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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12절

마태복음 7장 7-12절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얼마 전에 우리 청년 하임교회 비전트립 장소인 필리핀 타워빌이라고 하는 빈민도시를 다녀왔다. 이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과 사역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절대빈곤층들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CAMP(Center for Asian Mission for the Poor)의 사역의 내용을 보면서 이것이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선교는 한 지역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사람을 모으는 일을 선교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캠프는 사역의 현장에서 복음전도나 교회를 세우는 일 보다 그들을 돌보는 일을 먼저 했다. 그래서 한국의 코이카, 사랑의 열매 등의 기관들과 함께 NGO를 만들어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주는 사역부터 시작했다.

그곳을 방문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사실 타워빌은 마닐라에서 강제 이주를 당한 이주민마을이다. 도시 다리 밑에서 살고, 빌딩과 빌딩사이에서 살던 이들에게 마닐라에서 80km 정도 떨어진 마을에 타워빌을 세워 강제이주를 시킨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래도 깨끗한 도시를 만들어 강제이주를 해주니까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나? 노동할 일거리가 있는가? 마닐라에는 막노동을 하고, 아니면 심지어 쓰레기를 찾아 먹을 것과 재활용할 것을 찾아 일당을 벌 수 있었지만 이주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생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철용 선교사님이 이들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프로젝트를 만들어갔다. 그곳에 먼저는 보건소와 같은 작은 병원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긴급구조단을 만들어 출산이나 사고시에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구체적으로 캠프 안에 봉제공장, 베이커리 공장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운영의 주체가 선교사가 아니라 그들의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역을 단지 교회에서만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국제협력기구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이 모든 프로젝트의 비용의 10%만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 청년들이 가서 하는 일은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 성경학교를 두 곳에 3일간 해주는 것이고 오후에 그곳에서 노동과 화덕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만든 화덕을 가지고 오후에 가정방문을 해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돌아오는 사역이다. 와서 저녁을 먹고 강의를 듣거나 다음사역을 준비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나는 2박 4일동안 있었지만 정말 감사했고 좋았다. 그래서 선교 사역지는 기회가 되면 다녀와 보면 은혜가 된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가정방문을 하면서 은혜도 받고 도전도 받는 것 같다. 한 집, 한 집을 방문하면서 물어보면 어떤 집은 아이들이 9명인데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남편은 시내로 가버렸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정말 반찬하나 없이 밥을 먹고 사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해 맑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기브미 원달러를 외치지도 않는다. 먹는 것을 더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정말 아이들이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청년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저렇게 못살고, 저렇게 사람답게 살지도 못하는 데 저들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고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방문하면서 부모들이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도해 드릴까요? 라고 물으면 세 가지 꿈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세 가지 꿈

첫째는 학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초등학교에 가려면 교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캠프에서 교복을 받는 봉제를 해서 저렴하게 공급을 한다. 아이들의 꿈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둘째는 일하는 것이다.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할 곳이 없다. 그 어디도 일을 할 곳이 없다. 그래서 쓰레기장에서 뒤지거나 아니면 도시로 가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도시로 가서 일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일하는 것이 꿈이다. 정규직이 아니라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일 말이다.

셋째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다.
집에서 밥을 먹기도 힘들지만 밖에 나가 외식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아빠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뿐 더러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다. 그곳에서 내가 우리 팀들이 고생했다고 식사를 사기 위해 그곳에서 가장 가장 큰 몰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비싼 식사를 사주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웬디스 버거였다. 맥도널드와 같은 햄버거였다. 뷔페 같은 식사, 아니면 씨푸드는 상상도 못한다. 우리 함께 간 집사님과 두리안을 먹자고 찾았다. 그런데 두리안이 시장이 없다. 왜? 두리안은 비싸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멋진 곳에서 식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지금 가장 구하고 싶은 기도제목이 무엇인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주실 것이다.
찾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찾아낼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렇게 하면 열릴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멋진 본문인가?

