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 30. 심판하러 오시리라 마태복음24:32-51
I. 종말론
2012년이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후회가 없으십니까?
오늘은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인생에도 마지막이 있고 역사에도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불변의 진리입니다.
고대 마야 캘린더라는게 있습니다. 이 달력엔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2월 21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는 낭설이 프랑스를 시작으로 온 세계에 퍼져있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부가라슈(Bugarach) 작은 마을로 피하면 멸망을 피할수 있다고 하여 전세계 취재진 300명이 이 마을로 몰려들었고 100명의 경찰이 혼란을 막기위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1일 당일 프랑스 T.V. 여러채널이 지구종말관련 특집 방송을 편성했지만 지구촌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역사를 이끌어왔던 유럽이란 대륙이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로마제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세계역사속에서 183번의 지구종말론 소동이 있었습니다. 지난 20년동안 종말론 소동은 급격히 늘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종말론 등 34개의 종말론이 나돌았습니다.
모두 불신앙적인 작태, 신학적 종말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들이었습니다.
역사의 종착점, 종말론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오신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의 ⅔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대부분 과거형으로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이루신 사역에 대한 고백입니다.
현재형이 한번 나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미래형도 꼭 한번 나옵니다. “심판하러 오시리라”
오늘 설교제목이 “심판하러 오신다”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꼭 하나 주님의 재림에 관한 심판이 곧 이루어 질 것입니다.
심판, 재판을 받는다는 게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재판받아 보셨습니까?
학창시절 유신에 반대하는 데모하다가 조사받고 재판을 받아 보았습니다.
이단연구 잡지 책임자로 있는 동안 기자들이 쓴 기사들로 말미암아 검찰조사를 받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어느 정치인 조사과정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기분 좋을리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하나님 믿지 않는 자를 심판한다”고 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모순되는 일 아닌지요.
그러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오신다는 이 고백은 주를 믿는 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이 말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우선 악인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용서받는 죄에 대해, 회개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에 대해 주께서 다시는 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대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으로 인도함 받아서 선한 보상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 말은 벌 주시기 위해서 오실뿐 아니라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마음의 신원을 풀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상하러 오신다는 의미도 됩니다.
II. 말세와 종말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기독교만큼 종말론이 정확하고 종말론이 강한 종교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정한 종교가 되려면 창조가 있고 부활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어야 됩니다. 창조와 부활과 영원한 세계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을 구원하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종교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말론 혹 말세론이라 이름하는데 종말과 말세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혼동해서 쓸 것이 아니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말세란 예수님께서 이천년전에 이 땅에 오신 초림과 다시 이 땅에 임하실 재림 그 사이 어간에 있는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1세기에도 말세이고 천년전에도 말세이었고 지금도 말세입니다. 영어로 last days.
종말은 말세 중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점 오메가 포인트(αβ...ω 오메가)
말세지말 - The Last Day.
이 종말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의 때.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는 때를 말합니다. 성경에 재림에 관한 언급은 많이 나옵니다. 신약에만도 13절에 한번꼴로 등장 300회 이상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파루시아(parusa). 중요한 방문객의 갑각스런 방문입니다. 총독이 자기 관할 영토에 부임하는 것, 왕이 권세를 가지고 자기백성을 찾아 오는 것 - 이것을 파루시아라 합니다. 예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사건을 말합니다.
II. 종말에 관한 여러 관심들
1) 종말?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 아니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이 있습니다. 종말이 언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올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장 36절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런데 마태복음 16장 28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고 또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여기 있는 제자들 가운데도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성경 주경가들은 우선, 마태복음 16장 후반부에 기록된 이 말씀은 다음장 17장에 있었던 사건과 연결되어지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만인간을 구원하시고 왕이 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동참하고 있는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라고 설명하는 주경가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번에 걸쳐 예수님께서 내가 승천한 이후에 너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는 말씀과 연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성령으로 강림하시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며 교회안에 있는 주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어떤 단체가, 어떤 책이 - 예수 재림의 날짜를 예언하면 앞 뒤 보지말고 무조건 이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백발백중 이단입니다. 재림의 날짜를 알고 있다고 얘기한다든지 그것을 예언한다든지 하면 무조건 이단입니다. 예외없이 이단입니다.
그런데 나는 알아요. 이단은 아니거든요. 나는 예수님 재림 날짜를 알아요. 우리교인들은 모두 압니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 모분 모초. 여러분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안되어요. 날짜를 알고 있으면 이단이니까 누구에게 가르쳐 주면 안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모른다. 우리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깨어 있어야 하고, 내 생애 끝날까지 예수님 오시지 않을 것처럼 준비하고 계획하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종말론입니다.
2) 종말의 또다른 관심 하나는 부활전에 죽은자들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 것인가?
