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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 특공대를 통한 전도의 활성화

전도 특공대를 통한 전도의 활성화
- 복음 현장의 일꾼들 -


한동안 우리 교계 일각에서는 '삼박자 축복을 받았습니까?'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는 말의 해석을 놓고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 말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이 말로 재미를 보던 사람들이 반박하기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하는 일마다 축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범사가 잘되고,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함인데 왜 말꼬리를 잡고 흔들어 대느냐'는 주장이었다.
물론 예수를 믿어서 이렇게 삼박자나 삼삼칠박자의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주의 제자가 되고, 또는 제자를 삼아 이 땅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박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지 제자를 삼는 일에는 이 삼박자의 원리가 적용된다. 단순히 세상에서의 지식 전달을 위한 관계에서는 스승과 제자와 학교가 삼박자로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땅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삼박자 소리가 있어야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그 삼박자 외에 성령의 능력이라는 영적인 덧입음이 필요하다. 왜냐 하면 복음을 전하는 전도란 하나의 영적인 싸움이다. 그것도 여러 가지 지형적인 정황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적의 수중에 포로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상하지 않게, 이를테면 상처하나 입히지 않고 데려오는 것이어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선발된 사람들을 군에서는 '공수 특전사'이라고 한다. 얼마 전 국회 청문회에서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증거품이 잘못 제시되자 이를 항의하는 특전사 동지들이 '우리가 양민을 학살한 살인마냐?'라고 극히 말이 되는 프랑 카드를 앞세우고, 국회 의사당 앞에서 데모를 벌였다. 그들은 이 강추위에도 웃옷을 완전히 벗고, 세상에 이 추운 겨울에 반 알몸이 되어서 그것도 2시간 이상이나 데모하는 것을 보고, 역시 보통 사람들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명령만 하달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분들로 보이는 그들은 모두가 선발된 요원이고, 잘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전도 특공대 작전도 '총동원Ⅰ'이나 '총동원Ⅱ'에서는 마치 전면전에서 군인이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 교인이 행동 대원이 되지만, '총동원 Ⅲ'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도 특공대 작전'은 선택된 요원(제자)들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주위에 몰려드는 제자들의 무리들 중에서 열두 명을 선택하신 사건이 복음사에서 하나의 중대한 이정표였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셨던 초기에는 당신 홀로 일하셨다. 그 분의 주된 복음 증거의 무기는 기적을 행하는 일이었으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제한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었으며, 그의 가르침도 핵심적인 것만을 선포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열두 제자가 선택될 즈음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사업이 체계 있는 사업이 되어 조직과 분업이 요구될 정도로 커지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다 더 깊고 정교한 복음 전파의 사업으로 발전되기 시작하였고, 그의 은총의 행위들도 점점 더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서 깊은 통찰력으로 중시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의 그의 조직을 기성 교회라는 이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을 집안에서 관리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안에서 밖으로 번지게 하기 위해서 그 인원과 훈련된 제자들을 파송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를 밖으로 인도해야 할 교회의 직분자들이 복음을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옮겨 가는 일꾼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행정을 위한 직분자' 노릇을 하고, 자신들도 예수를 교회 안에서만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한국 교회도 복음을 들고 나갈 선택되고 훈련된 전도 특공대원(제자)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항상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셔서 당신의 명령에 복종하려는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새롭게 선발된 제자들에 의하여 당신이 도구로 쓰여지기를 원하셨지만(살후 3:16), 오늘날은 예수를 교회 안에 악착같이 가두어 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는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일면도 없진 않지만, 예수를 교회 내부에서만 만나는 분으로 고정시켜 놓은 원칙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무조건 교회로 와서 그 분을 만나야만 하는 것쯤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가 교회라는 내부용 예수가 되기 때문에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높은 담이 쳐지고, 예수는 그 안에 편안히 앉아서 쉬는 예수, 세상이 제 잘못을 깨닫고 항복한 후 백기라도 들고 와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예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예수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현대 교회는 '와서 복음을 들어라'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가야 할 전도가 와야 할 전도로 바꾸어지고 말았고 와서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영생의 기쁨을 맛보라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가나안'을 말하면, 그들은 '모르는 소리,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세상의 명예와 부가 주는 감격과 권력이 주는 황홀을 만끽하는 것이 최고로 살맛 나는 것이고 그러려면 교회는 '안 나가!'가 최상의 방법이고, 설사 교회를 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과 야합하거나 불의 앞에서, 인권 앞에서, 사회 정의 앞에서, '안 나가는 척'하는 방법이 기상 천외한 차선책인데, '그것도 모르는 소리 작작하라, 봐라, 봐라, 요즘 청문회에서 예수 이름 팔아서 덕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형제 복지원, 성고문, 학교돈 쓰다 들킨 사람을 보면 다 교회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 아닌가? 난 그런 곳 '안 나가!', '안 나간다구!''라고 대꾸하게 된다.


여기서 이상하게도 우리가 말하는 '가나안'이 그들에게는 '안 나가'로 언어의 순서만 바뀐 것이니 이제 우리가 '그럼 내가 가마'를 담당할 특공대원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출처 : 말씀&기도로 성장하는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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