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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종순목사

[스크랩] 박종순목사 설교모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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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울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0319

 

시편 61편은 다윗이 B.C 979년 경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

나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을 때 쓴 것으로 보는 비탄시입니다(삼하15:17).

다윗은 자신의 비통한 심정과 정황을 2절에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끝

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표현했습니다.

 

2절에서 말한 "눌리다"라는 말의 뜻은 "상하다. 다치다"라는 것입니다.

러니까 다윗은 아들의 반역 때문에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고 다칠대로 다쳤

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에 쌓여 있어 답답하

고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원인은 각각 다릅니다만 모든 사람은 그 어떤 이유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초조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가정주부가 이웃집에 놀러가 그 집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떨어 뜨

리고 자신도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인은 그사람이 우울증을 앓

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윌 스트리트 저널]지의 보도에 의하면 월가에서 가장

가까운 뉴욕병원은 최근 가슴통증과 심장발작환자들의 급증으로 응급실을

추가로 설치해야될 형편이라고 합니다.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월

가의 금융기관 종사자들로 주가의 등락, 환율변동 등으로 인해 긴장과 스트

레스가 겹치는데다 불규칙한 식사와 흡연등으로 심장발작을 일으킨다는 것

입니다.

 

뉴욕병원의 심장전문의인 이라 슐먼 박사는 "인구 1천명당 심장발작 비율

이 윌가가 가장 높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현대인의 40%

정신질환의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열 명중 네명은 정신질환에 걸

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가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정서적으로 소극적이며 수용적이며

긴장해소의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여성복싱이 유행하는가 하면 한국에서도 여성검도 인구

가 늘어나고 각종 레저시설마다 여성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것은 한마디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자구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 바이올라 대학의 심리학교수 클라이드 네데모어(Clyde M.Narrnmore)

박사는 우울증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1)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거부를 받은 경험(parental rejection)이 있을때

(2) 부모의 지나친 비판이나 간섭(overly-critical parents)을 받은 경험

이 있을 때.

(3) 부모의 잔인한 행동(cruel parent behavior)을 경험했을 때

(4) 무의식적인 적대감정(unconsicous feelings of hostility)이 있을때.

(5) 과거의 외상적 체험(traumatic experience)이 있을 때

(6) 본능적인 충동(instinctual drives)과 사회적인 요구(demends of

society)사이의 갈등이 있을때.

(7) 근심과 무가치감이 있을 때.

(8) 강한 죄의식이 있을 때.

 

브리시터(C.W.Brister)교수는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가치의 혼란, 정통문

화의 붕괴, 실존적 무법현상 때문에 젊은이들 세게에 급속히 번져가고 있

"고 했습니다.

욥은 욥기 7:3이하에서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

게 작정되었구나.. 새벽까지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본문은 2절에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라고 탄식했습니다. 한 마디

로 욥이나 다윗도 자신들의 우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영국의 명재상 처칠경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위기에 빠진 연합군과 영국 젊

은이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명언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

나 그도 일생동안 우울증으로 시달렸고 베토벤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

. 그러니까 우울증은 동서양 모든 사람과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치료방법입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다윗의 고백 속

에서 그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1. 먼저 잘못 선택한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근심이나 걱정,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극성 있는 음료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위는 우

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199211월 들소의 항체를 연구하던 존 폴리 박사는 흡연자와 페암환자의

페조직을 현미경으로 비교조사했습니다.폴리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실 경우 담배필터의 미세한 입자들이 잘게 쪼개지면서 폐속으

로 들어가 최소한 수개월 동안 길게는 평생 동안 잠복한다는 것입니다.

 

92년도 샌프란시코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커

피는 불면증, 카페인 중독,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가 하면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를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매년 6천명의 생후 6개월된 신생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부모가 피우는 담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태어난 생후 1년만의 아

기가 갑자기 숨지는 것을 유아급사증후군(sids) 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간접

흡연이 주원인이라고 힐러리 클로노프 박사가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읍주, 흡연, 약물복용 등은 우울증 해결에 도움이 안됩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특히 유아들에겐 독약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불건전한 오락이나 레저에 빠지기

도 합니다. 예를들면 도박이나 불건한 모임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방법이 건전해야 결과도 건전합니

.

 

2. 올바른 치료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건강한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근심걱정에 푹빠진 사람들이나 우울증에 시다릴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만나

면 그곳은 우울증 환자 수용소가 되고 말 것입니다.

 

환자는 명의를 만나야 하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는 건강한 생각과 삶을 사

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건강하고 건전한 삶의 이야기들

을 듣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을 상담학에서는 상담요법이라고 부릅니다.

우울증뿐만이 아니고 인생살이도 신앙도 좋은 이웃과 바른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인도자나 안내자를 잘못 만나면 둘 다 불행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것을 가리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웅덩이에 빠진다"

표현했습니다. 늘 한숨짓고 탄식하는 사람,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걸핏하면 절망하고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대하면 우울증상

은 더 심각해지고 맙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

들을 만나야 합니다.

 

2) 건강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선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보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할

일이 있고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 내가 살고 있고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

려야 합니다.

 

그들은 병들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걷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

고 볼 수 없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한 채 6개월-1년씩 신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베

풀고 나눠주고 베푸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

간 일을 일삼아 되새기고 불행했거나 힘들었던 과거를 되살릴 필요가 없습

니다. 가치있는 일을 위해 손을 펴고 봉사를 시작하십시오. 남을 섬기고 돕

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십시오.

 

3) 기도로 치유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 61:1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라고 했고 2절에서는 내

마음이 눌릴 때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비록 내가 되돌아 올 수 없는 땅끝 벼랑으로 밀려 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라는 복음성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을 줍니다. 우리는 1-2절에서 기억

애햐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과 땅끝에서라도 부

르짖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높은 바위 위에 인도하실 줄로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소리내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

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땅끝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과 우울의

벼랑에서도 기도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나를 높은

바위 위로 끌어 올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를 근심과 걱정과 우울증의 심면에서 끌어 올려 주신다는 것입

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소리 높여 기도합시다.

 

4) 주님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라고 했고

4절을 보면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

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망대,날개'라고 노래합니다.

이 셋은 모두가 보호수단입니다.그리고 4절을 보면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

에 거하며"라고 했습니다. 주의 장막은 성막(Tabernacle)을 말합니다. 성막

은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에 피하여 머문

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며 염려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피난처, 망대, 날개, 장막으로 믿고 의뢰했던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고 압살롬에게 쫓기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자신을

자학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곳이 있고 바라볼 곳이 있고 숨을 곳이 있고 영원히 머물 장막이 있

는 사람이 무엇때문에 우울한 삶을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

을 절대로 의지한다면 모든 정신적 고통은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성경은 인

간의 성공,건강, 행복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고난,역경, 불안,실패, 사건, 위기상황 등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하시고 처리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기

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위기상황이나 절망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누구

라도 불안이나 걱정으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믿으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것들을 극복할 수도 있고 무릎을 꿇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약물치료법이나 상담요법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정신이 조절하고, 정신

은 영혼이 통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혼은

신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혼이 바로 서면 정신도 바로 서고 육체도 바로 서게 됩니다. 영혼이 건

강하면 정신도 육체도 바른 리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방법보다

믿음의 방법이 가장 위대하고 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 망대,날개, 장막이심을 믿읍시다. 그리고 날마다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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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향과 기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0312

 

요한계시록에는 3대 재앙이 예고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곱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대접의 재앙입니다. 인을 뗄 때마다 사건이 터지고 나팔

을 불때마다 재앙이 임하고 대접을 쏟을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

하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8장은 일곱번째 인을 떼었을 때 일어난 사건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금향로에 많은 향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데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드리며 그 향과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 갔다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가

함께 하나님께 올라 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1. 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가?