이미 죽은 성도들은 육체가 아닌 영혼이 주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한다.(고후 5:8)
예수와 함께 있을 꿈을 가졌다.(빌1:23)
예수님께서 한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죽음과 동시에 그 영혼이 낙원에 가 있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얘기를 하실 때에 예수님은 낙원에 있는 성도들이나 옥에 있는 영들(벧전3:19)도 의식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관동성명하지 않았는데, 명함 주고 받지 않았는데, 저절로 아는 것입니다. 누가 소개하지 않아도 영혼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III. 종말의 때에
오늘본문 종말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는가? 하는 것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고 지옥은 어떤 곳인가? 이것을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중간세계인 연옥이 있는가 없는가를 대답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면 종말 설교를 통해서 마태가 우리에게 마태교회가 우리교회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
오늘이 종말인 줄로 알고 깨어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예수님께서 홀연히 재림하신다 할지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종말이라 할지라도 후회가 없는 준비된 삶을 살아라 하는 것이 마태복음이 가르쳐주는 종말 설교의 핵심입니다.
32절부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팔레스틴에서 무화과 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곧 여름이 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도 종말의 작은 징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종말이 임박한 줄 알고 깨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젊을 때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됩니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지나고 나면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여기도 약하다 그러고 여기도 문제가 있다고 하고 덜커덕 쓰러져 입원도 하고 수술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 나도 죽는 날이 있겠구나’ 알게 됩니다.
저희교회 장로님들이 15명 정도계시는데 다른교회 장로님들에 비하여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3-4분정도 지난 1년동안 큰 병으로 고생을 했고 1년 내내 그분들을 중보해야될 만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두분 정도는 암으로 선고를 받고 큰 수술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집의 자녀들이 그러더랍니다.
‘아하 우리 아빠도 우리곁을 떠나는 날이 있겠구나’ ‘지금은 아빠가 우리를 돕고 있지만 아빠가 늙으시면 우리가 아빠를 도와야 하는 날도 오는구나’ 아이들이 철이 들더라구요. 이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 종말의 징조들을 얘기가 나옵니다. 이단들이 많아질 것이다.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 미혹하게 될 것이다. 난리와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강해지고 많아지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난 몇십년동안 그 옛날 어떤 시대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많은 종말론적인 징조들이 많아지고 있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복음전파에 대해서 급속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2만 4천 종족 정도가 있습니다. 대부분 큰 부족들 큰 종죽들은 거의 100% 다 복음이 들어갔고 100% 성경이 다 번역되어졌습니다. 성경이 덜 번역되어지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2만 4천 가운데 7000종족 정도 됩니다. 지금까지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어지고 정보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교회에 물적인적 자원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문자가 없는 종족에는 문자를 만들어서 성경을 번역해 주는데도 모든 것이 컴퓨터화되어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옛날에는 한 종족에 들어가려면 수많은 선교사들이 죽기도 하고 고생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고 한 사람이 여러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자녀들 가운데 한 마을과 한 회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종족을 살려내는 인물들이 나오기를 축복합니다.
교회는 교묘히 핍박을 당하고 불법이 세상엔 횡횡한 그런 시대가 오면 마지막 때가 된 줄로 알아라. 난리와 난리 소문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옛날에도 난리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방송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난 다음에는 난리와 난리 소문이 급속히 안방으로 몰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성경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이 그대로 우리속에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7절 - 39절에서는 깨어 있는 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멸망받을 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노아의 때”를 빌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노아는 멸망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성에 맞든지 안맞든지, 상황에 맞든지 안맞든지, 손해가 되든지 유익이 되든지, 미친 놈 소리를 들어도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산위에 배를 지었습니다. 국제 규격의 정식 농구장 20배 크기의 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하나님 방주는 짓기는 짓겠습니다. 그러나 산위에 지으라는 얘기는 거두어 주시지요. 바닷가에 가서 지으면 안되겠습니까? 그럴만도 한데 산꼭대기에 배를 짓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의인입니다. 오늘 저녁에 구원받은 백성인가 아닌가? 가늠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심판을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하는 것이 구원의 갈림길이 되었듯이 나는 종말을 믿는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육체로 재림하고 나는 부활되고 오늘 예수님 재림한다 할지라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종말을 믿으십니까? 예수를 내 인생의 구세주요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 만큼이나 분명히 종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노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주님 다시 오신다. 재림은 한다. 언제 몇날 몇일날 하시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재림한다.
노아는 몸이 아파도 먹을 것이 없어도 피곤해도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날을 소망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병이 들어도 암에 걸려도 이 신앙은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 나는 부활한다. 천국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서 부도가 나도 이 신앙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쫓겨나서 억울해도 이 신앙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세상일이 잘되면 신앙에도 불이 붙고 세상일이 어려우면 신앙이 식어지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에 우여곡절 때문에 내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이것이 노아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실패해서 내속을 썩여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신앙하는 것 만큼 내가 변하지 않는다. 신앙생활 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신앙이 종말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최후 심판의 모형이라 한다면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던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했습니다. 노아와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38절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방주를 지을 때도 비웃었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지는데도 ‘이러다 그치겠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노아가 있는 산으로 근접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자기들이 오를 수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더라도 그 모든 꼭대기보다 물은 더 차고 넘쳤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문을 닫고 들어간 날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습니다. 종말에 무관심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8절에서는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인가? 시집 장가 가는 가정생활을 하면 안된다는 얘기인가? 사고 파는 장사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가? 심고 집을 짓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이 소리가 아닙니다.
