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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녀 신앙은 부모의 책임입니다/창49:22~26/2008년 7월 20일 설교

자녀 신앙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창세기49:22~26

2008년 7월 20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설교:

옛날 인도의 한 어머니가 말썽꾸러기며 개구쟁이인 아들을 데리고 간디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들이 사탕을 너무 좋아해요. 사탕을 먹지 않도록 충고를 좀 해주세요. 아마 선생님 말씀에는 순종할 것입니다."

간디는 어머니와 소년의 얼굴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보름 후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오세요. 그때 말씀드리지요”

그래서 보름 후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간디는 소년의 눈을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얘야, 사탕을 먹지 말거라. 이빨도 빠지고 건강에 좋지 않단다.” 그 말을 들은 그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먹겠다고 약속을 하곤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간디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후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보름 전에 이 말씀을 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간디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답니다.”

여러분! 남의 잘못을 고쳐준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나부터 삶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남에게 어떤 좋은 충고도 헛된 것일 뿐입니다.

오늘 제가 간디와 같은 마음입니다.


저도 자녀 교육에 대해 성공했다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큰 속 썩이지 않고 잘들 자라주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자녀 교육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외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니 저도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여러분도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현대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자녀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지 다하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아마도 한국처럼 자녀 교육에 특별한 열정이 있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 최대 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들어서게 된 동력이 자녀 교육임을 부인 할 자 없습니다.

자녀가 잘되고 성공하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최대의 기쁨이며 보람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잘못되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최악의 고통일 것입니다. 자녀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이나 자녀가 탈선하여 문제 청소년이 되어 방탕과 타락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데도 자녀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부모들이 어떻게 해주어야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생애를 살았던 인물들의 배후에는 훌륭한 부모가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 뒤에는 요게벳 같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사무엘 뒤에는 한나 같은 어머니가,

디모데 뒤에는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굳이 성경이 아니어도 에디슨의 부모, 아브라함 링컨의 부모, 아인슈타인의 부모들도 역시 믿음의 부모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자녀의 신앙교육에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복 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봉독한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기 전에 자기 자녀들을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는 부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있는 부모라면, 그리고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부모라면 우리는 자녀가 잘 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 주어야 할까요? 


1. 예배자로 서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도록 하려면 먼저 그 복을 담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6장에서 우리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6~7절을 보세요.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렇다면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배입니다.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녀가 된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부모들이 예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알기는 아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예배가 시간 여유 있으면 하는 ‘여가 활동’인줄 압니다. 아닙니다.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누릴 최고의 시간입니다. 예배는 우주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을 어떻게 시간낭비라 할 것입니까? 이런 소중한 시간을 어찌 뒤로 미룰 수 있습니까?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까요? 예배를 통해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자녀에게는 최고 소중한 시간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만이 참 성도인 것입니다.


이 예배는 모든 것이 포함된 종합 축복 시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내가 나가야 할 바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헌금을 통해 내 마음과 정성을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며 인간관계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 예배는 영적 종합치료 시간이요. 교회는 영적 건강을 얻는 센터입니다. 하늘의 복을 이 땅에서 누리는 영적 보금자리입니다.


물론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드리고 학교에서도 드리고 어디서든지 드릴 수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예배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과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우리가 그들을 위해 축복을 해도 그 축복은 밑 빠진 독같이 영적 축복이 새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면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닥쳐도 좌절하거나 낙망치 않게 됩니다. 때로 애매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명을 뒤집어써도 그 역경을 견디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 야곱에게 축복을 받는 요셉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셉,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압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을 부모로부터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에 배웠습니다. 17살까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난후 애급으로 노예로 팔려가서도, 그곳에서 다시 억울한 일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서도 절대로 인생을 포기하거나 낙망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창세기 39장 2~3절을 보세요.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급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의 주인 보디발이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았을까요? 그의 삶과 인격과 언행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을까요?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요셉이 기도의 단을 쌓고 예배의 단을 쌓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가 여호와를 섬긴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보디발은 그 요셉에게 가정 살림 전부를 맡기는 결정을 합니다. 그의 인격과 그의 행동이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형통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세요.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요셉이 왜 그리 강건하고 힘이 있었나요? 따라서 합시다.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은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만들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녀에게 강한 힘이 주어지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이런 은총이 함께 하길 축원합니다.


2. 부모가 먼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눈에 보이는 최초의 스승이고 영적 교사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도 하나님의 역할의 부모의 역할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모인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자녀들에게 복을 전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먼저 복을 누려야 자녀도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오늘 본문에 요셉을 축복을 합니다. 아주 중요한 구절 하나를 보게 됩니다.