 

1) 구약의 경우

구약의 경우 향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향으로 주

로 화장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향으로 그것은 제조방법이나 사용방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22이하를 보면 향 만드는 법이 나와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

습니다.

 

첫째, 최고의 향재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여러 가지 향 소합, 나감, 풍자 등 최고급 향을 배합하되 동일한 양

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다른 것은 첨가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도,인생

, 물질도 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드리면 안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 해

거둔 첫 수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나랏님께 진상을 했습니다.

 

어느 농부는 매년 제일 빨리 거둔 쌀을 대통령께 바친다면 청와대로 가져

온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게 드리는 향을 최고의 것이어야 했던 것처럼 기

도의 시간도 제일 좋은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건축자재는 최고 최상품이었습니다. 금은 오빌

에서 수입한 정금이었고 나무는 그 향이 은은한 레바논의 백향목이었고 둘

은 석질이 가장좋은 예루살렘 근교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언제나 최상품이어야 합니다. 최고의 향품을 일정량으로 배합하

겠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좋다면서 살립도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않고 교회도 안

나오고 사람도 안만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은혜를 받고나면 평소 싫었던 사람이 좋아져야 합

니다. 멀리하던 사람이 가까와집니다. 지옥처럼 느껴졌던 가정이나 세상이

할 일 많은 일터가 됩니다. 귀찮던 일들이 즐거워지고 멀어졌떤 교회가 사

랑스러워지고 힘없던 신앙생활에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세 가지 향을 동일한 중수로 배합했던 것처럼 기도생활은 조화와 균형을

잃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가정주부의 경우 "하나님 아버지!"도 잘 불러

야 하지만 "여보!"고 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란 외골수로 빠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금을 쳤다는 것입니다.소금을 치면 세가지 현상이 벌어

집니다.

 

 

 

 

하나는, 순이 죽게 됩니다.

배추도 생선도 소금을 치면 순해집니다. 자칫 기도생활이나 영적체험에 깊

이 빠지다 보면 팔딱 거리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거기다 소금을 쳐야 합

니다.

 

둘은, 맛이 납니다.

제아무리 설렁탕,곰탕,삼계탕이 진국이라도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습

니다. 제아무리 열심이고 기도를 잘 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것 때문에

맛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맛없는 음식은 따돌림을 받습니다. 소금치지 않는 기도생활이나 신앙생활

은 이웃이나 교회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소금치고 맛있는 사

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은,고칩니다.

열왕기하 2:19-22을 보면 여리고의 물근원에 문제가 있어 그 물로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익기도 전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어느날 물 근원(수원

)소금을 던져 그 물을 치료했습니다. 내가 소금처럼 녹아 희생하면 가정

, 교회도, 역사도 치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소금이 녹아내리듯 십자가에 자신을 던졌기 때문

에 모든 인간이 고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금은 그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녹아야 소금입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안됩니다. 맛 잃은 소금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향은 그 사용방법도 일반향의 용도와 달랐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거룩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빈다.

예를 들어 자기몸에 바른다든지 화장실에 뿌리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기도

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신령한 문

제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이사문제, 집 사는 문

, 어디가는 문제, 누구만나는 문제,따위가 기도의 전체를 차지한다면 그

것은 육체를 위한 기도로 끝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

는 신령한 기도를 수단이나 방법으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개인의 운명이나

점쳐주고 대소사를 밝혀주는 것으로 기도를 전락시켜선 안됩니다.

 

둘째, 아침 저역으로 분향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7-8을 보면 아침마다 아론이 분향했고 저녁 등불켤 때 다시

분향했습니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저녁은 하루의 마감입니다. 그러니

까 분향으로 시작하고 분향으로 마치라는 것입니다. 분향은 기도입니다.

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내야 합니다. 만일 기도소리를 들으

며 태어나고 기도하며 살다가 기도로 숨을 거둘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행

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곧 삶이어야 합니다.

 

셋째, 제사장 외엔 분향하지 못했습니다.

역대상 23:13을 보면 아론과 그 자손들만 분향하되 그들도 몸을 성결케하

고 분향한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10:1-2을 보면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

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소멸되어

죽었습니다. 역대하 26:16-19을 보면 웃시야 왕이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영

역을 침범해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분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분향입니다. 헌신짝처럼 취급해도 안되고 그 필요성을 외면해도 안

됩니다.

 

2) 신약의 경우

크게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밝힌대로 향과 기도가 함께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곧 향이 기도임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받으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금향로에 담는다는 것은 기도가 그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입

니다.

둘은, 삶을 뜻합니다. 고린도후서 3:15을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고 했고 3:14을 보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탸내시는 하나님

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예수 향기를 날릴 수도 있고 악취가 날 수도

있습니다. 백합화는 바람이 불면 그 향이 널리 퍼집니다. 그리고 찢기면 더

향이 짙어집니다. 우리가 풍랑을 겪고 상처받고 찢길 때 그 사건이나 아픔

때문에 예수 향기가 널리 전파된다면 정말 좋은 향이 될 것입니다.

 

2. 향과 기도의 의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며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연

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고 다른 향은 섞어

만들어도 안됩니다. 그리고 그 향을 드리는 장소 다시 말하면 분향 장소는

성전이라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분향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정한 방법대

로 정한 사람이 정한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왜 성전에서 분향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성전에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라고 했고 7:16

보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솔

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주신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무소부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처소로 삼으시고 그곳에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전으로 나와야 합니다.

 

둘째, 성전에서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5을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

"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면 비를 내리고 재앙을 거두시고 죄를

사하시고 그 땅을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얼마전 농수산부 직원들이 산에 올라가 돼지 대가리를 상에 올려놓고 넙죽

히 엎드려 절하며 비를 달라고 기우제를 지냈스빈다. 우선 세계화를 표방하

고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국가 관리들이 돼지 대가기를 놓고 절하며

기우제를 지냈다는 그 발상이 기가 막혔습니다.

 

돼지 대가리 놓고 절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

습니다. 만일 그때 바로 혹은 그 다음날 비가 내렸다면 농수산부는 기우제

때문이라고 떠벌렸을 것이빈다. 제때에 비내리고 바람이 순하게 부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고 바람의 방향을 돌리

시는 것입니다. 미국도 일본도 과학의 힘으로 비오게 하고 태풍을 막고 땅

갈라지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셋째, 성전에 영원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6을 보면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

. 잠깐 머물다보면 떠나는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거기 계시겠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집을 언젠가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할 곳이빈다.

