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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용수목사/존귀한 피조물, 사람! (창 1:26-31)

지용수목사/존귀한 피조물, 사람! (창 1:26-31)

 

낚시를 하는 사람은 고기를 낚지, 물을 낚지 않습니다. 낚시할 때는 고기를 잡아야지 물을 퍼 올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올려드릴 때 말씀을 낚고 은혜를 낚아야 합니다. ‘이 교회는 전깃불이 밝네, 어둡네.’ 이런 쓸데없는 것만 생각하다가 좋은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멕시코의 한 마을에는 온천과 냉천이 함께 있어 그 마을의 아낙네들이 빨랫감을 가지고 와서 뜨거운 물에 푹 삶은 다음 찬물에 헹궈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곳 여행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그런데도 그 아낙네들은 “하나님께서 이왕 주시는 것 비누까지 주시지 왜 비누는 안 주셔서 이렇게 불편하게 하실까?”라고 불평한답니다. 좋은 조건에 살면서 불평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사람의 혈액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와 우리 몸에 들어온 병균을 잡는 백혈구가 있는데, 이것들은 감사하고 즐거워할 때 강해지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약해진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지만, 비록 좋지 않는 교회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좋은 점을 얻고 좋은 것을 찾고 은혜를 건져야 될 줄 믿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에서라도 불평거리나 어두운 점만 찾는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나라 대 재벌 회장의 딸이 스스로 인생을 끝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집안의 딸이 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떠납니까? 자신이 가진 좋은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닥친 일과 문제만 생각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이, 그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됩니다.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낚고 은혜를 낚을 수 있기 바랍니다. 찬양대원들이 은혜를 받아야 예배가 살고, 제직원들이 은혜를 받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학교 교사들이 은혜를 받아야 교회의 신앙 교육이 살고, 청년들이 은혜를 받아야 교회에 미래가 있고, 구역장들과 기관장들이 은혜를 받아야 기관과 구역이 부흥하고, 전 성도가 은혜를 받아야 마귀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로, 은혜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떠 있고, 태양은 가스를 공급 받지 않아도 열과 빛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별을 보고 노래하며 시를 읊고, 무지개를 보고 꿈을 꾸며, 꽃과 단풍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더 신비로운 것은 저 하늘의 많은 별들 중 같은 별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펑펑 쏟아지는 흰 눈들도 같은 것이 없이 다 다르고, 바닷가의 저 많은 모래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없이 피어 있는 국화꽃들도 다 다릅니다. 참 놀랍습니다. 
제가 지난번 뉴저지의 베델 중앙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제 조카와 닮은 아이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쌍둥이라도 조금은 다른데 아무리 보아도 지용덕 목사님 아들 지훈이와 똑같았습니다. ‘이상하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생겼을까?’하는 생각에 설교를 하다가 “이 교회에 제 조카와 똑같이 닮은 아이가 있군요.”라고 했더니, “큰아버지, 저 훈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큰아버지가 집회를 인도한다고 콜롬비아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자기 친구와 함께 그 먼 길을 왔던 것입니다. 훈이면 훈이지, 훈이와 똑같은 아이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 때 눈이 밝아진 한 분이 제게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큰 선물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묘한 세상을, 이 아름다운 세상을, 이 가슴 뛰는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기 1:26)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그 이미지대로(the image of God) 지으시고 우리의 외모(appearance)도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대한다면,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로봇이나 어떤 다른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실 때 다른 모습으로 오지 않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사람의 모양대로”
사람의 모양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제가 군에서 갓 제대하고 오니 사람들이 저를 보고 영화배우 김진규씨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름을 크게 떨치던 배우가 최무룡, 신성일, 김진규씨였는데, 특별히 김진규씨는 좋은 역만 맡았고 신사였습니다. 그런 배우를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 제가 광주에 가서 성회를 섬기면 김대중 대통령을 닮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또 언젠가는 대구에 가니 박정희 대통령의 옆모습과 제 옆모습이 닮았다면서 검은 선글라스만 쓰면 똑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일식집에 갔더니 주방장이 ‘박정희 대통령 같다’고 하면서 대접을 잘 해주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뉴욕 교민들이 저보고 ‘한경직 목사님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괜찮은 분들만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제 아내는 마르틴 루터의 부인과 외모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루터를 만든 것은 그의 부인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부인은 위대합니다. 그 위대한 부인과 닮았다고 하니 제 아내도 기분이 괜찮은 모양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좀 귀한 사람을 닮았다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대중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김진규씨, 이런 사람의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따라 합시다.