본문의 영향력

오늘 본문은 정말로 유명한 본문이다.
이 본문이 우리를 열심히 기도하게 했고 끊임없이 기도하게 한 공헌은 무척이나 크다 그런데 많은 공헌도 했지만 이 본문이 한국교회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 본문을 가지고 한국교회는 “구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기도는 기적을 낳는다. 기도하면 다 된다”라고 하는 구호를 만들어서 기도의 오해를 낳게 만든 본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오늘 본문은 구하라 한 다음에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느냐면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라고 하였다. 그리고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라고 했다.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여러분들이 간절하게 구한 것이 이루어졌는가?
안 이루어졌다면 많은 사람들은 기도가 부족해서 기도가 안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목사로서 얼마나 기도를 해야지 부족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인가라고 하는 회의가 든다.

이런 예화가 있다.
미국의 한 인디언 부족은 기도만 하면 100% 비가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비결이 대체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이 인디언 부족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예화를 나도 사용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구해야만 내가 구하는 것이 응답되는 것인가라고 하는 회의가 생겼다. 기도하지 않아도 비가 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말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안되는 기도가 있지 않은가?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기도를 안 해서 응답받지 않은 것도 많지만 사실은 기도를 해도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이 본문을 조금 더 묵상해보기를 원한다.

첫째 묵상 : ‘구하는 것은 다 주시는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이다.

대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게 성경적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철야기도를 하고 사십일 금식기도를 해도 구하는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오늘 본문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본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 것 같은가?
“너희 중에 아들이 뱀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겠는가?”
다시 말하면 아들이 간절하게 아버지에게 뱀을 달라고 구하면 들어줄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이다. 고민이 생기게 된다. 누가 독사인 뱀을 아들에게 주는 아빠가 있는가? 아마 그 부탁을 안들어줄 것이다. 물론 자살소동을 하고 목숨을 내걸고 부탁하면 들어주는 척을 할지는 모르지만 다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왜? 죽을 것을 뻔하게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는 말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하였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래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구하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구하는 것에 대한 분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간절하게 구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분별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구해놓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에서 최고 권력에 오르는 것을 구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실패하게 만든 구함일 수 있다. 부를 간절하게 구한다. 그러나 그 부의 풍성함 때문에 자녀들끼리 갈등하고 싸우고 흩어지는 것을 본다.
다시 말하면 잘 구해야 한다.

성경에도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깃 즉 유산을 구했다. 하도 간절하게 달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바닥을 쳤다.
또 성경 마가복음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간청을 한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5). 이러한 요구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막10:38)라고 책망을 한다. 왜 그런가? 주님이 골고다의 언덕의 좌우편에 누가 있었는가? 강도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 요한이 간절하게 구한 것은 이런 내용이다.
“예수님~ 나를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나는 왼쪽에서 형은 오른쪽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간절한 간구이다.
하나님은 이런 간구를 들어주셨는가? 들어주지 아니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섭섭했을 것이고 속상했을 것이다. 내가 예수님에게 얼마나 충성하고 헌신했는데 나의 간청을 무시하는가라고...

사랑하는 여러분들!
기도하면서 구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별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구해할 것은 무엇이냐면 분별력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 그리고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래서 정말 올바른 것을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니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떡을 달라고 구해야지 돌을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또 생선을 달라고 해야지 뱀을 달라고 구하면 안 된다. 이게 바로 분별이다.

두번째 묵상 : ‘응답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라고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구하는 주체는 나지만 응답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했다. 우리는 앞에서 제대로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대로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주시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냉정하거나 매몰찬 분이 아니시다. 분명하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하면 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하는 기도문에 빠진 문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이 빠졌다. 그래서 “구하라 ‘내가 너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요”가 맞는 문장이 된다.

우리는 내가 기도하면서 내가 받고 싶은 것만 받으려고 한다. 그게 응답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 제가 차 한 대가 꼭 필요합니다. 꼭 올해 연말까지 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는 도중에 차 한 대를 얻게 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차를 보는 순간에 “하나님~ 이 차가 아니고요~ 2000cc가 넘어야 하고요, 하이브리드 차이어야 해요!”라고 거부를 한다.

구해서 하나님이 주셨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 응답을 거절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너무도 많이 있다.
청년사역을 하다보면 특별히 반려자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짝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응답으로 받는 청년들이 별로 없다. 그 청년들의 기도응답은 이쁜 여자, 능력 있는 남자였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남자는 아니었다.

