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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 3.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13. 3. 3.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20:8-11, 마12:1-8


I. 기억하라


저는 어린시절 예수를 믿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점이 참 많습니다. 늘 기도의 시간이 부족하고 성경 읽는 시간도 항상 모자랍니다. 약한 자를 돕는 선행도 모자라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못지 않게 잘하는게 몇 가지 있습니다.

- 저는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을 참 사랑합니다.

- 성경말씀을 잘 믿습니다.

- 그리고 평생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어린시절에도, 청소년시절에도 심지어 군대생활을 할때도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주일성수를 잘했습니다. 제게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 오늘같은 복을 받은 그릇이 있다면 성수주일신앙입니다.


구약의 신앙은 절기신앙입니다. 구약에 많은 절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모든 절기의 중심에는 안식일이 있었습니다.

신약에도 절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성탄절, 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러나 이 모든 절기의 중심에 역시 주일이 있습니다. 구약에는 안식일이 있었고 신약에는 주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안식일을 지켜야 했을까요?

안식일은 창조와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2절 - 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도 쉬셨다. 복되게 하셨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신앙을 고백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5장 15절 안식일 명령에 보면 창조 신앙고백과 함께 구원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내가 너를 구원했으니 너는 안식일을 지켜 네가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인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네 번째 계명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remember – 기억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임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구세주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라는 겁니다.


세상 그 어떤 종교에서도 안식일 개념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만 이 안식일 개념을 가있습니다. 대부분 종교에서는 종교 창시자 – 즉 교주의 생일 같은 날을 경축할 뿐입니다. 왜요? 창조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가 없는 종교는 구원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안식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안식을 상징합니다.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날이라”고 말씀하던 성경이 제 이레가 되는 안식일에는 “저녁”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매일 이 안식은 영원한 안식 천국의 안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가야 할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이 안식일에 영원한 안식 – 천국을 선물로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십계명은 각 계명이 한절로 되어 있습니다.

제2계명이 세절 그리고 안식일 계명 즉 제4계명은 네절로 되어 있어

십계명 중 가장 긴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또한 10가지 계명 중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 – 그 중심에서 고리역할을 하는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이 주어지기 훨씬 이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창세기 창조와 함께 주어진 계명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모세의 계명이전 만나가 내릴때도 안식일의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안식일 전날엔 안식일 식량까지 배를 거두어도 상하질 않았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는 십일조를 드리지만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칠일조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10/1일 아니라 7/1입니다.

때문에 계명 중에는 대단히 무거운 계명 중요한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II. 거룩하게 지키라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적들이 쳐들어와도 안식일에는 저항하지 아니하고 그냥 죽어 갔습니다. 요세푸스의 글에도 외경 마카비의 글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많이 나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이 시작되면 학교와 직장의 문을 닫습니다. 버스와 기차도 타지 않습니다. 안식일 전날 슈퍼마켙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안식일 식사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음식을 잘 준비해 놓고 온 가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안식일 시작예배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안식축복기도로 안식일이 시작됨을 온 가족에게 알립니다. 안식일엔 불을 피우지 않습니다. 안식일엔 칼로 빵을 썰지 아니하고 손으로 빵을 뗍니다.

전화벨소리도 멈추어지고 라디오, T.V도 일제히 꺼집니다.

안식일엔 세미나나 회의도 없습니다.


요즘 우리말로 말하면 주일엔 은혜만 받습니다. 당회나 제직회도 하지 않는 겁니다. 이들은 언제 일하고 언제 공부를 했는지 모릅니다. 주일에 학원이 없어도 세계 노벨상의 절대 다수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17일까지 통계를 보면 생리의학상 54%, 물리 49%,

화학 32%, 경제 28% -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들입니다.

이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밝힌 사람들만을 합한 수치입니다. 통설에 의하면 유대인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까지를 포함하면 그 비율은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지난 2000년동안 기독교 문화가 없었던 동양에선 적어도 서양 기독교 국가들보다 300년은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1년이면 52주, 10년이면 520주, 1000년이면 52,000주 지난 2000년동안 104,000주 300년 더 많은 일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방 기독교 국가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모두 잘 살고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복받는 날입니다.