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론으로 본문 8:5을 주목해야 합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된 성도들의 기도 속에는 순교자의 피의 호소도 있었습니다.

고난받고 핍박받은 성도들의 탄원도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

게서 드디어 응답으로 심판의 불을 쏟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는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문제는 기도해

야 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

. 기도하긴 하는데 의심하는 것 이것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

을 드리듯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향을 바로 만들어야 하듯 기도를 바르게

합시다. 성전에서 분향해서 하듯 성전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향이 하나님께

올라가듯 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향은 향기로

운 것처럼 내 기도와 삶이 향기나는 것이 되게 합시다.

주여 기도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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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에 최선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0305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

에 이르게 하는 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성경을 부른다면 그

것은 [기도의 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도

에 관한 이야기들과 기도의 사람들에 과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

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증거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특히 시편은 거의가 다 기도시들로 엮어져 있습

니다. 시편 145편의 경우도 다윗이 을었던 찬송시로 되었습니다만 그 내용

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

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떤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가를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내가 날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

습니다.

무디는 "기도란 내 사고와 목적으로 하나님을 끌어 당기는 것이 아니요 나

의 사고와 배려와 갈망을 하나님 편으로 끌어주어 그의 도안과 예정에 맞추

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기도의 자세와 응답받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간구하는 자에게 가가이 하십니다.

 

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

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18절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라는 말씀의 뜻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혀 줍니다. 기도의 대상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

니다. 성모 마리아나 성인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

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정인의 기도만 들으시거나 특정인에게만 응답이나 계시를 주시

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나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고 지시를 받

는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나님이 내 기도만 들으신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

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

한다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운명을 묻고

점치듯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입으로 간구하는 자들과 자기 소리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

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

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했고, 시편5:3을 보면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66:17을 보면 "내가 내 입으

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특정

인에게만 그 응답을 국한하여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은, 진실하게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한 간구란 과장이나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기도를 뜻합

니다. 현대인은 포장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쓰레기 종량제로 포장기피현

상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시원찮은 상품도 고급포장으로 감싸 놓으

면 고가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겉치장만 화려하면 진면목은 어떻든 높이 평

가하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그런 따

위의 포장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를 들면 고졸의 기도보다 대졸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석사의 기

도보다 박사의 기도를 더 높이 평가하신다든지 월수입 100만원 보다는 1000

만원짜리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하는 인간적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진실과 간구입니다. 우린 하나님 앞에 정직과

진실과 솔직한 모습과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헛기침을 할 필요도 없고 채색

옷으로 자신을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유행어 가운데 [알몸표 수영복]이라는게 있다고 합니다.

적나라한 모습을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설때마다 "나는 알몸표 수용복을 입었습니다."라는

심정으로 서야합니다.

[간구]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라칼레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가까이서 부르

'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이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서로 허위가 있고 거짓이 있고 꾸밈이

있으면 사이가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서 부르지 못하

는 것은 나에게 허위가 있고 감추고 싶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을

가리켜 무촌간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라는 뜻이빈다.

 

부부관계가 왜 가장 가까운 무촌간입니까? 그것은 서로 숨김이 없다는 것

입니다. 부부간에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사랑은 반비례합니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그러나 그보다 더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나와의 관

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까이서 부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만 가까이서 부르시기 위해 친히 이 땅 우리 곁에 오셨습니

.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가까이 나와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여기서 왜 우리가 때를 따라 교회에 나와야 하며 교회에 나와 기도해

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가능하면 교회에 나와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여건상 그것이 불그

낭하다면 시간을 정하고 교회가 있는 동부 이촌동을 바라보며 있는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

다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2.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19절을 보면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

음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외]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이고 받드는 태도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면서 창조주이십니다. 사랑이시면서 공의이십

니다.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

.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면만을 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

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련의 저항작가 솔제니친이 미국에서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조국

소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낙후된 조국 러시아이지만 자신의 조국을 인정했기 때

문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고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품은 러시아의 품이 아닙니

. 미국의 품도 아닙니다. 영원히 안전하고 풍요로운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곳에 나의 행복이 있고 응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품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은 부르짖으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풍랑으로 난파당한 선원들이 무인도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

월째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

니까? 지나가는 배가 스스로 알아서 우리를 구해주겠거니라며 앉아서 잡담

이나 나누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왕 죽은 목숨 발버둥 칠 필

요가 있겠느냐며 포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길은

나무를 모아다가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고 옷을 벗어 높은대로 올라가 흔듦

도 죽을 히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신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특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을 향해 부르짖고 두 눈을 떴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부르짖고 딸을 괴롭히던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어떤 과부는 부르짖고 자신

의 억울한 원한을 풀었습니다. 누가복음 18:7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부르짖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

.

둘째, 목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자존심으로 목이 붓고 막히면 소

리지르지 못합니다.

셋째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고 응답받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리높혀 하나님을 찾고 부르

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넷째,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면 구원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잇

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부르짖지 못합니다.

요즈음 연예인이나 가수를 따라 다니던 10대 오빠부대가 체육관으로 그 주

소를 옮겼스빈다. 농구나 배구 경기가 벌어지는 체육관은 온통 고래고래 소

리를 지르는 오빠부대들의 괴성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한때

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극성과 정열은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습니

.

 

저는 이 괴성과 응원열기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들의 기도제사와 신앙열기

를 따져보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세상일 때문에 악을 쓴다든지 신경질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든지 홧

김에 울부짖는 것은 창피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힘써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선한 사

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악인으로 대칭시키고 있음을 주목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보호하신다는 것도 주목해

야 합니다.하나님이 악인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까닭은 없습니다.

 

20절은 시편 145편의 결론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누구를 지키

시는가 누구를 보호해 주시는가 누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가에 대한 대답

20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크면 물은 많이 담을 수 있지만 그릇이

작으면 물을 적게 담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많이 크게 하는 사람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

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증오하고 반역하면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우리는 시편145:20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사랑하면 보호해

주시고 악인은 멸하신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

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향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안해도 된다는 교

만이나 착각은 버립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지속을 위해,고독한 사람은 그 고독의 극복을 위해,

병든 사람은 치유를 위해, 은혜받은 사람은 감사를 위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듭시다.

 

기도에 최선을 다하면서 최상의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12

제목 : 주 밖에 없나이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0226

 

시편 150편은 거의가 다 다윗의 저작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른 사람

의 작품도 몇 편씩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동시대의 인물로 보는

아삽이나 아굴 그리고 다윗와의 아들인 솔로몬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

.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73편의 목적은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도 주와 같은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영원

히 찬양하며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을 중심으로 아삽의 신앙과

고백을 찾아보겠습니다.

 

1.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25절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

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잡신이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200만개의 잡신을 섬긴다

고 합니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입니다. 아삽이 이 시를 을

고 노래를 불렸던 그 시대의 중동지방 역시 우상과 잡신이 들끊고 있었습니

. 예를 들면 바알,아세라, 아스다롯, 몰렉등 사람들이 신격화하고 숭배하

는 우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러한 주변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이나 잡신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

황에서 아삽은 유일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

밖에 없으며 사모할 자가 없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

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과 상통합니다.

