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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손세용목사

[고난으로 빚어지는 성숙]



[고난으로 빚어지는 성숙]

어떻게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많은 신앙의 연조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것이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먼저 자신부터도 그렇게 어려운 것을 느끼면서

크게 실망과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과연 많이 배운 고매한 지성이, 칭송 받는 사회적인 높은 지위가,

그가 지닌 넉넉한 소유가 사람을 도량 있고 너그러운 인격의 소유자로 만드는 것일까?

과연 그러한가?

어떤 이는 말합니다.

‘성경공부 많이 했다고 사람이 겸손해지지 않더라.

성경 많이 알고 있다는 또 다른 교만이 있더라.

기도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이 거룩해지지 않더라.

기도 많이 했다는 또 다른 영적 교만이 있더라.

봉사 많이 했다고 사람이 사랑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더라.

봉사 많이 했다는 그 나름의 자기 의(義)가 있더라’

그러면 무엇이 사람을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신앙인격으로 변화시킬까?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지적하는 것은 ‘고난’이라고 합니다.

조개 속에 들어간 모래알의 쓰라림이 진주를 만들어내듯

많은 고난을 통해 연단된 인격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개 숙일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지만(요3:5),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한 고난을 거쳐

가나안땅을 차지할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졌듯이

성도가 천국 시민으로 성숙해 가는 것도

숱한 고난과 역경을 통해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거듭나게 되는가 봅니다.

고난이 없는 신앙인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아서

무엇으로도 통제되지 않아 천방지축으로 나대기 쉽습니다.

‘고난은 제 3의 성례(聖禮)’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쳐진다면

또 하나, 고난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격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고난 그 자체를 좋아하여 스스로 원할 리 없지만,

내게 다가온 고난을 십자가처럼 묵묵히 지고 감당해 나갈 때,

정금처럼 연단된 신앙인격이 되어 주님을 맞을 순결한 신부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아버지께서 매어주신 멍에를 매고

묵묵히 도수장으로 어린양처럼 끌려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합니다.

샬롬!



손 목사 드림.



[마지막 미소]

어느 날 병원 응급실에 불에 몸을 데인 여자가 실려 왔다.

그 여자는 몸 전체에 화상을 입어 살 수가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어렴풋이 들었다.

화상의 고통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그녀에게 남편과 경찰이 보였다.

경찰은 그녀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화상을 입은 이유를 물었다.

여자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매를 맞아왔다.

남편이 사업이 망한 뒤로부터 생겨난 버릇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을 고발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언젠가는 예전의 남편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꾹 참아왔던 터였다.

그날도 술에 몹시 취한 남편이 석유등잔을 여자에게 던지는 바람에

온몸을 불에 데인 것이었다.

경찰은 남편의 억센 팔을 붙잡고 여인에게 물었다.

온 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고통과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자 남편의 고통에 찬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죽고 난 뒤 남편이 받을 엄청난 고통과 죄책감의 무게를 상상한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저의 실수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미소를 띄운 채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바람]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의 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

꽃바람이 된다.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됐을까.



-호시노-(일본의 장애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