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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1~9)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1~9) 
   
마 13:1-9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씨뿌리는 비유 또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이 어떠한 배경에서 이 비유를 주셨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약성경 속에는 모두 네 권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입니다. 이 복음서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각 복음서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습니다.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예컨대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합니다. 반대로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섬기는 종으로 묘사합니다. 마가복음은 제일 짧습니다. 예수님은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우리를 섬기시는 종으로서 일하시는 모습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인자되심, 곧 사람의 아들이심을 묘사하면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인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의 왕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세계(世系)라는 말은 족보라는 뜻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윗의 왕권을 그대로 이어받은 분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장을 보면,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의 증언을 통해서 왕되심이 입증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무엇이라고 물었습니까? 2:2의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의 말 그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의 증언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은 누구였습니까? 왕 앞에 가서 왕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3:2의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왕으로서 이 땅에 그의 나라인 천국을 구현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장면이 나옵니다. 왕되신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참되신 왕이심을 입증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세 장인 마태복음 5, 6, 7장을 가리켜서 우리는 일명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왕되신 예수님이 그 나라 백성들에게 삶의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은 권세있는 왕으로서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세 장 8, 9, 10장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종 병든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서 왕되신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11장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치심과 베푸신 능력을 통해서 왕되신 것을 보여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가운데는 왕되신 예수님을 영접치 아니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책망하셨습니다. 11:21∼23절의 말씀입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 날까지 있었으리라."

왕되신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단호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잃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향해서는 계속해서 초청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1:28∼30절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에 대한 배척은 12장에 보면 그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그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 악령이 들린 사람이다!"라고 까지 비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연고로 12:32의 말씀처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게 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 백성들을 향해서는 초청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5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여러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변화산상에서 구름에 둘러싸인 세 제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7:5의 말씀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왕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왕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와 같은 의문이 한 가지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심이나 그 능력으로 보아서 왕으로 오신 분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왕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배척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여러 가지 비유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가운데 첫번째인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13:18∼23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부연해서 말씀드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단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꼭 깨달아야 중요한 교훈들을 몇 가지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뿌리는 자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또 더러는 돌밭에 떨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다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나아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길가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서 아예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돌밭처럼 흙이 얇아서 그저 말씀을 듣는 척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보다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믿음이 깊이 박히지 못하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 같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옥토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씨뿌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능력입니까? 재능입니까? 말 잘하는 것입니까? 웅변을 잘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씨뿌리는 사람은 그저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부지런히 나아가서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농부인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린다고 한 번 가정해 봅시다. 물론 아이는 아버지처럼 씨를 잘 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뿌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투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뿌렸든지 간에 옥토에 떨어지기만 하면 똑같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가 바로 이점입니다. 나가서 뿌리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책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옥토가 많이 있습니다. 비록 서툴고 정확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듣고서 옥토에 뿌려진 씨앗은 아름답게 싹을 트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150년 전인 1850년 12월 6일 주일이었습니다. 영국의 콜체스터라는 작은 도시에는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 바람에 교통이 두절되어 버렸습니다. 그 도시에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기에 힘썼던 10대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교통도 마비되고, 심한 눈보라 때문에 평소에 자신이 출석하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몇 명되지 않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또 그 날 따라 그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이 출타중이라 무명의 한 평신도가 대신 강단을 맡고 있었습니다. 몇 명 안되는 성도들을 앞에 놓고서, 평신도 설교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구약성경 사45:22의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그는 그 말씀을 기초로 해서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설교를 했습니다. 서투른 설교였습니다. 깊이가 있는 설교는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년은 그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아버지가 목사이고 내 할아버지가 목사이건만, 나는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마음 속에는 과연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괴로운 생각이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평신도 설교자가 소년을 보고서 한 마디 던졌습니다.
"젊은이, 내가 보건대 당신은 매우 곤고해 보입니다. 그럴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세요."
지극히 평범한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소년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의 잠자는 심령을 깨워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붙들고 일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소년이 나중에 누가 된 줄 아십니까?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던 찰스 스펄젼 목사님입니다. 이름 없는 평신도 설교자의 한 마디 말씀이 그의 마음 속에 박힐 때, 그 말씀이 그를 변화시켰고 그의 일생의 좌우명이 되어 그를 붙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말주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남 앞에서 말을 하려면 부끄러움을 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나아가서 부지런히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의외로 옥토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은 옥토에 뿌려질 때 혹은 100배, 혹은 60배, 혹은 30배의 결실을 맺기 마련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서 뿌리십시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밭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네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첫번째는 길가입니다. 흙이 단단합니다. 굳은 땅입니다. 두번째는 돌밭입니다. 위에 흙이 얇게 깔리고 밑에는 자갈인 땅입니다. 세번째는 가시떨기가 나있는 땅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잡초가 무성한 땅입니다. 네번째는 좋은 땅입니다. 말 그대로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땅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종류의 밭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선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네 종류의 땅이 모두가 밭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밭이 씨앗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농부가 바닷가에 나아가서 물 위에 씨를 뿌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길가나 또 흙이 얇은 돌밭이나 가시떨기가 나 있는 땅이나 모두 밭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씨앗을 다 받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땅의 상태입니다. 상태를 조금만 바꾸면 얼마든지 적합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 시간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다고 생각됩니까? 이렇게 기도합시다.