 

주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오직 한분이신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링

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만으론 안됩니다. 그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모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다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으로 결정했다는 것입니

.

 

찬송작가 프라이(C.W.FRY)"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

님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 이후 서

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깨진 부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주님과의 간격을

떼도록 하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시험으로 다가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다

오기도 하고 물질을 통해서 오기도 하고 명예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권력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유혹과 시험이 갖는 공통점이 있습니

.그것은 달콤하고 감미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이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소근거립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진 사람은 모두가 한결

같이 실패했거나 파멸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

습니다. 가인은 질투와 시기 때무에 시험에 빠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

.

 

삼손은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눈이 뽑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의 유혹에 빠져 성령님을 속이려다가 한낱 한시

에 부부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복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실수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유혹에 빠졌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했을 때 하나님

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가 섬기고 사랑하고 사모할 분은 주님뿐임을 믿고 고백

합시다.

 

2. 인간의 육체는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며 분깃이라고 노래

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육체를 쇠잔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점점 약해지고 힘

이 없어지다가 결국 침상에 눕게 된다는 것은 전세계에서 매년 1,500만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그중 간진 (리히터

규모 6-9)100회 이상, 중진(4-6)15천회정도,나머지는 (1-4)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미진나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현대과학으로는 정확한 지진의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물에서 거품이 끓어오르고 쥐가 쥐

구멍에서 기어나와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면하던 뱀들이 기어나와 길에

서 열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칸사이지방의 대지진이 있기 전 동남해에선 이상하리만큼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중국에서는 금년들어 닭,돼지,,고양이 등이 유별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가는 외양간에 메어둔 황소가 하늘을 바라보고

유별나게 울면 지진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거북이떼가 떼지어 기어나면 지

진이 일어났따고 합니다.그러나 최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일본

도 지진예측에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 무

력한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간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사람은 잘

못알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이며 무엇이나 해

낼 수 있다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암이 걸렸을 경우

퍼지는 속도가 10-2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술은 몸 속의 세포들 뇌신경세

, 위장세포, 간세포, 백혈구들의 저항력을 약하게 해서 암의 전이가 빨라

진다는 것이다.

 

샌디에고 의과대학의 암 전문인인 이기천교수는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는 모습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른 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움,공포, 아픔으로 인해 그 죽는 순간이 너무나 처절하더라는 것입니

.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죽는 사람

들은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

. 시인의 고백대로 나의 영원한 반석이며 피난처이신 주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노래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음녀같이 벌하신다"고 했고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고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GNP1963100달러였습니다. 1989년에 5천달러를 돌파했고

드디어 1995년인 금년에 1만달러를 넘게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을 경우 발생할 문제들을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습니다.

@ 승용차의 대형화

@ 가전제품의 원색디자인과 대형화

@ 독신자 용픔 시장 확대

@ 교외에 세컨드 홈

@ 전력소비의 급증

@ 상품수요의 폭발

@ 취미생활의 변화

@ 투자패턴의 변화

@ 자동화 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태도의 변화입니다.

득이 높아지고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대신 세상을 의지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교회는 빈자리가 많아지게 될 것

이고 찬송과 기도소리는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저를 음녀같이 멸하셨나이

"라고 했습니다.

잘 산다는 것 그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이 문제될 것

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 하거나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하거나 떠나면 망하고 멸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과학문명을 대치시켰습니다. 그러

나 세계도처에서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홍수와 전염병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문명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데 대한 심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죽이기 위

해 강력한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모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기들과

함께 초가지붕에 서식하는 곤충들을 잡아 먹는 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과로 초가지붕 속에는 곤충이 들끓기 시작했고 얼마뒤 지붕이 곤충 때문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교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지금 지옥으로 만들어가

고 있습니다.국가도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 하면 안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상의 복인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

는 날 이 세계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하나

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공하고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맙시다.

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4. 모든 행사를 전파하겠다고 노래합니다.

 

28절 끝을 보면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15

오전 한국통신회의실에서 가진 한국-러시아-일본 3개국 부총리간에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영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홍보와 교류의 새로운 기

대가 열렸음을 시사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지 않아도 국제회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보시대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그런데 시인이

주의 행사를 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입과 몸과 몸과 삶으로 전하겠다는 것

입니다. 제아무리 광케이블을 통한 정보교환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인

간은 직접 만나 얼굴을 대하고 손을마주 잡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리는 최대한 문명의 이기들을 선교도 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을 기계에서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전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주 밖에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영원히 찬양하고 섬길 분은 주 밖에 없습니다. 나의 반

석이며 피난처이신 분도 주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까이하고 복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영원히 부를

노래도 주 밖에 없습니다.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주 밖에 없나이다"

"영원히 가까이 할수록 행복하고 떠나면 죽는 분도 주님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 중심을 지키고 믿을 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

.주님만 나의 구원,요새,산성,피난처시라는 다윗의 고백과 아삽의 노래는

그 맥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과 노래가 나의 고백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게 합시다.

그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아멘.

 

 

13

제목 : 경배하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0205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은 여러가지입니다. 사람은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점이라든지 도덕이나 윤리 규범을 지키는 능력 등 짐승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절을 짓고 사워을 짓고 교회를 짓는 것은 인

간세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은 침팬지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세계엔 하나님 예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모인 곳엔 예배가 있고 교회가 있는 것입니

.

경배의 대상이나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습나다만 그러나 절대

자를 찾고 경외하고경배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종교행위인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늘,,,,별같은 천체나 바람,,번개,우뢰같은 자연 현

상들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숭배(Nature Worship)라고 합니다. 무엇

인가를 그리거나 새겨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면 믿

는 행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물숭배 (Fetichsm)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숭배행위는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해서 숭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숭배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창조주를 십계명의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찌니라"고 했고 제2계명은 "너를 위하

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종교와 창조주를 절대자로 예배하고 숭배하는 기독교를 같은 종교

범주에 넣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채필근 목사님의 비교종교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어른은 유모어가 풍부하시고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하글

겸비하신 학자였습니다. 본래 채목사님은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라며 유교

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14살 되던 해 아버지가 (1898)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때 소년 채필근의 심정은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같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는 유명한 한

학자로 600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분이었습니다. 채필근은 공자에

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부자님, 제 아버지는 그리스도교를 좀 알아라지

고 그 종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보시더니 그만 불행하게도 이단에 빠졌습니다. 성인님께서

이단을 공부하고 연구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이것을 가리키심인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성인의 도를 저버리지 않기로 맹세합니다"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후 어느날 아버지가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

당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변명도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이단자를따라 난생 처음 예배당엘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공부자님께 다시 호소했습니다. "공부자님 참말로 죄송합니다. 성인님의 가

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간하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좇으라

고 하셨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 3년까지 고치지 말라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 세상 떠나시면 3년상 치르고 틀림없이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습니

."라고 그러나 그 채필근이 끝내 공자한테 안돌아가고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훗날 채목사님은 [공자님께] 라는 글속에서 "내가 꼭 다시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공부자

님이 계시다면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부자나 소크라테

스나 석가모니같은 성인들과 철인들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

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이기 때문입니

"라고 했습니다.