“굉장하다. 굉장하다.”
우리는 굉장히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던 지난 토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한참 동안 기도하고 내려오니 제 딸이 “아빠, 어떤 분이 아빠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보니 한 걸인이 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제 원칙인데 성령님께서 ‘어려운 사정이 있는 분 같다.’라는 감동을 주셔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기신 분이신데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줄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살다가 간암에 걸려 직장마저 잃고 나니 먹을 것도 없다고 하면서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가끔 오는데 그 말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 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 사람이 참말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사정이고, 도와주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에 드릴 헌금을 떼놓고 나머지 얼마 중에서 그분이 달라는 대로 드렸습니다. 돈을 드릴 때 봉투에 넣지 않고 그냥 드리려 했는데 ‘아니다. 그가 비록 도움을 받으러 왔지만 그도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생각에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흰 봉투에 돈을 넣어 “달라고 하시는 대로 제가 드립니다만, 이제부터는 정부에 요청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드리듯이 드리고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고마워하며 가셨습니다. 제게 도움을 받으러 왔지만 ‘이분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을 닮은 분이다.’라고 생각하니 그분도 존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사장이든, 말단 사원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이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고기, 하늘의 새, 들의 기는 것과 모든 짐승을 다 우리가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왕 노릇하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fellowship)를 나누십니다.
창세기 5장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Enoch walked with God.)"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도 동행하셔서 아브라함을 친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너의 친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처럼 다스리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며 사귀고 하나님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롭지 않게 사시려고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부인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망한 것이 아니라 남편도 망하게 했습니다.
남자들만 따라 합시다.
“아내를 조심하자.”
파도는 하루에 75만 번 가량 해변을 칩니다. 매일 이렇게 파도가 바위를 치고 땅을 쳐서 침식해 들어가듯이 마귀는 방학도 없이 잠도 안 자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왕 노릇하고 사는 것이 싫어서 계속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아니라 이브를 유혹합니다. 왜냐하면 유혹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하고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장로님을 세울 때도 아무리 그 남자분이 훌륭해도 부인이 훌륭하지 않으면 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인이 귀해야 남편이 귀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자기만 망하면 좋은데 아담에게 그것을 주어서 같이 망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형상을 다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도망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가운데 거니시는 소리만 듣고도 피합니다. 전 같으면 “하나님”하고 달려가서 같이 걷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내쫓아버립니다. 죄가 얼마나 인생을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바이런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으로 옥스퍼드 출신이고 귀족의 아들입니다. 처음에는 경건하게 살던 그가 나중에는 타락하여 쾌락에 빠집니다. 쾌락의 접시를 핥아먹으며 살다가 동물같이 되니 그는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되었습닏. 그런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 문장을 남겼습니다. “나는 떨어져 뒹구는 낙엽. 나는 버러지,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비참한 존재.” 그리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하고 동물보다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편 8편 3절에서 8절까지 보면『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우시고 왕 노릇하게 하셨지만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초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덤불, 엉겅퀴 속에서 고생의 땀을 흘리며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며 살다가 죽어서 그냥 없어지면 좋은데 그것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상어가 사람을 해쳤다고 심판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때때로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일이 있는데 그렇다고 심판받지 않습니다. 개는 죽으면 그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지만 안 믿는 사람은 죽어서 그대로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지만 못하시는 것이 하나 있는데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저도 여러분을 23년간 섬기면서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있다면 어떤 분이 “목사님, 점심 드셨습니까?”라고 할 때, 배고프지만 걱정을 끼칠까 봐  “예.”라고 한 것입니다.  “목사님,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라고 할 때도 불편함이 많지만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데 저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몸을 단련해야 됩니다. 운동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150개씩 팔굽혀펴기를 합니다.”라고 말해놓고 사실은 다 하지 못했습니다. 피곤한 날은 120개 하고 아주 피곤한 날은 100개 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네가 진실하냐? 네가 진실하냐?’
