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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 26. 영역 2/사순절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벧전 2:18-25

17. 2. 26.                                          영역 2/사순절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

 

벧전 2:18-25

 

   이제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금년의 사순절은 3월 1일에 시작해서 부활절 전날인 4월 15일까지입니다. 이 기간이 46일인데,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라 하여 제외하고 전체 40일 동안 사순절이 지키게 됩니다.

   사순절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 즉 빛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어두움이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에 동참하면서 부활의 기쁨과 감사를 더욱 풍성하게 체험하기 위한 절기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참회와 비움 그리고 고행이나 금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체험하는 영적 훈련의 시기를 말합니다.

   사실 사순절은 성경에 나와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천주교가 철저하게 지켜온 데 비해 종교개혁자들은 철저하게 지키도록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이 사순절을 소홀하게 여겨온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교회가 경건훈련과 목양 훈련을 위해 철저하게 지켜온 소중한 영적 전통이기 때문에, 근자에 개신교도 이를 복원하고 철저하게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핵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직전 고난당하신 것을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남겨진 고난에 참여할 것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순절 영적 훈련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고난은 고통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선 고통(suffering)은 단순히 자기에게 가해지는 충격 때문에 겪게 되는 내면의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질병으로 육체에 가해지는 통증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이별로 마음에 가해지는 슬픔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이에 비해서 고난(passion)은 고통을 겪되 목적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은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키며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은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고통은 피동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겪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원치 않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리고 고통은 피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은 의도적이고 능동적으로 겪습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고통과 마주치는 것이 고난입니다. 피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고통과 맞서는 것이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통과 고난을 다 겪으셨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시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도 나사렛이라는 보잘 것 없는 마을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시는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 머리 둘 곳 없이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런 고통과 고생을 고난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께서 고난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야 말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목적을 가지고 겪어내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신 그 모든 고통과 고생을 다 고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중에서도 십자가만을 직접 거명하시면서 고난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사순절 기간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핵심인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영적훈련을 해 왔습니다. 우리도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영적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접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중에서 특히 21절을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줍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 신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고난

   먼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21절에서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구체적인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마 1: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천사가 요셉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 뜻을 이루어드리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맞붙었습니다. 당시 예측 불허의 접전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빌 클린턴을 당선시킨 결정적인 무기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클린턴이 내세웠던 슬로건입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실제로 가장 문제의 핵심은 경제인데 그동안 그걸 모르고 엉뚱한 곳에 힘을 써왔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요했습니다. 그래서 클린턴이 압도적으로 당선됐습니다.

 

   성경이 지적하시고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보야 문제는 죄야”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문제는 돈이고, 건강이고, 가정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에 온통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강조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름 아닌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죄입니다. 아직 예수 믿지 않았을 때도 죄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예수 믿고 난 뒤에도 여전히 죄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고, 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죄는 무엇일까요? 우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는 단순히 어떤 행위를 저질렀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법을 어기는 어떤 행위를 했는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는 어떤 사람인가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는 바로 관계의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을 말합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예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 멋대로 살면서 죄를 밥 먹듯이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정쩡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도 믿으면서 하나님 아닌 것도 의지합니다. 그야말로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만 따르고 지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며 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분적으로 어긋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며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이 또한 죄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문제는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척을 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늘 영적으로 편치 않은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하시기 때문에 자주 영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고, 영적으로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죄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이 죄 때문에 우리는 저주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이런 심각한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내려놓고 회개할 때 죄사함을 받고 우리가 죄로부터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우선 우리의 죄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어떤 죄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서 우리의 죄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한 고난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고난을 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 16:24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께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맡겨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맡겨주신 고난을 말합니다.

 

  예수 애양원에는 토플하우스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습니다. 1959년 10월 1일부터 1981년 5월 30일까지 애양병원 10대 원장으로 헌신하신 미국인 선교사 스탠리 토플(Stanley C. Topple)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토플 선교사가 이 병원에 원장으로 오게 된 과정을 알게 됐습니다. 이 분은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 대학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이고 특히 이 대학의 의과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이분이 대학 졸업반 때 학교신문에 난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당시 이름도 생소한 한국의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애양병원이라는 곳에서 의사를 구한다는 광고입니다. 당시 켈리 웅어(Kelly Unger)원장의 후임을 구한다는 광고입니다.

  이 광고 기사가 이분의 마음속에 강력한 울림이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 병원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자기의 진로를 생각할 때마다 이 병원이 떠오릅니다. 이분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이 병원에서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반대합니다. 일류대학 의과공부를 시키고 부유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가족들은 동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약혼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약혼자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고집을 부린다면 자기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가족들의 반대와 약혼녀의 선언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욱 한국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강력하게 부어주셨습니다. 기도 중에 이분은 이것이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반대와 약혼녀와의 파혼을 무릎 쓰고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당시 오지인 한국의 여수 애양원에서 20년 넘는 긴 세월을 보내며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저마다에게 자기가 지고 갈 십자가를 맡겨주십니다.  

   때로는 그것이 교회 안에서 져야 할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고생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맡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맡겨주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신 일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실 수 있습니다. 박해를 견디며 고난을 무릎 쓰고 감당해 내야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외면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다 지금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아예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가 있는지 조차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으시며 보여주신 본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후 주님처럼 우리에게 맡겨주신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 위해 고난당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