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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창32:22~32/2007년 7월 15일 주일 설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창세기32:22~32
2007년 7월 15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1)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설교: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도록 노력을 해도 안 되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도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내 노력으로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면 어떻게 하느냔 말입니다.
그냥 체념하고 맙니까? 안될 때 안 되더라도 발버둥을 쳐봅니까?
그래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낙심하고 절망하다가 자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 눈앞에 닥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일한 방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인공 야곱이라는 인물은 그런 상황을 수없이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포기하고 물러나 본적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형이 가진 장자권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참 억울했을 것입니다.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참 억울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하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든 그 장자권을 가지려고 별수를 다 씁니다. 어느 날 형이 사냥터에 나갔을 때 그는 계략을 씁니다. 형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일부러 팥죽 냄새를 폴폴 날립니다. 아마도 일부러 뚜껑을 열어 놓고 끓였을 것입니다. 결국 배가 고픈 형은 배고파 죽겠다는 이유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바꿉니다. 야곱의 계략이 성공합니다.

또 아버지 이삭이 베푸는 축복을 받기 위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형 에서로 변장을 합니다. 들키면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짓이지만 모험을 감행합니다. 결국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여 여러 번 문제 해결의 성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사가 다 그렇게 형통하고 평탄하지를 못했습니다. 

형 에서가 동생에게 축복권을 빼앗겼음을 알고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처절한 고생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과 같은 머슴살이를 합니다. 두 아내를 위해 14년, 재산을 벌기위해 6년, 총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합니다. 야곱의 20년 생애는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는 축복에 대해서는 남다른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자기의 노력으로 얻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문제도 14년의 노력으로 해결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자기의 노력으로 해결합니다. 아마도 야곱은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이 자기의 노력과 의지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순간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의 집에서 나와 고향땅으로 가려는 그의 앞길에는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20년 전에 지은 죄 문제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빼앗았던 문제, 20년이 지났건만 형은 그 원한을 풀지 않고 야곱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은혜 얻기를 원한다고 전해더니 형이 4백 명의 군사를 끌고 달려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퇴양란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과거 어려움은 자기 힘으로 노력하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에서문제는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눕니다.
32장 8절을 보세요.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합니다. 그리고는 그제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절부터 보세요.
“9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할렐루야! 

여기 보세요. 인간 야곱도 다급하니까 기도가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압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도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기도해 놓고도 그 하나님을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또 인간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13절부터 보세요.
13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15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총 550마리 이상입니다.
예물만 550마리니 자기 소유의 짐승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예물을 각각 4떼로 나눕니다. 그리고는 종들에게 형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합니다. 왜 이렇게 하지요?
20절 하반절을 보세요.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아주 치밀한 계획입니다. 뇌물로 형의 마음을 녹여보려는 술책입니다.
그야말로 인간 야곱의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다 건너가게 해 놓고는 자기는 안 건넙니다. 왜요? 그래도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이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입니다. 이게 우리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야곱의 모습이 여러분 속에는 없습니까?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아십니까?
가정문제도 사업문제도 인간관계 갈등문제도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셔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난리를 쳐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최선이 인간적인 방법이 최선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게 오늘의 문제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 찾아 오셔서 내 육신의 것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방법, 내 재주, 내 꾀, 내 지식, 내 능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짐승을 네 떼로 다시 나누어 앞서가게 합니다. 왜요. 살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여차하면 나는 도망쳐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내 방법, 내수단, 내 머리를 위지하는 것, 이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얍복강 언덕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찾아와 그를 공격합니다. 씨름을 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씨름을 기도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기도라면 그냥 기도했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본문은 어떤 사람이 와서 그와 씨름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씨름은 우리나라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레슬링(wrestling)입니다. 왜 레슬링을 합니까? 상대를 제압하고 이기기 위해서 합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한 시합입니다. 우리나라 씨름은 상대를 넘어트리면 끝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보는 K1이나 프라이드라는 게임을 보면 상대가 항복할 때 끝을 냅니다.