150개씩 한다고 말하고는 실제로 150개를 못한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를 악물고 150개 이상 합니다. 어제도 160개를 했습니다. 
사람도 사람답게 살려고 하면 거짓말을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되는 것에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죄를 그냥 용서하지는 못하십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피 흘림이 있으면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음란과 간음이 만연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왕이 “간음하면 두 눈을 뽑을 것이다.”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제일 첫 번째로 걸린 자가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신하들이 말렸지만 왕은 기어이 직접 아들의 눈을 뽑았습니다. 아들의 한쪽 눈을 뽑은 다음에 자기의 한쪽 눈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왕도 애꾸가 되고 왕자도 애꾸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두려워하여 간음을 하지 않으니 나라가 바로 잘 서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이 의로우니 아들의 죄를 그냥 용서할 수 없어서 자기 눈을 대신 뽑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자기 눈동자 같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 값진 피, 귀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무슨 죄를 지었든 예수님의 피 공로 때문에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로마서 3장 22절에서 24절에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이라도 오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 다 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우리는 사람을 용서해 주고도 ‘옛날에 그런 죄를 지었는데…….’하며 기억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죄 사함을 받으면 잃었던 하나님의 존귀와 형상을 우리가 다 회복하게 되고 거기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고마우신 하나님께 영광의 큰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제 아들이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며느리가 될 그 아이를 서울에서 만났는데 저보고 “아버님” 하지 않고 “목사님!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집을 오면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6절, 17절에『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자녀 된 우리가 다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이 내 집이듯이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세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LA의 한 한인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그 교회에서 저를 힐튼 호텔에 묵게 했는데 그 호텔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만든 호텔도 그렇게 좋은데 하나님의 집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믿는 이만 그곳으로 가겠네
  저 황금 문 들어가서 주와 함께 살리로다」
따라 합시다.
“차별이 없다. 차별이 없다.”
말을 잘 듣는 아들이나 안 듣는 아들이나 다 같이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똑같은 것을 먹습니다. 아들들은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6절, 7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뼈가 부서지도록 충성해도 억울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천국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고 앞으로도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성공하게 하십니다.
자나 깨나 저는 제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서 매일 다섯 번 손들고 기도해 줍니다. 그것이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더 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이번에 미국에 가니 저를 만나는 분들마다 경이가 알뜰하게 산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간 제 밥상에도 김치와 된장찌개가 다였습니다. ‘소문대로 참 알뜰히 사는구나.’하고 대견해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경이가 알뜰하게 산다고요? 돈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라고 했습니다. 집사람이 센스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돈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주었습니다.
“안 주셔도 되는데…….” 하더니 그 다음부터 포도도 사오고 사과도 사왔습니다. 신랑이 PD라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제 마음이 아픈 것은 돈이 없어도 시집간 딸이라 제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가슴을 쳤습니다. 예전에 제가 하나님은 친정아버지 같다고 설교를 했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제가 이 땅에서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이 청주 상당교회 정삼수 목사님이십니다. 정삼수 목사님은 바울같이 참 맑고 깨끗한 분이라 정삼수 목사님을 뵐 때마다 ‘이 땅의 모든 목사님들이 이 분 같으면 한국이 얼마나 복이 있겠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분이 큰 골프장을 갖고 있는 큰 회사 회장님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목사님은 좋겠어요. 그 좋은 골프장에서  공짜로 치고.”
“좋긴 뭐가 좋아요. 안 좋아요”
“왜 안 좋으세요?”
“사돈이 되기 전에는 골프를 치러 가면 땅을 막 파면서 쳤는데 이제는 딸 생각이 나서 함부로 못 칩니다.”
한번은 목사님의 딸이 전화를 해서 “아빠, 아버님 바꿔 드릴게요, 전화 받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때 목사님이 ‘아하! 그래도 친정아버지에게는 “아빠, 아빠”하고 시아버지에게는 “아버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시아버님보다는 친정아버지가 더 가까운가 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딸이 결혼하기 전에 제가 “경아, 네가 시집가도 아빠는 영원한 너의 아빠야.”라고 말했는데도 결혼하니 지금까지 단돈 백 원도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바나나 사 주세요. 뭐 주세요.” 하더니 결혼한 다음에는 그런 말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시아버지보다 좋으시고 친정아버지보다 좋으시고 시집가기 전의 아버지보다 좋으시다.”