25절을 보세요.

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여기 초반부를 따라서 합시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네 아비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이삭의 축복이 야곱에게, 야곱의 축복이 요셉에게 ……. 이것이 부모를 통한 자녀의 복음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1)부모가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성경에 "축복"이란 단어의 히브리말은 "무릎을 꿇다"는 말에서 파생이 된 단어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하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먼저 꿇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새벽 제단에 와서 무릎을 끓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먼저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이삭 앞에 무릎을 꿇고 복을 받았던 야곱처럼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또 자식 문제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2)영적 지도자를 무조건 존경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존경하여 따랐듯이 다윗이 사무엘을 존경하여 따랐듯이 여러분도 영적 지도자에게 무조건 존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지도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면 그로부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절대로 자식이 보는 앞에서 교회 지도자를 욕하거나 교회를 비방하지 마세요. 그것은 자식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입니다. 


3)자식들의 무릎을 꿇게 해야 합니다.

야곱이 먼저 하나님과 부모로부터 복을 물려받았던 사람이기에 그도 자식들을 무릎 꿇어 복을 베푸는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예전에 아버지 이삭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요셉과 자녀들을 무릎 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여러분 앞에 무릎 꿇고 축복기도를 받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성공한 것입니다.

생일에 용돈주려 하지 마세요. 무릎 꿇게 하여 축복기도해 주세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먼저 여러분 부모에게 무릎을 꿇으시길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에게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3. 축복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믿음으로 마지막 유언의 축복을 합니다. 사람의 최후 유언이 축복입니다. 야곱은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가 요셉에게 어떤 축복을 합니까?

25절 하반절 다시 보세요.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1)부모가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적 권세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에게 주려던 복을 자기가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그 복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것을 알기에 저주를 각오하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압니다. 그러니 자기도 자기 아들 요셉에게 넘치는 복을 베풉니다.


2)부모가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축복을 주셨으니 이것을 활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축복하면 그대로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부모가 축복하면 하늘과 땅의 복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제일 먼저 1)하늘의 복을 강조합니다. 2)아래로 원천의 복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3)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강조합니다.

하늘의 복이 최고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땅의 복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땅의 복도 있고 자손의 복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의 믿음에 근거한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요셉이 애급의 국무총리를 몇 년을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여 계산을 해본다면 풍년7년 흉년7년 도합 14년은 총리 노릇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창47장27절을 보면 야곱이 애급에서 17년을 거하고 죽었는데 그가 죽자 국상이 벌어졌습니다. 70일의 장례가 그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애급에 내려온 때를 요셉이 국무총리 한지 9년으로 본다면 17년과 9년을 합하면 적어도 26년의 세월을 권세를 누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왜 이토록 엄청난 복을 누리는 것일까요? 부모의 믿음의 축복이 그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는 아버지의 믿음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축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의 축복이 권세가 있고 응답이 있습니다.


금주에 성경학교가 교회에서 있고 다음 주에 중고등부 수련회가 제주도에서 있습니다. 이 수련회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한 영적 축제입니다.

엄청난 돈을 들입니다. 그래서라도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님은 자녀가 가기 싫어한다고 못 보낸다고 합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포기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영적인 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한나 한 사람이 사무엘을 길러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요게벳 한사람이 모세를 잘 길러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구해 냈습니다. 나는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자녀 한 사람이 이 나라의 중차대한 일군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위대한 일꾼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현재 내 자녀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면 자녀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이 예배와 성경 배우기를 소중하게 여겨야 그래야 여러분의 자녀가 바로 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깁니다.

어떤 12세 된 아이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답니다. 그 아이는 얼굴도 잘생겼고 성적도 전교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을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스케이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일등을 했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시카고에서 열리는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하는데 제 엄마가 “공부 안 하고 시카고까지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야 되겠느냐”고 야단을 쳤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층 아버지 방에 가더니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막았다고 권총 자살을 한 것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1962년부터 미국의 국공립학교에서는 성경을 법으로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있답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헛된 교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니 죄가 뭔지 모릅니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성경은 인간의 기본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창조하셨는지를 알게 합니다. 사명감을 갖게 하고 생명의 가치를 알게 합니다. 학교 교육이나 학원교육의 한계를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죄가 뭔지, 자기가 누군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가르쳐 주질 않습니다.


자녀에게 믿음의 복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믿음의 축복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런 축복을 베풀 수 있고 그 축복은 그대로 자녀에게 전수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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