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상훈목사

[스크랩] 생각하는 마음! (사무엘하 23:13~17)

생각하는 마음! (사무엘하 23:13~17) 
   
삼하 23:13-17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어느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남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눈썹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그린 눈썹 때문에 마음은 늘 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사랑하는 남성이 생겼습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혹시라도 이 눈썹이 그린 눈썹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나를 싫어서 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늘 이런 걱정이 그의 마음 밑바닥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일 년, 이 년, 삼 년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한 삼 년쯤 되었을 때, 그만 그 가정에 예기치 않았던 불행이 닥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입니다. 완전히 알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제일 밑바닥의 인생부터 다시금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부부는 제일 먼저 연탄을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싣고서 남편은 앞에서 당기고, 아내는 뒤에서 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연탄을 배달하는데 그 날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그래서 연탄의 시커먼 잿가루가 뒤로 계속 날아와 아내의 얼굴이 그만 연탄재로 온통 시커멓게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이따금씩 잿가루가 눈 속에 들어와서 눈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마음대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물을 닦다가 그만 화장한 눈썹이 지워지기라도 하면 그 동안 남편 모르게 숨겨왔던 비밀이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고통 가운데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남편이 리어커를 잠시 멈추고서는 아내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목에 걸치고 있는 수건을 벗어서 그것으로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탄로가 났구나!"
이런 불안한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자기의 수건으로 계속해서 아내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습니다. 눈물도 다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 아내의 눈썹 주위만큼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남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생각해서 일부러 그 동안 모르는 척 해왔던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다 닦아주고 난 뒤에 씽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얼굴이 이제는 예전처럼 예뻐졌구료!"
그러면서 남편은 태연하게 리어카 앞으로 가서 다시금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 아내는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가슴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마음,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 그 가정은 절로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절로 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는 그만큼 밝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급선무는 사울 왕 때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금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이끌고 진두 지휘하면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의 고향 땅이었던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을 회복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진두에서 지휘를 했기 때문에 무척 목이 말랐을 것입니다. 때는 곡식을 벨 때라고 했습니다. 더위가 아주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갈증을 느꼈겠습니까? 그 때 다윗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향 땅, 곧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 양을 치면서 자기가 직접 그 물을 길어, 자기도 마시고 또 치던 양무리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 때의 시원한 물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고향 땅, 베들레헴은 지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방인에게 고향 땅이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속이 상한 나머지 탄식 가운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그 소리를 들은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세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어이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들은 적군들과 좌충우돌하면서 싸우는 가운데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부하들이 건네주는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차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물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그들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하들이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을 생각하면서, 두 번 다시 다윗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가는 곳마다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욱더 강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편의상 세 대지로 나누어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마음, 생각하는 마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지금 다윗의 진영에 물이 없어서 다윗이 그렇게 탄식한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고향 베들레헴이 이방인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상한 마음으로 그러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그들이 다윗에게 잘 보여서 높은 벼슬이라도 차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까? 그들은 왕을 위하는 길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이 편해야 나라가 편하고 왕이 살아야 나라가 사니까, 왕을 위하는 일은 곧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나 개인의 유익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먼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5년 전 1945년 8월 15일,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때 남한 땅에서는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정부수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땅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정부수립을 준비하면서 최측근에 있는 한 사람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은밀한 가운데 그를 평양으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해외에서 40년을 살아가는 동안에, 조국 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일제치하에서 고통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오. 그러나 평양 산정현 교회 장로인 고당 조만식 선생이 우리 민족의 앞장을 서서 우리 동포들을 이끌고 일제와 맞붙어 싸운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내가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소. 이제는 우리가 해방을 맞이해서 우리 힘으로 속히 정부를 수립해야 되니까, 민족의 지도자인 고당 조만식 선생을 서울로 모시고 오시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서 일해야 되지 않겠오?"
이승만 박사의 보냄을 받은 사람이 평양에 있는 고당 선생을 비밀히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는 고당 선생을 서울로 모셔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고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나를 데리러 와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오. 그러나 지금 이 북녘 땅에는 공산정권하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가 일천 만명이 살고 있오! 어떻게 그들을 내버려 두고서 나 혼자 편하겠다고 서울로 갈 수 있겠소. 안될 말이오. 나는 갈 수가 없소. 그리고 내가 여기에 남아있어야 공산당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를 못한다오."
고당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걸쳐서 그를 구출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당 선생은 그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럴 수 없소. 나는 내 동포들을 이곳에 남겨 두고 나 혼자 서울로 갈 수 없소. 나는 살아도 이곳에서 내 동포들과 더불어 살고, 죽어도 이곳에서 내 동포들과 함께 죽을 것이오."
고당 선생은 자기 개인을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6·25동란이 터졌습니다. 계속해서 밀리던 우리 국군들이 북진을 했습니다. 평양을 탈환했을 때 평양에서 철수하던 인민군들이 평소에 자기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고당 선생을 학살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당 선생은 자기의 말대로 그곳에서 동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다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을 내가 언제나 마셔볼꼬? 저 평양의 아름다운 대동강 물을 내가 언제나 자유롭게 바라볼꼬?"
