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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1~6) 
   
시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금년 한 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복을 매일 매 순간 풍성하게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복된 모습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큰 호텔에 어떤 노신사 한 분이 손님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다가가서 그 호텔 가운데 가장 값싼 방을 자기에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직원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쟌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라고 밝혔습니다. 그제야 직원은 깜짝 놀란 듯이 그의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당대에 세계 제일의 갑부인 록펠러였음이 분명했습니다. 직원은 의아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회장님! 당신의 아드님도 시카고에 오면 언제나 이 호텔에 머무르고 가십니다. 그 때마다 당신의 아드님은 항상 제일 좋은 방을 요구해서 그 방에서 몇 일 동안 묵어 가는데, 어떻게 당신은 제일 값싼 방을 요구하십니까?"
그 때 록펠러는 껄껄 웃으면서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자명하지 않소? 내 아들에게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 같은 아버지가 없거든요."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들이 멋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복을 누리고 호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부자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녀들입니다. 금년 한 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풍성하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옛날 어느 임금님이 민정사찰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신하 한 사람을 시켜서,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큰 길 한복판에 큰 돌덩어리 하나를 갖다 놓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낮이 되어서 임금님은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앞에 돌이 있건만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지나쳐 갔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 그만 그 돌에 발이 부딪혀 넘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멩이를 치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욕지거리를 하면서 불평하기 일쑤였습니다.
"도대체, 어느 못된 녀석이 길 한 복판에다가 이렇게 큰 돌을 갖다 놓았단 말이냐?"
한참 뒤 어떤 노인 한 분이 지게를 지고 가다가 그 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게를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안간힘을 다 써서 그 돌을 길옆으로 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다시금 돌아와서 지게를 메려고 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돌 밑에는 듬직한 엽전 꾸러미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편지 한 장이 놓여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돌을 옮긴 사람에게 이 엽전 꾸러미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기회주의자처럼 그저 요리피하고, 저리피하면서 사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원망이나 하면서 보내시겠습니까? 금년에는 그렇게 살지 맙시다. 적극적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돌을 치워가면서 삽시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누가 내게 복을 갖다주기를 바라지 말고, 복 있는 사람으로서 복을 만들어 가면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받을 복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3절입니다.

우선 1∼2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있고, 3절에서는 그가 받은 복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이 되면 받은 복은 절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복 받을 그릇은 준비되어 있지도 않은 채, 복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옛말에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등은 다 까마귀들이나 가까이할 곳들입니다. 흰 옷 입은 백조들, 곧 하나님이 입혀주신 거룩한 의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런 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리로 삼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보면 죄의 점진적인 특성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애당초부터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앉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그가 왕궁의 옥상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저 아래에서 어떤 아리따운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 슬그머니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떨쳐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하를 시켜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고 만 것입니다.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그의 남편 우리아는 지금 전쟁터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서 밧세바를 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인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덜커덕 임신을 해 버렸습니다. 다윗은 자기와 밧세바 사이의 일을 감추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렀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관한 몇 가지 소식을 묻고 나서 그를 집에 돌려보내 아내와 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충직했습니다. "내 동료들이 지금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어찌 나만 편히 쉴 수 있으리오?" 그러면서 아내와 가까이하지를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방에 보내서 그를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오만한 자리에까지 앉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도 몰랐습니다.
죄라는 것이 본래 그렇습니다. 악인의 길을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인의 길에 서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애당초 그 모양까지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코만 들어오면 다이다!"라는 인도의 속담이 있습니다. 그 덩치 큰 코끼리가 코만 들어오면 나중에는 그 거대한 몸까지 비집고 들어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단칼에 처치해 버려야지, 그렇지 않고 악인의 꾀를 생각하게 되면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나아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특성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으로 그를 깨우치셨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성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시금 그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으로 그의 영혼이 다시금 소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을 멀리합니다. 그 대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말씀에서 생수를 얻고, 그 말씀을 지키면서 거기서 기쁨을 얻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924년 불란서 파리에서 제 8회 하계 올림픽 대회가 열렸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100m 경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영국의 대표로 출전하게 된 선수가 에릭 리델(Eric Ridell)이었습니다.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영국은 한 번도 100m 경주에 우승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국민의 기대가 그에게 모아졌습니다.
