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2] 새 계명 (요 13:34-35)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서로 서로에게 손을 뻗어서 사랑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손을 뻗어서 자신들의 필요한 것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살펴보면 아주 작은 손을 뻗어서 먹을 것과 안전과 따뜻함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가 손을 뻗어 엄마를 잡고, 젖을 먹는 것을 보면, 젖이 주는 영양분보다 훨씬 더 귀한 평온과 따뜻함과 만족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이 땅에 태어나서 손을 뻗어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얻습니다. 그러다가 커가면서 깨닫는 것은 손을 뻗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도 손을 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요,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숙해갈수록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갖기 위해 손을 내밀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사랑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인도 마드리스에 있는 St. Thomas산지에 있는 한 기숙사에서 사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기에게 부드러운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유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팔에 안긴 아이는 얼마 전에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서 울고 있던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면서 우유를 먹입니까?” 사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 주면서 우유를 먹이지 않으면 아기들이 쉽게 죽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그 아이만이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생존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종류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서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장은 창조의 장입니다. 창세기 2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이렇게 해서 창조사역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18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아담은 완전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거기엔 테러도, 전쟁도, 질병도 없고 아름답고 평온한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신 것을 보면 사람에게 아름답고 평온한 환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세계는 지구촌처럼 가까워졌습니다. 서울-부산이 고속철도 때문에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어서 언제 어느 장소에서도 전화 통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지고, 손을 뻗어서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일이 메말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먼저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끼리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첫째가 되느냐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환영하지 않는 곳에 불을 내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현대 교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죽음 직전에 엄청난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아이디어를 주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것은 분명했습니다. 1)먼저 제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 2)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해라. 3)그리하면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감동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하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 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지상명령보다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가, 성도들끼리 싸우고 미워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감동은커녕 교회와 성도들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교회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고 싶은데 왜 사랑을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과 아담은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나서 하나된 것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아담과 하와, 인간과 자연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시 하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를 하나로 만드신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저지르는 죄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병들게 하는 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음란, 우상숭배, 탐욕, 후욕(목회자, 지도자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것), 술 취함,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충만케 하셔서 그 사랑으로 손을 뻗어 이웃에게 나누어주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손을 뻗어서 서로 사랑하는 성도,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서로 서로에게 손을 뻗어서 사랑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손을 뻗어서 자신들의 필요한 것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살펴보면 아주 작은 손을 뻗어서 먹을 것과 안전과 따뜻함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가 손을 뻗어 엄마를 잡고, 젖을 먹는 것을 보면, 젖이 주는 영양분보다 훨씬 더 귀한 평온과 따뜻함과 만족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이 땅에 태어나서 손을 뻗어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얻습니다. 그러다가 커가면서 깨닫는 것은 손을 뻗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도 손을 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요,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숙해갈수록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갖기 위해 손을 내밀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사랑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인도 마드리스에 있는 St. Thomas산지에 있는 한 기숙사에서 사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기에게 부드러운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유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팔에 안긴 아이는 얼마 전에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서 울고 있던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면서 우유를 먹입니까?” 사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 주면서 우유를 먹이지 않으면 아기들이 쉽게 죽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그 아이만이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생존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종류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서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장은 창조의 장입니다. 창세기 2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이렇게 해서 창조사역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18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아담은 완전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거기엔 테러도, 전쟁도, 질병도 없고 아름답고 평온한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신 것을 보면 사람에게 아름답고 평온한 환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세계는 지구촌처럼 가까워졌습니다. 서울-부산이 고속철도 때문에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어서 언제 어느 장소에서도 전화 통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지고, 손을 뻗어서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일이 메말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먼저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끼리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첫째가 되느냐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환영하지 않는 곳에 불을 내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현대 교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죽음 직전에 엄청난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아이디어를 주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것은 분명했습니다. 1)먼저 제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 2)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해라. 3)그리하면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감동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하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 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지상명령보다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가, 성도들끼리 싸우고 미워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감동은커녕 교회와 성도들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교회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고 싶은데 왜 사랑을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과 아담은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나서 하나된 것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아담과 하와, 인간과 자연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시 하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를 하나로 만드신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저지르는 죄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병들게 하는 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음란, 우상숭배, 탐욕, 후욕(목회자, 지도자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것), 술 취함,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충만케 하셔서 그 사랑으로 손을 뻗어 이웃에게 나누어주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손을 뻗어서 서로 사랑하는 성도,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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