아브라함 헤셀(Abraham Heschel)은

“안식일이 6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6일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한다.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쉬셨지만 인간은 창조되어 처음 눈을 뜨고보니 첫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안식일에 복을 받아 나머지 6일을 살아 가도록 창조된 겁니다.

안식일은 한 주간 잘 살기 위해 영적인 태엽을 감는 날입니다.

한주간 승리할 양식과 무기를 공급받는 날입니다.


III. 안식일 논쟁


그런데 문제는 신약교회는 왜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오늘 마태복음 본문 2절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바리새인들이 비난을 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구약이 완성되고 신약이 시작되는 400년 기간을 우리는 중간기라 하지요.


이 신구약 중간기에 만들어진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율법의 세칙들이 있었듯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것 39가지 금지조항이 있었습니다.


500m이상 걸어가면 안된다. 음식을 조리하면 안된다. 우물물을 길어 올리안된다. 봉인된 봉투는 뜯어서는 안된다. 자식들이 속썩여도 때리면 안된다. 바느질 한번은 꿰맬 수 있는데 두 번은 안된다. 머리 깎아서는 안된다.

마가 내려가도 두손으로 올리면 노동이다.

글자 두 글자 이상 쓰면 안된다. 지우더라도 두 글자 이상 지우면 안된다. 그 중에 타작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 밀을 잘라서 손으로 부벼서 후후 껍질을 벗겨내고 먹은게 타작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에서 예수님이 내리는 결론의 핵심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6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제사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자비가 충돌되어졌을 때

      자비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똑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2장 27장에는 한 가지 말씀을

더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두고 어떻게 이해하셨는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완전히 폐지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습니다. 안식일 폐지론이지요.

두 번째는 문자 그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안식일 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모형은 폐지되었지만 의미는 오늘날의 주일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이런 종교개혁자들이 세 번째 학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하고 완성하신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제사법을 십자가로 완성하셨듯이 안식일을 부활의 날로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사법은 사라지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제사를 완성하셨듯이 안식일은 사라지고 주일로 안식일의 의미를 모두 담게 되고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율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것이요 의미와 정신만 남아 있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즉 왜 토요일에 예배를 해야지 주일에 예배를 하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왜 우리는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IV. 안식일에서 주일로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떨어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그 기간을 안식일이라고 부르고 그 다음날을 우리는 주일 혹 안식일 다음날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켰을까요? 네. 지키셨습니다.

유대교 전통 가운데 있었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당연히 안식일을 준수했습니다. 심지어 부활하시기 전날도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의 관습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 말씀을 증거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초기까지 기독교회는 안식일도 지키고 주일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이후에 안식준수 사항에 대한 기록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주님의 부활인 주일을 배의 날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안식일도 모이주일도 모이다가 점차적으로 안식일에 모이는 것은 사라지고 주일날 모이는 것은 강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신앙을 고백하고 구원신앙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창조의 완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구원의 완성이라고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구약에서 드렸던 희생제사와 복잡한 예식이 완성되고 폐지되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도 폐지되고 주일이 신앙의 핵심을 지키는 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 지금까지 너희들이 드리던 안식일을 지키지 말아라.

안식일은 폐지했으니까 주일날 예배를 드려라는 말씀이 있으면 좋겠는데 단 한 절도 나타나지 않는데에 오늘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많이 오해하는 무리들도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안식일 신앙이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주일신앙으로 완성이 된 것은 1세기 말이었는데 이 무렵에는 이미 성경의 기록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상 안식일은 폐지되었다. 주일날을 예배의 날로 지키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타나고 있지 않이유입니다. 기록이 될 수 없었지요. 그렇다고 안식일을 예배의 날로 지키라고 하는 기록도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함께 부활신앙고백이 초대교회에서 자연스럽안식일을 주일로 대치하기 시작하고 우리가 지금 지키는 교회력의 중심에 안식일이 아닌 주일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지요.

