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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목장교회

[스크랩] 리더십과 지혜

리더십과 지혜

잠 8:4-6

약 3:15-18

잠언에 따르면 지혜롭다는 것은 곧 식별력이 있고 겸손하며 통찰력이 있고 공정하며 올바르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서, 리더들에게서 이런 자질이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는가! 훌륭한 리더십에 지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질이다.

리더십의 핵심, 지혜!

리더십과 관련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들 가운데 ‘열정’과 ‘비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양보할 수 없고 흔히 무시하기 쉬운, 탁월한 리더십에는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라는 것이다.

리더는 뜨거운 열정으로 교인을 거의 기절하다시피 만들 수 있고, 그리고 열정을 교인들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교인들을 지혜에 의해 주의 깊게 인도하지 않는다면, 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도 정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또한 리더가 제아무리 위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가능한 일들에 관해 그림을 그려주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 비전이 지혜에 의해 규정되고 설정된 것이 아니라면 지도자는 교인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모르나 반드시 가야 할 길로 인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리더는 최선의 상황 가운데서 ‘위로부터 난 지혜’(약 3:17)에 의지해 바른 방향을 주시하며, 비전을 얻고, 적당한 보조로 열정을 구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리더십에 대한 논의에서 지혜가 상대적으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는 그다지 매력적이고 멋진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라고 하면 얼굴이 쭈글쭈글하게 늙은 노인들의 특별한 자산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오해 말고도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우리는 지혜를 극소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보물로, 보통 사람들이 필요할 때 겨우 빌려 쓸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지혜자들을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말씀하지 않으며, 지혜 자체를 진귀한 보석으로 간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지혜는 평상시를 위한 하나님의 통상적인 은사이며 좋은 리더십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이다.

영적인 리더는 지혜를 소중히 간직하는 지도자이다. 여호수아가 그러하였다. 그 위에 ‘지혜의 영’이 임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하는 후계자로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솔로몬이 한 말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말은, 백성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이 백성을 인도하게) 하옵소서.”

잠언 8장에 의하면, 지혜는 그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건 속삭임이나 은밀한 말이 아니라, 외침이요 부름이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잠 8:4~6).

솔로몬의 잠언에 따르면, 지혜롭다는 것은 곧 식별력이 있고 겸손하며 통찰력이 있고 공정하며 올바르다는 것이다.

분별력은 주요한 것과 사소한 것의 차이를 발견하는 데 필요하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어떤 논쟁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통찰력은 바른 것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예견하는 데 필요하다. 공정함과 올바름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

인간 본성은 자연적으로 지혜에 굴복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한 적이 없는가? 우리는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을 놓고 기타 모든 시안을 적용해 본다. 그런 연후에야 방 안의 지혜로운 사람이 일어나 식별력과 겸손, 통찰력, 공정함과 올바름으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이것은 가장 쉬운 과정, 혹은 가장 환상적인 과정은 아닐지 모르나 가장 좋은 것임이 분명하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한다. 이것은 ‘요란과 모든 악한 일’만 낳을 수 있는 시기와 다툼의 반대 요소이다.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것은 단순히 영리한 것 이상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지성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바보가 될 수 있다. 지혜는 선한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또한 올바른 것을 의미한다. 리더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때 눈이 열린 사람들은 동의의 표시로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들은 그 결정 배후에서 관대하고 이타적이며 공정하고 올바른 태도를 엿보기 때문이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신뢰할 근거를 제공해 준다.

지혜로운 리더의 기준

오늘날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지혜로운 리더를 찾느냐’라는 것이다. 우리가 백발(白髮)만을 찾아야 한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일 것이다. 나이만이 지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늙을수록 망령이 든다”는 속담을 기억하라. 교회에는 노련한 리더들과 나란히 일할 젊은 리더들도 필요하다. 지혜를 가진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1. 이 사람은 관용과 긍휼, 그리고 용서의 능력을 통해 은혜의 증거를 보이는가?

지혜로운 영적 리더들은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목도할 수 있다. 지혜로운 영적 리더라면 이런 은혜의 흐름을 하나님이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써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시는 삶의 근본적 요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지혜는 우리에게 그 흐름을 따라 가라고 명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프로그램, 인사, 예산 등에 관해 내리는 모든 결정은 이 위대한 신적 은혜의 역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문에 야고보는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한다. 이런 시기심과 이기적 야망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태도요 동기이다. 때로는 야심적인 사람들이 단지 야망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리더십의 자리에 임명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남들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도 과감하게 들어간다. 그런 경우 리더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욱 기대하기 때문에 종종 지혜가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다.