드디어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습니다. 100m 경주는 주일날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델은 자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않고, 경기장에 나갈 수는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여론이 빗발치듯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경기인데 어느 특종 종교로 인해서 피해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웨일즈 왕자까지 그에게 친서를 보내어서 100m 경주에 참여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단호했습니다.
"내게 있어서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소중한 것이다!"
결국 그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국의 올림픽 위원회는 100m 경주에는 다른 선수를 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리델에게는 그 대신 400m 경주에 출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록보다도 미국 선수가 이미 더 좋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00m 경주에 출전해서 47.6초로 세계기록을 갱신하면서, 당당히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꿋꿋하고, 푸른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의로운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는 환경과 여건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늘 푸른 신앙을 가집니다. 꿋꿋합니다. 그리해서 그 열매는 더욱더 값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삶을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그의 행사는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 모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푸른 신앙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악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의인은 꿋꿋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불안정합니다.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면서 쫓기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추수할 때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입니다. 그러나 겨, 곧 쭉정이는 쓸어서 불태워버립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때는 추수 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없습니다. 죄인은 구원받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육체적인 향락을 취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온 세상이 인간의 죄악으로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은 방주를 만들게 해서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방주의 문을 하나님이 닫아 버리셨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구원함을 받았지만,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은 홍수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결코 구원받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시 그 땅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온 땅에 물이 넉넉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의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곳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너무나도 악했습니다.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로써 심판하셨습니다. 의로웠던 롯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서 진멸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결코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불태워질 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신문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서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리차드 닉슨을 사임시켰던 신문입니다. 또 최근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 대상으로 몰고 가기까지 했던 신문입니다.
1980년 7월 28일자 워싱턴 포스트 1면에는 "지미의 세계"라는 기사가 대서특필이 되었습니다. 자넷 쿠크라는 26살된 흑인 여기자가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지미는 8살된 소년으로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상습적으로 마약주사를 맞았습니다. 여기자는 그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치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고서 충격에 휩쓸렸습니다. 아무튼 그 기사로 인해서 그 때까지 무명이었던 자넷 쿠크는 일약 명기자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신문기자들의 최고의 명예인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론들이 경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린 소년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경찰력을 다 동원해서, 지미라는 소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소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소년이 실제적인 인물이 아니고, 자넷 쿠크라는 여기자가 출세할 야심에서 꾸며낸 인물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어쩔 수 없이 그 기사가 허위보도였음을 독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물론 그 여기자는 완전히 매장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즉시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더욱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서 "대저"라는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왜 의인이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을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을 인정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가다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서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의 입을 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다니엘을 모함하다가 그들이 대신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나운 사자들이 뛰어올라서 그들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뼈까지도 부수뜨렸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축복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두 청년은 술집에 가서 술이나 마시면서, 포커나 할 생각으로 술집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집회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종소리가 그들 가운데 한 청년의 마음 속에 깊이 와 닿게 되었습니다. 교회 정문에는 예배를 알리는 게시판이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 보니까 그 날의 설교 제목이 쓰여 있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은 그것을 보는 순간 도무지 마음이 찔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구에게 권했습니다.
"여보게, 우리가 다른 날도 아니고, 주일날 술집에 가서 술 마시며 도박판에 끼어 든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내키지 않네. 그러니 술집일랑 다른 날에 가도록 하고 오늘은 예배나 드리세."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옥신각신하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은 교회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온전히 회개하고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홀로 어머니를 모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은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법률회사의 사무원으로 취직해서 성실히 일하고 틈틈이 법률공부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정치 방면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신앙에 기초하여 부정 부패를 척결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래서 1981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가까이에 있는 버팔로 시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조금 더 큰 뉴욕 주지사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1984년에는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 신문사들은 그 기사로 1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교도소에서는 어떤 늙은 죄수가 그 신문을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신문을 읽다말고 왜 웁니까?"
그는 신문을 가리키면서 간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30년전만 하더라도 이 사람은 나의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우리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나서 각자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 때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던 제 친구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이 이야기에 나오는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미국의 제 22, 24대에 걸쳐서 대통령을 역임한 글로버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Cleveland라는 도시도 생겨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년 한 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푸른 신앙을 소유하고,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를 위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시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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