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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종순목사

[스크랩] 박종순 목사설교모음4

29

제 목 : 열납되도록 드립시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22:17-23

 

 

어느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고, 선물도 거절했습니다. 그때 거절당한 기

분이 어떠했겠습니까?

 

거절당한 제사, 거절당한 예물, 거절당한 호의는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리는 본문과 그 외의 몇군데 성경구절을 통해 어떻게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가를 발젼하게 됩니다.

 

본문 18절과 19절을 보면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열납되도록 드릴

찌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드려야 열납하시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1.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했고, 레위기

3:1을 보면 역시 흠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물이나 예물을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승을 드릴 경우 상처가 있다든지, 신체부위에 이상이 있다든지, 병든 짐승

을 드리면 받지 않으셨스니다.

 

흠없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불완전한 예물은 받지 않습니다.

래서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속된 제물이나 죽은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는 산 짐승, 흠없는 짐승을 드렸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강조된 흠없는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허물투성이입니다. 흠이 없고, 약점이 많은 존재입니다. 바로

그러한 나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고 산 제

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이 짐승이든, 곡물이든, 사람이든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쓰다버린 찌꺼기나 잉여 농산물을 드려선 안됩

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가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벽이 떨어지고, 비가 새어도

당회가 교회 건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젊은 집사 10여명이 헌

금을 작정한 후 가장 돈많은 장로님을 찾아가 호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장로님 생전에 교회를 신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로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저희들이 심부름은 하겠습니다."

"철없는 사람들이로군, 교회를 아무나 짓는 줄 아는가, 그리고 교회를 지

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네"

 

 

 

"그런 저희도 압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할테니 장로님도 헌금

을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허 사람들하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헌금을 하나"

"장로님 이 집하며, 중심가의 빌딩하며, 여기저기 땅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다 내것이 아닐세"

"장로님 것이 아니라니 누구 것이란 말씀입니까?"

"이 집은 우리 집사람 이름으로 돼있고, 빌딩은 큰 아들 이름으로, 땅은

딸이름으로 농장은 둘째 아들 이름으로 과수원은 손자 이름으로 돼있다

..."

찾아간 젊은 집사들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일어서면서 한 집사가 내뱉은

말은 "하나님 몫만 없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흠없는 것으로 주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2.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7:11을 보면 "화목제를 드릴 때 감사함으로 드려야 된다"라고 했

, 15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대표적인 제사가 다섯가지이었

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 속건제입니다.

리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넷으로 구분됩니다.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를 [화제]라고 부릅니다. 흔들어 드리는 제사를[

]라고 부릅니다. 높이 치켜들어 드리는 제사를 [거제]라고 부릅니다.

어서 드리는 제사를 [전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제사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구속의 은총에 대한 감

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학생이 여행중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

니 누가 신발을 훔쳐 갔습니다. 그는 어제 밤 잠자기전 분명히 하나님께 지

키시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하필이면 가난한 자기 신발을 훔쳐가게 내버려둔 하

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인이 미안하다면 창고에서 헌 신발 한 켤레를

꺼내다 주며 오늘은 주일이니까 교회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못

해 따라가긴 했지만 기도도, 찬송되 되지 않고 신발생각만 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는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는가 하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태도가 너무나 간절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자세히 그를 바라보다가 깜

짝 놀랐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

발 신을 발도 없는 사람이 저토록 감사와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데 나는 신

발 한 켤레 잃어버렸다고 원망하고 투정을 부렸구나"라며 회개했습니다.

가 훗날 독일의 재무장관이 된 [마르틴 바덴]이었습니다.

 

시편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

"라고 했고 "감사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조지 메길은 "감사라는 과목은 졸업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일평생 그리고 천당에 가서도 감사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3.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을 보면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

을 삼아 드리라"고 했습니다. 고운 가루는 한마디로 가장 귀한 상등품 밀가

루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운 가루란 더 이상 방아를 찧을 수 없을 만큼

세미하게 만든 가루를 의미합니다. 밀이 가루가 되는 것은 자기를 으깨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고운 가루란 가장 오랫동안 많이 희생당한 가루라는 뜻입니

.

 

고운 가루일수록 돌이나 먼지가 들어가면 안됩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려면

섬세한 관리와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나 예물도 정

성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오다가다 생각나서 드리는 예배는 고운 가루 예배

가 아닙니다.

 

저는 국립중앙극장 입장권과 예술의 전당 입장권과 세종문화회관의 입장권

뒤에 있는 주의사항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공연 개시 10분전에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 6세이하 어린이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 공연 중 사진촬영, 화한수는 할 수 없습니다.

@ 공연 중에 객석을 출입할 수 없습니다.

@ 음식물을 장내에 가지고 들아갈 수 없습니다.

@ 공연 도중 입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태도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1994416() 저녁 730,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살로메'가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회일로 저는 늦게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문은 모두 잠겼고 문마다 사람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내 손엔 표도, 지정좌석도 있었지만 늦었다는게 창피스

러웠습니다. 사정 사정해 도둑 고양이처럼 곁문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곁에

사람들에게 여간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나오고, 정성으로 드

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그런 것들보다 천만배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4. 순결한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1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라고 했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 속에는 썩게 하는 누룩을 넣으면 안됩니

. 그것은 썩은 정성, 썩은 태도, 썩은 정신, 썩은 물질을 드려선 안된다

는 것은 가르쳐 줍니다.

 

누룩은 나만 썩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썩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소제물은 썩은 것을 드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동기도, 방법도, 결과도 선해야 합니다.

예배 역시 그 동기와 방법이 순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과 그 은혜가 감격스럽고 감사해서 경배와 찬야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도 순수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3을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뻣뻣한 것을 순을 죽여 부드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소금은 맛을 내줍니다. 소금을 치라는 것은 썩지않게 부드럽게 맛있

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즐겁고 맛있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도 나

를 맛있는 사람으로, 멋있고 즐거운 사람으로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지나가던 왕이 "네가 구걸한 물건중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라고 했더니 쌀 한 알을 깡통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거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깡통 속에 왕이 준 금으로 된 쌀알

이 딱 한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지는 무릎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

통채 다 주는건데....."

순수한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5.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4:10을 이하를 보면 속죄제를 드릴 때 모든 것을 불살라 드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온전한 제사는 불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불사른다는 히브리어는 [

라프]입니다. 그 뜻은 완전히 소각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드리는 것

이 참 제사이며 예배입니다.

 

나를 드리지 않고 물질만 드린다면 그것은 참 예배가 아닙니다. 그리고 참

감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장 귀한 예물은 나를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친 후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삭도

되돌려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6:19-20을 보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엇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내 몸도, 내 영혼도, 내 물질도, 내 시간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고 영광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

.

주여 나를 드리나이다.

