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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받은 사명-행 20:17~24 (임원임명주일)

예수께 받은 사명-행 20:17~24 (임원임명주일)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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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정글에 천국을 짓는 사람이라는 책은 장요나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베트남의 요나가 되었습니다. 장선교사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에 188개의 교회와 병원을 지으며 복음의 열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래 그는 대기업의 비서실장으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세상이 주는 쾌락에 취해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전신이 굳어지고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 10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이 끓는 사골국물에 빠져 화상을 입고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아들의 생명을 건져 주면 주의 종이 되겠다라고 서원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는 방탕하게 살았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주의 종으로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마비증상이 사라지고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장요나는 자신의 니느웨였던 베트남으로 떠났습니다. 해변도시에 있는 나병 환자의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나환자들은 뭉그러진 손가락이 달린 손목에 새끼줄로 망치를 묶어 돌을 깨고, 삽을 두 손에 묶은 뒤 삽자루를 배로 밀어 흙을 파며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상인들이라면 10개월 만에 끝날 건축이 무려 3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이 완공된 이후 장요나 교사는 비라카미 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현지인 사역자들을 양육하며 목회자를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실명한 한쪽 눈과 굳은 목뼈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한센병의 고통을 알게 하셨고 지체부자유자를 돌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떠한 고난을 당해도 거룩한 꿈을 갖고 시험을 통과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주님과 함께 장차 이르게 될 멀리 뵈는 시온 성을 바라보면서 지구본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장요나 선교사는 그 무엇보다 예수께 받은 사명이 중요함을 알았던 자입니다.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 교회를 섬기며 교인들과 지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빨리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에 에베소를 지나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오도록 권했습니다. 장로들은 바울의 요청을 받고 즉시 밀레도에 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이 피를 흘리고 사신 교회와 성도들을 부탁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별설교를 통하여 마음의 중심을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바울은 사명을 위해 생명을 바치겠노라고 결단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명을 받은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사명을 위해 산다고는 하지만 기분으로만, 감정으로만,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까?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동시에 바울은 사명을 받은 성도들의 올바른 자세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명임을 상기하라고 교훈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받은 사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로 겸손으로 행해야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했기에 백인은 흑인과 예배를 함께 드리지 않고 별도로 드립니다. 성 시온(Holy Church of Zion) 흑인 교회에서 세족식을 베풀어 예수의 겸손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흑인 교회에 백인인 올리비어(Olivier) 대법원장이 방문했습니다. 그는 세족식 시간에 마르타(Martha Fortuin)라는 흑인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백인 대법원장이 흑인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당시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실입니다. 발을 다 씻긴 올리비어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여인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 씻겨 주었습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아이들의 발을 씻어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겨 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올리비어는 이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하였습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에서 올리비어는 자신의 신분에 개의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겸손으로 행하였습니다. 다른 이에 의해서 억지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추어야 참된 겸손입니다. 사명은 겸손으로 행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바울은 예수를 닮는 사명자로서 겸손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당시 로마 문화에서 추구한 덕목은 아니었습니다. 겸손은 종이 가지는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철저하게 섬김의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높이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본받아 에베소 교회에서 모든 겸손으로 섬겼습니다. 바로 그 겸손으로 섬기며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겸손하게 행하지 않으면 실망시킵니다. 구제를 하고도 욕을 먹는 이유는 겸손하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역에 열매가 없음도 겸손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겸손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겸손은 자기가 죽어야 가능합니다. 내 생각이 죽고, 내 의가 죽고, 내 방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방법대로 하려 하기에 불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부디 예수께 받은 사명을 모든 겸손으로 행하며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참음으로 섬겨야

맨솔래덤을 만들어 미국의 거부가 된 하이드(Albert Alexander Hyde)는 사업이 잘되다가 부도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10만 달러의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빚을 지고서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하이드는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재기를 결심한 순간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교회를 신실하게 출석하고, 십일조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빚이 많은데 십일조 헌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드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것은 아직 헌금수준이 아닙니다. 그저 빚을 갚는 수준입니다. 하나님은 저의 첫 번째 채권자(First Creditor)이십니다. 하나님한테 우선 빚을 갚고자 합니다. 그러다보면 사랑하는 주님 앞에 가장 존귀한 것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고백은 예언처럼 들어맞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참으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업은 놀랍게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생의 초점을 바로 맞춘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데 고난이 따릅니까? 혹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나 참음으로 섬겨나간다면 도리어 사명은 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참음은 신앙생활의 필수적 요소입니다. 인내는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참을 수 없습니다. 또한 믿음이 없으면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을 향해 영적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이 강건하게 설 때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대인들의 간계로 인한 시험에도 끝까지 견뎠습니다. 참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열매는 없는 법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하지 말고 묵묵히 일해야 합니다. 예수도 물질과 명예와 영적 시험이 있었으나 말씀으로 물리치시며 참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시험에 지면 안 됩니다. 참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섬겨야 합니다. 바울은 시험을 참으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주어진 사명을 마치리라는 결단이 사명자에게 필요합니다. 참음으로 섬기며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성령으로 매여야

개혁 신앙의 원조라고 불리는 위그노(Huguenot)의 역사는 큰 교훈을 줍니다. 특히 마리 뒤랑(Marie Durand)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그녀는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혁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타락한 교회 권력과 왕권은 타협하는 신앙을 가지라고 유혹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거절하다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10대 중반이었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은 38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10대 소녀가 50대 여인이 되어서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려 38년 동안 그녀로 하여금 신앙을 지키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녀가 갇혀있던 감옥에서 이러한 글귀를 발견하였습니다. “저항하라(REGISTER)” 그녀는 감옥의 벽돌에 머리핀으로 저항하라는 글귀를 계속 새기며 고통을 견뎌냈던 것입니다. 고통 중에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성령 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담대한 믿음을 가능케 합니다. 마리 뒤랑이 38년동안 꺾이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로부터 임한 성령에 매였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이루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오직 성령에 매인바 되어야 가능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 는지 알지 못하노라여기의 성령에 매여라는 표현은 성령께서 바울을 사로잡으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지속적으로 사랑에 매여 살 수 있었던 까닭도 성령께서 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매여라는 말은 원어로 데데메노스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묶여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고 다메섹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오히려 자기 자신이 묶였습니다. 바울은 그때부터 삶을 마치는 날까지 계속 성령에 매여 살았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려면 성령에 매임을 받아야 합니다. 내 뜻대로 내 기분대로 내 감정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조금만 상황이 변해도 달라집니다. 기복이 심하게 됩니다. 심지어 사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깨어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두려워하기는커녕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노라는 굳은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이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마땅히 의지할 주님을 바라보며 오로지 성령에 매인바 되어 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1950년대에 선교의 영웅이라 불리던 선교사 짐 엘리엇(Jim Eliot)의 말입니다. “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정글에서 순교한 후에 발견된 일기장에 기록된 글입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러한 말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을 위하여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사람,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 청춘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버릴 수 있다면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은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임원으로 임명되는 주일입니다. 모든 사명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진지하게 감당하여야 합니다. 눈물과 겸손으로 사명을 행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고통을 참음으로 사명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에 매여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복된 임원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