 

시편 291절에서 시인은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그를 예배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

니다.

 

시편 29:1-2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예배는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리고 돌릴찌어다라는 거슨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이빈다.

신체의 리듬은 일할 때 일하고 쉬어야할 때 쉬고 먹어야 할 때 먹고 잠자

야 할 때 자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간격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은 반복되어야 합니다.

정월 초하룻날 1년분의 음식을다 먹을 수는 없스빈다. 사흘 휴가 기간동안

1년 밀린 잠을 다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의 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의 시간입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정말 친해지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장관이 예배하러 예

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세례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국사에 바쁘고 교통조건이 열악했던 때였습니다만 그는 아직 예배를 드리

기 위해 남의 나라를 방문했던 것이빈다.그리고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에디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에 들어가빈

.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던 저들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에디오피아를 떠난 것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말이면 모든 상가가 철시를 하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정장한 모습으로 교회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이나 경제적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은 세계에 제일이 었

습니다. 그러나 60가대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리고 세속문화의 거센 도전

에 정신문화가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사람들은 주말이면 저마다

문을 닫고 바닷가로 산으로 술집으로 들로 빠져나갔습니다. 교회는 텅텅비

기 시작했고 문을 닫거나 교회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날개를 달고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도처에서 위신이

추락했고 경제가 흔들렬싶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가히자 하나님

은 저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아니고 미국을 염려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본래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미국 신대륙에 상륙하여 첫 해 지은 농사

로 맨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하나님

을 예배하는 정신인 것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2.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리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배방법은 제사였습니다. 모든 제사는 정해진 법대로 드려야 하빈

. 제물을 선택하는법 , 제물을 잡아서 드리는 법,제사장이 제사를 집전하

는 법 드이 소상하게 정해져 있었스빈다. 그러나 신약의 경우는 그 기본 정

신과 자세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24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고 바울

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구체적

으로 바른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옷차림, 헌금,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하고 당일에 서둘거

나 조급히 굴면 안됩니다.

 

둘째, 모든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였던 주기철 목사님이 어느 주일날 예배인도를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장로였던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헐레벌떡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급한 일로 늦었던 것입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자오

님이 늦으면 교인이 본받을게 뭐가 있겠습니까?"그 한마디에 조만식 장로님

은 그날 선 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후 목사님을 찾아와 앞으

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늦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조만식 선생님은 주기철 목사님의 오산학교를 다니실 때 교장이셨고 주 목

사님은 학생이셨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모시기로 하고 조만식 장로님을 청빙대표로 보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주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사님 저희교회에 부임해 주실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대인의 겸손이셨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교통사정,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뵙는 시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바른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태도도 바르게 마음고 바르게 찬송도 기도도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그리

고 예배 이외의 다른 사건이나 소음이 예배장소를 어지럽히면 안됩니다.

를들어 예배도중에 핸드폰이 울린다든지 그리고 유유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

다든지 무선호출기의 삐삐움이 들린다든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됩니다. 그리고 유아가 쿵쾅거리고 활보를 한다든지 울음소리가 남의 예

배를 방해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신 예배였는지를 생각해야 합

니다. 헛수구로 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아름답고 거룩하게 드려야 합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라고 했스빈

.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옷이란 거룩함으로 꾸민 아름다운 옷이라는 뜻이

빈다. 구악시대 제사장이 하나가링께제자드리기 위해 입는 옷은 팅여상복이

아니었스빈다. 최그급 천에 수를 넣고 금수술을 달아 만든 거룩하고 아름다

운 옷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는 옷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단정

해야 합니다.

 

복장문화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다양하고 멋있는 의상을 접하게 되었습니

. 유니섹스라고 해서 남녀의 성구별이 모호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의상도

남녀 구별이 어려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초로 인간이 옷

을 입기 시작한 것은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러니까 어떤 옷이든 입어서 추하고 혐오스러우면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하

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는 옷은 더더욱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름다운 예배,

기쁘고 즐거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84:3을 보면 '참새도 주의 전에서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둘 보금

자리를 얻었나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4;4을 보면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9;11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

"라고 했습니다. 주의 전에 나오기를 힘쓰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에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자명합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리고 교통이 차단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

셨습니까? 예배에 최선을 다합시다. 예배생활에 최선을 다합시다.

 

 

14

제목 : 깨어 있으라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0129

 

주경학자들은 마태복음 24장을 작은 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계시

록이 담고 잇는내용들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말에 과한 자세

한 설명이 있기 때무에 요한게시록과 상통점을 갖고 있는것이빈다. 오늘 읽

은 본문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삶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마태복음 244절이하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2) 난리와 난리소문이 무성할 것이다.

(3)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간의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다.

(4)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

(5) 사랑이 식고 반목과 갈등이 첨예화 할 것이다.

(6)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노아홍수 당시의 상황을 예로들어 주셨습니다. (37-39).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게 된다

는 외침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더 불행한 것은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

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39-).

그리고 인자가 다시 올 때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

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 칸사이 지방을 휩쓴 대지진 참사

를 지켜보았습니다.

 

21일자 뉴스워크지의 표지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고층건물의 처참

한 모습을 싣고 있었고 "무너진 일본의 내진신화"라는 타이틀과 함께 "고베

의 악몽"이라는 화보 특집을 다루었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고베 고속도로에 깔린 트럭사진 밑에 이런 설명을 써놓고

있었습니다. "일본 칸사이 지방의 산업 중심지였던 고베시 일원이 대지진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모든 사태에 대한 대비가 완벽한 것으로 여

겨졌던 초일류 산업기술국 일본에 어떠헥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일본 당국

은 수년째 지진에 대한 안전보장을 큰소리쳤는데.. 일본인들은 2차대전 이

래처음으로 자신들이 취약국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라고 .

 

지난 117일 오전 546분에 발생한 지진은 불과 20초간 계속되었습니

. 그러나 사망자는 5,100명을 넘어섰고 25천명이 부상당했는가 하면

이재민은 3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그리고 5만채의 건물이 무너졌거나 파

손되었다고 합니다.

 

20초간의 재앙치곤 그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고 큽니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일어난 지진상황을 살펴보면 1970년 페루 북부에서일어

난 지진으로 66,794명이 사망했고 1976년 중국 당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42천명이 사망했고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4,200명이,

1988년 아르메니아 북서부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55천명이, 198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62명이, 1990년 이란 북서부의 지진으로 4만명이,

1990년 필리핀 루손 지진으로 1,621 명이, 1993년 인도 마드하라슈트라 지

진으로 3만명이 1994년 캘리포니아 노스리지 지진으로 61명이,1995년 고베

지진으로 5,100명이 죽었습니다. 25년동안 지진으로 죽은 사람의 수르루

합하면 444,833명이 됩니다. 그리고 진도는 6.4에서 8.2였습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지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입니

. 그것은 지진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며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

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구는 12대의 지각판으로 구성되어 있따고 합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판

들은 계속 이동하면서 판사이의 단층선에서 서로 충돌한다고 하빈다.그때

한쪽판이 다른 한쪽판 아래로 꺼지거나 위로 치솟아 오르게 되는데 그는 충

돌의 충격으로 암반이 갈라지면서 지진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전

세계는 지각판의 이동과 함께 지진대에 걸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가들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선 안됩니다.

