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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은 이런 종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런 종을 원하십니다.
본문 - 마태복음 25장 14 - 30절

본문 - 마태복음 25장 14 - 30절(개역개정)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여러분! 자기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달란트로 충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설교하는 자는 무조건 벌을 받는다.”는 법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이 법을 어겨 1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되는데 그가 감옥살이 하는 동안 그 부인은 죽고 애들은 고아가 되었었습니다. 그는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고난 속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감옥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글을 써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으니 글을 써라.” 그래서 그가 엎드려서 기도하는 중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천국 가는 여정을 글로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천로역정]입니다.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기록하고 난 다음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오늘날까지도 천로역정은 굉장히 유명한 책인 것입니다.
   존 번연은 감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글을 쓰도록 그를 격려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격려를 받은 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준 달란트를 개발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손에서 복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한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종들의 재능대로 각자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떠납니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이 떠나자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깁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주인이 맡긴 돈을 감추어둡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께서 제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제가 열심히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의 보고를 받고 기쁘게 그를 칭찬합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에게 와서 보고합니다. “주인이시여, 주인께서 저에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제가 열심히 장� 聆颯윱求� 그래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주인이 말합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보고합니다. “주인님 당신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당신이 맡기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주인이 대답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 돈으로 장사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은행에 라도 맡기지 그렇게 했다면 원금에 이자도 받았을 텐데 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악하고 게으른 종의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고 그 종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아버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은 이런 종을 원하십니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자녀로서의 자부심, 자신감,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주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달란트를 받은 종들처럼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주님 앞에 인정 받는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말 그대로 비유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주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종들은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무장되어 야 할 신앙이 재림신앙입니다. 마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주님의 재림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신랑이 열 처녀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디 오기는 했지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와 함께 신랑이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가 본문의 달란트 비유인데 역시 타국에 갔던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통해서 주님의 재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는 다른 내용은 비유적으로 보여주지만 주님의 재림은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1절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재림신앙으로 무장되어야 고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인한 영광도 있지만 반드시 고난도 있기 때문에 재림신앙으로 무장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현재만, 지금만 바라보는 신앙으로는 고난과 핍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춘향이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몽룡이 장원급제하여 다시 자기를 찾아올 것을 믿었기 때문에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감옥에서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사람은 고난과 핍박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전 15:32에 의하면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맹수와 목숨을 건 싸움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고후 11:23 이하에 보면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로도 맞아 죽을 뻔하고 타고 가던 배가 세 번씩이나 파선 당하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등 수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고난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 인내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재림신앙입니다.
   딤후 4:7,8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피영민 목사님은 재림을 설교하면서 재림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재림입니다. 이때에 영적인 재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영적인 재림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신 몸 그대로 재림하십니다.
   둘째는, 가시적인 재림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계 1:7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기에서 각 사람의 눈은 모든 사람의 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셋째는, 갑작스런 재림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수님은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는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누가 되었든지 주님의 재림의 일시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단인 줄 알고 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는,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지극히 초라했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지극히 영광스럽습니다. 구름 타시고 천사들과 함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다섯째는, 단 한 번의 재림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7년 대환란 후에 다시 이 땅에 계속해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만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러한 교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직 한번뿐입니다. 더 이상의 재림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재림에 관한 날은 언제나 단수이지 복수로 사용된 단어는 없습니다. 재림의 날은 오직 그날입니다. 단 한 번의 재림에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영생의 축복과 영벌의 심판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한 번의 재림의 순간에 찬란하게 변화된 부활의 몸을 입고서 영광스러운 축복의 문에 들어서는 구원받은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타!

2. 예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그 결산 결과 맡겨진 달란트를 잘 활용한 종들은 칭찬을 받고 상을 받습니다. 반대로 맡겨진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감추어두었던 종은 책망을 받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갑니다.
   마 25:31 이하에 보면 재림하시는 주님이 심판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민족을 주님 앞에 모읍니다. 그리고 둘로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한쪽은 양이라고 표현했고 다른 쪽은 염소라고 표현했습니다. 양 편에 있는 자들은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 즉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염소 편에 선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와 마귀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미 영생이 주어졌고 천국행이 결정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에게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받는 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받을 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상까지 받을 생각을 하느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받는 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계 22:12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행한 대로 상을 주시겠다는데 우리가 그 상에 무관심하면 되겠습니까?
   천국에는 상이 많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 6장에 보면 구제를 하면 상이 있습니다. 또 기도를 해도 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에도 상이 따릅니다. 마 10장에 보면 선지자의 상도 있고 의인의 상도 있습니다. 또 주의 종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을 받습니다. 골 3:23,24에 보면 모든 일에 상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번 노회 체육대회에는 총회적으로 혼란스러운 관계로 몇몇 교회만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소수의 교회가 체육대회를 하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참석한 분들 모두가 푸짐한 경품과 상품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수건을 받았고, 모든 사람이 경품 추첨을 통해서 경품을 받아서 푸짐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 중에서도 더 많은 상품을 받았습니다. 제 아내는 축구 MVP로 상품을 받았고, 발야구선수로 상품을 받았고, 또 피구 선수로 상품을 받았습니다. 저도 몇 개를 받았습니다. 둘이 받은 것을 모아보니 박스로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저희 가정뿐만 아니라 김현채 강도사 가정도 박스로 하나 가득 상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떤 사람은 풍성한 상을 받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기는 갔지만 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잘 살아서 영원한 천국에서 넘치는 상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길게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어렵다고 앞으로도 쭉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앞으로도 쭉 잘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땅에서 잘 산다고 천국 가서도 상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어렵다고 천국의 상도 별 것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스타처럼 살아도 천국가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천국에서는 스타가 되어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만 보지 말고 미래를 보기를 바랍니다. 현세만 보지 말고 천국생활 까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지금 부족하고 지금 힘들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산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크고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착한 종을 원하십니다.