2.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충고와 조언을 얻기 위해 찾아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지혜로운 말은 그 시대의 이슈보다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이런 사람들의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 심는 씨앗은 오랜 시간 후에 열매를 맺는다.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남에게 감명을 주기보다 하나님을 아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사람들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명한 충고를 필요로 한다. 지혜로운 충고자는 젊은이들과 노인들, 미혼자와 기혼자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에게도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도 여러 차례 이 충고에 의존하였다. 교회에서 모종의 전략적 영향을 미칠 중요한 새 위원회가 결성될 때 그런 현명한 충고자가 그러한 토론의 자리에 초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람은 토론의 수준을 향상시킨다. 이는 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가슴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 이 사람은 일관된 삶을 영위하는가?

지혜가 있는 곳에 안정이 있다. 제발 ‘일관된’ 혹은 ‘안정된’이라는 말을 ‘진부하거나 평범한’ 것으로 이해하지 말라. 이는 어떤 강렬함이나 기호(嗜好)가 결여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 삶과 공적인 삶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에서 일관되고 안정된 리더들이 필요하다. 인간됨과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고결함과 건전함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최신 유행에 빨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신기한 아이디어에 열광할 수도 있으나, 무언가가 일년 혹은 십 년의 유효기간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항구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 시간이 말해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안다.

지혜는 사람들이 이 일에 힘을 쏟다가 갑자기 저 일에 힘을 쏟으며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도와 준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의 다리를 반쯤 완공하고 다른 다리를 착공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좇는 자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4. 이 사람은 사고에 있어서 합리적인 폭을 보이는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잘 알며 거기에 강도 높게 헌신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양한 견해들을 이해할 수 있기 원하며 개방적인 태도로 자기 생각을 융통성 있게 바꿀 줄도 안다. 그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만큼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게 무엇이고 사소한 이슈들이 무언가를 잘 안다. 예배와 전도, 청소년 사역, 시설, 기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토론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문제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차이점을 안다. 그렇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아는가? 이것도 역시 영적인 인격에서 발생한다. 지혜는 우리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이기적으로 진척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에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하루의 분주한 일들 때문에 이리저리 내몰리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평생의 학습자가 되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 지혜는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자신이 어리석음에 얼마나 자주 굴복당하는가를 흔쾌히 인정할 것이다.

5. 이 사람은 사고의 깊이를 보이는가?

지혜로운 리더들은 이슈의 저변을 볼 줄 안다. 그들은 원칙에 입각해 결정을 내리기 원한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정신적, 영적 노력이 요구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프로그램 결정의 배후에는 ‘왜?’가 존재하며(원칙이 있다), 모든 원칙의 배후에도 ‘왜?’라는 물음이 존재한다(이것은 가치의 문제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왜 배후의 왜이다. 그리고 가치관은 지혜를 사용할 때 개발될 수 있다.

6.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공명 정대한 사람으로 보는가?

리더들은 불편 부당해야 한다. 리더의 문제 판단이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판단에 신뢰감을 보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하지만 그건 공평치 못해!”라고 재빨리 말할 줄 안다. 정의에 대한 감각이 생존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필요로 하고 이것에 의존한다. 교회는 공평과 정의의 모델을 찾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7. 이 사람은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삶에 관해 모종의 교훈을 체득했는가?

많은 지혜는 고통에서 탄생한다. 고통은 본질적인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고통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 고통은 영혼에 관한 문제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삶의 참된 토대를 발견하도록 도와 준다. “슬플수록 지혜롭다”는 속담을 기억하라. 전도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3~4). 이것은 음울한 삶을 살라는 우울한 권유가 아니다. 이는 고난의 때가 찾아올 때 이를 정직하게 맞이하고 슬픔을 고결하게 통과하며 그 속에서 보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 나오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 리더십에 있어서 그런 지혜는 언젠가 황금같이 될 것이다.

위로부터 온 선물

‘나를 포함해 우리 교회 안에 이 모든 기준을 만족시킬 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당신 홀로 무자격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라. 이런 문제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런 기준들은 단지 표식일 뿐이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리더들에게서 발견하는 지혜는 모두 어떤 진보의 과정이다. 다만 한가지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잠언에서 ‘어리석은 자들’로 규정된 사람들에게 리더십의 역할을 결코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느 사람이 통찰력이 없거나 자기 중심적이며 자비가 없거나 편파적이라면 그에게 리더의 역할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친절한 행위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위원회 혹은 건축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자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은 그 사람이 가장 정열적이고 열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지혜를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직책을 맡아야 한다. 리더로 추천을 받은 사람이 비평을 수용할 줄 모른다면,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 같다면, 계속해서 위기와 혼돈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면 경종을 울려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

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지혜에서 어느 일각을 늘 점유하고 있는 인간 집단,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혜가 어느 때든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젊은이들 가운데서라도 ‘위로부터 난 지혜’를 좋아하는 리더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사역은 최선의 기회를 얻어 양질의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서울씨티교회
글쓴이 : 최경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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