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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용수목사/빛이 있으라! (창 1:3-5)

지용수목사/빛이 있으라! (창 1:3-5)


하나님의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는, ‘바라’의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본격적인 창조 이전에 비록 혼돈되고 질서가 없지만 그 무언가를 이 우주에 가득 차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빛입니다.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
하나님께서는 빛을 손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마술을 하시거나 주문을 외우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온 우주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이 빛은 태양 빛이 아닙니다. 모든 빛의 근원이 되는 빛입니다. 태양은 나중에 창조하십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실 때 빛이 환하게 가득 찼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는 귀한 진리는 ‘하나님 입의 말씀은 그대로 틀림없이 정확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면 그대로 됩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 합시다.
“말씀에 능력이 흐른다.”
하나님 입의 말씀에는 능력이 흐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반드시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이 된 나사로의 무덤에 오십니다. 사람들이 코를 막고 가까이 가기 싫어하는 그 무덤에 오신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기게 하신 후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 순간, 죽어 썩어가는 나사로가 그 자리에서 부활하여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와 함께 나인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 관을 메고 나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통곡을 하는 한 부인과 함께 슬퍼하며 위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관을 따라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상황을 다 아셨습니다. 그 부인은 얼마 전에 남편을 잃고 이제 하나뿐인 아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데 그 아들이 어떤 일로 급사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한 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법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지만 때가 되어서 죽어야지 부모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그 다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다음에 내가 죽어야지, 손자가 먼저 죽거나 아들이 먼저 죽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마저 죽었으니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보고 즐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울지 말라.”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니, 관 속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그 부인과 동네 사람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할렐루야!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도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면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의 아버님도 얼마 사시지 못한다고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암 전문가로 권위가 있는 전영준 박사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아버님의 흉부암이 목까지 퍼져 칼도 댈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보세요. 이것이 다 암입니다.”
암이 얼굴까지 다 퍼지고, 복수가 차서 배가 얼마나 부어올랐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오래 사셔야 3개월입니다.”
제가 병원 응급실에서 무릎 꿇고 아버님께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버지는 천국에 일찍 가셔서 낙을 누리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그러나 저는 아니에요. 아버지가 이 땅에 오래 계셔야 제가 행복한데 아버지가 떠나가시면 저는 어떻게 해요?”
그때 저도 울고 아버님도 우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소리쳐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부르짖어 기도하시다가 아버님의 가슴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환상을 보셨답니다. 그 후로 아버님의 빠진 머리가 다시 나고 체중이 40㎏에서 63㎏으로 불어나고 건강이 회복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22절 이하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어갑니다. 회당장이 달려와서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예수님, 제 딸이 죽어갑니다. 오셔서 손 얹어 구원해 주세요.”
“그래, 가자.”
마을 가까이 갔을 때에 야이로 집의 사람들이 나와서 말합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번거롭게 하지 마세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캄캄한 일을 당해도 우리는 두려워해서 안 됩니다.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도 주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형통하고 여유 있을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궁지에 몰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니 통곡하는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열두 살 먹은 딸이 죽었으니 온 식구들이 울고 야단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웃은 사람들은 다 보내시고 그 부모와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이 말은 아람어로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소녀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입의 말씀은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입의 말씀은 그대로 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55장 10절, 11절에 말씀하십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며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할렐루야!
여러분이 말씀을 받을 때 ‘아멘!’ 하면 그 말씀이 그대로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아멘! 아멘!’ 하고 받는 것은 그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아멘!’ 하고 말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에도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대로 되는 능력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성벽이 두터워서 사람들이 그 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견고한 성이 어떻게 무너집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성 주위를 돌면 성이 무너지니 돌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도니 성이 무너집니다.
땅에서 구하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비가 오겠습니까? 그러나 믿고 구하면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비가 너무 쏟아질 때 땅에서 기도한다고 비가 어떻게 그치겠습니까? 그러나 믿고 기도하면 비가 멈추는 것입니다. 신비롭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지용수가 어떻게 십만 명, 천만 명을 구원하겠습니까? 그러나 믿고 기도하면 십만 명도, 천만 명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부자가 될까?’