 

성경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여 합니다. 마태복음 24:7을 보면 "처처에 기근

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지진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 출애굽기 19:18을 보면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다"

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6:31-32을 보면 고라

와 그 일당이 모세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고 작당하여 반항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땅이 갈라지고 입을 열어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매장된 일이 있었습

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매몰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9:11을 보면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아합왕을 피해 도망쳤을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다"

했스빈다. 아모스 1:1아늘 보면 여로보암왕 시대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했

습니다.

 

마태복음 27:50-51을 보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지진이 있었고 마태복음 28:2을 보면 주님이 부활하실 때도

큰 지진이 났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지진은 하나님의 능력과 현존, 진노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특히 마지막 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각판의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의 겨로가라고 설명합니

다만 그러나 성경은 지진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 심판과 진노의 뜻

이 들어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서 12:26을 보면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기니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고 했습니다. 땅도 하늘도 진동시키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고베 지진 이후 일본사람들의 걱정은 재해복구나 슬픔의 회복보다는 더 큰

지진이 일본을 강타하리라는 두려움이라도 합니다.

 

뉴스워크지 베를린 지국장 빌 포웰(Bill Powell)[지진 속에 파묻힌 '

만의 시대']라는 글 속에서 "심각한 경기침체와 만성적 정치혼란이 뒤엉 닥

친 지난 주의 지진은 80년대 후반 최고조에 달했던 일본인들의 경제적 기술

적 우월감의 소산인 오만의 시대가 나긴 잔재들마저 일소해 버렸다"면서 5

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제적 상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서구의 쇠퇴와 퇴폐를 손가락질하면서 설교하는 동안 도

쿄의 졸부들은 그들의 생선 초밥에 반짝거리는 금가루를 뿌려 먹었다. 자만

심 가한 미군도 일본의 기술지원이 없었더라면 걸프전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본의 중의원 이시하라 산타로 의원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러나 이제부터 일본 사람들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썼습니

.

저는 세계적으로 계속된 대지진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지난 주 가장

가까운 일본 칸사이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사건을 보면서 "그런즉 깨어 있으

"는 주님의 말씀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몇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첨단 과학문명국입니다. 그런데 지진이나자 고

베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물도, 전기도, 먹을 것도 없었스빈다..

가장 발달된 도시 고베시 한복판에서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고 잠잘

곳도 입을 옷도 없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일본의 정보, 통신, 교통도 손

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주전 2160년경 메소포타미아(Nesopotamia)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로 큰 도시(Great City)를 건설하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

작했습니다. 그 탑의 목적은 두 가지 였습니다. 인간의 기술문명을 자랑하

고 이름을 떨치자는 것이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하늘 닿는데까지 탑을 쌓

아올려 하나님을 기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탑을 무너뜨리

진 않았습니다. 시날(Shinar)평지에 모여 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을 흩어지

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흩어지면 탑은 자연히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명이나 과학의 종말을 역사는 증거해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떠들고 소리지르고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자만이나 교만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상쳐를 건드리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만 미국이 지진으로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고가도로가 엿가락처럼 휘어 내렸을 때 일본 언론들은 앞을 다투

어 비아냥댔습니다.

그걸 공사라고 했느냐는등 적어도 지진대비는 했어야 된다는둥 그러면서

일본은 지진대비만은 철저하다는등, 고속도로나 고속전철은 어떤 경우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장담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수대교가 무너지자 일

본 언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실공사였다느니 원리의 붕괴라느니 사회

현상의 붕괴라느니 비아냥대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당사자인 우

리로서는 기분이 좋을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할 말이 없게 되

었습니다. 교만이나 자만은 금물입니다. 일본의 지진은 먼산의 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경도와 동해 동북부지역 그리고 전국 곳곳이 활성단층이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지질과학과 이기화 교수는'우리나라가 지각판 경게에서 떨어져 있

긴 하지만 지각이 약한 단층구조가 많아서 인접지각판의 충돌로 대규모 지

진이 일어나게 될 경우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

.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심판의 두려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나 L.A. 노스리지 지진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뜻있는 사람들

은 미국을 향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이번 칸사이 지방의 지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수용

하는지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이며 경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예외도

없습니다. 단 회개하면 예외가 성립됩니다. 우상숭배와 교만은 하나님이 가

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

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2을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

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고 44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도 예배

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한낮에 당하는 지진피해 보다는 잠자다가 당하는 지진피해가 더 크다고 합

니다. L.A. 노스리지 지진도, 이번 고베 지진도 잠잘 때 일어났습니다.

6.25남침도 주일새벽 잠잘 때 일어났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잠잘 때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일어납

니다. 주님의 재림도 졸며 잠잘 때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잠잔다는 것은 무

엇을 뜻합니까? 하던 일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의식 상태에 빠지

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눈 감고 불 끄고 편히 드러누워 쉽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적당한 휴식이나 긴장해소는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영적으로 네

활개 펴고 편히 쉬어를 계속하면 큰일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오늘밤 주님

이 오셔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심판을 향한 초침소리는 점점 긴박해져가

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갈등,반목,증오,지진,이단의 출몰등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

. 우리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주님 오실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한 손엔 창을 한 손엔 연장을 들고 예루살렘성을 재건했던것처

럼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믿음을 지켜 그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준비하고 준비하며 일해야 합니다.

졸지 맙시다. 깨어 기도합시다. 깨어 준비합시다. 신앙생활 잘 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어소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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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키시는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0122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될 법도를 재조명

하고 확인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을 떠나 광야를

횡단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신앙과 생활 지침서인 것입니다.

가운데 신명기 32-34장은 신명기의 결론부분이 됩니다.

 

신명기의 결론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축복한 것입니다. 본문이 말

하는 하나님은 한마디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짖

켜주심을 살펴보겠습니다.

 

1,열악한 환경과 위기에서 지켜주십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만나시

"리고 했스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했던 광야는 사람이 거처하거나 통과하기가 힘든 곳

이었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질만큼 폭염이 계속되다

가 밤이 되면 추위가 몰아 닥칩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기 십상이

고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기 때문에 언제 기습을 받을런지 예측불허입니다.

거기다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곳을 "황무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그토록 열악하고 위험천만한 황야를 횡단했던 이

스라엘 민족이 단 한명도 목말라 죽었거나 일사병으로 죽었거나 배고파 죽

었거나 추위에 얼어 죽었거나 맹수에 물려 죽은 일이 없었스빈다. 애굽에서

나왔던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그들이 죽은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

고 불순종한 죄 때문이었지 황무지와 짐승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32:21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환경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좋은데 타락하거나 잘못되는 경

우가 있는가 하면 환경이 열악한데 바로 되고 잘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 유치원의 경우를 보면 중구 교육청 관내뿐 아니라 서울 시내에

서 모범 유치원으로 공인받고 평가를 얻었습니다. 매년 평가에서 빠지지 않

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장 건실하고 알찬 교육

을 실시하는 모범유치원이라는 것입니다.