1세기말 이후에 기록된 문서에는 구체적으로 주일예배신앙이 등장하기 작합니다. 사도 요한이 죽은 다음에 그의 제자 이그나시우스가 기록한 록에 보면 교회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에 모여 예배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가 하면, 초대교회의 예배와 교육의 지침서인 디다케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교회는 매주일 마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떡을 떼고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감사하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단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주일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계시록 1장 10절 “주의 날” Lord's day - 주님의 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요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날이요 주님이 주인이 되는 날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그 주간의 첫날”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매주 첫날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예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회사적으로 유대교 전통, 구약의 배경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후 초대교회 부활신앙과 함께 주일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국교가 되면서 월 단위로 편성되었던 이방의 시간 구조가 주 단위, 일주일, 7일 단위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계 문화는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월화수목금토일 달력을 쓰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부활을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급기야  321년 모든 사람들은 공휴일로 지킬 것을 제정하고 공표하기에 른 것입니다. 이 당시 교부였던 터튤리안 같은 사람은 이 날은 슬픔의 날이 아니다 위축되지 말아라. 이 날은 어디에서도 무릎을 꿇지 말아라. 기뻐 뛰라고 했습니다. 세상일로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아라. 세상에 6일동안 있었노동을 일날은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일에만 전무해라. 마귀에게 을 주지않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으로 무장해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라고 설교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구별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찬양 잘해서 뽐내려고 하다가 연습에 지치고 상처받으면 안됩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주일 봉사는 수고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서로 비판하거나 의견차이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 안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V. 성수 주일


성수주일. 어떻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까? 묻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수주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초기까지 있었던 희생제사, 유대 절기에서 나누어 먹던 음식들, 유대교 안에서 있었던 예식들이 사라지고 오직 초대교회는 “엔 크리스토”-“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고백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그분의 가르침이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일 예배를 통해서 아침에는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에 돌아가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다가 저녁에 모여 떡을 떼는 성찬을 중심으로 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그렇게 하기보다는 한번에 모여서 말씀 듣는 예배를 드리게 되고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비운 다음에 세례 받은 사람들만 남아서 성만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주일을 너무나 자유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구약의 안식일 정신이 그대로 주일 안에 남아 있어야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정통, 장로교 정통은 안식일가지고 있었던 모형은 폐지되었지만 그 정신과 의미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 될 것을 교리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성수주일이라고 할때 주일은 어떤 날인가? “그치는 날”입니다.

중지하는 날입니다. 히브리어로 안식 - “사바트”라는 것은 “그치다, 중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을 중지하는 날입니다.


2) 성수주일은 쉼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치고 쉬신 것처럼 성도들은 주일날 쉬는 것입니다. 쉬는 것은 창조질서입니다. 노동을 쉼으로써 육체도 쉬고 마음도 쉬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통해 영적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잘 쉬기 위해서는 쉴만한 물가가 필요하고 푸른 초장이 필요하듯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일날에는 말씀 안에서 쉬는 날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3) 성수주일은 은혜를 받아들이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나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날입니다. 특별히 전 세계 교회 공동체의 가치를 나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날입니다. 한소망교회 성도가 되었으면 한소망교회의 가치를 나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날이 주일날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야 교회 동동체가 건강해 집니다. 물질을 섬기는 교회에 드려서 교회 공동체의 영향력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온전히 교회 공동체에 담음으로서, 또 우리교회에 주신 성도들과 소중하게 교제함으로써, 입원한 성도들을 찾아보고 주일 낮 예배를 드리지 못한 성도들을 찾아가서 심방을 하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찾아가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가치를 우리의 날로 받아들이는 날이 주일날인 것입니다.


미국의 벤자민 헤리슨 대통령때 체신부 장관을 지낸 백화점의 창시자 존 와나메이커를 아십니까? 그가 장관으로 지명을 받았을 때 정중하게 거절하며 말합니다.

“저는 성수주일신앙에 타협을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는 일을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장관직은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주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말에 대통령은 주일 성수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를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존 와나메이커는 19살에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85세까지 자그만치 67년 교회출석과 교사직 개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 가운데 주일에 공연이나 촬영을 하지 않고 있는 성실한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존경받는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은 그래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