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픔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형국입니다. 배가 기울어져 가고 있을 때 한 학생은 휴대폰으로 엄마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아빠에게 무서우니 ‘나 데리러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빠는 어쩌면 영원히 그 말에 붙들린 채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배와 승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탈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비극과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영적구도자로 알려진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저서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에서 “비참한 세상에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토록 비참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았지 싶은 곳들을 여행하며 고통의 현장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구심 앞에서 그곳도 여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현장임을 증거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총기사고가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의 캠퍼스에서 전 세계에서 보내온 연민의 메시지를 목격했고, 인종 갈등으로 피 냄새를 풍기던 남아공화국에서 보복이 아닌 화해의 정치를 보았으며, 각국의 성매매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그들의 자활을 돕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정부도 제공하지 못하는 의료서비스를 베풀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단체들,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교회들, 영적인 면을 존중하며 알코올 중독을 이겨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답이었습니다. 얀시는 2007년 2월, 교통사고로 척추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의사는 부러진 척추뼈가 동맥을 찌르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가족과의 마지막 통화를 권했습니다. 순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도 명예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였습니다. 그는 책에서 고통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의사는 처음 몇 시간은 진통제를 주지 않고 저의 사지를 꼬집고 핀으로 찌르며 ‘아픕니까? 느껴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예!’‘예!’라고 답하면 ‘좋아요!’ 했습니다. 감각은 척수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증거였고, 고통은 내 몸이 성하다는 생명의 징후였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도마의 고백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는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도마는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도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도마를 위해 부활하셨기에 예수 때문에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도마는 예수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의 주님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구원해 주시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순간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흔들릴 수 없는 굳건한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고백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을 고백해야 합니까? 첫째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조니 에릭슨(Joni Erickson Tada)은 수영선수로 1967년 최우수 여자체육인에 뽑혔습니다. 그러나 다이빙 연습을 하다가 사고로 목이 부러졌습니다. 목부터 아래 부분까지 전부 마비되었습니다. 심한 신체장애자가 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업미술 전문가가 되었고 ‘A Step Further’(한 발만 더 멀리) 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그린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에릭슨은 책에서 이런 간증을 합니다. “나에게 장애가 있어도,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무엇인가 나에게 목적을 두셨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목적과 기대를 두시고 찾아오십니다.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휠체어에 항상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이상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장애자도 실패자도 아닙니다. 나는 그분이 말씀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나의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분명 성공자입니다.” 인생 실패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죽음 같은 실패의 구덩이에서 나를 건져내어 새 출발 시켜주려고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실패자를 주저앉히려고 하지만 예수는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재기시켜주십니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믿음이 돈독해지고 난 뒤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두려워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가족들조차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중한 병에 걸려 의사조차 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돌보아주십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여기에 보니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가운데 서셨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밝히 보며, 음성을 똑똑히 듣고, 예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에 서시기 바라십니다. 부활의 예수는 우리에게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기 원하십니다.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여 바른 신앙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평강주시는 하나님 솔로몬(Solomon) 왕이 현자(賢自)들에게 질문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호마가 말합니다. “부귀입니다.” 솔로몬이 다시 묻습니다. “왜 부귀가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합니까?” 호마가 대답하길 “부귀란 견고한 성과 같아 마음이 든든해질 뿐 아니라 어떤 힘이라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지략가 아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백발의 아쉬가 대답합니다. “저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 지혜라고 생각합니까?” 솔로몬이 묻자 아쉬는 대답합니다. “지혜는 선한 길로 인도하며 영혼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혜를 가진 자는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랍비 피쉘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피쉘은 느린 말로 입을 열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덕(德)입니다. 덕이 많으면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말을 듣고 솔로몬은 한숨을 내 쉽니다. 현자들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왕께서는 큰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솔로몬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평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을 들은 현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왜 평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은 주변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합니다. “많이 가지면 무엇 하겠습니까? 궁궐에 산들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걱정과 근심이 있으면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지혜가 많으면 무엇합니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깜박깜박 잊는 것을. 덕은 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때로는 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 우선 마음이 편해야 되지 않겠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최고의 학문을 배웠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중에 가장 큰 복은 평강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본문을 보니 ‘문들이 닫혔다’라고 복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문을 걸어 잠궜다는 뜻입니다. 즉 문이란 문들은 다 닫아 걸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어 잠근 것은 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문도 걸어 잠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 오사 제자들 가운데 서서 평강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평강을 선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에 제자들의 과거는 용서 되어졌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평강은 영적 충만함과 정신적 평안과 육체적 건강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을 포함하는 총체적 단어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시련 가운데 떨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고 살아가노라 하면서도 말씀의 능력을 상실한 채 무력하게 살아갑니까?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사로잡혀 있습니까? 부활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주시는 하나님 한동대 김영길(金永吉) 총장이 예수를 만난 과정은 이러합니다. 원래 유교집안에서 자랐는데, 부인은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재료공학박사가 되었고 우주항공국(NASA)에 근무하였습니다. 부인과 결혼할 때, 예수 믿겠다고 약속했기에 한인교회에 재미삼아 출석하는 정도였습니다. 믿음도 없이 교회만 다닌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믿지 못했습니다. 과학자이기에 과학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지구의 해방’이란 책을 읽다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환희와 감격에 겨워 아내에게 크게 외쳤습니다. “여보, 이제야 좋으신 하나님을 만났소.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이제야 알았소.”김영길 총장은 그날 밤늦도록 부인과 함께 기도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는 독서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는 믿지 못해도 찾아오셔서 믿음을 주시는 예수께서 우리도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는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께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으로 만져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는데, 예수께서 의심을 해소시키는 일을 먼저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즉시 고백하기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도마에게 랍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도마의 주시며 도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한 도마를 사랑하시고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찾아오셔서 자신의 몸과 상처 부위를 만져보게 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진리를 알고자 하는 성도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확신하지 못할 때,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믿음의 확신을 갖도록 해주십니다. 예수께서 의심을 해결해 주시려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 것이 신앙의 정수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 자체가 증명이 아닌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필립스(J. B. Phillips) 목사는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Your God is too small)라는 저서에서 크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작은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과 거리가 먼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술사로, 어떤 이는 필요를 채워주는 조달 책임자로, 어떤 이는 아픈 마음을 위로해줄 상담가로, 어떤 이는 만병통치의 의사로 생각하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다 버립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만든 우상이 어떻게 나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온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내 맘대로 부릴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권위 앞에 엎드려 통치와 은혜를 갈망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만군의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천하의 주이신 하나님을 부려먹겠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그 앞에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섭리와 거룩한 뜻을 깨닫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생애가 시작될 것입니다. 도마의 고백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인생에서, 예수께서 어떤 위치에 계시는지 알게 합니다. 도마는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굴복시켰습니다. 그로 하여금 인생을 주장하시도록 위임하였습니다. 주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온전히 따르고자 결심한 것입니다. 도마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주후 72년경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의심 많은 제자였으나, 신앙고백으로 변화된 후 제자로서의 삶을 충성되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신실한 믿음입니다. 부디 우리를 찾아오시며, 평강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며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신앙고백을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