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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 있는 사람은(시1:1-6)-2015.2.1

복 있는 사람은(시1:1-6)-2015.2.1

 

세상에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복을 받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어떤 이는 복을 받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복을 받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복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의 차이요, 누림의 차이입니다. 왜냐면 만 가지 복을 받은 사람이라도 무슨 복을 받았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특별히 복을 받은 것 같지 않는 사람이라도 큰 복을 받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은 누림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비록 자기는 옥탑 방에 살지만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볼 때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복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권을 맡기셨음을 기억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복을 말합니다. 보통 그들이 말하는 오복은 장수, 부귀, 강녕, 유호덕, 고종명입니다. 물론 이런 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은 이런 육신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복이요, 하늘의 복입니다. 내적인 복이요, 영적인 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크게 복 있는 사람도 있고, 복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구분하고 있고요. 다만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복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은 복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복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복에 대한 가치관이 다릅니다. 진짜 복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수준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안에 살면서 복이 없다는 사람이 최고로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믿는 성도가 복된 사람이요, 복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주안에 살면서도 자기 자신이 무슨 복을 받았는지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영적 세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며, 결과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리면 복은 잘 버리고, 잘 취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버릴 것을 버림이 축복이요, 취할 것을 취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없는 것이 복이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있다 해서 복이 아니요, 아무 것이 없다 해서 복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꼭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복이요, 꼭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없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복은 부정적인 것을 버리는 것이요, 긍정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부정적인 것을 축소하고 긍정적인 것을 확대하는 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본문도 그런 각도에서 복 있는 사람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복 있는 자가 되십시다. 복 있는 사람답게 사십시다.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다. 한번 옆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다. 내가 복 있는 사람 같습니까? 아니면 복 없는 사람 같습니까?

 

당신이 복 있는 사람이라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복 있는 사람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복 있는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복 있는 사람이라고 큰 소릴 쳐도 복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지 못한다면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없는데 무슨 복을 말하고 전하겠습니까? 복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복 있는 자의 삶을 살겠습니까? 주안에서 내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본문을 통해서 증거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입니다(1절)

 

복 있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보통 복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이른바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와 상종하지 아니하고, 의로운 자들과 함께 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한 사람의 의인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적당한 악인의 끼와 죄인의 끼와 오만한 끼를 다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주변에 살지라도 그런 자들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거나 추종하지 아니합니다. 이른바 시편 기자가 말하는 세 부류의 의롭지 못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라도 그런 사람들과 동화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오리가 물속에 들어가도 물속에 가라앉지 않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믿는 자의 주변에 의롭고 경건하고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자들과 불가불 섞어져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추방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 있는 사람은 그런 자들의 삶의 방식을 동경하거나 상종하거나 추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머리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자기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비록 성도된 우리가 악한 자들과 더불어 살아갈지라도 그들과의 연합은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자성어에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과 가까이 하면 나도 모르게 오염이 되고 닮아갑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악인의 꾀나 죄인의 길이나 오만한 자의 자리는 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입니다. 악인들은 악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죄인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가끔씩 믿음 안에서 산다고 하는 성도들이 그런 자들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 절대 그런 자들의 삶의 방식을 동경하거나 상종하지 아니하며 추종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는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 있는 사람은 할 것과 안할 것을 잘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을 모르는 사람들은 구분을 못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자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아는 자이며, 자기가 처신해야 할 자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가야할 자리와 가서는 안 될 자리, 있어야 할 자리와 있어서는 안 될 자리, 앉을 자리와 누울 자리를 잘 구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는 처세술입니다.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능한 사람은 아무와 교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습니다(고후6:14). 왜냐면 그들에게는 신령한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신령한 복을 맛본 사람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이 신령한 세계도 맛을 본 자가 신령한 복을 누릴 줄 압니다. 때문에 신령한 복을 사모하고 추구합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신령한 사람을 알아보고, 신령한 자리를 분별합니다. 하지만 신령한 복을 모르는 사람은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나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감각으로만 살아갑니다. 육신적인 감각으로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과의 교제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자리라도 기꺼이 거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자와 교제합니다. 복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사모하고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자들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와 같이 복 있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은 복 있는 사람이 소극적으로 버려야 할 것을 먼저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복 있는 사람은 악의 꾀를 좇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해야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행동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일입니다(2절).

 

(2)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입니다(2절)

 

복 있는 사람은 최소한 주변 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이른바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아니하고 취하기만 하면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만일 당신이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이요,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죄 많은 세상에서 살아갈지라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가치관은 한 사람이 기대하는 삶의 목적이요, 소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가치관을 이 세상 두고 살아갑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건강과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여 불편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이 사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사실 아무리 고상한 척 하고 살지라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판단하며 평가합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만족과 불만족을 구분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복의 가치관은 성경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얻기에 바쁘고 육체를 위하여 꾸미고 단장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추구하는 모든 복이 땅에 있고 육신에 있으며 현실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3:20).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에는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한시적이고 제한적이며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복은 하늘의 복이요, 영원한 복입니다.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요 목적이며 가치관입니다. 과연 믿음의 성도가 살아가는 인생 최고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 문답 제1문1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 2절도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고백과 일맥이 상통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모든 인생의 참된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입니다.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지시를 받고,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3) 삶의 결과가 다른 사람입니다(3-6절)

 

복 있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나 목적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삶의 결과도 다릅니다. 복 있는 사람에게 드러나는 분명한 특징은 삶에 대한 결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삶의 질이 다릅니다. 항상 푸르고 청청합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항상 생동감으로 충만하고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삶이 싱싱합니다. 다시 말해 삶이 기쁘고 즐겁다는 말입니다. 진짜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동의가 안되십니까? 그것은 지금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인지 아니면 복 없는 자로 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삶이 윤택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복 있는 사람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이유는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항상 푸르고 청청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은 것은 곧이어 다시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나무가 시냇가에 심기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가는 마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푸른 초장이요, 쉴만한 물가며, 물댄 동산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그 행사가 형통하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로마서8장28절 말씀같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복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넘어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일으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손해난 것 같은데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후회 없는 결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후회막급하면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이나 결과라도 미련이나 후회가 없다면 복중에 복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복 있는 사람의 최고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행복이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자기 존재감이 급상승합니다. 죄인들과 거래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그리하거든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요, 행복입니다. 최고로 복된 사람입니다. 이제 당신이 그 주인공이 되십시오. 누가 뭐라 할지라도 분명히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옆 사람을 축복하십시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2015.2.1)

출처 : 예종교회
글쓴이 : 최규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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