북녘 땅을 그리워하면서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 옛날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루에 세 차례씩 잊지 않고 조국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 압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얼마나 어수선합니까? 의료계 폐업사태, 각종 노조의 파업사태, 현대사태 등 무슨 사태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병원도 문닫고, 호텔도 문닫고, 회사도 문닫고 다 문닫게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 국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정신을 차리고, 나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아울러 무분별하게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값진 달러를 낭비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자기 혼자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세 용사처럼 충성스럽게 왕을 잘 섬기는 어진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다윗은 성군이었습니다. 어진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써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자기 때문에 세 부하가 피를 흘리면서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는 그 물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다윗은 두 번 다시 자기 때문에 부하들을 위태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생각해 주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될 줄 압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상대방을 생각해 주지 않고, 그저 나만 생각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아껴주고 잘 되도록 이끌어 줍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해 주고 섬겨줍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긴 바지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내일 그 바지를 입고서 어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사온 바지를 입어보니까 아무래도 너무 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걸쳐놓고 아내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여보! 내일 아침 일찍 내가 이 옷을 입고 가야되는데, 아무래도 조금 긴 것 같으니까 당신이 밑단을 5cm정도만 줄여주구료."
그 뒤 아내는 설거지를 마치고 옷을 수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자꾸 칭얼거립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아기를 재워두고 나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에 들어가 아기를 옆에 누이고 재웠습니다. 아내는 아기를 재우다 자신도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여동생인 시누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니가 살림을 하랴, 또 아기를 키우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겠는가? 언니를 깨우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하지."
그러면서 오빠의 옷을 가져다가 5cm를 자르고, 밑단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림질까지 정성껏해서 옷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깊은 밤중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잠시 일어났습니다. 거실을 지나가다 보니까 옷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쯧쯧, 젊은 아이가 얼마나 고단했으면 저렇게 정신없이 잘까? 그래 깨우지 말고 그냥 두자. 내가 하지 뭐."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또 5cm를 잘랐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던 아기 엄마는 놀라서 깨어보니 이미 새벽 5시입니다. 정신없이 나와서 5cm를 또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몇 cm를 잘랐습니까? 15cm를 자른 것입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어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바지가 깡총해졌습니다. 반바지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바지를 보며 왜 이렇게 많이 잘랐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여동생이 5cm를 자르고, 또 어머니가 5cm를 자르고, 아내도 5cm를 자른 것입니다. 비록 바지는 짧아져서 볼 모양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래, 바지의 길이가 짧은 것이 무슨 대수냐? 우리 가족이 이만큼 서로 생각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는데 내가 더 부러울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서 그는 자랑하는 마음으로 그 짧아진 바지를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터가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각 부서도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세 용사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왔습니다. 블레셋 군사들과 좌충우돌하면서 물을 길어오는 그들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도저히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물이 아니고 저들의 피입니다. 이 소중한 피를 제가 어찌 마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 영광, 이 충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그 물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물을 땅에 헛되이 쏟아 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쏟아 부어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이 없으셔서, 목이 타셔서 그 물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만큼 생각하는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나 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삼하7:1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모든 대적을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누구를 생각했습니까?
"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백양목 좋은 궁에서 평안히 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휘장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그 때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형통할 때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곤고하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오, 하나님이여! 어느 때 까지 입니까? 나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나이다. 내가 주만 의지하나이다. 그러하오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
다윗은 형통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했고, 곤고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부어드려야 할 우리의 가장 귀중한 물은 무엇입니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미련없이 부어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께 충성해야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충성하셔야 됩니까? 당연히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충성해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귀중한 것을 드리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아시고 충성스럽게 내가 써야 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셔야 되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충성하고,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몇 일 전에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어떤 젊은 부인이 신문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을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남편은 법관입니다. 그런데 제 남편이 동료법관들과 더불어서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어떤 단란주점에서 술과 향연으로 접대를 받았습니다. 사회의 불의를 심판해야 할 법관이 불의한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그가 법대로 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법관들이 타락하면 이 사회는 갈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 저는 제 남편을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남편도 내일 책임을 느끼고서 사직서를 내고 법관임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 기자는 통화를 끝내놓고 나서 확인을 하기 위해 그 분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아내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 것을 저는 마음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관으로서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통감하고서 저는 내일 사직서를 내고 사법부를 떠날 예정입니다."
그 부인은 믿음이 독실한 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들 두 부부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기 위해서 뭇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법관의 직분까지도 아낌없이 하나님 앞에 쏟아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부부가 이 땅에 있는 한 이 나라는 더 이상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복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회복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빛이 큰 어두움을 물리치는 법입니다. 작은 소금이 큰 부패를 방지하는 법입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십시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주는 마음,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어려움이 물러가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변의 사회가 좀 더 밝고 아름다운 사회로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