 

발행일 : 941030

분 류 : 설교

 

 

30

제 목 : 마음을 정한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108:1-4

시편 108편은 다윗이 읊었떤 찬송시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끄는 대목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는 시의 서두입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태도가 결정됩니다. 제아무리 극한 슬픔이라고 해도

마음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게속 슬픔에 빠질 수도 있고, 그 슬픔을 극

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줄 것인가, 안줄 것인가 등으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나면 행동은 저

절로 뒤따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정한 마음이 세 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찬양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그는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

금아 깰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래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정규 음악원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아

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뛰어는 시창력과 연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를 창작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자작시에 곡을 붙

여 연주하고 노래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노래하는 자신의 삶을 소년시절의 감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일

생동안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를 심령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

. 성악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발성법과 호흡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공명의 폭이 좁지만 배와 폐부에서 끌어내는 소

리는 세종문화회관이나 광장도 울릴 수가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입술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심령으로 부르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입술로 부르는 찬양은 듣는 사람의 귀를 감미롭게 할 수는 있

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 부르는 노래는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하

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심령으로] 라는 말의 뜻은 영광을 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영광을 얻기 위해 온갖 시련을 다 겪었습니

. 정적에게 쫓기는 고통을 겪었는가 하면 아들의 반역으로 가슴 찢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차지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결단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조되는 다른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

. 그는 별 탈없이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 어느 날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와 영광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그 영광을 길이

누리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그 영광을 양보할 수 없었고, 틈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마저도 자신이 누리겠다

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원인이 돼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

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조는 몰락했고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심령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정성과 사

랑과 재능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영혼의 노래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

.

 

2.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건강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생체리듬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생활에 유익하지 않

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거의가 야행성 기질로 변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까지 잠 안자고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몽롱하게 보내게 됩니

.

 

그런 습관은 신앙생활도 힘들게 만듭니다. 새벽기도 생활을 못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남자 교인에게 신년도 서리집사를 임명할

테니 순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체질이 야행성이어서 저녁 늦게까지 잠 안자는 것은 얼마든

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죽어도 못합니다.

집사가 되면 새벽기도회에 나가야 할텐데 저는 죽었다 새벽에 깨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잠자다가 깨긴 어렵습니다. 새벽기도 나오라는 말씀을 안하신

다면 집사를 맡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어도 못 일어나는 새벽기도를 어떻게 억지로 하겠습니까 혹 깰 수 있거

들랑 나오시지요"라고 했더니 "그럼 해보겠습니다"라며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해 3월말 연속 새벽부흥회가 계속되던 토요일 새벽 430분 교회로 나

오다가 길에 서있는 그 집사를 만났습니다. 깜깜하고 추운 새벽이었스비다.

"웬일로 서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친구들하고 낚시하러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라며 헤어졌습니다만 제 속으로 "야행성이라 죽어도 새

벽엔 못 일어난다더니.."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마음 정하기에 달렸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관리하는 태도와 습관도 고쳐야 합니다.

 

둘째, 하루의 일과를 주님과의 교제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가끔씩 측근들과 새벽조깅을 즐깁니다.제아무리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미국이라고 해도 클린턴을 보좌하는 스탭들이 늦잠을

자야 된다는 이유로 대통령과의 이른 아침 조깅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입니

. 아마 조깅이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싫어도 대통령과 함께 뛰

니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시간입니까?

 

셋째 다른 사람을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소리가 없어졌습니다만 교회의 은은한 새벽 종소리는 잠든 사람

들을 깨우곤 했습니다. 새벽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은 거리를 깨우는 사람

들입니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시내버스,

전동차, 택시기사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벽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은 잠든 민족의 양심과 혼을 깨우

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시들고 마모되고 죽어가는 이 민족의 양심과 정신을 깨우는 새벽종

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주일 아침 주일학교

아이 하나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얘 토미야! 넌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다고 생각하니"라고

어떻게 배웠을까하는 것이 궁금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갑자기 긴장을 하더니 "목사님 전 절대로 아녜요, 전 여리고성

을 무너뜨린 일이 없어요 전 그 곁에 가본 일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기가막혔습니다. 도대체 선생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그 선생을 불로 물었습니다. "수잔나 선생, 내가 조금 전에 토미에게 열리

고성이 왜 무너졌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여리고성 곁에 가본일도 없다며

자기는 결코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잡아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이 말을 듣던 수잔나 선생은 "목사님 그 애 말이 맞을꺼예요, 그애는 절대

로 성을 무너뜨릴 애가 아니예요, 그 애는 착하고 얌전하거든요?라고 대답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예배후 당회가 모인 자

리에서 그 얘길 꺼냈습니다.

 

"장로님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여리고성이 왜 무너졌느냐니까 토미

는 성 곁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잡아떼고 수잔나 선생은 그 애는 절대로 성

을 무너뜨릴 만큼 힘도 없고, 얌전하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

?"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재정담당 장로가 "목사님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떻

게 하겠습니까? 누가 무너뜨렸건 교회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재

정으로 수리하도록 하십시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가장이 깨어야 가정이 깨는 법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깨야 교회가 깨어

납니다. 교회가 깨어야 사회가 깨고 민족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나는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였노라"고 그것은

내가 먼저 깨겠노라는 것이며 내 가족을 깨우겠노라는 것이며 내 민족을 죄

의 잠과 영혼의 깊은 잠에서 깨우겠노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너무나 깊은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깨워야 합니다.

 

3.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3절을 보면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라고 했습니다.

1993년도 미국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는 [에니어그램]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강좌에 넣었습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인 면을 가진 인간의 감정형태를 9가지로 분류하고 긍정적인 면은 강조하

, 부정적인 면은 고쳐 나감으로 그 사회나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게 한다는 프로그램입니다.

 

[에니어그램]에 드러나는 9가지 성격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완벽주의자 (2) 베푸는 형 (3) 연기자형 (4) 낭만주의자 (5) 방관자

(6) 회의형 (7) 향락주의자 (8) 보수형 (9) 조정자형입니다.

 

이미 뉴욕에서는 이 분류법을 적용해서 사람을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

.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채용하거나, 임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어느 농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농장주인의 아내가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일을 끝내고 식탁에 둘러

앉은 일꾼들은 한마디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없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

웠습니다.

 

며칠후 그녀는 일꾼들이 저녁 식탁에 말이 먹는 건초를 잔뜩 잘라서 그릇

에 담아올려 놓았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일꾼들은 "아니 이럴 수가 우릴

짐승으로 보는 거야"라며 화를 냈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 번 당신들은 내가 무더운

날 비지땀을 흘리며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그 누구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를 한 사람이 없었어요, 한마디의 감사도 없이 식탁에 앉고 일어서는 사람

들은 값비싼 선물을 발로 짓밟아 뭉게는 마굿간의 소나 말과 다름없어요"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은 얼굴을 붉히며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평생 감사하며 사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우리도 주께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합시다.

언제나 감사합시다.

심령으로 감사합시다.

주경가 베이커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헬라인으로 태어

난 것, 철학자가 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스튜어트 목사는 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마주앉아 한주간 동안의 은혜를

계산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합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합시다.

주여 내가 마음을 정하였나이다.

아멘.

 

발행일 : 941023

분 류 : 설교

 

 

31

제 목 : 바로 드리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고후 8:1-8

 

 

지방 중심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어느날 그 도시의 천주교 신

부가 찾아 왔답니다. 찾아온 목적은 신도드을 모아 놓을테니 몇시간 집회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천주교에서 개신교 목사를 청해다가 집회를 할

려고 하는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달라는 것인가라고 물언더니 이미 로마

바티칸의 허락까지 받았다며 개신교의 십일조하는 법을 얘기해 달라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찾아온 신부의 얘기는 도대체 천주교 교인들이라는게 헌금할 줄도 모르고

바티칸에서 돈오기나 기다리고 있어서 답답하고 속상하다며 몇시간 개신교

인들 헌금하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쾌히 승락하고 가서 몇 시간 십올조 얘기를 했더니 반응이 크

게 일더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더 헌금생활에 익숙하

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세계교회 가운데 한국 교인들이 가장 올바른

헌금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빈다.

