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 (이사야 11장 1-16절)
우리나라 사극에 보면 의례히 왕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런 왕이 처음에 등극하게 되는 과정에 또한 거의 따라붙는 것이 무슨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든지 '왕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났다.'라는 따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소리는 나중에 그 사람이 실제로 왕이 되고나니까 뜯어 맞춘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모르기는 하지만 점쟁이한테서 그런 말을 듣거나 어머니가 그런 태몽을 꾸고 나서 낳았다는 사람들 전부가 다 실제로 왕이 되었었다면, 아마 우리나라 과거 역사는 온통 왕들 천지가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왕정이 대통령제로 바뀐 이후에도 그런 왕의 운명이니 정기니 운운하는 것들이 여전히 신봉되고 있습니다.
소위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기 부모의 무덤을 파내어 이장(移葬)까지 하는 작태를 저지르는 것이 다 그런 미신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대통령 감으로 태어났다고 철석 같이 믿는 사람들이 일단 대권을 잡고 나면 선거 때 국민들에게 했던 공약들은 또 까마득히 잊어먹기 일쑤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정말 '타고난 왕 중의 왕'이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구세주'로 오실 것을 그 탄생의 700년 전부터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적 혈통을 따질 때 우리가 가장 자주 듣는 표현은 바로 '다윗의 자손'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 왕조의 혈통을 이어 태어나실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11장 본문에 보면 조금 색다른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예언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바로 1절에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했으며 나중에 10상반절에서 또한 "10a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라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새"란 바로 다윗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이새는 그저 평범한 시골 농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과 "이새의 줄기와 뿌리"라는 말은 혈통적으로는 같은 뜻이지만 그 뉘앙스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전자는 듣기만 해도 화려한 왕가이지만, 후자는 별로 내세울만한 족보도 되지 못할 이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사야서의 예언은 왜 하필이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명예로운 족보 대신에 '이새의 뿌리'라는 소박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위대함은 그 분이 세상의 어떤 왕가의 핏줄을 받아 태어난 데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뜻과 계획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과 같이,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가지'와 같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시작이었지만, 결국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완벽하게 "결실"을 맺게 되는 실로 위대한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저와 여러분은 이 '이새의 뿌리'를 통하여 과연 어떤 위대한 메시아가 예언되었으며 또한 그대로 실현되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이상향을 완벽하게 이루어 주실 '왕'으로 탄생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성취되었습니다.
우선 그 메시아는 군주로서의 '완벽한 자격'을 갖추신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 사실을 2절에 "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신"이란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성령을 가리키는 구약의 특별한 표현입니다.
성막을 제조할 때 브살렐이란 사람이 바로 이 '하나님의 신'에 충만함을 받아 여러 가지 공교한 일들을 해내었으며, 유명한 삼손도 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아 사자를 염소 새끼처럼 찢어 죽였습니다.
즉 '여호와의 신'에 충만해진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초능력적인 일을 해 내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자질, 곧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 나라를 다스리기에 충분한 지도자적 자질을 갖춘 왕이나 대통령도 이 세상에는 그리 흔치 아니한데, 하물며 온 세상 전체를 통치하기 위한 완벽한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혹 자기 나라사람들에게는 공감되는 '총명한 모략'을 내어놓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나라사람들에게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며, 자국에 이익이 되는 '재능'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타국에는 상대적으로 손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바로 이 조건에 유일하고도 완전하게 부합되는 왕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선언하신 메시아로 오셨으며 그런 까닭에 그 예수님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전지(全知)요 그 예수님의 능력은 곧 하나님의 전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메시아는 '완벽한 통치'를 실현하실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로 5절에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기록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것은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대표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메시아는 그처럼 감각되어지는 대로 판단하는 자기중심적인 세상 군주들과는 달리,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왕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시며 그 뜻을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오실 메시아의 유일한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메시아는 "공의와 정직"으로 "빈핍한 자와 겸손한 자"를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대통령들이 공약 때마다 내걸지만 아무도 이루지 못하는 저 '서민들과 약자들을 위한' 통치는 오직 이 메시아를 통해서만 진정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분은 "입의 막대기와 입술의 기운"으로 "세상을 치며 악인을 죽이는" 공의를 베푸실 메시아가 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유력한 조직이나 단체도 이 메시아 앞에서는 아무런 정치적 압력단체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속 정치가들은 자기네 당에 정치자금을 조달해 줄 수 있는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정책을 펼쳐가고 자기네 후보에게 표를 던져 줄 수 있는 유권자의 구미에 맞게 법을 제정해 나가기 마련입니다.
