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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그의 피로 말미암아-엡 1:7~14

 

 그의 피로 말미암아-엡 1:7~14

 

18세기 독일에 진젠도르프(Nikolas Ludwig Zinzendorf)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재산과 토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다가 한 그림에 눈이 멈춰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그림이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 있습니다. 양손에는 대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는 창에 찔린 채 피가 흘러내리는 그림이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예수의 허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피가 실제로 흘러내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진젠도르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데, 나는 예수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그 충격적 사건이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진젠도르프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졌습니다. 많은 토지를 떼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침 그 때 모라비안 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진젠도르프의 영지 가까이 피신을 왔을 때 그들에게 많은 땅을 내어주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곳에 헤른포트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경건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진젠도르프의 눈에 보였던 예수의 붉은 피가 십자가에 흐르고 있음을 우리도 보아야 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아도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예수의 붉은 피를 보아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려나?’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던 로마병사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바울은 본서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먼저 선택의 축복을 언급하면서 선택의 유일한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동등한 본체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그의 보배로운 피로서 인류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다고 말합니다.

다같이 보혈을 지나를 찬양합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바울은 선택의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보혈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에 부합하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속량을 받았느니라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가 그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돈이 없습니다. “돈이나 가지고 다니라며 돌려보냈습니다. 그때 웨슬리가 강도에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이것도 가져가시오강도는 혹시 숨겨놓은 돈이라도 주는 가해서 돌아섰습니다. 그때웨슬리 목사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압니까? 비록 도둑질을 하고 다녀도 예수의 보혈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대답합니다. “아니, 뭐라도 얻을 줄 알았더니만 보혈?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3년 후 웨슬리 목사가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인사를 하는데 어느 신사가 다가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3년 전에 목사님을 해치려고 했던 강도입니다. 그날 저에게 하신 보혈의 이야기를 듣고 내내 마음속에 보혈, 보혈이라는 음성이 들려서 할 수 없이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목사님 덕분입니다.” 그때 웨슬리 목사는 회심한 강도를 보고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여기에 나오는 속량의 원어는 텐 아폴뤼트로신인데 노예들이 자유를 얻거나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속전의 의미입니다. 즉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쏟아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속량의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드릴 때마다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뿌렸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희생 제사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제물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제물에게 죄를 전가하였습니다. 짐승은 백성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처럼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값이 지불 되었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피값에 의한 속량이며 구속입니다. 구속받았음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업이 되었느니라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의 단편 가운데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도시에 살던 파홈은 시골의 땅을 사기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원하는 만큼의 땅이 있으면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악마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촌장에게 땅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촌장은 하루 동안 가지고 싶은 만큼의 땅을 걸어 다닌 후 표시하여 해가 질 때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표시한 땅을 모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파홈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다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옆을 지나다 보니 연못도 탐이 났습니다. 풀밭도 탐이 났습니다. 작은 숲도 탐이 났습니다. 어느 하나 가지고 싶지 않은 땅이 없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간신히 출발점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파홈에게 남은 것은 자기가 묻힐 만한 크기의 땅이었습니다. 악마가 파홈이 차지한 땅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땅이 기업이 되면 욕망이 생깁니다. 욕망이 기업이 되면 망해버리고 맙니다. 세상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에 늘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기업이 되었으니의 원어 에클레로데멘제비를 뽑아 지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어떤 기업을 받는다는 의미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하시고 남기신 자이기에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까닭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업을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된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을 하나님의 기업은 하나님자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다고 하면 세상의 가치관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업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가진 다른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방패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상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택하시고 소유하셔서 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보호하며 돌보시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동태적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구절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임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찬송이 되었느니라

필립 브룩스(Phillips Brooks) 목사가 중한 병에 들어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문안을 가도 방문을 사절합니다. 병문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유명한 법률가 잉거솔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성도들과 도시의 유력인사들이 말하기를 잉거솔도 면회를 못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브룩스 목사가 잉거솔의 방문을 받아들였습니다. 잉거솔은 우쭐해졌습니다. “내가 유명인사가 되니까 브룩스 목사가 방문을 허락하고 만나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잉거솔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저 같은 사람을 만나주시니 영광입니다.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인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브룩스 목사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만나겠지만, 왠지 당신과는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한번 보고 가야 한다면서, 그를 깨우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구원받았기에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구원을 기쁨으로 누리며 찬송하게 하신 까닭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본문 12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사단의 종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 은혜를 베푸신 예수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우리를 위해 피흘리시며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찬양해야 할 이유입니다.

영국에 파워코스트 백작 부인이 있었습니다. 대단히 큰 부자로써 거대하고 화려한 성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백작 부인에게도 마침내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임종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부인, 얼마나 힘드세요?” 그러자 죽음을 앞에 둔 백작 부인은 두려운 기색이 없이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괜찮습니다. 저는 이렇게 죽음에 임박해서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학식이나 재산이나 명예도 죽음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예수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흰 눈같이 깨끗이 씻어 준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없습니다. 그 말씀이 내 영혼에 그렇게 감미로운 말씀이요 힘이며, 위안의 말씀이 되는 줄 이 순간까지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나의 죄를 씻어주시며, 그것보다 더 귀한 은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그것을 깨달으셨다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나 높은 학문이 알려주지 않는 엄청난 하늘의 비밀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를 씻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생명을 잃게 되는 상황 앞에서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생이 끝나면 더 영원하고 더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M. Luther)성경을 짜보면 피가 흐른다고 말했습니다. 참깨를 틀에 넣고 짜면 고소한 기름이 나옵니다. 잘 익은 포도를 짜면 달콤한 포도즙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을 짜면 피가 나옵니다. 십자가는 피흘림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주님의 피흘리심이 성경의 중심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름지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확증되었음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구속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로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