 

그러나 보다 더 헌금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드린다면 받으시는 하나님

께는 더 큰 영광이 될 것이고 드리는 우리에게도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8과 고린도후서 8:1-8과 고린도후서 9:1-7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주신 헌금에 관한 교훈입니다.

몇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6:3을 보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1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했고, 8:4을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6을 보면 "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행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그 행위자체를 은혜로 해석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은혜]로 해석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감사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88105일 아침 계약 회사원이었던 전용기 씨가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두개골 골절 등 14가지 합병증세로 전주예수병원에 입

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쫓아간 부인 성정식 씨의 놀

라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 네살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

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

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방을 병원 앞에 얻어 남편의 간병

을 시작했습니다.

 

남편 전용기씨는 식물인간이었습니다. 하루 수십 차례씩 가래를 빼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등 남편 수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통의 날들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511개월이었습니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고 시댁식구들도 발길이 뜸해지는가 하면 의사들도

합병증세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을 벗어

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사람들은 새출발을 하라

고 권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급성폐렴 등 합병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겼는가 하면 성정식씨도 4

개월만에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씨는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환자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한달에 4-5만원

을 받아 남편의 기저귀를 사거나 약값에 보탰습니다.

본래 성정식씨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집으로 출가를

해왔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쓰러지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날마다 병원교회에 나가 남편 살려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411개월간의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

.

 

저는 이 사연을 신문에서 읽었고, 예수병원 관계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

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드라마입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

주 바라보며 주고 받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여보 고맙소","여보 깨어나줘서 고마워요"

"내 일생 당신 은혜 잊지 않을꼐"

"나 당신 사랑한다구"

"저두요"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대화가 오고 갈 것입니다.

 

은혜는 순수한 것입니다. 은혜는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는 감동과 감

격과 감사가 넘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감동하고 감격한다면

드린다는 행위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드릴 수 있고,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억천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죽어버리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고 또 드릴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제아

무리 드리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다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

릴 것이 있다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무릎꿇고 즉시 그 자리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깨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게 해주셨군요. 귀로 듣게 해주셨군요 입으로

말하게 해주셨군요. 손발이 움직이게 해주셨군요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주셨

군요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일어서곤 합니다.

여러분, 억천만원을 벌지 못했더라도, 성공출세를 내 욕심대로 못했더라면

살아있다는 것과 내 것이라고 몫지은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

.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은혜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내과 전문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평소 식도락을 즐기

던 두 남자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위장병 환자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음식을 조심해야하고 특히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빈다. A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의 말에 순응하고 치료되면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절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치료가 급속도로 빠릅니다.그런데 B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는 재미로 사는데 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느냐, 먹으면서 치료를 하는 법은 없느냐, 먹고 치료하면 되지 않

느냐며 항의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환자는 A 환자에 비해

80%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는것입니다.

 

먹게되면 먹게 되서 감사하고, 먹지 못하면 이 다음에 잘 먹게 될 줄로 믿

고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그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

니다.

건강한 것, 드릴 수 있게 된 것, 드릴 것이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여기 존

재한다는 것 그것을 은혜로 믿고 감사합시다.

 

2.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면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헌금을 하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들어 설명해 보게습니다. 가령 남편이 딴집 살림을 차리고 딴

살림을 하면서 그것을 미봉하기 위해 자기 부인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좋은

옷을 사주고 용돈을 분에 넘치도록 준다고 가정해 좁시다. 부인은 남편이야

어디를 싸돌든 돈주고, 차사주고,옷사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수 있겠습

니까?

 

돈이 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저는 어느 사진전에 갔다가 별난 작품을 구경했습니다. 사진모

델은 주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거의가 얼굴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각선미, 히프 가슴, 팔목, 등 그런 부분만을 클로즈업시켜 찍은 사진들이었

습니다. 얼굴없는 지체들의 전시회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돈만 드린다면 그것은 얼굴없는 가슴처

럼 흉물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를 먼저 드릴 때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물질과 시간과 재주를 받으시는 것

입니다.

 

3. 심는대로 거둡니다.

 

고린도후서 9:6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농사법칙이고 인생

법칙입니다. 바울은 그 법칙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칙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쿠바의 산티아고 마을에 [마리아]라는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말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어떤 날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로 학

교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림새가 꽤재재한 거라든지

맨발로 뛰는 걸로 보아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았더니 자기학교 학생이었고, 검은 눈이 초

롱초롱 빛나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마리아 선생

은 구두 한 켤레를 사서 그 학생에게 주었고, 정성껏 도와 주었습니다.

리고 그 다음해 그는 그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후 쿠바의 지도자로 카스트

로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마리아 선생은 한 신문에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 선생은 곧 바로 정보과

정에게 넘겨졌습니다.

 

마리아 선생을 본 정보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마리아 선

생이 아니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 구두 사준 학생이 바로 접니다."

라며 덥썩 손을 잡았습니다. 구두 한 켤레와 작은 정성이 훗날 위기를 모면

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을 뿌리고,부덕을 뿌리고,죄를 뿌리면 그것들을 많이 거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많이 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떤 날 아브라함 집에 낯선 손님 셋이 찾아왔습니다.

너그럽고 후덕한 아브라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송아지를 잡고 요리를 만들

어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그날 아브라함

은 그들을 대접하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리고 그날의 약속대로 일년 후에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많이 드리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

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면서 늘 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더 많

이 못드려 죄송합니다","주님 정성껏 드리겠습니다","주님 더 많이 드리도

록 복 내려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알고 드립시다.

은혜를 감사하며 드립시다.

나 자신을 드립시다.

풍성하게, 넉넉하게, 많이 드십시다.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드리는 사람들의

헌신과 헌물과 감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드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거지

도 거지취급하면 화내고 덤빕니다.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발행일 : 941016

분 류 : 설교

 

 

32

제 목 : 수년안에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3:1-4

하박국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BC 612년에서 605년에 이르는 7년 기간이었습

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의 정황은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킨 바벧론의 급부

상으로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벧론은 여세를 몰아 BC 605년 갈그미스

(Carchemish) 전쟁에서 애굽을 이김으로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스빈다.

그러한 국제 패권다툼과 경쟁 속에서 남왕국 유다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 문제였습니다.

 

통치자들은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했습니다. 강대국에 조공을 바쳐야 된다

는 이유로 백성을 늑탈했고 공의를 외치는 주의 종들을 듣기 싫다는 이유로

잡아 죽였습니다(36:20).

그런가 하면 도덕은 땅에 떨어져 구원의 여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악인의 활동을 방치하시렵니까"

"어느 때에 의인들을 구원하시겠습니까?라고,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가 깨달

은 몇 가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의문은 "왜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의 심판을 지체하시는가", "

하나님은 불의한 바벧론을 들어 택한 백성을 징계하시는가" 라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로 깍거나, 돌로 다듬어 만든 생명없는 신이 아닙니다. 보시

고 들으시는 인격적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자동검색기처럼 순간순간 삐삐소리를 내지는 않습니다.

 

바벧론이 남왕국 유다를 침략하고 괴롭히고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

님을 원망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는 바벧론의 말발굽이 택

한 땅을 유린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수 있는가라고 항변했

습니다.

 

그러나 하나니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렇다해서 바벧론을 방치하신 것은 아

닙니다. 그들 역시 신흥국가 페르시아에 의해 역사의 지명선에서 점멸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어느날 텔레비젼 드라마(한명회)를 보다가 느낀게 많았습니다. 세조

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나이 어린 왕이 그 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장면은 어전회의였습니다. 손자뻘에 불과한 어린 왕이 뭐라고 한마디를

하고 있었스빈다.

