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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대상15:25-29 * 예배중심

 

역대상15:25-29   예배중심


이용규 몽골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목축하는 처녀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는 좋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소를 풀밭에 매놓고 예배드리러 가려고 소를 끌고 나가는데 소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 가다 보니 땀과 먼지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혼자 외쳤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그리고 소 따라가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교회로 왔을 때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특하여 교회 문에서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예배의 축복을 주옵소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음메............> 소가 교회로 와 있었습니다.

예배는 회복이며 축복입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이며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로버트 콜스 박사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정치인, 사업가, 학자 등 3000명을 조사하여 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많이 참석한 자들이 다 성공했다.”(로버트 콜스)


몇 년 전 유럽판 타임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사는 사람이 예배를 안 드리는 사람보다 평균 7년 더 산다.” 정규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예배를 안 드리는 사람보다 7년 더 장수하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흑인들은 온 몸으로 정열적으로 예배하기 때문에 예배 안 드리는 사람보다 14년 더 장수하고 예배를 조용히 드린 사람보다 7년 더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배는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예배는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행복과 저주를 결정합니다.


한 정신위생학자는 이런 정의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1.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해야 마음에 평안함이 있고 안정이 있답니다. 나이가 들어도 힘이 닿는데 까지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쉬어야 한다.

쉴 때 쉬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십니다. 그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6일은 열심히 일하고 7일 째는 쉬라 하셨습니다. 창조질서이자 순리입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쉬어야 정서적으로 건강합니다.

3.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사람일수록 건강합니다. 다투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인간관계가 좋지 않을 때 마음이 어쩌든가요?

사랑하기 힘든 사람까지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안정이 되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예배할 때 영혼의 평안함과 쉼이 있습니다. 내면의 진정한 평안함이 있습니다. 예배하는 만큼 행복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말과 분석이었고 중요한 것은 성경이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상15:29을 보시면 다윗은 너무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지극 정성으로 하나님께 예배했는데 그의 아내 미갈이라는 여인은 예배자 다윗을 비방하며 예배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삼하6장에 보면 일평생 그녀의 태의 문을 닫아 버리셔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부부인데 예배를 소중히 여겼던 다윗은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하게 되고 하나님이 계속 축복하시니 범사가 형통하게 되고 열어주시는 인생이 되었지만 예배를 소홀히 여긴 미갈은 하나님이 평생 닫으시는 인생,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인생의 수많은 질곡 속에서도 예배를 통해 삶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를 갈망했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목말라 했습니다. 얼마나 예배를 사모했던지 몸이 아프고 어떤 사정이 생겨서 예배를 못 드리면 그것 때문에 더 아파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어 하고 마음 아파하는 다윗의 예배에 대한 영성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예배의 가치를 아는 자였기에 예배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만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떤 일보다도 예배드리는 일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자 하나님이 축복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일 천 번제를 드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솔로몬이 이런 예배를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바로 아버지 다윗에게 배운 겁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렸지만, 다윗은 예루살렘 유월절 때 황소 천 마리, 수 양 천 마리, 어린 양 이천 마리를 잡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예배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비싼 값도 상관하지 않고 그 값을 치렀습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시가 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주고 사서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거기가 예루살렘 성전 터가 된 겁니다. 왜 다윗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최상으로 예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최고의 성전을 지으려고 한 것도 바로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염원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예배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 것은 그가 예배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예배해야 다윗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기쁨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을 쓴 릭 워렌 목사님은 예배를 이렇게 정의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릭 워렌)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축제이고 잔치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포퍼먼스(performance)입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최상의 연출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고 행사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교회의 가장 큰 핵심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즐겁고 큰 소리로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너무나 즐겁고 힘찬 소리로 노래하고 연주하고 행진합니다.

