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8:1-1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루는 어떤 성도님이 자기 교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푸념 섞인 하소연을 했습니다. "목사님,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없을까요? 아시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그런 곳으로 이사가서 살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꼭 한 군데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공동묘지입니다. 그곳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더 이상 삶의 고통이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인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환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으레 우리는 시련이 있을 줄 알고 살아가야 될 줄 압니다. 여러분, 문둥병이 왜 그렇게 무서운 병입니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펄펄 끓는 주전자에 손을 대어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손을 새빨갛게 데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둥병입니다. 심지어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뚝뚝 떨어져 나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몸의 감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는 자체가 어떻게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요, 축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아픔을 느끼니까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우리는 히스기야의 삶을 통해서 그가 어려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시련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도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사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 뒤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도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은 이것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서 너무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벗겨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십자가를 그대로 지고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응답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족한 은혜,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자고하지 못하도록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에 바울은 더 이상 육체의 가시가 괴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서 강물을 노저어 갑니다. 그런데 앞에 보니까 큰 바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데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강물을 계속해서 노저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바위들을 깨뜨려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그 방법을 쓰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위들은 그대로 두고서 강물이 넘쳐나게 하는 것입니다. 강물이 철철 넘쳐 흐르면 바위는 그대로 있지만 배는 그 바위들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경우에 그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후자와 똑같은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은혜의 동산 겟세마네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가룟 유다가 죽음의 사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온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던 베드로는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혈기를 부렸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위기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밤새워 기도하신 예수님은 은혜로 충만하셨습니다. 그 위기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기요, 그 위기 속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위기를 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평안한 마음으로 위기를 받아들일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족한 은혜,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능히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은혜로운 동산 겟세마네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면 종종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곳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말씀과 기도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분명 겟세마네 동산은 은혜로운 장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 동산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줍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위기는 다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정에도 어김없이 위기는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일터에도 위기는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위기라고 하면 어두운 경우만 생각을 합니다. 사업에서 실패를 했다든지, 중병에 걸렸다든지, 또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든지, 이런 경우에만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위기는 위기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경우뿐만 아니고 밝은 경우에도 얼마든지 위기는 우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는 사탄이 자기의 졸개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사탄은 먼저 자기 졸개들로 하여금 그 동안에 한 일들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첫번째 졸개가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네, 저는 한 무리의 장사꾼들이 낙타를 타고서 사막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들이 낙타에서 내려올 때를 기다렸다가 무서운 전갈들을 보내어서 물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사람들의 시체가 사막 위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탄은 화를 벌컥 냈습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지금 그 사람들의 영혼이 어디에 가있어? 천국으로 다 가버리고 지옥으로는 한 명도 안왔잖아!" 그러면서 역정을 내었습니다. 눈치를 살피고 있던 두번째 졸개가 또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저는 한 무리의 기독교인들이 배를 타고서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섬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에 큰 폭풍이 일게 했습니다. 배를 뒤집어버렸습니다. 결국 그 배에 타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탐탁치 못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쓸데없는 일이야! 그 사람들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오히려 큰 상을 받았잖아?" 가만히 눈치를 살피고 있던 세번째 졸개는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저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을 공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사람만 선택했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한 사람만을 몇 달 동안 집요하게 공략했습니다. 결국은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그 사람이 예배시간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사탄이 무릎을 탁 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했어! 그렇게 하면 돼.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방법이야!" 그러면서 만족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시간에 자꾸 졸리십니까? 정신이 집중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까? "이것 참, 내 신앙에 위기가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갈에 물려야만 위기입니까? 우리가 타고 가던 배가 뒤집혀 져야만 위기입니까? 내가 나의 신앙을 떨어뜨리고, 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상황에 처했으면 그것이 바로 신앙적인 위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 열심이 생깁니까?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열심이 더 생깁니까? 평안할 때는 기도하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성전에 올라와서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일이 터지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안터지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따금씩 건강 주셔서 감사헌금을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건강할 때 감사헌금을 드립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 죽게 되었다가 살아났을 때 드립니까? 보통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을 때, 그 때야 비로소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병을 주셔야 되겠습니까? 안주셔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평소에 건강할 때 감사하고 또 평안할 때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할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평소에 늘 조심하며 열심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베드로의 방법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의 검을 휘둘렀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검도나 펜싱을 배웠겠습니까? 절묘하게 귀 한쪽만 자를 수 있는 검술이 그에게 있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놈아! 너 죽고 나 죽자." 그러면서 생각없이 무작정 칼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행스럽게 그 칼이 빗겨나가서 오른편 귀만 잘랐기에 망정이지, 잘못해서 말고가 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의 제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 살인했다고 하더라." 얼마나 말이 많았겠습니까? 예수님을 돕는 길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혈기를 부리는 것,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뿐입니다. 또 베드로가 자기의 칼 하나를 가지고 무슨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군대입니다. 병기로 무장한 사람들입니다. 숫자도 많습니다. 자기 혼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무모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수차례 걸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오늘 본문 8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피해 가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것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길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저 자기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무모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왜 이와 같은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까? 원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떠나리라. 특별히 베드로는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시한 세 제자에게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만일 베드로가 그 밤에 예수님과 더불어 밤새워 기도했다면 베드로는 은혜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 위기 속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장소인 겟세마네가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추억의 장소로 바뀌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아니하도록 깨어 기도하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십시다. 새벽잠에서 깨어나십시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와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족한 은혜, 넉넉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맑아져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떠한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이미 기도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그 위기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을 쓰게 되고, 혈기를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를 위기에 대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위기 앞에서 전혀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동요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당황하지도 아니하시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예수님은 곧 가룟 유다가 죽음의 사자들을 이끌고서 자기를 붙들러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서 마음의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이 기도를 다 마치고 나셨을 때, 가룟 유다가 군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마음의 준비를 다 갖추셨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군병들에게 자신을 떳떳이 나타내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라." 그리할 때 예수님은 당당하게 "내로라 너희가 찾는 나사렛 예수가 나이니라"고 자기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로서 마음의 준비를 갖추셨기 때문에 위기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 위기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위기요,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붙들러 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나타내시면서 "내로라"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짓눌렸습니다. 다 물러가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붙들러 오기는 했지만, 익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얼마나 능력이 많은 분이신지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내로라"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당황해 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위기 앞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흔들림 없이 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안전을 돌보셨습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당할 고통보다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신변의 안전을 더 염려하셨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장차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의 믿음이 굳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제자들이 그 때 예수님과 더불어서 체포를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모진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다 저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아직은 붙잡힐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이 안전하게 그것을 피해나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베어진 귀를 낫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서 야기된 일까지도 책임을 지시고 정리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안전을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 우리가 잘못한 행동까지도 예수님은 책임져 주시고 정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의 신변의 안전을 보살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눈을 들어서 주변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까지 생각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셨습니다. 11절 하반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무리 그 잔이 쓰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예수님은 기꺼이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당할 고통을 생각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렇게 말은 잘합니다. 우리는 막상 좋은 일이 닥치면 "아멘, 할렐루야!"라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꺾어서라도 내가 편안하기를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될 줄 압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당할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손실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그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일이 실패였습니까? 아닙니다.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련은 절대 우리를 실패로 몰아넣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어떤 위기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평안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넘치는 은혜, 족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 은혜를 가지고 우리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넉넉히 지고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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