 

그러자 일제 대신들은 코가 마루바닥에 닿도록 엎드리며 소리를 합창했습

니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물론 이것은 왕권을 절대화하고 신격화 했던 전제

정치 하에서나 있었던 풍속도입니다.

왕은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정책결정에 오류를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보좌하는 대신들은 왕명을 절대시 했고 성은

 

 

 

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박국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비록 그것

이 인간의 논리나 경험에 비추어 마땅치 않다고 하더라도 "모두 정당하고

옳다"고 믿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로마서 12장에서

표현했습니다.

 

성경 전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입

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옳다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항변하고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으

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하고 반기를 들고 도전했던 사람들은 복을 받

지 못했거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예를 들겠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령에 도전하다가 추방당한 실

패자가 되었습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다가 홍수로 전멸당했습니

.

 

자신들의 지식과 과학문명을 하나님으로 대치하기 위해 시날 평지에 모여

반역의 탑을 쌓던 지식주의자들과 과학주의자들은 탑도 무너졌고 동서남북

으로 흩어지는 이산가족이 됐습니다.

 

퇴폐와 탈선과 범죄에 빠진 채 하나님을 외면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흔적도

없이 사람도 도시도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정면 도전했던 고라와 그의 일당은 지진으로 생매장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조건없이 순종하고 대홍수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무모한 것 같은 섭리에 순종했기 때문에 자신과 그

후손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철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다가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실패를 넘어 성공을 한 것입

니다.

 

이런 이야기를 성경전체를 메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그 모두가 옳으십니다"라고

고백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나와 내 후손이 복받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현대이을 위협하는 성인병을 일명 인조병이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현대인

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생활방식 때문에 성인병이 발병한 데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인병은 크게 다섯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1) , (2) 뇌졸증 (3) 심장

마비 (4) 간장병 (5) 당뇨병 입니다.

 

암의 경우는 그 원인이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전문가들은 정

신적 원인과 물리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공기 오염, 식수 오염, 음식물 오염, 불규칙한 생활 등이 복합

적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뇌졸증의 경우는 동물성 기름의 과다섭취로 뇌혈관이 막혀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이고, 심장마비의 경우는 과로나 과음이 원인이 작용해 돌연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간장병 역시 과음이나 과로에나 약의 과다복용이 그

원인이 된다는 것이고, 당뇨병은 과식, 운동부족, 주색잡기, 근심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성인병은 내가 만드는 인조병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러나 성인병보다 더 큰 인조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행과 저주입니다.

행과 저주는 꽃가루처럼 공중을 떠돌다가 아무에게나 내려 앉는 것이 아닙

니다. 그것은 내가 동기를 부여하고 내가 발전시키고 내가 제조하는 인조병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전하고 반기를 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영적 인

조병에 걸리게 됩니다.

 

영적 성인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이 편치않고 불안합니다. 모든 생각과 일에 안정감이 없습니다.뭔가

목에 걸려 있는 것 같은 증상이 계속됩니다. 기도가 막히고 찬송이 힘이 없

습니다. 영적 식욕감퇴로 말씀이 맛이 없도 거부심리가 발동합니다. 그 증

상이 깊어지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

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그 존재와 하는 일이 의심스러워

지게 됩니다. 이 영적 성이병을 빨리 고치지 않는다면 내 영혼은 지옥에 떨

어지고 맙니다. "오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서 하신 일과 하고 계시는 일과

그리고 앞으로 하실 모든 일은 모두가 옳고 정당합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

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 그래야 영혼의 성인병을 고치고 살 수 있습니다.

 

2. 불의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의와 불

, 선과 악, 신앙과 불신앙으로 점철된 사건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긴 사건이 아닙민다.

 

하박국의 신앙은 설령 이 지상에서 불의와 악과 불신앙이 흥왕한다 하더

라도 최후의 심판대에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빈다.

 

그래서 불의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의 성공이나 행복 때문에 가슴칠 필

요도 없고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북극해를 항해하느라면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빙산들이 365일 남쪽으로 흘

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은 북쪽으로 떠내려 간다는 것

입니다.

 

빙산은 75%가 바다 밑에 잠겨있기 때문에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따라 떠

내려 가지만 해면에 떠있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은 표면의 바람을 따라 북쪽

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바다 속에 잠긴 채 떠내려가는 빙산의 방향이 바

닷물의 진짜 방향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 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사건들, 부정, 부패,횡령,살인,

퇴폐, 불법 따위들은 북극바다 해면에 떠있는 얼음덩어리들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바람에 밀려 북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저네들끼리

부딛쳐 가루가 될 것이며 햇빛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지나가는 뱃창에 부딪

쳐 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빙산은 말없이 그 웅지를 감춘채 남쪽으로 흐릅니다.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침묵이 계속 된다고 해서 바람따라 살면 안됩니다. 불의는

심판받고 정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수년내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3:2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년 내에 라는 것은 "금방,짧은 시간 안에, 속히" 라는 뜻

입니다.

 

그리고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것은 두가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죽었던 것을 다시 소생시켜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건강을 회복시

켜서 치료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행중 하박국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용기와 소망과

위로를 찾았습니다. 인천북구청 세금 횡령사건과 지존파의 살인 사건으로

온통 충격 속에 빠져있던 지난 주간 저는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에 머무는 동안 부녀자 납치살해 사건과 군부대내의 장교 길들이기 사건,

강원도 탄광사거 사건, 뉴스를 들었습니다.

 

제가 만난 몇몇 지도자들은 "요즘 한국 어때요?"라고 물었고 저는 "글쎄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제 개인의 생각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다가 벼랑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고민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수년 안에 살리시고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박국의 믿음이며, 고백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살리시고 치

료하신다는 확신과 고백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신 주님, 거라사의 광

인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신 주님, 그 주님은 오늘 우리 사회와 우리 시대를

살리시고 치료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터지고, 땅위에서 터지고, 바다에서 터지고, 집안에서 터지고,

길거리에서 터지고, 땅 속에서 터지고, 관청에서 터지고, 내무반에서 터지

는 사건, 사건, 사건들을 누가 어떻게 막고 고치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주여 수년 안에 살리시고 치료하소서."

 

1858년은 미국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흥운

동은 평신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2년동안 200만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역사가였던 챨스 콜슨(Charles Colson)은 그 운동을 가리켜 "이 운동

은 허드슨 강에서 시작하여 시카고를 휩쓸었고 마치 산불처럼 미 전역을 휩

쓸었다. 그 당시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직업을 가진 전도자들이었다. 날마다

길과 밭과 지장에서 전도했다"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 사회를 고치고 살립니까?" 수년 안에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누가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장에서,

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마치 1858년의 미국처럼 전도자가 되고, 등불이

되고, 소금이 되고,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절망은 없습니다. 우리 시대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주여, 수년 안에 고치시고 살려 주옵소서.

우리를 부흥케 하옵소서.