하나님 말씀대로 부모님께 순종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열심히 살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열심히 사는 자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고 부모님을 섬기고 십일조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됩니다.
주일을 잘 지키면 이사야 58장 13절, 14절 말씀대로 행복합니다.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이것은 확실합니다. 만일에 주일을 잘 지켜도 행복하지 못하고 집이 높아지지 않고 부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안 되는 것 같아도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오랫동안 잘 안 되게 하실 경우도 있습니다. 야곱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18년간 머슴을 살아도 자신의 집 한 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열심히 일하니 20년이 될 때 하나님께서 그를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아도 낙심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입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빛은 생명입니다. 아름다운 나무들도 때때로 빛을 받게 해야 살지, 어두운 곳에 그냥 두면 죽습니다. 태양이 사라진다면 산천초목은 다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이 태양 빛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빛은 생명이다.”
‘빛이 있으라.’라고 하신 것은 생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빛 때문에 사람이 살고 식물이 살고 동물이 삽니다. 새가 살고 바다의 물고기가 살고 삼라만상이 다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4절에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할렐루야!
따라 합시다.
“생명은 빛이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세상의 빛을 받으면 산천초목이 사는 것처럼, 예수님의 빛을 얻으면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세상의 빛은 생명의 기간만큼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나무는 나무의 수명대로 사람은 사람의 수명대로, 물고기는 물고기의 수명대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은 영생의 빛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은빛 바다 저 너머로 잠시 후에 천국 가서
   우리 죄와 모든 슬픔 잊겠네
   주 예수의 사랑 속에 영원토록 살리로다」 할렐루야!
세상에!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영원히 삽니까?
생명의 빛 때문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번영과 잘 됨을 의미합니다.
잠언 13장 9절에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의인은 모든 것이 잘 되고 악인은 망한다는 뜻입니다. 그 집에 빛이 비친다는 것은 그 집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집에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업장에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이런 꿈을 꾸신 적이 있으십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저희 집을 좍 비추는 것을 보고 얼마나 좋은지 마당에 나와 춤을 추시는 꿈을 꾸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집이 정말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잘 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마귀는 우리가 이혼하고 죽고 병들고 싸우고 망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오면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희망을 가리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왕 야빈의 철병거 구백승에 압제를 당하여 고통이 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적들을 다 무찌르고 자유를 얻게 된 그들이 너무 기뻐서 찬송을 하는데, 그 마지막 절이 사사기 5장 3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할렐루야!
아침에 해가 힘있게 돋는 것은 희망참을 가리킵니다.
‘빛이 있으라.’ 이것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으면 희망이 생깁니다. 할렐루야!
설교를 듣고 절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용기를 잃거나 자살하러 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설교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마지막으로 드리고 자살할 거야.’하고 예배를 드리러 왔어도 설교를 듣고 나면 ‘다시 살아야지.’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설교가 빛 된 설교입니다. 할렐루야!
몇 해 전, 하버드 대학의 심리연구소에서 사십 년간 직장에서 일하고 은퇴한 노인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존경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사는 분들은 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웰빙 노인들, 행복하게 사는 노인들이 3%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존경도 받지 않지만 그래도 살 만큼 사는 노인이 10%였습니다. 그리고 쪼들리지만 먹고사는 노인이 60%였습니다. 27%의 노인이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없어서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노인 복지회나 사회 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노인이 미국에서 27%나 되었습니다.
그 연구소에서 역으로 조사해 보았습니다.