 

충신유치원보다 더 시설규모나 내용이 크고 화려한 유치원이 많습니다.

러나 충신유치원은 협소하고 제한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모범적인 유

치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고 주님을 떠나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

경이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믿음을 굳세게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잘 벌고 성공하고 잘 살게 됐기 때문에 주님 외면하고 교회등지는사람

이 있는가 하면 감사하고 감격해서 신앙생활을 더욱 잘 하는 사람들도 있습

니다. 중요한 것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일이 되

든지 안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외

 

 

 

면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황무지와 짐승이 울부

짖는 광야에 들어섰을 때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

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은 그들이 사잘굴과 풀무불 속에 들어 갔을 때 사

자의 입을 봉해 주었고 풀무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저는 가끔식 비극적 생애를 마감한, 고 박대통령 내외분을 새각하곤 합니

. 인물평가란 적어도 그 세대가 지난 후라야 가능한 법입니다. 100년후에

내리는 평가가 정직한 평가가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의

생각으론 자신들의 정권연장을 위한 무리한 정치 행동을 제외한다면 어느

대통령 못지 않게 일을 많이 했다고 평가하고 싶스빈다. 그런데 불행한 것

은 육영수 여사는 철통같은 경비망을 뚫고 잠입한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세상을 떠났고 박 대통령은 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여사의 경우는 그 자리에 우리나라에서 사격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

과 완전무장한 경호원들이 보는 앞에서 저격당했습니다. 박대통령의 경우는

가장 신임하는 경호실장, 비서실장, 정보부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저격당했

습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의 상처들이긴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대

체 누가 누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잘못은 절대자이신 하나가링을 과소평가하고 상대자인 사람의 능려

이나 그 역할을 절대 평가하는데 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사람은 대단

한 것으로 평가하고 하나님은 소홀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39을 보면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하며 상하게도 한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보호와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희 집 안방에는 고 갈물 이철경 선생께서 써주신 한글족자가 걸려있습니

. 살아계실 때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라며 부탁드리고 받은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

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시편 121:1 -2 말씀입니다.

 

2. 왜 지킵십니까?

 

신명기 32:9을 보면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

업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자기 백성이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을 선택하라고 추천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우리를 선택해 다랄고 부탁한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의도와는 상관도

없는 일방적 선택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버

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자식을낳은 부모는 자식을 기르고 지키

고 가르칠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또 다른 이유는 언약 때문입니다. "내가 너

를 지키겠다 사랑하겠다 인도하겠다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조건과 제한과 약점과 허물을 넘어서고 덮어줍니다. 이스라엘

과의 약속 때문에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기 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에 덮어주

시고 용서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약속은 엄밀하게 보면 냉정한 것입니다.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약속은 깨

어지는 법이고 그 책임은 어긴 사람 쪽에 있는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사람

은 대접을 받기도 어렵고 용서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용서와 관용과 도움을 받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던 약속도 ,하나님만 사

랑하겠다던 약속도, 결코 한눈팔지 않겠다던 철석같은 약속도 제멋대로 깨

트려 버렸습니다. 대접은 커녕 매맞고 내쫓기고 버림받을 일만 골라 했습니

. 그러나 [사랑]때문에 용서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스빈다.

 

사랑으로 눈이 가리워지면 세상만사가 아름답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사랑이 절대 조건이긴 하지만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무에

결혼을 결저아는 단계는 이성적 관찰과 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단 이성

적 판단과 결정이 된 다음에는 불같이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 결혼의

절차인 것입니다.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맞는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받고 보호받는 이유는 순전히 사랑 때문인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3. 어떻게 지켜 주십니까?

 

10-12절이 설명해 줍니다.

 

1) 구체적으로 지켜주십니다.

10절을 보면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

"라고 했습니다. [만나시고]는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서 지키신다는 것

이빈다.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는 전폭적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

기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것은 완벽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눈동자 같이 지키시낟는 말씀을 주목해야 하빈다. 사람의 눈에는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거리,광도, 색상을 자동으로 조

절한다고 합니다. 모든신체의 기능이 오나전 자동차화 시스템으로 되어 있

지만 특히 눈의 기능은 전자동이라고 합니다. 눈꺼풀만해도 완저 자동 개폐

식이어서 유사시에는 즉흥적으로 눈꺼풀이 덮히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샘을

만들어 언제나 안구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촉촉하게 습도를 조절해 줍니다.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시나는 것은 자기

눈을 보호하듯 철저하게 완벽하게 지켜 주신다는 것이빈다.

사람의 지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신경조직, 두뇌판단, 눈동

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눈을 보호하듯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2) 홀로 인도하십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

도다"라고 했습니다. 힘이 모자라 누구의도움을 받는다든지 연합전선을 펴

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셨습니다.애굽의 바로

왕은 기병대를 동원하고 술객들을 동원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고 괴롭혔

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홀로

하셔도 무엇이나 가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방법입니다. 11절을 보면 "독수리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

을 업는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짤막한 한 구절 속에 독수리 훈련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새 중 왕이 되는 것은 가혹한 훈련 때문이빈

. 알에서 금방 나온 독수리는 병아리나 꿩새끼와 다른 바 없습니다. 그러

나 철저한 훈련을 통해 새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등지 안에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것은 어미의 보호본능입니다.

러나 보호만 하는것이 아닙니다. 둥지를 흔들어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위기

를 느낀 새끼들이 몸부림치며 등지 안에 머물려고 하면 날개를 너풀거려 떨

어뜨립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가 땅을 향해 떨어질 무렵 어미는 다시

받아 둥지로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복합니다. 그 뜻을 모르는

다른새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어미 독수리가 심술이 났다든지 정신이

돌았다고 수근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수리의 강훈련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훈련하셨고 오늘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현대인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하루 만보를 걸으라고 합니다. 그래

야 하체가 튼튼해지고 신진대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신체를

단련하고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십니다. 영광도 호롤 받으십니다. 축복도 홀로 하십

니다. 지키시고 힘주시는 것도 홀로 하십니다.

인생을 살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보금자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파멸은

아닙니다. 그리고 종점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이며 연단이며 훈

련방법입니다.

 

105인 사건으로 투옥된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5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합니다."감옥은 이상한 곳이다. 강철같이

굳세게 되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썩은 들풀처럼 약해져 나오는 사람도 있

."

하나님은 온실의 화초처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독수리

가 새끼를 훈련하듯 지휘관이 병사를 훈련하듯 감독이 선수를 훈련하듯 하

십니다. 거기에 합격하면 강한 독수리가 되고 강한 병사가 되고 강한 선수

가 되는것입니다. 오늘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의 인도와 보호를 따릅시다.

주여, 나를 지켜주옵소서.

 

 

16

제목 : < 예화 > 독소와 해독

자료원 : 박종순목사

발행일 : 950420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가 구약의 엘리사가 국을 끓일 때 독을

제거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오는 독을 다음과 같이 말

했다.