 

발행일 : 941009

분 류 : 설교

 

 

33

제 목 : 나의 삶 속에 평화를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주간기독교

구 절 : 27:1-6

 

 

12월의 표어는 [온누리에 평화를]입니다. 성탄 계절이기 때문에 그런 표어

를 정했습니다. [온 누리에 평화]는 먼저 나의 삶 속에 평화가 임해야 합니

. 다시 말하면 [온누리]는 곧 온 세상인데 온 세상 평화는 곧 나에게서부

터 평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으니]했을 때 바로 그 세상은 이 세상의 자연,예컨대 흙,나무,바람,사과들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된 삶의 평화란 땅에 있지 않습니다. 정원속에 있지 않습니다. 예금통장

에 있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명예에는 더더욱 있지 않지요. 우린 그 사실과

그 고백을 이스라엘의 2대 왕이었던 다윗의 시편속에서 발견하게 되빈다.

실로 그는 부족한 것이 없는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명성을 떨치던 왕이었

습니다. 사무엘하 21:17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

엘의 등불]이라고가지 불렀던 훌륭하고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

게도 다윗은 거기서 행복이나 만족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신하들이나 측근들 그리고 백성들이 [당신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

망이십니다]라고 치켜 올려도 그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니다,나는 등불

이 못된다. 나의 영원한 등불, 꺼지지 안는 등불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라고 고백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별 것이 아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파스칼은 세종류의 사

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자, 이런 사람은 자기가 제아무리 유식

하고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자처해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위대한 지식인 산지식 즉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고 대범한 척하고 아

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아도 그러나 실상은 살얼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찾기만 하는 자,하도 많이 찾았기 때문에 잘 압니다.

러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나님에 대하여 신앙 생활에 대하여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적으로

항상 공부하고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바로 다윗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이 빛이시고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겸허한 신앙의 소유자가 바로 이러한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위대

한 무기가 주어지는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는 무기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생명을 하나님의 능

력에 맡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능력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위축되

어가는 내 생명, 꺼져가는 등불같은 내 생명 속에 새로운 생명의 활력을 불

어넣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나의 삶은 평화와 안정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

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박종순 목사 설교집 [누구를 찾느랴]에서)

 

발행일 : 941225

분 류 : 설교

 

 

34

제 목 : 원망하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16:6-12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는 부정적 별명이 있습니다.그것은 [목이 곧은 백성]

이라는 것입니다. 고집과 교만과 불신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불

순종하는 저들의 모습을 [목이 곧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

면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

엘 백성의 원망이 구체화되고 집단화 되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한 이후부터

였습니다.

 

출애굽기 14:12를 보면 홍해 앞에서 뒤쫓아 오는 바로의 병샤들을 바라보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며 모세를 원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원망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잠잠해

졌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다며 원

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망도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신 기적 때문

에 잠잠해졌습니다 (15:22-27).

 

출애굽기 16:1-3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그들의 원망

이 재연되었습니다.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와 덕을 배부르게 먹고

있을 때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것이 원망의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

면 배고파 죽겠다는 원망이었던 것입니다. 이 원망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

나와 메추라기 때문에 잠잠해졌습니다.

 

출애굽기 17:3을 보면 그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다며 원

망을 시작했습니다. 이 원망은 반석으로 생수가 터지게해 주심으로 끝났습

니다.

 

그들의 원망은 계속됐습니다.

민수기 11:1을 보면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밤낮도 없었고 실

, 실외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27을 보면 "장막 안에서 원망했다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수를 셀 수 없는 원망역사를 지켜 보느라면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건은 저들의 모습이 곧 우리네의 자화상이라는 점입니다.

저들은 사건있을 때마다 원망을 터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음 가득히 원망의 폭탄을 안은 채 살고 있습니다. 온몸

가득히, 멱까지 원망이 가득차 있습니다.

 

1. 원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 불신 때문입니다.

원망은 불신의 산물입니다. 죽게 됐다면 원망하면 살 길을 열어 주셨고,

물이 쓰다고 원망하면 단물이 되게해 주셨고, 배고프다고 원망하면 만나를

주셨고, 고기먹고 싶다고 원망하면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마르다고 원망하

면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주셨습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기

적과 응답을 체험한 저들입니다만 계속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한마디로 하

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망이란 수근거리며 불평한다는 뜻을 갖는 말입니다. 저들이 최소한의 믿

음만 가지고 있었다면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면서 원망을 일삼을 수가 있었

겠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과 섭리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9:3을 보면 "사랑이 미련함으로 자기 길을 굽게하고 마음으로 여호

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 놓

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탓으로 빚어진 결과를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

게 그 책임을 떠민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잠언 19:3은 미련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문의의 말을 빌리면 한국인의 경우 성인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라고 합

니다. 그것은 식생활, 성격,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불규칙한 식생활, 자극성이 과다한 음식물의 섭취, 과음, 과식 등 식생활

의 잘못으로 성인병이 발병하는가 하면 그 사람의 성격도 성인병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조급한 성격, 내성적 성격 불같은 성격 등 조화와 균

형을 깨트리는 성격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습관도 성인병 유발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습관, 건전한 습관, 경건한 습관은 건강의 비결이 됩니다만 반대로 무질서

한 습관, 통제가 불가능한 습관, 생체의 리듬을 깨트리는 습관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그들의 원망은 누적되고 계속된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버릇을 가지면 일생동안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쁩니

.

 

원망하는 나쁜 습관에 길들면 일마다 원망을 일삼게 됩니다. 습관은 그사

람의 인격과 신앙과 삶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습관적으로 투

정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 결국 그 영혼이 버림받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왜 원망하면 안됩니까?

 

1) 하나님이 원망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7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

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원망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독백이든 혼자서 고함치

는 것이든 다른 사람 앞에서 터뜨린 것이든 하나님이 그 원망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데 어떻게 원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2) 모세를 향한 원망도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8을 보면 "너희의 원망을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

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16:9,12에는 하나님이 원망을 들으셨다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보이는 공격대상은 모세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자

기들을 애굽에서 끌어냈고 고생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

세의 지도능력이 모자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여겼습니

. 그래서 걸핏하면 모세에게 대들고 도전했습니다.

 

그러한 저들에게 16:8 말씀은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 원망은 하

 

 

 

나님을 향하여 함이로다'라는 말씀은 원망의 대상이 누구였는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8"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리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

로 지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흙덩어리가 토기장이를 향해 원망을 퍼붓

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애굽에 보내 명령

을 순응하며 평생을 바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세를 공

격했고 죽이겠다고 덤볐고, 돌을 던지려 했고 원망과 비난을 서슴치 않았습

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원망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으며 하나님

을 향한 도전이었다는 것입니다.

 

3. 원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전서 10:10을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더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5:9을 보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

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서 게시니라"고 했습니다.

 

원망은 하면 할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 원망을 하기

시작하면 점차 주변은 물론 사회 국가 세계가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

. 한 가지를 원망하기 시작하면 열 가지 백 가지 그리고 세상만사가 다

원망스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멸망하고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

.

 

소위 지존파라는 범죄조직을 만들고 엽기적 살인을 일삼던 20대 젊은이들

의 행적이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가난, 무지, 멸시, 증오가 한데뭉쳐 세상

을 쓸어버리려 했다는 것이 저들의 항변입니다. 그러나 저네들보다 더 불우

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곧고 바르게 일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젊은이들

이 더 많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원망심리가 점차 증폭되면서 집단행동으로 발전했고 저토록 몸소

리쳐지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만일 저들의 원망으로 시작된 자신

들의 종말을 단 한번만이라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면 준엄한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신문의 기사가 생각납니다.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

자라는 기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당한

것입니다. 허탈, 좌절, 통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무겁습니

.

