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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그 사람만 좋아하시나?/민12:1~16/2007년 10월 7일 주일설교

왜 그사람만 좋아하시나?
민수기12:1~16
2007년 10월 7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인이 나아가매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11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 같이 되게 마옵소서
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았을찌라도 그가 칠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 밖에 칠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 오게 할찌니라 하시니
15 이에 미리암이 진 밖에 칠일 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설교:
저는 어릴적 시골에서 자랐기에 좋은 추억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요즘은 별로 보이지 않아 아쉬운데 옛날에는 제비가 많았습니다. 오월이면 날아와 부지런히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길러 9월이면 강남으로 떠나는 제비, 저는 어릴 적에 그 제비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우리 시골집 마루위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기 때문에 유심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제비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때 어느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줄 아십니까? 보통 5~8마리를 부화해서 기르는데 차례대로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입을 크게 벌린 새끼에게 줍니다. 어떤 때는 한 새끼에게 서너 번씩 줍니다.
왜요? 무조건 입을 크게 벌린 놈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배부르면 입을 덜 벌리게 되고 다른 놈이 더 벌리게 되어 얻어먹게 됩니다.
그래서 입을 크게 벌린 놈은 아주 실하게 큽니다. 그러나 입을 잘 벌리지 못한 놈은 늘 밀립니다. 결국은 제비 집에서 밀려 떨어집니다. 제가 가엽서서 그 새끼를 책상을 밟고 올라가 제비집에 올려 주면 또 떨어집니다. 떨어진 놈은 어미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죽게 내버려둡니다. 그러다 보니 다 커서 어른 제비가 되어 날아가는 놈은 네다섯 마리밖에 안 됩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제비마냥 입을 크게 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입을 크게 벌리고 해보세요. 아~~~멘

또 하나, 발견한 것이 있는데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면 새끼는 무조건 받아먹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큰 먹이를 물어다 주는데도 무조건 받아먹습니다. 먹이가 뭔가 살펴보고 입 벌리지 않습니다. 무조건 주는 대로 더끔더끔 받아먹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어미가 새끼 형편에 맞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제비새끼가 아주 어릴 때는 작은 먹이를 잡아다 줍니다. 그러다 좀 크면 잠자리도 잡아다 주고 큰 먹이도 물어다 줍니다. 여러분에게 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목사가 물어다 주는 하나님 말씀은 더끔더끔 받아먹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는 것이 뭔가 살펴보고 받아먹으려면 얻어먹지 못합니다.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입을 크게 벌립시다. 아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모세가 흑인인 구스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모세의 부인 십보라가 죽자 재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대가 구스여인이었습니다. 아마도 미리암은 십보라도 유대인이 아닌 미디안 족장의 딸이라 맘에 안 들었는데 재혼하는 여인이 구스 여인인지라 맘에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모세의 형인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하고 난리를 칩니다.
이들은 이 사건으로 모세가 갖고 있는 지도자의 권위까지 흔들면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하면서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기나 비방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거나 먼 데 있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데 있는 사람, 특히 나에 대해 잘 알거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이 밭을 샀건, 아파트를 샀건, 로토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어 수십억 원을 받았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좀 부러울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내가 잘 안다거나 내 친구거나 아니면 우리 교인이라면 괜히 심통이 나고 배가 아프고 마음이 불편해지게 됩니다.
말로는 “잘됐다, 축하한다, 수고했다”온갖 좋은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무언가 좋지 않은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이게 탐심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 인간이 갖가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를 이해했어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가르치고 설득해도 못 알아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면서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다 사랑하던 부인은 떠나고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가족인 그들은 모세를 어떻게 했습니까?
힘든 모세를 위로하고 격려 해주고 배필을 만들어 주지는 않고 구경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가 구스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할 때 그 재혼을 축하해 주었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비난하고 비방합니다. 단지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했다는 비난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모세는 그들의 비방과 시기를 묵묵히 듣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습니다. 변명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비방의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나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 가운데로 강림하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앞으로 나오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오니까 하나님께서 무섭게 그들을 책망합니다.
6절~8절을 다 같이 보세요.
“6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아주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좀 심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만 위하시고 모세만 좋아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그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사람이기에 좋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을 때 40년쯤 지났을 때 모세를 찾아 오셨습니다. 가시떨기 나무 불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출3: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면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허물이 있다고 그를 비방하고 그의 권위를 흔들었습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세요. 저는 여기서 모세의 위대함을 보게 됩니다. 비록 형과 누이지만 그들이 비방하고 괴롭힐 때 한마디도 변명하거나 핑계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인내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서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누가 비방하고 정죄합니까? 그때 화가 나고 속이 상합니까? 그때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해결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서서 일하십니다. 내가 나서서 변명하고 내가 나서서 핑계하고 하면 내가 추잡해 집니다.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진노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그 순간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어 눈과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 속에서 마치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말인데 이렇게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 미리암아! 그렇게 검둥이가 싫으냐? 그럼 너는 흰둥이가 되어 보거라” 그래서 문둥병에 걸리고 한 것 같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종들을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문둥병은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문둥병을 사용하십니다.
구약성경에 웃시야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왕의 본분을 망각하고 교만하여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드리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도 그랬습니다. 선지자의 명령을 어기고 나아만 장군의 물질을 탐내었을 때에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종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을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 같이 대하십니다. 또 교회를 비방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것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으로 여기 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일평생에 주의 종을 비난하거나 교회를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왜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비방하고 애매하게 저주하거나 손가락질하는 것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한 사람하고 대적하고 모욕하면 무섭게 징계하십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위치나 직분이나 나이의 상관없이 징계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2장에는 아주 무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는데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엘리사를 조롱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그때 엘리사가 그 아이들을 저주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니 수풀 속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이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왜 엘리사는 그들을 그렇게 저주하여 죽게 했을까요?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젊은 이이들은 그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고도 조롱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엘리사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심판이 곧바로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님이고, 여성 지도자요, 여선지자였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 드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비방했을 때 하나님은 미리암을 징계하면서 문둥병자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미리암만 두들겨 패시나? 왜 아론은 그냥두시나?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그를 문둥병 들게 하시면 예배를 못 드립니다. 그래서 넘어가십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함부로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있거든 조용히 찾아와 건의하고 물어보세요. 뒤에서 비방하고 정죄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들으시는 소리가 됩니다.
혹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징계하거나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저 우리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도와주는 협력자의 위치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3:20절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종을 제대로 접대하면 그것은 곧 주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고, 그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는 충성된 사람이기에 좋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오늘 아론과 미리암 앞에 뭐라 하십니까?
7절 하반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충성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온갖 위험과 모욕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서도 죽을 각오를 하고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입니다.
한 번도 자신의 안위를 구하거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온전하게 헌신하고 충성한 하나님의 사람을 모르는 척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 헌신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며 아브라함에게는 뭐라고 약속하셨습니까? 창12:3절을 보세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할렐루야!
그 만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세우신 사람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충성이 무엇입니까?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거기에 뭔가 있지 않습니까? 모르셔서 그러신다면 넘겨버리면 되는데 그런데 다 아시면서 감당키 어려운 일을 명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기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면 그게 충성입니다. 적당히 하는 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대충하는 것도 충성이 아닙니다. 죽도록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 하반 절을 보세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 던질 만큼 일하는 그것이 충성입니다.
381장 찬송을 들어보세요. 다같이 불러봅시다.
1.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주님께 슬픔이나 괴로움이 주의 사랑 못 끊으리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끝까지
2.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주님께 찬란하다 저 면류관 들려온다 주의 음성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끝까지
3.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주님께 항상 내가 힘쓰오리 주여 나를 도우소서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리 끝까지 아-멘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충성이라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성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신 재능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충성입니다. 능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열매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섯 개를 받은 사람은 다섯 개를 못 남겼어도 최선을 다했으면 그게 충성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뭐라고 칭찬하십니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복을 누리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신 것처럼 반드시 일을 맡은 자에게는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귀하게 들어 쓰신 자들의 공통점은 충성임을 알게 됩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바울, .....그들의 공통점은 충성입니다.
그러기에 누가복음 16:10절의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신 말씀을 명심하시고 작은 일, 하잘 것 없는 일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가대원 여러분! 여러분은 찬양을 준비하는데 최선을 다하세요.
목장강사 여러분! 목장 설교에 최선을 다 하세요. 목장 장 여러분! 목장 식구들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세요. 또 주일학교 교사는 어린이 한 사람 한사람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섬기세요. 그게 충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져주십니다.

