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 육의 사람 에돔(1:1)
구약 성경에는 오바댜가 열두 명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느 오바댜가 이 오바댜서를 기록을 했는지 추측들이 많이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라는 사람은 아합 임금의 궁내대신 오바댜가 오바댜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가 오바댜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왕상 18:16, “많은 날을 지내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그 아래에 보면 이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려고 할 때 선지자 일백 인을 보호해준 이 오바댜가 오바댜서를 기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구절에서 다른 오바댜를 찾아봅니다.
대하 17:7, “저가 위에 있은 지 삼년에 그 방백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여기서 “저가”는 대하 17:1에 보면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는데 바로 이 여호사밧 임금을 말합니다. 그 여호사밧의 방백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오바댜가 오바댜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오바댜를 한 사람만 더 찾아봅니다.
대하 34:12, “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그 감독은 레위 사람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하였으며.”
요시야 임금의 개혁 때 성전 수리에 힘썼던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오바댜가 오바댜서를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오바댜는 오바댜서를 기록하면서 자기가 어느 시대 사람이었고 자기 아버지가 누구였고 또 자기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오바댜의 묵시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전하는 말씀이, 즉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바댜는 자기에 대한 소개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오바댜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전보와 같다고 했습니다. 전보에 자질구레한 것을 쓸 틈이 어디 있습니까? 중요하고 급한 것을 기록합니다. 지금 오바댜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지 전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바댜서를 기록한 오바댜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바댜라는 이름의 뜻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오바댜의 뜻은 오바댜, 오받야 할 때 야라고 하는 것은 야훼, 여호와를 말합니다. 오벧은 종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오바댜의 부모가 오바댜를 낳고 나서 “너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종이 되어라! 신실한 일꾼이 되어라!”라는 의미에서 자기의 아들의 이름을 오바댜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바댜는 부모의 뜻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내 자식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성공하게 하옵소서. 공부 잘 하게 하옵소서.” 그것도 좋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는 자녀가 되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다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바댜의 묵시라고 했습니다. 묵시라는 말은 선지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이상이 역시 묵시입니다. 비전입니다. 이사야 다음에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도 역시 비전을 보았습니다.
렘 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렘 1: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살구나무 가지를 본 것이나, 끓는 가마를 본 것이나 다 이상을 본 것입니다. 에스겔 27장을 보면 에스겔이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도 이상을 본 것입니다.
다니엘 7장 이하를 보면 다니엘이 본 이상들이 나오지요? 아모스도 다섯 가지 이상을 보았습니다. 황충의 이상, 불의 이상, 다림줄의 이상, 또 여름 실과의 이상, 성전 문지방이 무너지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이상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바댜가 본 것이라고 쓰지 않고 오바댜의 묵시라고 했습니다. 묵시는 내가 보긴 보지만 누군가가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묵시의 주인은 누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바댜서는 오바댜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자기가 받은 은혜를 임의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오바댜에게 무슨 지혜가 있다거나 정치적인 안목이 있어서 정세를 잘 판단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바댜는 단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하신 그대로, 보여주신 그대로 묵시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신적인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표시하는 말이 바로 묵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모세야, 손 내밀어라!”
말씀대로 손 내밀면 홍해가 좍 갈라집니다.
“여호수아야, 백성들을 데리고 여리고 성을 돌아라!”
참 이상한 말씀이지만 말씀대로 돌면 여리고 성이 무너집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말씀대로 던지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내 꾀를 가지고 내 지혜대로 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믿으라고 주신 것이지 우리에게 이해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든 안되든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결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오늘 기도하시는 가운데 “주여, 오늘도 붙들고 살 수 있는 말씀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살라고 하셨는데 말씀 없이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기도하시면서 오늘도 주님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책 제목이 너무 개괄적이어서 부제가 주어졌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에돔의 뜻이 무엇입니까?
창 25: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돔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붉은”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붉은 팥죽 한 그릇이 나옵니다. 에서의 별명이 에돔입니다. 붉다는 뜻입니다. 이 에돔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에돔은 에서의 후예입니다. 에서는 누구의 형이었습니까?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별명이었습니다. 그 어머니 리브가의 복중에서부터 둘이 서로 싸웠습니다. 계속해서 긴긴 역사 동안 이스라엘과 에돔은 계속해서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돔은 육적인 사람의 대표입니다. 성경에서 창세기에 에서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또 다른 구절을 읽어보십시다.
창 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이방 족속과 결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에서가 이방 족속인 헷 족속의 두 여인을 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부모를 근심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복을 귀중하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영의 사람의 대표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과 에돔이 싸운 것은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계속해서 싸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돔은 자기 형제 나라인 야곱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 사실이 아모스서에도 나옵니다.
암 1:11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모스도 에돔에 대한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오바댜서 10, 11절을 보세요.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네가”는 에돔이지요.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데 돕지는 못할 망정 무엇을 했습니까? 11절 제일 끝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침략자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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