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미국의 어느 수영선수가 잠이 오지 않아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달빛 아래서 수영을 즐기려 다이빙대에 올라서서 두 손을 벌렸습니다. 달빛에 자신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보입니다. 그런데 팔을 벌린 까닭에 십자가 형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형상을 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십자가의 의미가 생각납니다. 이어 잊어버렸던 찬송이 생각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 후 수영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수영장 바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영장에 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관리인이 청소하려고 물을 빼 놓았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뛰어 내렸더라면 틀림없이 죽었으려니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달빛에 비추인 십자가가 자기를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수영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던 자신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함으로 나를 살려주셨구나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 날 밤 그는 자신의 영혼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간증을 통하여 “그 날 밤, 나는 영육 간의 이중의 구원을 경험했노라” 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사물이라고 해서 다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해야 할 사람과 사물이 있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사물이 있습니다. 멀리 해야 할 사람과 사물이 있고, 멀리 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사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며 처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하고 하나님을 멀리 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자신의 의지나 소원과 상관없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까 더없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둘째, 만물의 영장인 제 인생조차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무수히 경험하면서도,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까 어리석은 것입니다. 셋째, 첨단 과학 지식으로도 풀리지 않는 신비로운 인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절로 된 것이라고 하니까 어리석은 것입니다. 넷째, 반드시 죽을 줄 알면서도, 영생의 구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까 더없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소행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니까 어리석은 것입니다.
무신론자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인간의 자유에 대해 저술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를 조롱했습니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이 책은 장차 기독교를 박멸하게 되리라.”라고 하였고, 또 “100년 안에 성경책은 없어지고, 박물관이나 고서적을 파는 책방 구석에서 먼지가 앉은 성경책이나 찾아볼 수 있으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책이 1794년에 런던에서 출판된 「이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책 「이성의 시대」 때문에 비참하고 고독한 신세가 됐습니다. 그는 “「이성의 시대」를 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그 책을 다 회수할 수 있다면 세상에 있는 것을 다 줄 텐데······”라고 후회했습니다. 그는 1809년, 죽는 날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는 폐인이 되었고,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없어진다고 예언한 성경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습니다.
18세기의 유명한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기독교가 세워지기까지 여러 세기가 걸렸지만, 프랑스의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박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라고 큰소리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20년 만에 스위스 제네바 성서공회에서 그의 집을 사서 성경 출판소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외국어 성경을 출판하는 출판 본부가 되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 가면서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한탄했습니다. 또한,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하던 그는, “나는 지옥에 간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에프스키(Dostoevski)는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진짜 무신론자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최고 통치자와 그 측근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얼마나 소행이 가증하고, 얼마나 많은 학살을 비롯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옛 소련의 후르시쵸프 서기장은 3년 안에 기독교인들을 다 박멸하고, 마지막 한 기독교인을 전국 텔레비전에 보여 준 후에 없애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 자신이 3년 안에 먼저 죽었습니다. 지금 그 나라엔 기독교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옛 소련의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은 우주 비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하늘에 올라가 봐도 하나님은 없더라.”라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모독했는데, 비행 사고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1934- 1968). 그러나 미국의 우주 비행사인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을 하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창조의 솜씨에 충격을 받고 돌아와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비극은 하나님과 멀어진데서 생겼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에 왜 비극이 왔느냐? 하면 주님과 나 사이가 멀어져서 비극이 왔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원인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말씀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복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실패의 자리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였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가까이 해야 할 것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패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있게 대답한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 그 주님의 말에 베드로는 31절에서 힘 있게 “죽는 한이 있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습니까? 마가복음 14장 5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이 “멀찍이 좇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멀찍이 좇으면 주님을 부인할 가능성이 점차 커집니다. 주님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면 안 됩니다. 에녹처럼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창5:24).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신실한 에녹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주님을 찾고 가까이 하는 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채드윅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심각한 죄는 하나님을 찾는 일에 게으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고, 예배에 참석했는지도 몰라도 정작 하나님은 만나지도 못한 채 종교생활만 하다가 믿음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4장 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것이 성도의 힘입니다(느8:10).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에 거룩과 영광이 있습니다(레10:3).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영광을 얻으리라...”(레10:3)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가까이 오십니다(신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베드로처럼 멀찍이 좇아가지 말고, 에녹처럼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72절 말씀을 보십시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누가는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실패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지 않고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주님의 말씀에 조금만 더 세심하게 반응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성도가 은혜의 진액을 받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이 생명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은혜의 자리에서 기뻐 뛰게 만들 줄로 믿습니다. 성도에게 말씀이 없으면 강력해지지 못하고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말씀이 없으면 죄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의 생활을 하면 생명의 말씀이 나를 죄로부터 지켜줍니다. 말씀이 지쳐있는 우리를 위로해 주고,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스스로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진리의 허리띠를 동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기도를 멀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베드로와 제자들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멸시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하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자고 외치는 슬로건이 아닙니다. 기도하자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한 번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신학자 C. S.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에 어떤 신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습관을 따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마침 종교서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사의 마음속에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그분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 사탄이 찾아와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그런 골치 아픈 생각은 무엇 때문에 하니? 곧 점심시간인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신사는 조금 전에 일어났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억제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또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또 사탄이 그의 마음속에 찾아와 속삭였습니다. ‘밥 먹는데 소화 안 되게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우선 밥이나 먹고 생각하렴.’ 식사를 끝내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에 깊이 잠기려고 하는데 사탄이 또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한가할 때 해도 되잖아? 오늘은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으니 다른 날 생각하라고.’ 결국 신사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 지식도 얻지 못한 채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사탄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신사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띠었습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4).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하는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기도의 성자인 E.M.바운즈(E.M.Bounds)는 “기도하기를 중단한 믿음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고 외쳤습니다. 저는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외칩니다. “생명을 잃은 믿음은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멀리하는 순간에 우리의 생명은 끊어집니다. 기도를 멀리할 때 우리의 영은 죽습니다. 여러분의 영이 살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그랑프리대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선수가 1등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연료 탱크를 점검하지 않고 마지막 한 바퀴를 달리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차는 결승선을 몇 백 미터 남겨놓고 연료 부족으로 인해 멈추고 말았습니다. 결국 1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연료 보충을 위해 멈추어야 할 곳은 바로 기도의 장소입니다. 골방이든 교회이든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시편145: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기도는 또한 능력이 되는 것이니 기도하는 가정과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는 법이 없는 줄 믿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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