우리는 기도해놓고 자신이 응답자가 되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받아야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응답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신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면 땡땡이를 칠 것을 너무도 잘 아신다, 우리에게 완장을 지금 채워주면 완장을 휘두를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나는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다시 말하면 그래서 우리가 잘못 구하는 것도 하나님은 올바르게 응답해주신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뱀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겠는가?” 분명히 우리가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뱀을 받을 때에만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다. 뱀을 달라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이다.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간절히 금식기도하고 철야기도 하였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정말로 화가 나고 이해도 안 되고 속상하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다면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아라!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지금의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이 안 나왔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라!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신앙고백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기도하라. 그리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분명히 하나님은 응답해주신다. 여러분의 기도가 이기적일까 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혹시 이 기도가 내 욕심이 아닐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거룩한 기도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이미 이기심과 죄악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결코 걸러낼 수 없다.
우리의 죄악과 이기심을 걸러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예수님뿐이다.
여러분들 왜 마지막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 저 사람 사업 망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도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잘못된 기도를 거르시기 때문이다.

응답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유학을 가고 싶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매달렸다. 그런데 유학을 가려고 할 때마다 비자가 안 나와서 좌절되었다. 그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따졌다. 왜 유학비자를 허락하지 않느냐고...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은 유학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게 응답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내가 그 응답이 싫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음성이나 하나님의 응답에 외면하느냐면 그게 싫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대학에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응답으로 받아들이는가? 내가 병을 가진 것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에 응답이라고 확신되어진다.

두 번째는 응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응답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응답이 안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행복, 감사, 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응답받지 못한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필리핀 아이들이 그렇게 구하는 것을 이미 다 받았다. 이 설교준비를 하면서 93년도에서부터 시작되어진 기도노트를 꺼내어보았다. 정말 많은 기도제목들이 응답되었다.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리의 자신의 삶을 늘 성찰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이런 멋진 말을 했다.
“나는 위대한 한 순간을 늘 기다렸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지금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기도가 응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하고 그 다음에 잊어버린다. 그리고 한참 후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우연으로 생각해버린다. 이것이 문제이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고 반응하신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방법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첫째 기도응답은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키신다.
처음에 기도할 때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짐에 따라 그 기도가 기도자를 변화시킨다. 처음에는 “내 아이들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 자신임을 발견한다.”

두 번째 기도응답은 기도제목을 변화시키신다.
처음에 기도할 때에는 우리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기도하면서 사업이 잘되는 것보다 좋은 기업, 바른 기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제목이 바뀐다. 이게 바로 응답이다.

세 번째 기도응답은 나의 상황을 응답으로 받는다.
기도자가 변화되어지고 기도제목이 바뀌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하나님이 주신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응답으로 받는다. 지금 안 좋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지금 잘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임을 알게 하신다. 이게 바로 응답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12절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게 무엇일까? 지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 왜 갑자기 황금율이라고 하는 이 본문이 등장하는가?
이 본문에 기도에 성공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황금율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내가 기도제목에 응답받는 최고의 덕목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내가 남에게 잘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줄 것이다. 내가 정직하면 상대방도 정직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갑질을 안하면 을이 어느 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해주지 않겠는가? 내가 다른 사람을 높여주면 그것처럼 멋진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게 바로 기도응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인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은 인복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인복이 있게 하였기 때문에 인복이 찾아온 것이다. 누가 까칠하고 누가 무례하고 누가 거침이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들이 오는가? 그런 사람들은 인복이 없다. 결국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함은 바로 황금율인 12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에 이 본문이 등장을 한 것이다.

기도도 중요하고 금식도 중요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 황금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 기도 ]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구했지만 제대로 구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구했지 주님이 기뻐하는 것,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응답을 응답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는 말씀을 받지 못하고 조금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나님 앞에 불평을 하고 따졌습니다.
주님~ 주님의 큰 은혜와 은총을 믿습니다. 지금 힘들어도, 지금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줄 믿습니다. 2015년도에 그런 응답이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