 

원망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민수기 11장을 보면 원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왔던 진을 하나님의 불이 살랐

습니다. 민수기 14:27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6:31 이하를 보면 원망을 일삼고 집단행동으로 모세를 반역했던

고라와 그 일당이 땅이 갈라져 산채로 생매장되었습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원망하던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고로 원망을 일삼과 잘되거나 성공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스빈

. 욥기 23:2을 보면 "혹독히 원망하는 사람은 받는 재앙도 크다"고 했습

니다.

 

4. 원망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원망하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원망을 일삼고 불평불만이 멱까지 차있는 사람들과 늘상 교제하다보면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또레집단

형성을 위해 마치 세뇌를 하듯 다른 사람드을 세뇌시키고 동조자를 만들려

합니다. 더 깊은 함정에 빠지기 전 원망하는 개인이나 집단과는 사귐을 끊

어야 합니다.

 

2) 자족해야 합니다.

주어진 삶과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리고 그런 사람이라야 향상과 발전이 성공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때 더 낳은 환경에로의 진일보가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환경을 탓하고 저주하고 적개심을 품는다면 지존파의 젊은이들처럼

멸망에 이르게 되고마는 것입니다.

 

존 웨인 게이시(John Wayne Gacey)33명을 연쇄살인한 희대의 살인자였

습니다. 1978년부터 16년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945월 독약주사를 맞고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죽는 날 소원을 묻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습링니다. 네 종류의 과일과 함께 치킨을 차려주었더니 배불리 먹

고난 후 불평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 어떻게 정부가 살인을 한다 말이냐"라며 고함을 질러

댔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뉘우침이 없었고 원망과 불평으로 죽었습니

. 원망을 피하려면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자기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망심리의 뿌리를 캐보면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누구때문에, 무엇때문

에 이렇게 됐다는 망울이 맺혀있습니다.

그러나 내 책임임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남을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

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기도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한 것은 제자들의 아우성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노련한 노젓는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바람이 그쳤기 때문

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오셔서 "고요하라 잔잔하라"고 명령하셨

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삶과 우리 역사 속에 주님이 임재하셔서 원망과 시비. 질투

와 분쟁, 다툼과 증오를 잠잠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각 언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 위기국먼에 접어들

고 있습니다.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실종되버렸습니다.우리의 기도와 각

성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가해자나 피해자가 생겨나선 안됩니다.

 

원망없는 사회와 교회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를 새로 시작합시다.

주여, 우리와 우리 시대를 구원하소서.

 

발행일 : 940925

분 류 : 설교

 

 

35

제 목 : 하나님이 주신 양식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16:13-20

애굽은 430년만에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30

년 동안 먹었던 식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나]였습니다. 색깔은 흰빛이

, 모양은 갓씨와 비슷했습니다. 일정한 곳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을 형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날 그날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머물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 동안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심지 않

고 거두지 않았지만 4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

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26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

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인 것입

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만나의 교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1.식량대로 거둬야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가족 1인당 한 호멜씩 식량대로 거두라고 했습니다. 한 호멜

은 약 2.3리터가 됩니다. 식량대로 거두라는 것은 먹을 만큼 거두라는 것입

니다. 다시 말하면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 호멜을 재는 그릇이 없었기 때문에 짐작으로 거둘 수 밖

에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짐작으로 만나를

거둬다가 호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는게 없고, 적게 거둔 사람

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집 밖에 나가면 하얀 빛깔의 만나가 지면에 마치 눈송이처

럼 덮혀있습니다.

그릇을 가지고 식구들의 식량대로 거두어서 요리를 해먹곤 했던 것입니다.

"1인당 한 호멜""식량대로"라는 만나의 법칙 속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언젠가 과적차량 진입금지라는 표지가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과적차량은 타이어가 펑크날 위험이 있는가 하면, 도로를 파손하

게 됩니다.

 

구청 공무원의 세금 횡령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1인당 한 호멜이면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량초과가 빚

어내는 비극 때문에 울고 망하고 죽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려서 자라던 동네에 [꾸러기],[짱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

. 큰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것은 별 탈이 없는 집 아이였습니다.

런데 그 아이는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욕심꾸러기의 끝자를 따서

꾸러기라고 불렀습니다. 먹는 욕심도 보통이 아닙니다.

 

밥그릇이나 국그릇도 제일 큰 것이어야 하고, 떡을 먹어도 다른 사람이 하

나들고 먹는 동안 그 아이는 입에다 하나물고 양손에 하나씩 쥐고 새끼를

한꺼번에 먹곤 했습니다. 배가 부르다 못해 올챙이 배처럼 튀어나와도 계속

먹다가 바닥이 나면 물러서는 아이였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튀어나오고 씩씩거리며 쉼쉬는 사람

 

 

 

을 짜구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별명은 [짜구]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위하수병에 걸려 밥을 먹지 못하게 되자 신경

과민 증세가 합병되더니 고등학교 지학도 포기했습니다. 몸은 젓가락처럼

마르기 시작하고 노이로제 환자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시대는 꾸러기들과 짜구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흔하다

는 점입니다.

 

1인당 한 호멜! 그것이 정량입니다. 욕심부리지 맙시다.

 

2. 비축이 불가능했습니다.

 

19절을 보면 "다음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런데

20절을 보면 만나를 그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는 매일 아침 나가서 거두는 것이 귀찮은 사람이었을 것이고, 다른 하

나는 그 결과를 시험해 보고픈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고 했

습니다.

한 호멜을 넘게 거둔 것들, 즉 정량초과분의 만나는 썩고 냄새나고 벌레가

생겨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은 그날 거둬다가 그날 먹어

야 하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마태복음 6:34을 보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

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낱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도 그날 것으로, 걱정도 그날로 자족하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19 이하를 보면 여러해 동안 먹고 살 돈과 양식을 창고에 쌓

아놓고 인생을 즐기려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백합니다. "내 영혼

아 여러해 쓸 문건이 창고에 가득하구나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꾸

"라고.

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나님이 주신 양식은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에 비축이 불가능합니다. 썩고

냄새나고 도둑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20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

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 것,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챙기고 쌓고 숨기려다가 망하

는 사람들이 추태는 다시 한번 [그날의 만나]가 주는 뜻을 되새기게 해줍니

.

 

3. 안식일분은 비축이 가능했습니다.

 

23-24을 보면 안식일 전날 아침에 나가 만나를 거둘 때 이틀분을 거두라고

했고 안식일에 먹기위해 거둔 만나는 썩거나 냄새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밖에 나가 먹을 양식을 거둘 필요가 없었고 그날은 만나도 내리

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신 후 쉬던 날입니다. 성경은

그날을 하나님의 날이라고 했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

 

 

 

라엘 민족은 그날 사사로운 일이나 오락을 금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지켰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도 내리지 않고 거두러 나갈 필요도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

도 그날은 쉬셨고 백성들도 쉬는 날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쉰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쉬는 것과 자기를 위해 쉬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 인식은 영적인 것이며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만 산좋고 물맑은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

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피로를 풀거나 여가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지은 호화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별장주인이 자살시체로 그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과 정신적 쇼크로 인한 자살이었습니다. 쉬기 위해 만든 별장에서

왜 자살을 해야 했겠습니까?

참된 쉼은 먹고, 마시고, 여행을 하고, 돈을 쓰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

. 참된 안식은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참 쉼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참된 안식의 비결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만나를 거두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해서 늦잠을 잔다든지,

라간다든지, 죄를 짓는 날로 여기면 안됩니다.

 

최소한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위해서 심부름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신 양식이었습니다.