최고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가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망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망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망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식이 망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으면 삽니다. 잘 됩니다.
따라 합시다.
“전성기가 온다. 전성기가 내 앞에 온다.”
지용수의 전성기는 지금이 아닙니다. 5년 뒤도 아닙니다. 10년 뒤도 아닙니다. 20년 30년 뒤에 갈수록, 갈수록 전성기가 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서울의 유명한 Y교회 J장로님은 우리나라 최고 타월 회사의 경영주입니다. 그분이 6.25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오셔서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장사는 하고 싶어서 수건 가게 옆에 앉아 매일 수건을 쳐다보며 “하나님, 저도 수건을 좀 팔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답니다.
하루는 가게 주인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 왜 남의 가게 옆에 계속 앉아 있냐?”
“아저씨, 저 수건 좀 팔고 싶어요. 열 개만 빌려 주시면 팔아서 갚을 게요.” 
“너 정말 그러겠냐?”
“제발 좀 하게 주세요.”
“그래라.”
그 아저씨가 수건 열 개를 주더랍니다. 그것을 금방 팔고 와서 또 가지고 가서 또 팔고, 그래서 그 가게보다 아이가 수건을 더 많이 팔았답니다. 그런 그가 결국 우리나라의 타월 왕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착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대 성전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28장 12절에『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으니 저는 하나님께 “우리 교회 짓는데 은행돈을 빌리지 않고도 짓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하고 막 떼를 쓰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떼를 쓰자. 떼를 쓰자.”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록펠러가 43세에 세계 최고의 경영주가 되고 53세에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었지만 나병 환자처럼 피부병이 생기고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며 온 몸이 아팠습니다. 제대로 음식도 못 먹어 병원에 가서 체크하니 1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날 신문을 보니 “록펠러, 1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내가 1년 안에 죽으면 쌓아놓은 이 모든 재산이 어떻게 되나? 내가 너무 사업에 빠져서  하나님의 교회는 뒷전이었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되는데, 내가 우선순위를 몰랐구나.’
그 때부터 그는 예배 시간 40분 전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바로 뉴욕 강변에 리버사이드 처치라는, 돈으로 값을 매기기가 어려운 거대한 교회를 대리석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요청하는 대학마다 교회를 다 세워 주었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버리고 갈 건데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짓는데 다 쓰고 가자.’
그러자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입맛도 돌아와 1년 되어도, 2년 되어도 죽지 않고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받을 줄로 믿습니다.
저 지용수가 범죄하지 않고 숨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양곡교회를 위대하게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맑고 깨끗하고 겸손하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위대한 구원의 방주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귀하게 살면 여러분이 하는 일과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전성기가 계속 올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내일부터 내가 의롭게 살고 오늘은 그냥 살아야지.’ 하면 안 됩니다.
따라 합시다.
“신앙생활은 ‘오늘 밤에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오늘 밤에 내가 죽을 수 있는데 저녁 예배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에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다른 짓을 하겠습니까? 오늘 밤에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무슨 배짱으로 믿지 않겠습니까? 지옥과 천국이 있는데, 오늘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믿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오늘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과 미래는 천만 년 살 것 같이 세워 놓아야 되지만 신앙생활은 오늘 하루가 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 경건하고 겸손하게 바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는 지금 받아야 됩니다.
오늘이 구원 받을 날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은 오늘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영접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오늘 은혜를 재 충만 받기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저를 새롭게 하시고 은혜로 덮어 주십시오.’ 하면 은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받은 이 구원의 축복을 하나의 이론으로 듣지 말고, 내 생활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멋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전부입니다.
이방 여인, 천대 받는 여인, 먹을 것이 없어서 이삭을 줍는 가난한 여인 룻이 보아스를 만나자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그 지역에서 최고로 존귀한 여자(first lady)가 되고 다윗왕의 할머니가 됩니다. 보아스를 만나니 룻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한 여자가 복 있는 남자를 만나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만난 우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의 해답이십니다.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을 다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하며 믿고 따르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오늘 영접해서 예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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