25절 보세요.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로들과 지도자들이 즐겁게 노래합니다. 26절 보시면 송아지와 양을 잡아서 잔치를 합니다. 27절을 보시면 다윗 왕 자신부터 에봇을 입고 대단위 합창단을 초청해서 큰 소리를 찬양하며 연주하며 행진합니다. 다윗은 왕의 신분을 뛰어넘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합니다. 축제의 한 마당입니다. 예배는 기쁨으로 드리는 겁니다. 장로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앞장서서 큰 소리로 힘을 다해서 기쁘고 즐겁게 예배했습니다. 교회 지도자일수록 예배를 더 지극정성으로 드려야 합니다. 휴스턴은 “예배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 즉 하나님을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환호하는 모든 백성들이 다 같이 어울리는 것이다.”(휴스턴) 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즐거운 잔치요, 축제입니다. 때로는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때로는 춤을 추며 찬양하는 거룩한 놀이입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손뼉도 치지 못하게 하고 부동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데 그것이 옳은 것 아닙니다. 박수칠 때 박수치고 기뻐할 때 기뻐하고 아멘, 우리는 예배를 역동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밝게 드려야 합니다. 신나게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입니다. 불교는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유교는 제삿집 분위기이지만 기독교는 잔칫집 분위기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을 초상집이 아닌 결혼 잔치 집에 가셔서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세요.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광경의 핵심이 뭐던가요? 예배입니다. 이게 천국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아침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예배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배시간에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오면서 너무나 기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막 가슴이 벅차 장엄한 시 한 편을 씁니다. 시편 24편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24:7-8)  다윗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세요. 예루살렘에 왕은 내가 아니야, 하나님이 영광의 왕이시다. 그 분이 들어가신다. 머리를 들지어다, 너무 너무 기뻐서 시를 짓고 노래하는 겁니다. 예배를 통해 기쁨을 회복하고 행복한 잔치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정성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예배학에서는 예배를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하면 최상의 존재이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겁니다. 예배란 말이 영어로 Worship= 가치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진수성찬을 차려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바빴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예배하고 경배합니다. 주님은 누굴 더 칭찬하셨습니까? 물론 예수님을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려는 마르다도 칭찬을 하셨지만, 더 큰 칭찬을 받은 것은 마리아입니다. 왜요? 예배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이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겁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면, 지극 정성을 다합니다. 이걸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 최고의 정성을 다해 드려졌습니다. 12절 보세요.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경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대상15:12)

법궤를 옮기기 전에 먼저 몸을 성결케 했습니다. 예배는 춤을 추며 기쁨으로 드려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삼하 6:13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멘 제사장들은 그냥 걸어가지 않습니다. 행렬을 맞추어서 걸어갑니다. 그리고 다윗 왕 자신부터 대충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준비된 예복을 입습니다. 모시로 만든 좋은 에봇이란 예복을 입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 날 힘드시고 불편하셔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정성스럽게 복장도 갖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성스런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되는 대로 입고 오는 것 보다 얼마나 내가 하나님 앞에 정성스럽게 예배하느냐? 다른 때도 단정한 복장이 필요하지만 주일날은 깨끗이 자신을 정결하게 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드리는데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 인생을 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으로 예배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축복을 누리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에는 두 가지 요소가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상향성이고 또 하나는 하향성입니다. 상향성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경배를 올려 드립니다.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예물도 올려 드립니다. 올려드리면 하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축복이 내려옵니다. 은혜가 내려옵니다. 평화가 내려옵니다. 안식이 내려옵니다. 예배는 정성으로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성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우리 예배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요소라면, 예배 또한 우리의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예배에는 해당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정성위에 뭐가 필요합니까? 바로 피 흘림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19)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어린 양의 피가 필요합니다. 예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면 은복을 받습니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나오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는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온 자 은혜 주신다는 겁니다. 축복하신다는 겁니다. 나와서 예배하라는 겁니다. 나와서 예배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택과 결정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지금까지 예배를 즐겁게 드리지 못했다면 결단합시다. 하나님께 즐겁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리라.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드렸다면 이제부터는 예배를 정성을 다하여 드리리라. 예배를 통해서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면 바른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예배가 바른 예배가 되면 그 예배에 감동하시고 반드시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즐겁게, 정성으로 예배드려 하나님을 감동시켜 축복을 누리며 사는 천국백성, 찬양식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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