아니, 일단 권력을 잡으면 순전히 유아독존적인 교만에 사로잡힌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서 '민주적 독재정치'로 일관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오실 메시아는 그처럼 자신의 선입관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영향이나 간섭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하나님의 "공의"로써 "성실"하게 다스리실 왕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실제로 그처럼 이 세상을 완벽하게 다스리신 유일한 왕이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메시아께서 완벽한 통치를 베푸시게 될 때 그 결과는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완벽한 행복'이 그 메시아께서 다스리시는 백성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6절로 9절에 기록하기를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그 뜻은 분명합니다.
메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모든 두려움, 위험,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며, 실로 완벽한 평화와 행복만이 넘치는 이상향이 건설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충만하신' 메시아께서 왕으로 오셔서 그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하실 때에 이런 일은 성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나름대로 훌륭한 왕이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모든 갈등이나 분열이나 싸움이 완전히 해소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당신께서 친히 머리가 되신 교회를 통하여 그런 왕국을 완성하셨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이 메시아를 통해서 깨닫게 된 자들이 중생을 받게 되고 그 결과 그 남은 금세를 통하여 이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아무에게도 정죄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사단의 "상함"을 받지 아니하는 완벽한 복지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시작되고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오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왕들이 이 세상에 등장했었으며 오늘날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정말 온 지구 전체의 통치자로 임명할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만하면 이 60억 인류 전체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되어질만한 사람이 지금이나 지나간 과거 역사상 있었습니까?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세상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을만한 자질과 능력이 충분한 '왕 중의 왕 한 명'을 결코 배출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민주정치보다 더 훌륭한 정체(政體)가 나타난다 해도, 유엔보다 더 효과적으로 세상 국가들을 연합시키는 기구가 생긴다 해도, 단 한 명의 위대한 '세계 대통령' 밑에 온 세계 국가들이 한 나라처럼 완벽하게 다스려지게 될 일을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런 일을 가능케 하실 유일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학위나 재력이나 경력이나 대중의 인기 같은 것을 내세우는 정치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 성령의 감동에 충만하신 이 최고의 자격에 있어서 타의 추종 아니 비교조차 불허하시는 유일한 왕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의 성군이나 훌륭한 대통령이라 해도 결국 사람의 판단이라는 제한된 통치 방법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근거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베푸신 유일한 왕이십니다.
세상의 군주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자기 나라 백성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건설해 주지 못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완벽한 이상향을 실현시켜 주실 유일무이의 왕이신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이전에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왕 중의 왕'이 바로 '이새의 뿌리'를 통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이처럼 예언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금세와 내세를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로써 다스려 주시는 이 위대하고도 고마우신 최고의 왕을 이 성탄을 통하여 큰 기쁨으로 영접하며 지극히 높여 받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택자를 모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실 '구세주'로 탄생하실 것이라고 약속되었고 또한 실현되었습니다.
오실 메시아는 택자들을 온 세계만방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불러 모으시는' 구세주가 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10절부터 12절에 기록하기를 "10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호"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깃발'을 뜻합니다.
광야 행군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지파, 종족, 계보에 속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한 표식으로 이 깃발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새의 뿌리에서 날 한 싹'을 "만민의 기호"로 세우신다는 것은, 바로 오실 메시아를 중심으로 당신에게 속한 백성을 불러 모으실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메시아께서 높이 들리실 때 택함 받은 백성들은 바로 이 깃발을 보고 세상 그 어디에서든지 이 분 밑으로 모여 들게 됩니다.
"앗수르, 애굽, 구스, 하만, 바다 섬들" 등의 지명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알려진 전 세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이든지 가리지 않고, 그들이 쫓겨나 있든지 흩어져 있든지 사정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열방을 향하여 세우신 기호'를 중심으로 그 모든 "남은 자들" 즉 구원받기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상태가 바로 인생에게 있어서 최악의 저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당신 앞으로 불러 모아 주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각기 다른 민족, 나라, 언어, 문화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그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개인적 성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한 왕국 안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깃발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들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던지 간에 이 메시아를 만나게 되면 그 순간 당장 하나님께로 다시 모여들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시 그분께로 돌아갈 수 있는 이 놀라운 구원을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깃발처럼 높이 들고 뚜렷이 보여 주시는 유일한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또한 오실 메시아는 또한 그처럼 구원받은 '성도들을 화목시키고 연합하게 하실' 구세주가 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과 14절 말씀에 "13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그들이 