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 왕상19:1~14
- 2007년 10월 14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 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 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설교:
- 현대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많이 아는 것 가지고는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지식이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옛날과 달라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사람이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가져도 새로 만들어지는 지식을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지식을 100이라 한다면 여러분이 아는 지식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아마도 0.1%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도 세상은 매일 매일 수천 권의 지식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루에 133권이 출판된다 합니다. 그러니 신문잡지와 함께 합치면 엄청날 것입니다. 전 세계가 만들어내는 신지식을 합치면 상상도 못할 양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 여기 있는 이 USB 칩 하나에만 책을 수천 권 담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다 읽고 배우려면 세월 다갑니다.
- 그러기에 현대사회의 성공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보다 그 많은 지식 가운데 내게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빨리 습득하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식정보를 어떻게 내 것으로 빨리 만들어 사용하느냐가 능력인 시대인 것입니다.
-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관리, self control 이 얼마나 잘 되느냐가 성공에 열쇠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기가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통제, 자기 관리가 안 되면 엔진 고장 난 고급차량입니다. 무용지물입니다.
- 우리 성도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영성이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성령 충만해야 하고 영성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일까요? 이 영성을 잃게 되면 어느 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야가 겪던 영적 침체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는 북 왕국 이스라엘 나라가 영적 암흑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깜깜한 시대에 등불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지자들이 수백 명도 더 되었을 텐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선지자의 대표자로 여기십니다.
-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이 엘리야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특별히 선지자의 대표자로 변화 산에서 만나시는 장면도 보여 주었습니다.
- 그런데 그 엘리야가 죽기를 자처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심각한 영적 침체를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 봉독한 말씀을 살펴보세요. 그렇게 위대한 엘리야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 그가 겪게 된 영적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 1. 두려움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엄청난 승리를 했습니다. 바알 선지자 , 아세라 선지자 모두 850명과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이 놀라운 승리는 엘리야 선지자를 무척이나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가 나타났고, 바알을 섬기며 우상의 길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엘리야의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이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 같이 보였습니다.
- 엘리야는 아마도 그동안 숨어 지내며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과 고난들은 이제 끝났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그 갈멜산 소식을 듣고도 끔쩍도 안합니다.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 2절을 보세요.
-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였듯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작정했다면 왜 예고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고 없이 죽이면 되었을 것입니다.
- “내일 이맘때에” 죽이겠다고 기별을 보내는 것은 위협입니다. 협박입니다.
- 그런데 그 협박을 듣고 난 후부터 엘리야 선지자는 급격하게 기가 꺾였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크게 바꾸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마저도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 갈멜산에서의 엄청난 승리도 헛수고였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데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때 그는 “이제는 끝이다”라고 느끼고 유대 광야로 숨어들어 간 것입니다.
- 사실, 아합과 이세벨은 갈멜산 사건 이후에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살기등등하게 큰 소리를 치며 엘리야를 위협했지만 그것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협박 소리에 기가 꺾이고 만 것입니다.
- 왜일까요? 두려움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그를 영적으로 풀이 꺾이게 한 것입니다.
- 아무리 건강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몸이 좀 이상하여 의사 앞에 섰을 때 의사가 고개를 꺄우뚱 하면서 하는 말 한마디 “좀 검사 좀 해봐야 하겠네요.”말 한마디에 완전히 기가 꺾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죽음의 공포는 사단이 갖고 있는 무기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죽인다고 위협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위협합니다.
- 그러나 죽음은 더 이상 우리 믿는 자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왜요?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지금도 영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러기에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짧은 터널에 불과합니다. 할렐루야!
-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멘?
- 죽음이 두려워 타협하고 죽음이 두려워 주를 부인하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 2. 너무 피곤하여 탈진했기 때문입니다.
- 엘리야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기근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피신하며 다녔습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인 아합 왕과의 영적 싸움에 지쳤습니다. 그런데다가 갈멜산에서 그가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할 때 그가 얼마나 긴장을 했겠습니까?
-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으나 그러나 그 갈멜산에서 지면 끝이라는 초조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쳤던 것입니다. 그러니 도저히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지경이 된 것입니다. 결국 자포자기에 빠지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 시편기자도 시38:8절에
- “8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의욕상실이 찾아옵니다. 사람의 영혼은 육신 속에 담겨 있기에 육신이 너무 피곤하면 무기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니 엘리야가 브엘세바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죽기를 구합니다.
- 그래서 하나님도 이것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6일 일하고 제7일은 안식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 그런데 인간이 이 휴식을 포기합니다.
- 왜요?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욕심이 우리에게 외칩니다. 야! 네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편히 쉬고 있냐? 하면서 쉼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안식을 명하신 것입니다.
- 그러기에 잘 쉬는 것이 복입니다. 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 혹시 여러분! 영적으로 힘이 듭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까?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너무 피곤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냥 좀 쉬시길 바랍니다.
- 우리 주님은 로뎀나무 아래 누워있는 엘리야 선지자를 찾아 온 천사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천사는 엘리야를 호통을 치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이 등신아, 꼴좋다” 하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맛있게 숯불에 구운 떡을 먹이고 시원한 물로 그 목을 축이게 도와줍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렇게 합니다.