여기 “먹고”(트로곤테스)라는 이 말은 욕구에 푹 빠져 다른 일에 무관심한 상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상성에 도취되어 영원을 잃어버린 상태, 천국과 종말 신앙을 상실한 상태, 죄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태, 세속적인 일이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 육적인 일이 인생의 모든 목적이 되어 버린 상태 - 세상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서 그 일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모든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은 시간의 가치들이 오게 될 것이다. 그때 예수님 오신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오늘하고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 가운데 그 어떤 때 보다도 이런 가치들, 먹고 마시고 입고 장사하고 잘살고 국민소득을 올리고 무역고를 올리고 집을 크게 짓고 자동차를 큰 것 사고... 이런 가치들이 모든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는 이것이 너무 중요해서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겨지는 이런 때가 되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된 줄로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든 모르든 여기에 오염되어 있고 세상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요. 이때가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초등학생 학생들에게
꿈을 가져라 그랬을 때 너희는 무엇을 생각하니?
성공하라 그랬을 때 너희는 무엇을 생각하니?
물었을 때 돈과 관련된 대답이 70%를 넘어섰습니다.
때묻는 기성세대들에게 물은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교학생들에게 물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나누어지는 때입니다.
40절 “그때에 두 사람이” 남성입니다. 직장 생활을 함께 하던 두 남자가 밭에서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41절 “두 여자가” 한 집안에서 살던 두 여인을 말합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어머니와 딸.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말은 성경을 번역하시는 분들이 벌써 해석을 가지고 번역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버려두는 사람이 이 땅에 남는 사람이 지옥갈 사람이고 데려가진 사람이 천당 가는 사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데려감을 당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여기에 남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당연히 데려간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그렇게 추측을 할 뿐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먼저 데려감을 당한 것은 알곡입니까? 가라지입니까? 가라지입니다. 먼저 데려감을 당해서 가라지를 먼저 불에 집어 넣었습니다. 남은 것이 알곡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보면 공중으로 데려간 자는 구원받았고 남는 자는 멸망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이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철저하게 한 집에 한 이불 덮고 살다가도 분리되어지고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가도 분리되어지고 손잡고 데이트하다가도 분리되어지는 분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IV. 종말 신앙 : 깨어 있으라!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곧바로 재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자 이들이 조바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곧바로 예수님 재림하실 줄 알고 세상에 나가서 일도 안하고 농사도 짓지 않고 오늘은 이 성도 집에 가서 몽땅 밥해 먹고 쌀 떨어지면 저 성도 집에 가서 몽땅 밥해 먹고 다니며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수도원적인 생활로 예수님의 재림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때 건강한 기독교 종말 신앙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말 설교를 마태 공동체 안에 마태복음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①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 모년 모월 모시에 오신다.
②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듯이 예수는 언제 오실지 모른다. 날짜는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날짜에 관심가지는 것은 비 기독교적인 종말론이라는 것입니다.
③ 우리는 다만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④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통해서 배고픈 자를 먹이고 상처받은 자를 싸매고 영혼이 주린자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결론>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종말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4:7-11)
1.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세상 살아가다가 억울해도 힘든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말고 근신하여 기도해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살아가는 동안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 – 서로 용서하고 죄를 덮어 주라.
마지막때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비판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일이 아닙니다.
3. 청지기인줄 알고 봉사하라. 하나님 나라 섬기고 교회를 잘 섬기고 연약한 지체들을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시는 말로 복음을 전하라. 종말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이단들이 와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재림주가 나타났다고 큰소리쳐도 허둥대지 말고 성령과 말씀앞에 겸손하고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이단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계와 톱밥」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이 톱밥을 태산처럼 쌓인 곳에서 놀다가 값비싼 시계를 톱밥 위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같이 놀던 사람들에게 그 시계 찾아주면 후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아무리 찾아도 톱밥 더미에서 비싼 시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찾겠다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그러다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새참이나 먹고 찾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새참 먹으러 간 사이에 어린 아이가 시계를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시계를 찾았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다 간 다음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봤어요. 그리고 재깍재깍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시계를 찾았더니 모퉁이에 있었어요.
신통한 곳에 있는 줄 알고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 말고 예수님 어디서 올까 언제 임할까? 거기에 관심가지고 휘젓고 다니면서 비지땀 흘리지 말고 말씀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찾아오시는 성령님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는 내 비전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보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해의 끝이 있습니다.
한해의 시작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역사에도 끝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심판하러 반드시 꼭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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