서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에브라임과 유다는 원래 한 핏줄이었지만,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사후에 남북으로 나누어지면서 적대관계로 변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조 이스라엘의 리더 지파로, 유다는 남조 유다의 리더 지파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때로는 부근의 이방 민족들과 연합해서 상대편을 공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구원 받게 되는 그 날 이후에는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화목의 관계를 맺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부터는 이 둘이 합하여서 "블레셋, 동방 백성, 에돔, 모압, 암몬" 등 진짜 원수들을 무찌르고 복종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 역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인하여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의 인간관계란 것은 항상 서로 대립과 경쟁이며 시기와 질투이며 미움과 싸움으로 점철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아래 모이게 된 성도들은 그 보혈을 함께 나눈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를 투기하고 싸운다는 것이 그 얼마나 부질없는 부끄러운 짓인지를 곧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처럼 그리스도 안의 사랑으로 화목된 성도들은 사단의 권세와 마귀의 앞잡이들이야말로 그들의 공동 원수이며 진짜 대적인 것을 깨닫고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이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영적 전투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이전에는 먹고 사노라고 사람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 데에 온 신경과 정력을 다 쏟고 있던 자들을 변화시켜서, 참된 형제사랑 가운데 화목하는 '따뜻한 교제'를 맛보고 진짜 악한 원수 마귀를 싸워 이기는 '강력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놀라운 구세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또한 그 메시아는 그런 '신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구원을 믿고 소망하게' 하시는 구세주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15절과 16절에 "15여호와께서 애굽 해고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이사야서의 말씀은 당시 망국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날 출애굽 때의 구원을 상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해고" 즉 홍해의 물굽이를 말리시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손에 붙잡히게 되어도 그때와 꼭 같이 이번에는 "유브라데 하수"를 "신 신고" 건널 수 있도록 "일곱 갈래로 나누어" 얕게 해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로"를 만들어 주실 하나님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즉 과거의 구원을 상기함으로써 미래의 궁극적인 구원을 끝까지 소망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오실 메시아께서 바로 그처럼 그 약속하신 구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성취시켜 주실 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하여 성도는 죄 사함 받고 중생을 얻는 이 '출애굽'의 구원을 체험합니다.
그 체험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역시 자기를 죽음 가운데서도 다시 부활시키시고 천국에 이르는 영생 길로 반드시 인도해 주실 이 소망 또한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와 같은 구세주가 어디 있었습니까?
인류 역사에 수많은 위인과 재사와 현인들이 지나갔지만 그 중에서 '구세주'라는 이름으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되어진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석가모니와 마호메트와 공자와 나란히 '4대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예수님을 제외한 나머지 소위 성인들이 '죄인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져 있던 인생들을 하나님 앞으로 다시 불러 모아 주시는 구세주, 사람끼리 싸우고 살던 인생들을 화목케 하시고 이제 마귀를 대적하는 승리의 공동체 안에서 살게 하신 구세주, 금세에서의 중생뿐 아니라 내세의 영생구원에까지 이르는 대로로 인도해 주시는 이 놀라운 소망의 구세주 - 이 땅의 그 어느 훌륭하다는 사람도, 그 어떤 위대하다는 사람도 결코 이런 구세주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내 주시마고 약속하셨고 그래서 인류가 만나게 된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깨닫고 이 성탄절을 통하여 그 초림을 뜨거운 감사로 맞이하며 그 재림 또한 끝까지 소망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이새의 혈통'을 좇아 태어난 수많은 자손 중에 하나로서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싹'이 이처럼 세상과 인류에 큰 열매를 맺혀 주신 '왕'이요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도록 하신 것은 베들레헴의 시골 농부에 불과했던 이새에게서 다윗이라는 이스라엘 최고 군주가 나오게 하셨던 놀라운 사건과도 비교조차 안 될 최대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지극히 면밀하게 계획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정확하게 예언되었으며 때가 되매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왕이나 지도자나 위인들처럼 부모의 확고부동한 의지 때문이나 특수한 조기교육의 결과로 혹은 자기 자신의 뼈를 깎는 수도나 노력의 결과로 된 일이 아니었으며, 어떤 시대적인 요청이나 역사적 운명 따위 때문에 이루어진 일도 아니었고, 무슨 '킹메이커'(king maker)의 도움 같은 것도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왕으로 결정되었고 구세주로 약속되어서 이 땅에 태어나시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타고난 사람'이라는 말을 영어에서는 'born to be'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지만, 그야말로 예수님이야말로, 아니 오직 예수님만이 '타고난 왕 중의 왕'이시요 '타고난 유일무이한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이런 '왕'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 역사에, 아니 세계사에 어느 군주가 이런 왕으로 예언되어 태어났으며 그 모든 약속을 다 지켜주었습니까?
아니, 그보다도 이런 '구세주'가 어디에 있습니까?
'왕'은 그래도 직명이나마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구원을 또한 성취시켜 주신 구세주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가 있었습니까?
역사가 계속될 동안 이 땅의 나라들은 완벽한 주권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왕 중 왕이심이 더욱 뚜렷이 드러날 것입니다.
인류가 존속하는 동안 인생의 문제들은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고 더욱 새로운 악재들만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모든 저주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끝내 성취하실 유일한 구세주로 더 더욱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받은 세상과 죄인을 위하여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이루어 주신 이 최대의 기적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맞이하여, 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이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의 은총과 천국 백성의 축복을 영원히 함께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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