은퇴한 후에도 훌륭한 삶, 빛나는 삶을 사는 3%의 행복한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를 조사해 보니 이구동성으로 ‘분명한 삶의 목표를 기록해 놓고, 희망을 품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살 만한 10%의 노인들 중에서는 목표를 기록해 놓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라고 목표는 정했지만 기록해 놓지 않고 마음에만 두고 살면서 노력하다 말다가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겨우 살고 있는 60%의 노인들은 목표 없이 막연하게 ‘잘 되어야 할 텐데……. 성공해야 될 텐데…….’ 하며 그날 그날 그냥 살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의지해서 사는 27%의 노인들은 꿈도 비전도 희망도 없이 그냥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까지 분명한 목표와 희망을 갖고 달려온 분은 노후도 빛이 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목표 없이 그냥 살면 똑같아지고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이렇게 귀합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벅차고 하루종일 이렇게 시간을 아끼며 사는 것은 제게 희망이 넘치고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2010년에는 십만 명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우렁차게 찬양하고, 제 나이 99세까지 어떻게 살 것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이렇게 가슴 벅차게 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표와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요나서 2장 9절에 보면 그 속에서도 ‘내가 주의 성전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선을 갚겠고 감사하겠습니다.’라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셔서 요나를 토해 살게 하셨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슴살이를 18년 동안 하며 노력해도 사기나 당하고 집 한 채 없었지만 끝까지 희망을 갖고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집 종이 되고 감옥에 억울하게 들어가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어릴 때 꾼 꿈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 것은 희망을 갖고 살라는 뜻입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차게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빛은 평안함을 줍니다.
시편 27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에는 무서움과 공포가 있고 불안하지만 낮에는 평안합니다.
어두움이, 흑암이 있을 때는 공허하고 소용돌이치고 무시무시했지만, 빛이 환하게 비치니 모든 것이 평안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는 것은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신비로운 평안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인도해 줍니다.
배가 등대를 보고 가듯이, 동방박사들이 별빛을 보고 예수님께 갔듯이, 환한 빛이 있으면 사람들이 헤매지 않습니다. 빛이 있으니 길을 보며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귀한 빛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빛을 지금도 여러분과 제게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빛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고 생명의 빛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빛 가운데에서 항상 잘 되고 희망차게 살고 평안을 누리고 길을 찾아 잘 달려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빛이 있으라.’라는 말씀에는 더 나아가  ‘우리도 빛이다.’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1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할렐루야!
우리도 빛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고 평안을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왕이 큰 잘못을 저지른 신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두 신하에게 그 죄인을 호송해서 우선 감옥에 집어 넣으라 했습니다. 그 죄인이 끌려가면서 “저 못된 왕! 지옥에나 빠져라.”하며 왕을 저주했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어찌 그렇게 왕을 저주하는고?”
“내가 죽게 되었는데 못할 말이 뭐요?”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왕이 죄인을 감옥에 호송하고 돌아온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죄인이 끌려가면서 무어라 말하던고?”
그러자 한 신하가  “폐하, 끌려가면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를 사형선고 내릴 수밖에 없는 왕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더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랬어? 그러면 그를 살려 주어라.”
그러자 옆에 있던 강직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니옵니다. 진실을 아셔야 되옵니다.”
“진실이 뭔고?”
“그 죄인이 가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로 왕을 저주했습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그때 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진실을 말했지만 그 진실의 출발이 악한 마음이야. 그를 살려줄 생각이 없는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은 거짓말보다 못하지. 이 사람은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그를 살려주기 위한 선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그 마음이 참으로 귀하네.”
그리고 죄인을 살려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 신하에게 높이 세워주고 그 죄인도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사람을 살리고 도와 주고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따라 합시다.
“나도 빛이다.”
중세에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고 자신은 동굴 속에 들어가서 경건 생활을 하며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그렇게 애쓰며 살아도 너의 경건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구두를 고치는 노인의 경건보다 못하다.”
그 음성을 들은 안토니오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구두 고치는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몹시 누추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길에서 열심히 구두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네는 어떻게 사시기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셨습니까?”
“나? 특별하게 사는 것이 없어요. 길에 나와서 그저 이렇게 열심히 구두를 짓고, 또 이렇게 번 돈으로 양식을 사서 식구들과 함께 먹고 가정 예배를 드리며 서로 사랑하고 살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거지요.”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구제하고 동굴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경건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친절히 대하고 성실히 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 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부모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 자녀, 자녀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이웃에게 환한 빛을 주는 오늘의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빛이 있으라.’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 또 생명의 빛 된 예수님을 주시고 이제는 우리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교회는 큰 등대 같은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십만 명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노아의 방주처럼 크게 되어서 선한 일을 하면 한국과 세계를 비추는 하나님의 빛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빛 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큰 빛으로 쓰시기를 기도합시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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