디어 여기에 마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그의 본명은 요한입니다. 그 당시에는 자신의 본명과 함께 로마식 이름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컨대 사울은 본명이고, 그의 로마식 이름은 바울이었습니다.

아무튼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마리아는 분명 과부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베드로가 간 곳을 마가의 아버지 아무개의 집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마가에 대한 설명이 별다르게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저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다고 기록할 뿐입니다. 그 당시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이 마리아가 어느 마리아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마가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까?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그 곳에서 모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 곳에서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따라서 비록 마가가 어린 나이였을지라도, 마가는 자기 집에 모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던 베드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도 마리아의 아들 마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행12: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행12: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행12: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정말 이상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자. 그러나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말자.” 그러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믿음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줄 믿기 바랍니다.


행12: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행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여기에 나오는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닙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미 헤롯 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곳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들 가운데 하나로서, 신약 성경인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야고보에게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피했습니다.


행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 당시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비를 전달하는 일을 마치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은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마가를 데리고 갔을까요? 골4:10에 의하면,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바나바는 마가의 외삼촌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나바는 마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이와 같이 바나바는 레위족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생질 마가도 분명 레위족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레위족이 하는 일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마가도 어리지만,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의 조카 마가가 자신들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사울에게 그의 조카 마가를 추천했습니다. 그 결과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으로 되돌아갈 때,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기에 그 당시 안디옥 교회를 섬기던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에는 마가의 이름이 없습니다. 마가는 교회의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제 바바와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행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행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여기에 마가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습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수행원,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조수였습니다. 마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잘 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교 여행을 갈 때도, 그들의 수행원으로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행13: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행13: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이와 같이 그들의 선교 여행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배를 타야 했습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대적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마가는 편모슬하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슬프게도 마가는 바나바와 사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갔습니까? 마가는 자기를 믿고 바나바와 사울의 수행원으로 보내준 안디옥 교회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바나바와 사울은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한 동안 안디옥에 머물면서,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울, 곧 바울이 바나바에게 제2차 선교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행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행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행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여기서 우리는 제1차 선교 여행에서 마가가 떠난 것이 질병이나 부상과 같은 어떤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군인이 임의로 군부대를 탈영한 것처럼, 마가는 임의로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아무튼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마가는 오래 동안 성경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대략 십 년 이상이 지났을 때입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몬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몬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두 번에 걸쳐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행전 끝 부분에서, 그는 제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이른바 옥중서신 네 권을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바울은 자기가 전도했던 곳들을 순방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금 체포되어 제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 그는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순교했습니다. 

방금 읽은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바울이 제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기록한 서신서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옥에 갇힌 바울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를 대신해서 마가를 골로새로 보내면서, 그를 영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이 제1차 선교 여행을 했을 때, 바울을 몹시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던 마가가 이제는 바울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더 이상 마가를 자신의 조수로 생각하지 않고, 마가를 자기의 동역자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딤후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바로 직전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줄 알고서, 디모데와 함께 마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마가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마가와 바울과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했습니다. 처음에 바울은 마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은 마가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끝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시작은 좋았더라도, 끝이 나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가처럼 한 순간 실수가 있었더라도, 갈수록 좋아져서 모든 일에 끝맺음을 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마가에게는 바울과의 관계보다도 그에게 더 큰 영향을 준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와의 관계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가는 어릴 때부터 베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마가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선포하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가도 베드로가 선포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도 계속해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 후에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 여행을 갈 때, 그들의 수행원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마가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있지를 않았습니다.

마가는 로마로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제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의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는 과거에 자기가 범했던 잘못에 대해서 바울에게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옥중에 있는 바울의 뒷바라지를 잘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마가는 다시금 바울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했습니다. 그 뒤에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잠시 풀려났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떠나서, 그가 전도했던 각 지방을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바로 그 기간 동안에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전서는 로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로마 교회를 가리켜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로마의 황제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여기서 일종의 암호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베드로는 마가를 그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영적으로 마가를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가는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의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사에 의하면, 이 때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자연히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는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의 요청에 따라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 바울도 체포되어 제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다가 그도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바울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기에, 그는 십자가형에 처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칼로 목 베임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그들이 순교한 후에, 하나님은 마가로 하여금 예수님의 삶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마가는 그가 베드로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해서, 성령 하나님의 감독 하에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담은 한 권의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가복음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도 교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수행원이었을 뿐입니다. 사실 그는 그 일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변화를 받아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의 기록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세리였습니다. 누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게다가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렸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성품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변화를 받으니까, 그들의 과거와는 상관없이 그들 모두가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날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도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마가복음의 주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이라는 명칭이 밝히고 있듯이, 마가복음의 내용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복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 주에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막1:1이 밝히고 있는 대로, 마가복음의 주제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가는 그가 기록한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 사실을 마가복음의 첫 절부터 분명하게 밝히지만, 그는 마가복음의 전체 구조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마가복음은 전체가 열 여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한 가운데 있는 말씀이 바로 막8:29입니다. 그 곳에서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막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말하자면 마가복음의 가장 중심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고 말한 베드로의 고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해서, 그 이전 곧 마가복음의 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해서, 그 이후 곧 마가복음 하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또한 입증됩니다. 이와 같이 마가복음의 주제는 그 첫 절에서 밝힌 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가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종종 그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에게 드렸던 신앙 고백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물으셨어. 사람들이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들은 대로 대답했지. 더러는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되물으셨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 때 내가 얼른 대답했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에게 드렸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위대한 신앙 고백이 마가복음의 가장 한 가운데 최고의 꼭지점으로 우뚝 서있습니다.

아울러 이 꼭지점을 중심으로 마가복음의 전반부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하심을 통해서, 그리고 마가복음의 하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가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가는 우리 모두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같은 복음서 가운데 하나인 요한복음이 잘 밝히고 있습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우리의 푯대로 삼읍시다.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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