 

32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광야에서 먹인 양식"이라고 했고 35절을 보면

40년 동안 먹었다고 했습니다.

저절로 땅 위에 내린 양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양식입니다.

나가 처음 내린 것은 출애굽 한지 한달이 지난 달이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215일로 되어있습니다. 연대로 따지면 BC 1446년이 됩

니다. 그리고 만나가 그친 것은 41년째 되던해 유월절 직후였습니다.

40,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먹기위해 수고도 땀도 흘린 일이 없습

니다. 자고나서 집 밖에 나가면 지면에 덮여 있습니다. 그것을 거둬다가 요

리를 만들어 먹으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만나사건 속에서 다음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욕심부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욕심부리고 한 호멜 이상을 거둬들이면 썩고 냄새나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만나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그날 넉넉한 양식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욕심부리다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

았습니다. 한번으로 끝났으면 존경받고 행복했을 집권자들이 헌법까지 뜯어

고치면서 두번 세번 하려다가 비명에 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월급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 돈이나 삼키려다가 철창신세를 진사람들과

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도 듣고 있습니다.

욕심, 그것은 비극의 씨앗입니다.

만나는 아침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스러졌습니다. 24시간 땅에 널려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필요한 양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

니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만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늦게 나가면 만나가 없

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사모해야 합니다.

광야의 만나는 영원한 생명양식의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에서 거둔 곡식을 먹게 된 날부터 만나는 그쳤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는 이 세상 떠나면 모조리 끝나게 됩

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행위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48-49를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

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라고 했고, 6:51를 보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만나, 생명의 떡입니다. 세상 것들을 영원한 양식

으로 생각하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

자가 됐고, 43세에 미국의 정유산업을 장악했고,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려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고 소화불량으로 우유와 크래커로 연명했습니다. 그리고 공포심

에 사로잡혀 수십명의 보디가드가 지켜야 했고 불면증으로 매일 밤을 뜬눈

으로 지샜습니다. 의사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각 신문들은

그의 특집과 죽은 다음에 실을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각 신문들은 그의

특집과 죽은 다음에 실을 조사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경

을 읽다가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회개하고 거듭나기 시

작했습니다. 그는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구호단체, 의학연구소,

대학 등을 도왔습니다. 페니실린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개발된 것입니

. 그는 건강을 되찾아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영원한 만나를 발견했고 먹

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어야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사람답게 가치있게 뜻있게 보람있게 살려면 영원한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풍요롭게 되시기를 축

원합니다.

 

발행일 : 940918

분 류 : 설교

 

 

36

제 목 :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고전 2:12-16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고백과 선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구원 받았다'

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

이다'라는 고백이나 선언은 자주 쉽게 합니다만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고백은 흔한 고백이 아닐뿐만 아니라 쉬운 선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이란 구원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

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끝에서 바울의 당당한 고백과 선언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은 바울 자신

의 개인적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삶은 어떤 것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영이란 마귀의 영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2을 보면 마귀를 가리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

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영을 받으면 마귀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의 속성이 밝혀져 있습니다.

1) 마귀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요한복음 8:44을 보면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오도합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침을 퇴핵시킵니다. 마귀가 사상 속에 들어가

태어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꾸며댑니다. 거짓

말은 마귀의 영이 사주하는 것입니다.

 

2) 간교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그 간교성에 아담도 하와도 넘어졌습니다. 간교한 마귀

는 오늘도 많은 사라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3) 헐뜯습니다.

욥기 1:9을 보면 사탄이 욥을 헐뜯고 중상모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

는 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인색합니다. 비난하고 부정하고 공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4) 난폭합니다.

쇠사슬을 끊는가하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자해행위를 일삼습니다.

 

5) 위장합니다.

심지어 광명의 천사로까지 자신을 위장합니다. 마귀는 변장술의 명수입니

. 성자로, 애국자로, 위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위장합니다.

 

6) 교만합니다.

본래 천사였던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타락해 마귀가 되었

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시험할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꼬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때 행복합니다. 인간은 신이 되어

도 안되고 짐승이 되어도 안됩니다.

 

7) 범죄를 유발합니다.

마귀의 영이 운행하는 곳엔 온갖 사건과 범죄가 꼬리를 뭅니다. 한숨 쉴

겨를도 없습니다. 살인, 폭력, 마약, 뉴에이즈운동,성폭행, 강도, 절도 등

범죄사건들은 마귀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토록 잔인하고 무서운 마귀의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되

겠습니까?

 

바울은 선언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

을 받았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서영은 마귀의 영을 물리치고 교체하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영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

.

 

마귀의 영은 수양이나 요가나, 의학적 방법으로 추방할 수 없습니다. 성령

받고 그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이 귀신이 들렸던 사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 악신들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윗소년을 데려다가 수금을 타며 찬송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사무엘상 16:23을 보면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

이 상쾌하게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음악이 환자치료요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

러나 단순한 세속음악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더우기 귀신을 자극하는 무당음악이나 록음악은 귀신을 흥붕시키기 때문에

덜 날뛰고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13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소년시설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었던 것이빈다.

그가 받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울의 악신을 내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서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령의 세력을

이기려면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마귀는

혼절하여 도망칠 것입니다.

 

2. 은혜를 알게 됩니다.

 

12절 끝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헤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를 셀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

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로

결정됩니다.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사람을 배은망덕자라고 부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어떻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왜 은혜를 잊어 버립니까?

첫째 스스로 됐다(섰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둘째 악한 건망증 때문입니다.

셋째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겠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사는 동안 온갖

박해와 고통을 겪던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아 애굽을 떠나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왕 바로는 그들을 그냥 포기하지 않고 추격대를 동원

해 추격을 감행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뒤에서는 추격대가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

고 육지처럼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이 홍해도하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서는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고 감격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뒤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

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사흘전의 기적과 은혜를 기

억 못하는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원망을 일삼는

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우리들이야말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은혜를 그토

록 쉽게 저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

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3.신령한 것을 분별합니다.

 

13절 끝을 보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거의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 홍해가 갈라져 건

넜다는 사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이 먹었다는 사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사건 등 모두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구원받았다는 것도

신령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검들은 신령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아니면 이해하거나 수

용하기가 어려운 것들입니다.

메이어(Meyer)"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과 결합된"고 했고, 벵겔(Bengel)

dms " 신령한 일은 신령한 사람들에게 해석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신령한 세계는 신령한 눈으로봐야 볼 수 있고, 신령한 말씀은 신령한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것입

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신령한 것을 깨닫고 분별하고 실천하

는 힘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판단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신령한 사람이라야 판단능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영분별 능력을 갖기 때문에 판단이나 분별이 가능하

다는 것입니다.

 

둘째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판단받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에 묻혀사는 사람이나 믿음을 떠나 사는 사람은 판단받고 정죄

받을 일이 많습니다만 신령한 사람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신령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

.

판단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 판단과 부정

적 판단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주는 것은 긍

정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진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주는 것은 부정적 판

단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3을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

는 매우 작은 일이다"고 했고, 4절을 보면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

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판단은 뒷

전으로 미루어 놓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판단만 신경쓰고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나를 의롭다, 깨끗하다. 정당하다고 판단해도 주님이 아니라면 아

닌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해도 주님이 나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시고

의롭다고 판단하시면 그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바울의 고백이 자랑스럽고 부럽습니

.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로마서 8:9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뜻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와 깊은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가진 사람이 됩시다.

