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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 (디모데후서 4:9~18)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 (디모데후서 4:9~18) 
   
딤후 4:9-18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항상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했습니다. 예컨대 이러한 것들입니다.
1) 샤워를 할 때 노래를 불러 보라.
2) 항상 치아를 청결히 하라.
3) 잘 닦인 구두를 신어라.
4) 악수는 굳게 하라.
5) 이따금씩 모르는 사람의 주차요금을 대신 내 주어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특별히 저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새로운 유머를 알아두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저와 여러분의 즐거운 삶을 위해서 제가 최근에 들었던 유머를 한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영화를 찍는 감독이 죽을 때에는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나 이제 죽습니다. Ready go!"
일평생 동안 "Ready go!"라는 말만 외쳤으니까, 자기가 죽을 때도 그 말을 외치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미디언은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웃지 마세요! 저 진짜로 죽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의사는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드디어 내가 우리 집 매상을 올리게 되었도다!"
그러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세 가지 정도 유형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죽음을 기피하는 형입니다.
"내가 왜 죽어? 나는 안죽어! 의사가 잘못 진단했지! 그럴 리가 있나?"
끝까지 죽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죽음을 탓하는 형입니다.
"그래 맞아, 내가 죽어도 싸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자학하거나, 반대로 "내가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아내를 잘못 만나서, 내가 직장 상사를 잘못 만나 그 스트레스로 이렇게 죽는거야!"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형입니다.
셋째로, 죽음을 소망하는 형입니다. 죽음의 저 건너편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형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본문 앞에 있는 6∼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감격 가운데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순교를 예감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것입니다. 또 거기다 계절적으로도 겨울이 가까웠습니다. 그러한 때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유언같은 편지를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계속해서 2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그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지중해에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나빴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물결이 세차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어 출항하는 배를 타지 못하면, 몇 달 지나서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모습을 꼭 한 번 더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기 전에 어서 속히 자신에게로 오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겨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겨울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특별히 계절의 겨울뿐만 아니고 우리가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편의상 세 대지로 나누어서 오늘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인생의 겨울을 조금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맞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울의 삶 속을 거쳐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데마, 마가, 알렉산더의 세 사람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여기에 나오는 그레스게와 디도는 신실한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일 때문에 부득이 바울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데마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바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해서 자기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던 것입니다.
옥중서신인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말미에 보면 데마의 이름이 나옵니다. 거기서 바울은 데마를 가리켜서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데마는 어느 순간까지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잘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래 계속되니까, 참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한 채 자기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데마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말았구나!"
지금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데마, 그 나쁜 놈! 나를 배신했어! 그러니 디모데야, 너는 그런 놈일랑 두 번 다시 상종하지 말아라!"
이런 의도로 말씀하는 것입니까? 아닌 줄 압니다. 지금 바울의 마음 속에는 데마를 향한 연민의 정이 있습니다. 데마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 이제 얼마나 더 산다고 그랬을까? 데마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텐데.  데마가 그것을 참지 못했구나!"
데마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으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줄 압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함께 했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별로 고생을 안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선교여행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환난이 많았을 것입니다. 핍박도 있었습니다. 결국 마가는 중도에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와버렸습니다.
그 뒤에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때 바울은 일언지하에 딱 잘라서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졌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선교 여행을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텐데, 그 때 마가의 아팠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를 불러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야, 그 때 힘들었지? 마음이 아팠지? 섭섭했지? 그 때 내가 좀 심했을거야. 미안하다!"
그러면서 마가를 불러 위로하고 난 뒤 바울은 하나님에게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잘못은 어디까지나 마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뒤에 14절 이하에 보면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울의 대적자였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혔던 사람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이렇게 저렇게 방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알렉산더를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사사로이 그를 고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4절 말씀을 보니까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15절에 보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를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 끝 부분에 보니까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드리셨던 기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드린 기도를 우리에게 연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알렉산더로부터 많은 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알렉산더의 허물을 이해해 주고 덮어주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 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데마와 같이 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가처럼 화목하지 못하고 우리가 사과해야 될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또 알렉산더처럼 우리에게 많은 해를 입힌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떠한 심정으로 신앙 생활을 해 왔습니까? 신앙이라는 이름 한 가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마음에 못질을 한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바울처럼 너그러운 마음과 사랑의 온정을 가지고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용서해야 될 사람은 용서해 주십시다. 그리고 사과해야 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신앙의 담력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바울처럼 겨울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서 로마로 오는 도중, 드로아에 잠시 들러서 자신이 가보의 집에 맡겨놓은 두 가지를 대신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겉옷을 가지고 오고"입니다. 겉옷이란 털로 만든 두툼한 겨울 외투를 가리킵니다. 그 때는 옷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두터운 털옷이라 꽤나 무거웠을 것입니다. 바울이 더울 때는 그것을 들고서 선교 여행을 하기에 짐이 되니까, 그것을 잠시 가보의 집에 맡겨 놓은 것입니다.
이제 계절적으로 겨울에 가깝습니다. 날씨가 추워집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나이도 많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추위를 더 많이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육신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자기의 겉옷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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