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석기현목사

[스크랩] 평화시대를 사는 값(Ⅰ) [요한복음 9장 1-7절]

평화시대를 사는 값(Ⅰ) [요한복음 9장 1-7절]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9장에 와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밝게 해 주심으로 빛의 사역을 입증하셨습니다.
 

Ⅰ. 예수님은 자신의 성역 어간을 가리켜 때가 아직 낮이라고 하였습니다(요 9:4).

이 말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표적의 역사(役事)를 나타내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 길 가시는 중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요 9:1)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를 좇는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통속적 관념 속에는 사람이 만난 불치의 질병은 모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천벌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레 16:15-16, 신 28:61, 대하 21:14-15).

?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만난 그러한 불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요 11:4)을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르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 9:6) 이르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고 하였습니다(요 9:7).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던 주님은 소경 된 자를 보게 하시는 기적을 통하여 그 빛의 사역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성역 어간을 「때가 아직 낮」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어간에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 9:4)고 하였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고 하였습니다.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Ⅱ. 저는 ‘평화시대의 값을 해야 한다.’는 놀라운 비전(vision)을 받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평화시대’란 극히 제한적인 뜻입니다. 이 세계가 평화시대라는 말이 아니고, 다만 내 개인의 생존어간을 두고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 ‘평화시대’라는 말의 내용은 ‘나는 일찍 죽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세상 생존 어간에는 예수 증거 때문에 박해나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최후의 죽음 같은 순교를 겪지 않고, 평안히 자유롭게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한」(계 8:1) 어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 저는 예수를 믿고 핍박을 받으면서 소명(召命)을 받아,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제의 신사참배 박해 중에 옥중에서 살아남은 출옥지도자들 밑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고(故) 한상동 목사님, 황철도 목사님, 박인순 전도사님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진리파수로 항쟁했던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 고려신학교가 바로 그러한 순교신앙의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이룩된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나도 일찍이 죽을 것’이라고 하는 조사감(早死感)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일본 천조대신과 싸우다가 죽었는데, 내 시대는 북쪽에 있는 하나님의 대적인 김일성과 김정일 도당의 무신론적 공산주의 재침 속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일찍(?)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도사 시절이나 초기 목사 사역 중에는 항상 저의 설교가 그런 죽음과 관계된 순교적 신앙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서울로 개척을 하러 올라왔고(1973년), 1978년도에 처음으로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1979년도에 미국을 가게 되고, 사전에 계획한 대로 구라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1979년도의 구라파 여행은 저의 목회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만 제 인생에 있어 대단한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 여행 중 제 인생관이나 목회관(사역관)이 완전히 바꾸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구라파 여행단은 미국 사람 38명과 또 미국 시민권을 가진 친구 목사 한 분과 제가 포함된 40명이었습니다. 미국 친구 목사의 주선으로 제가 거기에 함께 하게 된 셈이었는데, 물론 그 여행은 저에게 있어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여행 코스는 영국을 위시하여 북 구라파의 몇 나라, 그리고 프랑스, 이스라엘 코스였습니다. 그때 저는 미국의 친구 목사와 같은 호텔방을 사용하면서 밤마다 두 사람이 목회서신을 공부하기로 하고 그렇게 시행하였습니다. 찬송가를 소지하지 않고 밤마다 외워서 찬송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환난 날에 투옥되었을 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렸을 때, 얼마만큼이나 찬송을 외워 부를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잠기면서 계속된 여행이 화란(네덜란드)에 이르렀습니다. 전날처럼 여행은 진행되었고, 우리 두 사람은 호텔방에서 디모데전서를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깊이 잠든 침상에서 놀라운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원태야! 너는 안 죽는다. 너는 죽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서 설교를 하다가 나에게 올 것이다.”라고 하는 기상천외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나를 잠자리에서 벌떡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는 너무 크게 흥분하였습니다. 새벽까지 자지 못하고 앉아서 그 소리를 씹으며 반복하여 생각하는 가운데 저에게는 놀라운 설렘이 일어났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나는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설교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의 그 큰 음성이 저의 앞날을 빛나게 보장해 준다는 확신 속에서 정말 흥분된 상태로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온 또 한 단계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 내가 죽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서 설교할 수 있다면 내 시대는 평화시대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나 기근이나 박해가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복음을 전하는 평화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떠오른 그 생각에 대한 저 스스로의 대답이 ‘그렇다면 나는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에 이르렀습니다. ‘그 어떤 경우일지라도 원수에게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죽는 것에 비하면,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람찬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와 친구 목사는 이스라엘에서 미국 사람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공항에서 그 친구 목사와 헤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싱가포르 에어라인 편으로 파리에서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대만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귀국하는 정해진 코스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돌아오는 비행기 여정은 ‘이제 나는 죽지 않고 평화시대를 살 것이다! 돌아가서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해야지. 나는 안 죽는다, 안 죽어!…’라고 하는 그 어떤 환희로 꽉 차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기름을 넣은 비행기가 싱가포르로 향하던 파란 하늘 상공에서였습니다. 저는 문득 내 앞에 있는 기내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 화면에 너무나도 색깔이 분명한 지구의(地球儀)가 돌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선전하는 광고물인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는 그 장면은 너무 멋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싱가포르의 예약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그 비행기에 탑승하여 저를 실은 비행기가 대만으로 향하던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 대만으로 오던 상공의 기내에서 전날 보았던 돌고 있는 지구의가 나타난 텔레비전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날과 꼭 같이 텔레비전 광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장면은 너무 뚜렷하고 기분 좋게 느껴졌습니다.  

저를 실은 비행기가 대만에서 다시 기름을 넣고 한국으로 향하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집과 교회가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비행기의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 시간, 또 기내의 텔레비전 안에 지구의가 돌고 있는 선명한 색채의 광고(?)가 세 번째로 또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된 텔레비전 속에 돌고 있는 그 밝은 색깔의 지구의! 그것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저는 ‘아, 세계선교! 세계선교! 세계선교! 이것이 바로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정말 새로운 충격 속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사명의 진로를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방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저의 활동이나 사고의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진해에서 고등학교를 공부하고, 부산에서 대학과 신학교를 공부한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아직도 저의 깨달음은 선교니, 세계니…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영적 유아기였습니다. 있었다고 하면 S.F.C. 운동에 열심을 내는 것, 목사 되는 공부에 열심을 내는 것, 목사가 되어서도 고려파 신앙의 우위성(?)에 자부심을 갖는 것 정도였습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신학교에서나 다른 모임에서 선교에 대한 지식이나 사명을 일깨워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김일성 공산당과 싸우다가 일찍 죽을 것이라고 하는 조사감(早死感)에 사로잡혀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저를 하나님은 한국 밖으로 불러내시고, 여행 중에 “원태야! 너는 안 죽는다! 너는 죽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서 설교를 하다가 나에게 올 것이다!”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서 설교할 수 있다면, 내(개인) 시대는 평화시대가 아닌가!’라고 하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또한 그리고 비행기 속에서 세 번이나 반복된 ‘텔레비전 속의 돌고 있는 지구의’의 장면을 통하여,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는 내용은 바로 세계선교’라고 하는 비전(vision)으로 저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지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종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가 1979년 11월 하순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둔 주간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각자 각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자신이 쓰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우리 개인 개인에게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개인의 경우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입니다. 더 나아가 그 일할 수 없는 밤은 극한 환난의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할 수 있는 때’, 곧 ‘낮’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누구에게나 ‘일할 수 있는 낮’, 곧 ‘평화시대’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경향교회는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다하는 교회로, 그 존재적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다음 주일에 계속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