3. 그는 온유한 사람이기에 좋아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아론은 형님이고, 미리암은 누님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혈육적인 관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형님과 누님이지만 그들이 비방할 때 얼마든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분노하거나 책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도 분노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만히 있으니까 도리어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3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무슨 말입니까? 이 지구상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모세의 온유함은 뛰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온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말로 온유는 부드럽고 따듯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뭐가 온유합니까? 그의 행동이 온유합니까? 그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질도 온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급한 성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호렙산에서 십계명 돌 판을 들고 내려 왔을 때 형 아론이 백성들과 함께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돌 판을 던져 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평가할 때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하는 그 온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말로 ‘아나바’로 쓰입니다. 굽힌다.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낮춘다는 말입니다. 겸손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좋아하고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헬라어로 온유는 ‘프라우테스’로 쓰이는데 길들여진 동물을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힘이 있는 말이 고삐로 조종되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할 때 ‘프라우테스’ ‘온유하다’고 합니다. 사람보다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에 의해 그 힘이 조절되고 통제되는 상태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망명생활을 합니다. 양을 치면서 아무 말 없이 지내어야 되는 훈련을 받습니다. 기나긴 40년 동안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되는 고된 훈련, 자기의 혈기를 죽이는 훈련을 받으면서 차츰차츰 온유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온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철저한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37;11에서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하였습니다.
마5;5에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하였습니다.

이 온유의 가장 아름다운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기에 온유한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마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셨습니다. 

주님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를 향하여 온갖 모욕과 수치를 줍니다. 군병들이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내리칩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며 수많은 매를 맞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을 향하여 한 마디도 역정 내지 않으신 그 예수님의 모습이 온유입니다.
힘이 없어서 당한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우리 죄 값을 위해 그 고통을 참으신 것입니다. 그게 온유입니다. 그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품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린 누이 미리암을  용서하고 위해서 중보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의 가장 위대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지극히 사랑하고 어찌 보면 지독하리만큼 편애 하는데 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랑, 그 편애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그의 집에 충성된 자가 되고 온유한자가 되면 그 사랑과 그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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