-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 엘리야의 낙심의 원인이 영적이기보다는 육적으로 너무 피곤하여 탈진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이 지치면 마음과 영혼도 함께 지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음식을 먹으면서 휴식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육신도 잘 돌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서 몸도 휴식하고, 건강을 점검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 목사도 휴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들은 특별히 안식을 지키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주일은 제일 힘든 날이고 월요일은 쉬어야 하는데 이런 저런 회의다 공부다 쉬지 못하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저녁 10시 이후까지 좀처럼 자기 시간을 내기 힘이 듭니다. 어느 날은 오밤중에도 전화 받고 뛰어 가야 합니다. 잘 쉬도록 도우시길 바랍니다.
- 3. 눈앞에 전개된 형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엘리야는 왜 이렇게 깔아졌을까?
- 두려움도 그 원인이고 육체의 피곤도 그 원인인데 그에 못지않고 심각했던 것은 눈앞에 전개된 상황, 형편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 3절을 초반을 보세요.
- “저가 이 형편을 보고”
- 대승을 거두었는데도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그 형편, 그 모양이 자기의 기대감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에서의 승리 후에 적어도 이런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 “이제는 바알신은 끝났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따를 것이다. 이제는 아합왕도 꼼짝 못할 것이다.”
-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발악을 하는 것이고 오히려 자기 생명이 더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 사람은 연약하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형편만 쳐다보고 실망하기도 하고 기고만장하기도 합니다.
-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눈앞에 전개된 요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땅이 에덴동산 같고 애굽 땅 같이 좋아 보여 그쪽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 땅의 겉모습만 보았습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라는 사실은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롯도 망했습니다.
-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두 사람 중 열 사람, 그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실패했습니다.
-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베드로도 물위로 걷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걷게 해주세요! 하고 외칩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걸어가다가 바람은 보고 무서워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눈앞에 현질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엘리야는 하나님의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 푹 쉽니다. 실컷 잤습니다. 실컷 먹었습니다. 여러분도 영적으로 침체가 찾아오면 푹 쉬고 잘 먹으시기를 바랍니다. 음식을 잘먹어야 잘 쉬는 것입니다. 잘 먹지 못하고 쉬면 금방 병듭니다.
- 엘리야는 그 쉼을 통해 힘을 얻고 그 후에 일어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습니다.
- 오늘 우리도 나 형편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엘리야는 그 산에 올라가 갖가지 체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강한 바람도, 지진도, 불도 체험하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고 그 음성을 듣고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 성도여러분!
- 기적이나 표적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힘으로 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 말씀으로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사야40:28~31 을 잘 아시지요?
-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새 힘이 임합니다.
- 눈앞에 전개되는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엘리야의 영적 침체 원인
- 4.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10절 하반 절을 보세요.
-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엘리야! 그는 늘 외로웠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그냥 그의 출신만 언급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만 언급 됩니다.
-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이름 없는 지방의 이름 없는 평범한 집안의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처럼 궁에서 고급스런 훈련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처럼 체계적으로 학업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 이름도 없는 디셉이라는 시골 지방 출신으로 평범한 길르앗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같이 충청도 괴산 사람 같았습니다. 아멘을 좀 하셔요.
- 그런데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영적으로 캄캄 했습니다. 당시 절대 권력자 아합왕도 바알을 섬겼고 그 부인도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다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심지어는 선지자들조차도 그쪽으로 따라 갔던 것입니다.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겼던 그 850명의 선지자들은 누굽니까? 그들은 원래 하나님 섬기던 자들입니다. 그러다 권력과 야합하고 부귀영화를 얻으려 변절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은 오직 자기 한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것이 문제입니다.
- 하나님의 일은 혼자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옆에는 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큰일을 하며 들어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혼자였다고 느꼈습니다.
-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세상사람 다 나를 버리고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얼마나 많습니까?
- 여호수아1:5~6을 보세요.
-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 그런데 환경을 바라보고 내 형편을 바라보면 어느 샌가 나 혼자라고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떠나지도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곳곳에 남겨두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야가 나 혼자입니다 라고 할 때 하나님은 “아니다 7000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십니다.
- 18절을 보세요.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엘리야는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7000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도 순결한자, 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를 7000이나 남겨 두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는 안보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일꾼,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목숨을 건 7000명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 성도여러분!
- 혹시 여러분도 교회 일을 할 때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까?
-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내가 모르는 7000명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 나 혼자 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 옆 사람에게 말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할렐루야
-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리고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내 동역자들을 곳곳에 준비시켜 놓고 일하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그 준비된 그 사람이 여러분의 동역자로 나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 제가 22년을 목회하면서 간혹 절망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 중직으로 충성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납니다. 그러면 상당한 충격에 빠집니다. 큰일이다 어찌하나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해 당신의 교회를 무너트리지 않습니다. 그때 더 좋은 사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더 충성스러운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젠 단련이 되었습니다. 이젠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고 누가 떠난다고 교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염려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 절대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질 않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혹시 주님을 섬기는 일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워 자포자기 상태에 있습니까? 혹시 주의 일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아예 교회를 멀리 하고 싶습니까?
- 그렇다면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영적으로 오늘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 그러기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 두려워하지 마세요. 형편을 쳐다보질 마세요. 그리고 나 혼자 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 그러기에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수많은 동역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어나셔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붙잡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합시다.
- 왕상19:1~14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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