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겔1:1-3)-2015.1.25
모든 범사에 문이 있습니다. 보이는 문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문도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세계에도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문도 있고, 전도의 문도 있으며, 기도의 문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늘 문이 열린다는 표현이 있고(시78:23, 말3:10, 행7:56, 계4:1) 닫힌다는 표현도 있습니다(신11:17, 눅4:25). 그렇습니다. 하늘에도 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최고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땅의 문이 열리고 인생의 모든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지 아니하면 내 인생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하늘 문만 열리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때문에 성도된 우리는 하늘의 문이 열리기를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늘의 문이 열리는 축복을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최고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BC597경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물론 2차포로는 주로 유다중산층과 유력한 지도층 인사 일만명을 잡아갔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은 삼십 세의 나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은 25세의 나이에 포로로 잡혀 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쏟아가며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사역이 서서히 저물어 갈 무렵에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로보건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번도 쉬지 아니하시고 적극적으로 간섭하시며 보호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대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포로 된 땅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도 전혀 개의치 아니하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감찰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이라는 땅에서 죄 값을 치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집중하십니다. 그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낙심하여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갈지라도 이스라엘을 찾아가셔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상실한 마음을 친히 위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의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48:35).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징계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내안에서 떠나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저주입니다. 비록 우리가 징계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내안에 머물고 있는 것은 감사요, 축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도 이스라엘을 일일이 간섭하셨고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동 시대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자기 백성들의 멸망을 예언하고, 바벨론에서는 에스겔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두 가지 성품을 모두 다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은 공의와 사랑입니다. 죄지은 이스라엘을 대충 눈감아주고 못 본 척하시지 않고 죄 값을 지불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친히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징계를 받아드리라고 촉구했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는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심판 중에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제한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하십니다. 지금 바벨론이라는 곳에서 자기들의 죄 값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은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자기 자식이 잘못하여 옥살이를 하고 있다면 부모는 불쌍하고 측은히 여겨 어떻게 해서든지 면회를 갈 것입니다. 하물며 죄인 인간도 그리하거든 하나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땅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때문에 에스겔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함이요(1-24장), 포로로 잡혀 와서 절망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해 주실 터이니 결코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33-39장).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당신의 신적인 영광의 환상을 계시하신 후에 선지자 직분을 맡겨주십니다(2:3). 또한 사명을 맡겨주시면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외치라고 당부하십니다. 만일 그들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면 모든 책임을 에스겔에게 묻겠다는 엄중한 경고까지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해야만 합니다.
(1)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습니다(1절)
누구에게나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하늘 문이 열리는 체험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늘 문을 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만 됩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이상은 당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수단입니다. 환상이라는 말로 같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이 다양할지라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심이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심입니다.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다른 이상을 보여주시고,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서 다른 이상을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이상이 달랐고(단2:19),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이상이 달랐으며,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이상(슥1:18-21)도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이 본 삼층천의 환상이 달랐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이 달랐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의 이상을 나타내실지라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심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상을 계시하시는 방법도 무척 다양하십니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만 때로는 꿈이나 우림이나 둠밈으로도 나타내시고,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도 나타내십니다. 심지어 자연을 통해서도 당신의 이상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본 하나님의 이상을 성경처럼 절대시하거나, 혹은 신비한 것처럼 무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에스겔이 부르심을 입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이상은 1장에서만 네 가지입니다. 네 생물의 형상과 네 바퀴의 형상이며, 궁창의 형상과 보좌의 형상입니다. 이 모든 이상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위엄과 영광스러운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모르고서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고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데 적극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촉구합니다(호6:3). 때문에 하나님을 알되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단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열심이 없으므로 사단이 끼어들고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열심히 알고 바르게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하고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하기 위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이상을 보여주십니다. 결국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사역을 감당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당신의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3절상)
하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강림하십니다. 이것이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역사입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천지를 운행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말씀으로 강림하십니다. 이상이 눈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임재현상이었다면, 말씀은 보이지는 않으나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임재현상과 같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으나 역사하시는 말씀은 감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일에 당신의 말씀으로 감동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역의 근본이요,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성경처럼 기록된 말씀이 있고, 그때마다 각 개인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다만 들려주시는 모든 말씀의 근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때문에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주관적인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시하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 계시된 말씀은 누구에게나 객관화시켜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말씀을 개인이 받고서 마치 성경처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삼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의 근본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절에 보니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했습니다. 물론 에스겔서라는 성경말씀이 없던 당시에 에스겔에게 주어진 말씀이 성경으로 기록될 말씀이 될 정도로 특별한 말씀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의 메시지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하고 잘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사역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말씀이 근본이요, 전부입니다. 말씀이 무기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치중해야 합니다. 말씀을 분별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이 사역자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언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자는 아닙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연구하고 묵상하며 분별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잘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에스겔 선지자에게 당신의 말씀을 받아먹고(2:8-3:3) 그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11).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이 사역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 문이 열려야 깨닫고 분별합니다. 하늘 문이 열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분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믿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아니 절대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며 이해하고 믿기 위하여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의심없이 받아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을 벌리고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배에 넣었습니다. 심지어 창자까지 채웠습니다(3:2-3).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가 자기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의도입니다. 물론 그 말씀은 두루마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에스겔에게 직접 먹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달기가 꿀송이 같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달고 오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자기의 감정이나 사상, 이론이나 지식, 경험이나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역했습니다. 그는 본대로 들은 대로 말씀을 전달했고 선포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래야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말고 있는 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가감삭제 하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것을 추가하거나, 있는 것을 빼버리면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습니다(3절하)
하늘 문이 열리는 또 하나의 현상은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 목적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져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권능은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당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진 것은 시대적으로 볼 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상태가 강퍅하여 아무리 영향력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들은 척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할 때를 보십시오. 얼마나 비난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많았습니까? 심지어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매도하여 방백들은 조롱하고 때리며 옥에 가두고 토굴 속에 집어넣고 구덩이에 던져 넣으며 시위대뜰에 가두어 모진 고난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사역자도 사람인지라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의기소침하여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어떤 환난이나 풍파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당시 불신앙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한 위험한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단순히 세상적인 열심과 용기만 가지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무모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짐과 동시에 권능이 함께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자신의 힘으로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지속적으로 부어졌던 것입니다.
에스겔서37장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권능으로 에스겔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권능은 성령의 능력이십니다. 에스겔서40장1절에서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한 번에 일시적인 권능만 부어주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맡기실 때 당신의 권능을 함께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유지되면 지속적으로 당신의 권능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면 사역이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서4: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여호와의 신이 성신이요, 성령이시며 하나님의 권능의 주체이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권능은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으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사람의 능력이나 권세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와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이 임하지 아니하면 사역에 어떤 즐거움도 없고 기쁨도 없으며 성과도 없습니다. 사역에 대한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 임해야 사역의 열매가 주어지며 결실을 보게 됩니다. 때문에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권능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지속적으로 공급하시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주시는 권능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아무 쓸모없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모든 자들에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입니다. 특별히 금년에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부어지며,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201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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