본문의 씨름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간적인 방법, 그의 육신적인 것을 포기하기를 바라고 그를 제압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쉽게 포기를 안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강한 사람입니까?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격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다하다 안되니 야곱의 환도 뼈를 칩니다. 환도 뼈는 엉덩이 뼈입니다. 요즘으로는 고관절입니다. 이것 부러트리니 꼼짝 못합니다.
그때서야 그가 보통분이 아님을 깨달은 야곱은 축복을 해 달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이기심, 더 나아가 우리의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내려놓기를 원하셔서 그러는 것임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노력, 내 의지력으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다.
성도의 최선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은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그것을 거절하면 하나님은 뼈다귀를 부서트려서라도 결국은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고집부리면 뼈가 부서집니다. 계속 고집부리면 얻어맞습니다. 그러기에 빨리 하나님께 항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래야 자기기 이루었다는 소리를 안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형과 만났을 때 뭐라 합니까?
창33:5를 보세요.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11절도 보세요.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셔서 된 것입니다. 내 방법이 아닙니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절대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제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원수인 에서를 쳐서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야곱의 원수가 되어서 야곱의 자아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야곱을 도우시긴 도우셨는데, 외부적인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신 것이 아니고 야곱 자신의 죄성과 자아를 깨뜨리시고 자기의 한계를 알게 한 것입니다. 환도 뼈 부러 지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20년이 자기 힘으로 산 것이 아닌 은혜로  산 것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을 철저히 부수시고 그 다음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깨어진다고 하는 것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크게 쓰시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아도 깨지지 않은 사람은 쓰시지 않습니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울도 깨어져야 쓰십니다. 구름이 깨져야 비를 내리고, 곡물이 깨져야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도 깨져야 향유 냄새를 내듯 이렇듯 죄성과 자아는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빨리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2. 찾아오셔서 내 신분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자기와 씨름하던 사람이 가려하자 축복해 달라 합니다. 그때 그가 묻습니다.
27절~28절을 보세요.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여러분! 
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을까요? 몰라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알면서 왜 물으셨을까요?
그 이름이 단순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야곱의 과거가 담긴 이름입니다. 야곱이란 뜻은 “사기꾼, 움켜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뭐냐 라고 하실 때 나는 사기꾼입니다 라고 대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선포하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길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닥칠 때 내 신분이 무엇인가를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기꾼 같은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내가 바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냐를 바로 아는 것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삽니다. 혹시 알았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삽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신분이 무엇이냐 말입니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 존재임을 믿습니까? 이것을 모르면 마치 왕자가 자기가 왕자인줄 모르고 거지처럼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의식을 바르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기꾼 같이 살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나를 대신하여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던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 도저히 살고 싶지 않은 상황입니까? 그러면 그때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앞에 놓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아곱을 보세요. 하나님이 야곱에게 달려오는 에서의 마음을 녹여 놓았습니다. 야곱을 만나자 마자 끌어안고 입마추고 서로 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해결 방법입니다.  

3.찾아오셔서 생각과 환경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신분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그 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때 야곱은 그곳 이름을 바꿉니다.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라 부릅니다.
30절~31절을 보세요.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원래는 얍복 강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지명을 바꿉니다.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 해가 떠올랐다 했습니다. 환경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강을 건넙니다. 가축과 가족은 다 건넜는데 자기는 이제 건너는 것입니다. 왜요?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하나도 힘이 안 듭니다. 
주부 여러분 매일 설거지를 하시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그것이 즐겁고 어느 날은 귀찮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면 귀찮고 힘이 듭니다.

저는 골프를 한 번도 쳐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골퍼와 캐디는 반나절에 보통 10km쯤 풀밭을 걷게 된다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걷는데 골퍼는 돈을 내고 걷지만 캐디는 돈을 받고 걷습니다. 그런데도 골퍼는 상쾌한 기분에 건강이 좋아 졌다고 하고 캐디는 몸이 찌뿌듯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똑같은 운동량으로 똑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런 차이가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골퍼는 운동했다고 생각하고 캐디는 노동했다고 생각하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바뀌면 내가 바뀌고 내가 바뀌면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됩니다.
야곱의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겁날 것 없고 무서울 것 없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찌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선하게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내 방법,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문제가 참으로 많을 곳입니다. 남편문제, 자식문제, 경제문제, 질병문제, 그리고 과거 해결 받지 못한 죄 문제. 어찌해야 합니까?
그것을 얼마나 빨리 내려놓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길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에 대한 정체성을 바르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며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최선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그때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속히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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