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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딤전 2:1~7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딤전 2:1~7
이름 김광일목사
첨부


제목 없음

어느 가정에 어린 아들이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여보, 앤드류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소. 수술비가 모자라니 어쩌면 좋을까요? 기적만이 앤드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소.” 부모의 대화를 엿듣던 여자 아이는 동생을 기적만이 살릴 수 있다는 아빠의 말을 새기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숨겨 놓은 유리병을 꺼내 속에 있는 동전을 방바닥에 쏟아 놓고 세고 또 세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전을 유리병에 담아 옷깃 속에 감추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걸어가자 자그마한 약국이 나타났습니다. 여자 아이는 조제실 앞 유리에서 약사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약사는 누군가와 대화하느라고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동전 하나를 꺼내 유리창을 두들겼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목을 내민 약사는 귀찮다는 어조로 대꾸했습니다. “뭘 원하니? 오랜만에 형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야”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기적을 사러 왔어요” “뭐라고?” 약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남동생의 이름은 앤드류인데요 머리 안에서 나쁜 것이 자라고 있대요. 아빠가 그러시는데 기적만이 동생을 살릴 수가 있대요. 그런데 기적이 얼만가요?” “우리 가게에서는 기적을 팔지 않는다. 안됐다만 너를 도울 수가 없구나약사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아저씨, 여기 기적 값을 갖고 왔어요.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기적을 구해 주세요여자 아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신사가 아이에게 다가왔습니다. 약사의 형이었습니다. “얘야, 남동생은 어떤 기적을 필요로 하지?” “저도 모르겠어요. 동생은 머리가 많이 아파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용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 돈을 쓰려고 해요.”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데?” “1달러 11센트요.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아니다. 동생을 위한 기적 값이 네 돈이랑 맞아 떨어졌구나신사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니? 내가 네 동생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구나. 아마 네가 원하는 기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신사는 다름 아닌 당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던 뇌수술 전문의 칼 암스트롱(Carlton Armstrong) 박사였습니다. 그는 앤드류의 병이 자기의 전공인 것을 알았고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시행되었고 수술비는 무료였습니다. 물론 가장 기뻐한 것은 앤드류의 부모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비싼 수술비를 면제받은 것인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자 아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의 값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값은 정확히 1달러 11센트였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여자 아이의 간절한 소원이 가산되었습니다.

소원은 장차 이루어지기 위해 갖는 기대를 뜻합니다. 사전적 정의는 할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향한 소원이 있습니다. 능히 하실 수 있지만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녀의 몫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일로 맡겨 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마음에 불타고 있습니까? 새해는 우리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려 힘쓸 때 우리 소원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원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배가 회복되는 교회

주일 아침, 한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허둥지둥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예배가 시작된 지 오 분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그날도 주일예배는 지난주와 다름없이 정해진 순서를 따라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주보에 적힌 별 모양의 표시를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예배순서를 따라갔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표기도에 이어 성경봉독을 하고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론도 채 끝나기 전에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눈꺼풀에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가끔 고개를 흔들어보고 허벅지를 꼬집고 떨어트린 성경책을 다시 주워보지만 졸음의 위력은 너무도 컸습니다. 부부는 설교 듣는 것을 포기하고 아예 고개를 숙이고 깊은 묵상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모가 고개를 꾸벅이고 있는 사이 아이는 주보로 비행기를 접어보기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습니다. 지루해진 아이는 졸고 있는 엄마의 옆구리를 고사리 손으로 툭 쳐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근엄한 톤으로 말하고 있는 아저씨의 연설은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몸을 비틀고 요동을 치다 인내가 한계점에 달한 아이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 아저씨한테 빨리 요금 주고 집에 가자!”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예배의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형식적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라고 볼 수 없습니다. 화석화된 죽은 예배에서 살아있는 예배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시편 203절입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나가기 전에 시온의 성소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소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그 제사를 받아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제사 즉 예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예배를 중시하는 모습은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는 청진기와 같습니다. 신앙의 수준은 예배의 질을 통해 결정됩니다. 예배 시작 30분 전부터 기도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면 은혜도 더욱 넘치게 됩니다. 또한 예배가 끝나도 아쉬워하며 기쁨과 감격 중에 교회를 떠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축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바쁘다고 예배를 나오지 못합니다. 예배를 거를 정도로 바쁘면 안 됩니다. 예배 자리를 힘써 지키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속의 소원을 아시고 더욱 소중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예배 자리로 나오십시오.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마음속에 품은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의 능력 얻는 교회

메리 베르게세(Mary Verghese)는 수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인도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기념으로 졸업생들과 어울려 마차를 타고 소풍을 갔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추월하던 마차가 중심을 잃고 세 바퀴나 구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메리는 닷새 후 겨우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렇지만 허리 아래가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던 그녀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입니다. 메리는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한없이 울었습니다. 병석에 누워 지나간 비극적인 사고를 되새기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서 찬송 구절이 퍼져 나왔습니다. “내 손을 잡으사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그 순간 놀랍게도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인도에서 유명한 외과 의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메리, 수술 보조원으로 나와 함께 일하지 않으시겠어요? 병원계단을 개조하고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되지 않아요.” 그녀는 문둥병으로 불구된 사람들 틈에서 일하며 인도 제일의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걸을 수 있는 다리를 구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것입니다. 놀라운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모름지기 기도의 능력을 얻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디모데전서 28절입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거룩한 손은 정결한 마음과 인격을 가리킵니다. 그런 모습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지만 자녀된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통치하시는 도구로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기도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계 지도가 그려진 점퍼를 입고 한 손에는 지구본을, 한 손에는 성경을 든 오엠 국제선교회의 조지 버워(George Verwer) 박사는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듣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마치 지렛대의 원리와 같습니다. 지렛대를 사용하면 힘이 적지만 큰 것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지렛대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의 능력을 얻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전도의 열매 맺는 교회

호주 시드니의 조지가의 거리에서 오가는 행인들에게 40년간 전도를 한 프랭크 아서 제너(Frank Arthur Jenner)의 이야기 입니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주님을 영접하고, 40년간 매일 거리에서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두 마디의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Are you saved)?” “만일 당신이 오늘밤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If you died tonight, Are you going to heaven)?” 그러나 본인 스스로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그의 긴 전도자의 삶은 열매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거리 전도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올 때에 한 목사가 그를 찾아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목사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시드니 조지가의 거리 전도자의 질문을 받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제너의 전도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파악된 수만 14만명이 넘었습니다. 자신의 전도가 헛되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음을 전해들은 제너는, 며칠 후 감사와 평안 가운데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믿고 복음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나님의 소원은 죽어 가는 영혼, 멸망으로 치닫는 영혼, 한사람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깨닫고 이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단 한마디의 외침이 삶을 180도 바꾸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기만 하면 그 다음의 일은 성령께서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그 열매 맺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중국 교회의 지도자 워치만 니(倪柝聲)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형제가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석한 세 사람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카드놀이를 함께 할 것을 형제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상대방이 카드놀이 할 줄 모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형제는 웃으며 할 줄은 알지요대답했습니다. “그럼 손은 두었다가 무엇을 하시게요?” 그러자 형제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이 손은 제 손이 아닙니다. 이 손으로 카드놀이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세 사람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말입니까?” 형제는 조용한 목소리로 최근에 예수 믿게 된 동기와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이 주님의 몸이고 자신의 손도 주님의 손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님의 손으로 카드놀이 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을 것 같아 사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모름지기 하나님의 소원을 자신의 소원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소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능력을 구한 모습은 아닙니까?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원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일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부디 예배가 회복됨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