"현대전의 무기는 첫째 핵무기, 둘째 중성자탄, 셋째 세균이

.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루, 사랑의 가루, 화해의 가루를 뿌려

서썩는 곳에 소금이 되고 어두운 곳에 빛이 되어야 한다.

 

 

17

제목 : 생명의 면류관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0115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를 놓

고 볼때 하는 일과 맡은 일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스니다. 그 가우데서

기억하기 쉬운 것들만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삼촌,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형부, 매제, 이모부 등이 저에게

따라 다니는 이름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서울 시민이고 용산 구민에다 이촌동 동

민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충신교회 담임 목사, 서울서노회 노회원, 예장총회

목사입니다. 그리고 연합사업이나 사회 단체, 교회단체 등에서 맡은 일이

수십가지 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을 잘 해야 되기 때문에 시민 노

릇을 소홀히 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잘 하기 위해 남편 노릇을

가볍게 취급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으로도 비거운데 할아버지 노릇까지 감당하기는 더 어렵다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못한다라고 거절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감당해내는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하느냐 하지 않느

냐인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일곱교회

가우데 가장 모범적이면서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열악한 환경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처했던 상황을 9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

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과 훼방에 직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와 환난과 생활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유대주의자들의방해

와 훼방이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의 황제 숭배와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서머나

교회를 위협했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황제숭배를 거절하는 사람은 재산을

목수당했고 일터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드른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외부기온을 따라 변한다면 시낭지키기가 어렵게 되빈

.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게 됩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올라가면

얼었던 물이 녹게 됩니다.

외적 조건이 조금 어렵다고 움츠러들고 약간 편해졌다고 활개치는 그런 신

앙이라면 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국 초대 교회 순교자 가운데 한 분인 최태용 목사님이 19261월호 [

과 진리가]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 속에서 "이제는 신앙혁명을 들으라.기독

교가 아니요, 그리스도 자신을 믿으라. 교회 생활이 아니요 영이 더가라.

진리가 되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교인이 아니라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

니라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등불이 방 가운데 들어가매 어둠이 밖으로

도망가고 물이 그릇 안에 들어가매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믿음이 마음 가운

데 들어가매 의심이 밖으로 나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燈入房中夜逃外

하고 水入器內氣出外 하며 信入心中疑出外).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쫓겨나고 물이 차면 공기가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

.

세계교회 신앙 선배들의 신앙면모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열악한 환경과 조

건 속에서 더욱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도 그랬습니다.

 

2. 영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생활을 잘 한다든지 예수를 잘 믿는다든지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와 하루 봉사를 했다고 해서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

닙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사건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축복

을 받는다는 것도 당장 내 손에 수표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당

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쪽 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입

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영적인 문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

.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고 영이 복을

받아야 육신이 살고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 경찰에 체

포되어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목사님은 일경이 고문을 할때마

'주님은 저 위해 피흘러 돌아가셨는데 저도 고문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

니다"라며 고문을 견뎌내었습니다.

어느날 일경이 물었습니다. "영감, 천황 폐하가 기독교를 믿으면 죽이겠다

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이기선 목사님은 "천국법도 지키고 국법도 지키겠소"라고 대답

했습니다. "어떻게 둘 다 지킬 수 있단 말이요?"라는 물음에 이목사님은 "

하나님이 예수믿으라 했으니 예수 믿고, 천황이 죽으라 했으니 죽으면 됩니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지, 죽음

이 두렵지 않다든지 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십자가

를 면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나 서머나교회 교

인들이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것은 영적

인 문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잘 산다고 해도 그 집에서 앞으로 80

이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80년 안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를 에워싼 조건들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한시적입니

. 그러나 영원합니다. 그리고 영적 사건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오늘의 쾌락이나 행복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포

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는 본문 10절 하반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

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이미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환난

과 궁핍과 고통을 감당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교인들에게 주님은 말

씀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이 한마디 속에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던 충성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이미 충성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으로 만족

하거나 자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나 가치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게임 끝나고 훈련을 쉬는 선수

는 다음 경기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있든 없든 훈련을 계속해야 강

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독창회나 연주회가 끝났다고 해서 연습을 중단

해 버리는 음악가나 전시회 끝났다고 해서 붓을 던져버리는 미술가는 훌륭

한 작품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힘써 그일을 계

속해야 합니다.

 

둘째,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수지 댐이 터지는 것은 지극히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기 시작하고 그것

이 점점 커져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성인병의 경우도 커져서 원인이 점던 커져서 큰 병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

적으로 사람의 위 용량은 200CC 의 음식물이 위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위가 10배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루가 매 끼니마다 터질 지경

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위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짠 것,

운것, 질긴 것, 뜨거운 것, 오만가지 나쁜 것을 다 집어 넣습니다. 쉴 날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피곤해서 잠깐 쉴까하면 커피 집어넣고, 과일 집어넣

, 과자 집어넣고, 저녁 잠자는 시간에도 2000cc를 집어넣고 중노동을 시

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위병의 원인이 바로 그러한 위장관리에서 비

롯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 소홀히 취급하기 쉬운 일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어하

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서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성과가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일

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적위주에 치우치다 보면 형식과 전시효과를 중요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일은 오늘 당장 그 실적이 드러나

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했다고 해서 오늘 상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그일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시간제가 있고, 일급이 있고 주급이 있고, 월급이 있고, 연봉이 있습니다.

한시간 일하고 받는 보수는 극히 작습니다. 대개 엄청난 보수일수록 연봉으

로 계산합니다.1년에 얼마를 주고받기로 계약하고 일을 하는 것이 연봉입니

. 한 시간 일하고 그 자리에서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입니다. 한 시간 일

하고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일은 연봉이 아니빈다. 최고봉이빈다.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장 오늘 일하고 칭찬이나

보상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과소평가 하면 안됩니다.

 

넷째,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나혼자 다 맡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맡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맡지 않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잘못입니다.A 회사에 입사를 했으면 그 회사일에 최

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A 회사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B회사 일에

군침을 삼킨다면 A 회사가 그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일에 최선

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순교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

.

[예수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목사님은 19396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2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40일 금시기도에 들어갔습니다. 40일 금

식기도가 끝난후의 최목사님은 산송장이었습니다. 병보석으로 나와 기홀병

원에서 15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가지 못하고 19444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시기전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신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뿌린 피와 흘린 땀 위에 한국교회는 세워졌습

니다. 오늘까지 한국교회가 역사의 격동과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피와 땀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도록 충성한 다음에 오는 상급이빈다. 본문을 보면 "그리하면 내가 생명

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싸움에

서 이긴 개선장군,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퇴임하는 장관에게 면류관을 주었

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않는 면류관,

랑의 면류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유는 생명을

바쳐 얻은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히믈 다해 최선을 다하면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음을 받는 것이 됩니다.

 

금메달리스트는 금메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금이 있고 연봉이 있고

명예가 있고 직장이 보장됩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최선을 다한 그리스도인

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 상급이 내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의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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