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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상6:10-16 *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삼상6:10-16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하나님의 메시지

 

사무엘상 5장과 6장에는 하나님의 법궤를 실은 새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로 간 암소 두 마리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소 두 마리는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는데다가 젖을 빠는 새끼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미 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로 갑니다. 사람들이 강제로 떼어놓은 송아지들이 뒤에서 울부짖는데도 어미 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좌우로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암소들은 스스로 벧세메스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벧세메스에 도착한 뒤에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바쳐집니다. 이처럼 말 못하는 짐승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벧세메스로 옮기는 일을 완수했을 뿐 아니라 생명까지 바친 것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달하고자 의도하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무엘상 5장과 6장의 내용을 정리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5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빼앗아 온 하나님의 법궤와 관련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①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당 곁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곤 신상이 하나님의 궤 앞에 엎드러지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②가드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에게도 심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다시 가드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③에그론으로 보냈는데 그곳 사람들에게도 여지없이 독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문제를 두고 구체적인 논의를 한 것과 그 법궤를 벧세메스로 돌려보낸 사실이 사무엘상 6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①금으로 종기의 형상 다섯 개와 쥐의 형상 다섯 개를 만들어 이스라엘의 신에게 속건 제물로 바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②여호와의 법궤는 속건 제물과 함께 새 수레에 실어서 이스라엘로 보내데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고 젖을 빠는 새끼가 달린 어미 소 두 마리에게 새 수레를 끌게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전혀 멍에를 메어 본적이 없는 소가 수레를 끌 수 있을 것인가? ②강제로 격리된 새끼들이 구슬피 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상황에서 과연 어미 소가,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가 보조를 맞춰 함께 수레를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③가보지도 않은 생소한 길을 스스로 알아서 걸어 벧세메스로 곧장 가야만합니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게 가능하겠는가? 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이런 불가능한 방법을 제안했을까요?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이스라엘의 신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자신들에게 패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그런 강력한 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이스라엘 신이 내린 것인지 확인하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제안은 만일 어미 소 두 마리가 스스로 알아서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로 올라가면 그 큰 재앙은 이스라엘 신 여호와 하나님이 내린 것이 분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재앙은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6:7-9).

 

그럼,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어미 소 두 마리는 벧세메스 길로 똑바로 갔습니다. 길을 가면서 울었지만 중간에 돌아서지도 않았고 좌로나 우로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어미 소들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바위가 있는 곳에 가서 멈추었습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쨌든 여호와의 법궤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어미 소들을 잡아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벧세메스 경계까지 어미 소들을 따라온 블레셋의 방백 다섯 명은 일어난 모든 일을 목격하고 에그론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겠습니까?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 임한 재앙은 이스라엘 신이 내린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알려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인들과 바로에게서 건져내신 분이요, 블레셋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를 내리신 분이요, 다곤 신을 굴복시킨 능하신 분이다. 바로 이것이 사무엘서 기자가 본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했지만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는 강하고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패배입니다. 왜 블레셋에게 패했을까요? 하나님이 다른 민족의 신들보다 약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변의 나라, 블레셋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범죄한 자기 백성을 벌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어느 정도였냐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불량했습니다. 제사장부터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말씀이 희귀하여 각자 자기가 선히 여기는 생각대로 살아갔습니다. 말씀은 없고 각자의 생각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쌓이고 쌓인 것이 죄였습니다. 쌓여 넘친 죄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부른 것입니다. 문제는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이건 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잘못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이 제안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채택한 방책은 옳은 것인가? 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무지한 블레셋 사람들이 율법의 규정에 맞지 않는 방법을 채택했지만 하나님은 그 방법을 수용하셨습니다. 관대하게 받아들여 말 못하는 암소들을 강권적으로 이끌어 벧세메스로 가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블레셋에 임한 큰 재앙이 하나님 자신이 내린 것임을 입증하셨습니다. 동시에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역사하는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확신시키신 것입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의 헌신

 

우리는 암소들을 벧세메스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먼저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암소들의 헌신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에게 교훈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①거짓선지자 발람의 길을 막았던 나귀, ②불순종의 사람 요나를 니느웨성 근처에 토해낸 큰 물고기, ③예루살렘을 입성할 때 예수님을 묵묵히 등에 태운 어린 나귀 새끼 그리고 ④오늘 나오는 암소입니다.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암소의 헌신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며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울면서도 갔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12)