그래야 참그리스도인이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행일 : 940911

분 류 : 설교

 

 

36

제 목 : 풍요로우신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27:27-29

창세기 27장은 야곱이 자기 아버지인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별미를 준

비한 일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문

은 이삭이 야곱에게 내린 축복의 구체적 내용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 자신이 복을 주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

"내가 너에게 복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너에게 복을 주신다

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밝힙니다. 복의 근원도 주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삭은 복을 비는 사람일뿐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목해

야 합니다.

 

본문이 밝히는 하나님의 축복은 한마디로 풍요롭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자

신이 풍요롭고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빈틈이 있다든지 모자라는 것

은 풍요도 풍성도 아닙니다.

 

히브리어 가운데 '마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흘러 넘치다, 만족

시키다, 온전히 가지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가운데 '플루토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여분으로 남

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풍성하다든지 풍요롭다는 것은 흘러넘치고 만족하게 가지는 것입

니다. 그리고도 여분이 남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풍요가 없습니다. 소비를 미덕으로 치며 세우던 미국도

지금은 불경기와 재정적자로 허덕이고 있는가 하면, 떵떵거리고 큰소리 치

던 일본도 도산하는 회사가 늘어나는가 하면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

.

 

세게의 지상낙원이는 샹그릴라를 찾아간 어느 언론인은 깜짝 놀랐다고 합

니다 .들꼿으로 레이스를 만들어 걸어주는가 하면 쓰지도 못하는 전화기와

소리도 안나는 피아노를 국보급 유물이라며 자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릴라도 풍요의 세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5:7을 보면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풍성하다고 했고 에베소서

3:6을 보면 영광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시편 86:15을 보면 '진실이 풍성

하다"고 했고, 로마서 2;4을 보면 참으심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7을 보면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세대에 나타내려 하심

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사야 30:23을 보면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도서 3:6을 보면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다고 했습니

.

 

이상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리고 하나님은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

시는 분이심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토록 풍성하신 분

이라는 사실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는 이삭이 자기 아들에게 빈 복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어떤 것이며 그 복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1. 향기롭습니다.

 

27절을 보면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주신 밭의 향취로다"라고 했습

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이 야곱의 몸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체취를 맡아보

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내 아들의 몸에서 나는 향취는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밭에서 나는 향취라고 한 것이빈다.

일찌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이삭이 그 땅

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땅의 상속권은 큰 아들인 에서가 차

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라든지 상속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둘

째 아들인 야곱은 달랐습니다. 그의 꿈은 장자가 받는 축복과 재산을 상속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아버지를 속인 후 축

복을 받게된 것입니다.

 

27절이 말하는 여호와의 주신 발의 향취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흙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에서보다는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시 말하면 하나님의 복을 향기롭게 인정하고 갈망하는 태도가 야곱에게 있

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에서는 세상 것들이 향기롭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더 소중하고 향기롭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것들을 높이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일을 소홀히 한다

든지 하나님의 시간을 업신여긴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향기롭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들과 사명들은 향취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소중히 다르고 받들어야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

니다.

 

2.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

도주로 내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야 땅이 기름지고 땅이 기름져야 곡식이 풍성하게 됩

니다. 그리고 곡식이 풍성해야 창고가 차고 포두주가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

. 바로 그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일생동안 가난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난

리가 났을 때도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셔서 편히 먹고 살 수 있

었습니다.

야곱이 젊은 날 빈손으로 하란에 들어갔습니다만 나이들어 고향으로 돌아

올 때는 갑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때문이었스니다.

 

이스라엘은 땅이 메마릅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

람이 수분을 안고 불어옵니다. 그 수분이 밤의 냉기와 만나면 많은 이슬이

되어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이슬은 곡식이 자라고 영글게 해주는 것입

니다.

 

본래 이스라엘 땅은 지금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땅이 아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였습니다. 그런데 계속된 범죄와 타락으로 땅에 함께 저주

를 받아 건조한 땅이 된 것이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에도 이슬을 내리시고 풍성한 곡식이 영글게 해 주

셨습니다.

인공으로 주는 물만 먹고 자란 과일과 이슬을 맞고 자란 과일은 맛이 다르

다고 합니다. 이슬맞고 익은 과일이 더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현재 내가 누리는 복이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슬이 끊어지면

안됩니다.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와 계속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

혜는 이슬처럼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3. 영적입니다.

 

29절을 보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내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내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삭이 애곱을 위해 빈 축복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

은 야곱 개인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받을 복을 예

언난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영광과 존귀를 받게될 것을 암

시적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돈을 물려주는 것은 3대 넘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적 유산이

나 신앙적 유산은 천년만년 지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영국 런던을 들를 때마다 일부러 틈을 내 대영박물관을 찾곤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찾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그곳은 미이라 전시관입니다.

리자의 말에 의하면 관람객 수가 제일 많은 곳이 미이라 전시관이라고 합니

.

 

미이라 전시관은 BC 2천년경 사람들이 시체를 썩지 않도록 처리하여 그대

로 보존하고 있는 사체전시관입니다.

그러니까 전시관에 누워있는 시체들은 적어도 4000여년 전에 살던 사람들

입니다. 딱딱한 석고처럼 누워있는 그들, 어쩌면 4000여년 전 최고권력과

최고의 부를 누리며 살던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당대 최고의 미를 뽑내

던 미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관에 누워있는 사체들은 흉물스럽고 소름끼치는 썩지

못하는 시체일 뿐입니다.

미이라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죽으면 썩어야 된

다는 것, 죽으면 똑같다는 것, 나도 죽으면 저 꼴이 되겠구나라는 것, 그래

서 사는 동안 뜻있고 가치있게 살아야겠다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

.

물론 개인적으로 생활이 어렵고 사업이 힘들고 직장이 고달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루 3천명씩 굶어죽고 콜레라로 죽어가는 르완다에 비

기면 우리는 영육간에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입니다.

에서는 좋은 조건 속에서 태어나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

는 그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회를 붙잎바고 하나님의 풍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누리고 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연 조건을 고루 갖춘 에덴동산을 제대로 갈무리못한 아담과 하와는 거기

서 쫓겨났습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물려받은 우리도 금수가산 갈무리에 실패하고 금수강

산을 쓰게리 강산, 썩은 강산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것이 자연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명예든 그리고 신앙이건간에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풍요와 풍성을 제대로 갈무리하 못하

면 그것은 순식간에 남의 것이 되고마는 것이빈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바이얼린 교수였던 골드슈타인(Goldstein)은 소련으

로부터 망명온 음악인이었습니다. 그의 동생도 피아노 교수였습니다.

 

그는 위암으로 두번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를 거절한 채 수술을 받았습니

. 이유는 마취를 하게되면 암기해둔 악보가 망각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

. 장기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그는 자기 손으로 부고를

만들어 화제를 남겼습니다.

 

부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화를 가져오지 마시오.

둘째 조화대신 부의금으로 해주시오.

셋째 부의금은 현금으로 해주시오.

넷째 모아진 부의금은 전액 장애자 시설을 위해 써주시오.

다섯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행구좌로 부의금을 송금해주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드슈타인은 생전에 그가 연주했던 음악보다 더 멋지게 아름답게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누리며 소유하고 있는 복은 개인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

이 작은 사람도 있고 , 보다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빈다.

문제는 마무리입니다.

 

내가 누리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빈다.

내가 내 손이 쥐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든 직분이든 직장이든 정성껏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라는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풍요가 나의 풍요임을 감사합니다.

 

발행일 : 940904

분 류 : 설교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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