   21절과 23절에 보면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착한 종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인이 볼 때 착한 종은 어떤 종일까요? 우리는 흔히 순한 사람, 얼굴이 밝은 사람을 착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착하다고 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종이 착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착한 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면서 그 종들이 달란트를 잘 활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고를 받아보니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의 뜻대로 달란트를 잘 활용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착한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악한 종은 어떤 종일까요?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악한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왜 악한 종이 되었을까요? 그가 달란트를 가지고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달란트를 가지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그 달란트로 노름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에게 ‘악한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맡기면서 그 달란트를 활용하기를 원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뜻대로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착한 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 주인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착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에 바보 같은 종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읍내에 다녀와야 겠다”,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다음 날 주인이 일어나서 심부름을 시키려고 종을 찾아보니 집에 없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종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화가 나서 종에게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내가 어제 오늘은 읍내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말하지 않았았느냐!”, “예, 주인님, 주인님이 어제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지금 막 읍내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미련한 종은 주인이 무엇 때문에 읍내에 다녀오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무조건 읍내에 다녀온 것입니다. 이 바보 같은 종은 주인에게 매를 맞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주인 되시는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착한 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착한 종이 되기를 원한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뜻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    눅 12장에 보면 주님의 재림을 보여주는 비유가 나옵니다. 재림하신 주님은 악한 종을 엄히 때리고 벌을 내리십니다. 눅 12:47에 보면 악한 종이 많이 맞고 벌을 받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착한 종이 되어 주님께로부터 칭찬과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면 악한 종이 되어 주인에게 매를 맞고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복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보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행 13:36에 보면 다윗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우리들은 날마다 계속해서 선택하고 또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선택은 삶과 생활과 사역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잘못된 선택은 삶과 생활과 사역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실과를 선택했다면 그들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에덴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나무 실과 대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그들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사망 가운데 처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다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내 뜻이나 세상이나 마귀의 뜻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사망의 쓴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셔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은 충성된 종을 원하십니다.
   21절과 23절에 보면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충성된 종들이었습니다.
   충성의 반대는 게으름입니다. 26절에 보면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합니다. 착함의 반대 개념이 악함입니다. 그리고 충성의 반대 개념으로 게으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성은 부지런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신일 목사님은 ‘충성은 다 짜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은퇴하여 농촌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젖소를 사서 기르는 한 도시인의 실패담입니다. 이 사람은 소를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젖소의 젖이 마르자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웃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농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젖소의 젖이 마른 이유를 알고 놀랐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그날 필요한 만큼의 젖만을 짰습니다. 한 병이 필요하면 한 병만 짜 마셨고 별로 우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젖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젖을 마르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젖소는 젖을 짤 수 있는 만큼 최대한도로 짜내야 계속 더 많은 신선한 젖을 생산합니다. 만약 젖을 최대한 자지 않으면 젖소의 젖은 점점 마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충성은 마치 그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다 짜내는 것, 다 쓰는 것이 충성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 2:10에서는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 옛날 젊을 때, 기운 좋았을 때 ‘이 다음에 늙어서 힘드니까’하면서 아꼈던 힘 지금 쓰십니까? 젊을 때 힘을 아낀다고 늙어서 힘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충성에 관한 교훈은 ‘적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21절에 보니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성실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일을 소홀이 하면서 큰 일만 도모하려고 합니다. 이게 우리들의 보통 사람들의 실수입니다.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반복해서 성실하게 훈련하고 또 훈련할 때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아주 뛰어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주 성실하지 않으면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10년 후 20년 후 지금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을 소유하려면 지금 아주 작은 일들에 충성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나오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잠 22:29 말씀대로 왕 앞에도 서는 전문가들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제는 이 부분을 자주 강조하고 공예배시간에 모든 성도들이 듣는데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계적인 리더, 세계적인 전문가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고 세계적인 리더, 세계적인 전문가의 꿈을 꾸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내게 맡겨진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래가 밝고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역에 충성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습니다. 장로든지 안수집사든지 권사든지 서리집사든지 구역장이든지 교사든지 찬양단원이든지 청소당번이든지 식사당번이든지 차량봉사든지 일단 하나님이 주신 사역에 충성하십시오.
   자기가 맡은 일을 목사 보기에도 부끄럽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부끄러워서 충성하고 있다고 말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팽개치는데 하나님께서 크고 귀하게 복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끄럽게 살고 있으면 복달라고 기도하기도 미안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복을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복은 성실한 자를 찾아가고 불성실한 자를 떠나갑니다. 제가 전에 소개한 분인데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이름은 임채식입니다. 이분은 성실과 근면으로 성공한 분입니다. 이분이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5세에 포항제철에 들어가 한 달에 3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일만 하지 않고 자기 일을 다 기록하며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그것을 다 기록해 놓은 노트가 100권이 넘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한 번도 7시 이후에 출근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니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36개 부분에 특허를 내어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산율을 높이고 사고를 줄였습니다. 그래서 광양제철의 공장장이 되었습니다. 3만 원의 월급을 받고 들어간 사람이 연봉 1억 원을 받는 간부가 되고 빛나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충성됨을 소유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자기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2. 예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3. 예수님은 착한 종을 원하십니다.
   4. 예수님은 충성된 종을 원하십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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