하나님의 법궤를 벧세메스로 운반하기 위해 선택된 두 암소에게는 똑같이 젖먹이 새끼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새끼와 이별을 해야 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어린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에는 얼마나 눈물이 났겠습니까? 그리고 한 번도 메어보지 못한 멍에를 멨으니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또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길을 가야했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두 암소는 비록 말을 못하는 짐승이지만 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벧세메스로 가긴했지만, 중도에 젖이 불어 땅에 흐를 때나 생이별한 송아지가 생각나서 울었고, 멍에가 힘들어서 또 울었고, 낯선 길을 걸어가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야말로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눈물 없이 못가는 눈물로 얼룩진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었던 십자가의 길이 바로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길이 같은 길이라는 사실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1. 서쪽하늘 붉은노을 영문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 시관 몸-에는 붉-은옷 힘- 없이 걸어가신 영문밖의 길이라네

2. 한발자욱 두발자욱 걸어가신 자욱마다 뜨거운눈물 붉-은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한 유대관원 포-악한 로마병정 걸음마다 자욱마다 가진포악 지셨구나

3. 눈물없이 못가는길 피-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4. 아픈다리 싸매주고 저는다리 고쳐주사 보지못한 눈을열어 영생길을 보여주니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십자가 바로지고 골고다의 높은고개 나도가게 하옵소서

5.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어찌 못가오랴

주님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가오며 죽음이라 못가오리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창12:1) 그 다음에는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창21:9-12) 그 다음은 바치라였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22:2) 아브라함에게는 모두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울며 아파하면서도 순종했습니다.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수고와 눈물, 헌신을 하나님께 자랑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갔습니다.

 

12절입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했습니다.  두 암소는 생이별한 새끼 송아지가 생각나서 울었지만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또 처음 메어보는 멍에로 고통스러웠지만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낯선 길로 두려웠지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두 암소는 고통스러워 울고 울었지만, 발걸음만큼은 결코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벧세메스로 향했습니다. 12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겠습니다. “그런데 새끼를 떼어놓을 때까지도 펄펄 뛰며 울어 대던 소들이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쪽으로 유유히 올라갔다. 더구나 좌우로 나 있는 어느 샛길로도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만을 향하여 곧장 걸어갔다…….”(12) 얼마나 은혜가 됩니까?

미물도 하나님께 붙잡혀 헌신을 다하는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성도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면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흔들림 없이 천국까지 직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제물이 되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두 암소는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하기 위해 새끼 송아지와 이별하면서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멍에를 메고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 암소를 위로하고 칭찬하기는커녕,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습니다.

여러분 비참하고 억울하게 느껴지십니까? 영광스러운 순교로 보이십니까? 성도의 영원한 큰 보상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줄 믿습니다. 그 때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1840년 9월 4일 영국 웨일즈 리야드란 곳 어느 목사님의 가정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런던대학 뉴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는 1863년 고향인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습니다. 중국의 선교에 관심이 있었던 젊은 목사는 24세 청년으로 신혼의 신부를 데리고 중국 선교사로 갔다가 본격적인 선교사업도 하기 전에 기후와 식사 생활 형편이 맞지 않아 부인이 그만 죽고 맙니다. 큰 슬픔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기도로 극복하고 있다가 마침 조선 땅 황해도 장연에서 건너온 천주교인 김자평, 최선일이란 사람들을 만나 조선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후원을 받아 많은 한문 성경을 공급받고는 조선 땅 백령도를 중심으로 한 서해 도서지방에 성경을 나눠줍니다. 1865년 9월의 일입니다.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이듬해 1866년 미국 상선이었던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으로 오게 되었는데 강화를 돌아 한강으로 올라가야 할 배가 그만 뱃길을 잘못 알아 북상하며 대동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배가 정박한 곳은 평양의 만경대 일대로 물이 빠지자 그 배는 그만 대동강 모래사장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평양감사 박규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다 잡아 죽이게 되는데 이 젊은 목사도 체포되어 백사장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끌려 나오는 순간에도 사람들과 군인들에게 성경을 나눠주었다고 전해졌고 결국 그 곳에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의 나이 27세 1866년 9월 2일 저녁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젊은 목사의 이름은 토마스 선교사 (Robert J Tomas 1840-1866)한국에 온 선교사로 첫 순교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때 그에게서 성경을 받았던 사람 중 홍신길이란 사람은 후에 강서교회를 세우게 되고, 최치량이란 사람은 평양교회를 개척하고, 성경을 뜯어 벽지로 발랐던 영문주사 박영식은 후에 신실한 신자가 되어 그 집이 널다리교회가 되었고, 토마스의 목을 자른 장본인인 박춘권이란 사람은 평양교회 장로가 됩니다.

 

나의 헌신을 통해 복음이 퍼져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은 희생부터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이라면 한 방울도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한 고생과 수고, 희생이라면 반드시 밀알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교회를 위해 작은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마시고 기쁨과 감사로 참여하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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