"오, 주여! 내 마음을 갈아서 부드럽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흙이 얇은 돌밭과 같다고 생각됩니까? 이렇게 기도합시다.
"오, 주여! 성령의 보섭으로 내 마음을 깊이 갈아주셔서, 말씀이 내 심령의 깊은 곳에 묻히게 해 주옵소서."
우리 마음이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가시덤불로 차있습니까?
"하나님이여! 이 시간 성령의 불로서 내 마음 속에 있는 세상적인 생각들을 다 불태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서 혹은 100배, 혹은 60배, 혹은 30배의 결실을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부드러운 마음, 열린 마음을 가지셨던 한 훌륭한 장로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의 산정현 교회에서 시무하실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예배를 인도하시는데 그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그 날 따라 예배에 늦게 참석하셨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서 자기 자리에 앉으시려고 하는 모습을 주기철 목사님이 강단 위에서 보셨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 예배 끝날 때까지 뒤에 서 계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장로님을 벌 세워 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계속해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장로님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뒤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마 속으로 불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래도 장로인데 나를 이렇게 대접하다니.' 거기다 그 장로님은 주기철 목사님이 오산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를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따지면 스승과 제자 사이입니다. 장로님은 목사님보다도 훨씬 연세가 많으신 분입니다. 또 거기다 주기철 목사님을 산정현 교회로 초빙한 장본인이 바로 그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는 괘씸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목사님의 말씀을 전혀 고깝게 듣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뒤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다 끝난 뒤에 겸손하게 머리 숙여 교인들 앞에서 사죄했습니다.
"본이 되어야 할 장로가 여러분 앞에서 본이 되지 못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목사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될 장로가 오히려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장로님이 누구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조선의 깐디라고 불리우며,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고당 조만식 장로님이십니다. 만일 오늘 예배에 늦게 들어오신 분에게 제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장로님은 고사하고 평신도들이라도 아마 다음주부터 안나오실 분들 많을 것입니다. 이런 장로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 장로님은 무능해!"라고 흉보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장로님을 존경했을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는 무엇인가 다르구나! 정말 훌륭하신 분이구나! 우리가 본 받을 점이 많구나!"
그 분을 높이 평가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옥토와 같은 부드러운 마음, 열린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뿌려질 때 100배, 60배, 30배의 아름다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뿌려지는 씨앗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책임은 열심히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밭은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씨앗이 좋아야 합니다. 종자가 좋아야 합니다. 예컨대 옥토 위에 가시나무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통 밭 전체가 가시덤불로 뒤덮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생각으로도 뿌립니다. 말로도 뿌립니다. 행동으로도 심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여러 종류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단 두 종류의 씨앗 밖에 없습니다. 갈6:8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는 육체에 속한 씨앗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령에 속한 씨앗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에 속한 씨앗을 심으면 썩어질 것, 냄새날 것, 부패할 것밖에 못 거둡니다.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어야 우리가 영적인 것, 축복된 것, 영생할 것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는 것, 육체의 씨앗을 죽이고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시126:5∼6절 말씀을 보십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읍시다.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의과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습니다. 하루는 돈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기가 평소에 아끼던 서적 몇 권을 헌 책방에 팔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책방까지 힘들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책방의 주인이 병들어서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는 낙심되어 기진맥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는 도중 너무 힘들고 허기가 져서 근처에 있는 집에 들어가 냉수라도 좀 얻어 마시고 쉬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그 집에 어른은 없고,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의대생은 그 여식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무거나 좋으니까 먹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좀 줄 수 있겠니?"
그러자 여식아이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의대생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밖에 일하러 가시고 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어요. 이것은 점심 때 먹으라고 엄마가 저에게 남겨주신 것이에요. 괜찮으시면 이것이라도 드시고 힘내세요."
그는 너무나 고마웠을 것입니다. 가난한 의대생은 그것을 가지고 허기를 채웠습니다. 다 먹고 난 뒤에 그 집의 주소를 적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이름과 또 아이의 어머니의 이름을 받아 적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어떤 부인이 병이 들었습니다. 수술을 해야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수술이 잘 끝났습니다.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부인의 딸은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그런데 수술비가 엄청나게 나올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비 계산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계산서에는 깜짝 놀랄 만한 금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입원비와 수술비를 합쳐서 도합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임. 그리고 그 값은 이미 지불되었음."
무엇으로 심든지 나중에 다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다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거두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기도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 하나님이여! 부지런히 열심을 가지고 씨앗을 뿌리게 해 주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갈아주시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이 옥토가 되게 해 주옵소서. 좋은 씨앗, 성령에 속한 씨앗을 심게 해 주옵소서. 그리해서 내 삶 속에서도 매일 매순간 100배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쏟아지게 해 주옵소서."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덕유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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