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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의미! (요엘 2:12-17)

사순절의 의미! (요엘 2:12-17)  
 
 
지난 주간 브라질 삼바축제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삼바축제의 공식명칭은 “리오데자네이로 카니발”입니다. 카니발 중의 카니발이라 일컬어지는 이 리오 카니발은 열정적인 삼바 춤과 화려한 가장행렬 그리고 과다노출과 광란에 가까운 무질서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려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듭니다.

그런데 이 카니발이란 축제는 사순절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사육제(謝肉祭)라 번역하고 있는 카니발은 라틴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에서 왔습니다. “카르네”는 고기라는 말이고, “발레”라는 말은 그만 또는 안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직역해 보면 “고기여 안녕, 고기는 그만”이란 뜻입니다. 사순절이 시작이 되면 40일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이 시작되기 때문에 미리 고기를 많이 먹어두자는 것에서 시작된 축제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카니발들은 사순절 시작 3-7일 전에 벌어지는데 이때 본격적인 절제와 금육이 시작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미리 먹어두고 미리 할 일들을 해 두고 한 바탕 축제를 벌이면서 절제와 금육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카니발은 사순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된 축제인 셈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카니발은 사순절 준비라는 본래 취지와는 관계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노는 일에만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때 한 해 향락과 놀이의 절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카니발이 끝나도 더 이상 사순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경건과 절제의 삶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 24:38-9에 보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말세적 현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의 경고를 받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깨어 근신하며 준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고 광적으로 향락에 빠져듭니다. 특히 경건의 깊이를 더 해야 할 이 사순절 바로 직전에 더욱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사순절을 잊어버립니다. 여기서 우리 시대의 짙은 영적 어둠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이런 세상의 탁류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더욱 경건을 연습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 사순절에 더욱 우리의 경건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이란 무엇입니까?

사순절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테살코스테”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40일 간의 기념일”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해서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자고 시작된 절기입니다.

금년에 부활주일이 4월 11일이니까 이 규례를 따라보면 지난 주 수요일 이미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이 됩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40일일까요?

성경을 보면 40일은 경건한 삶과 관련된 상징적인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도 40일간 시내산에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을 저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이렇게 40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건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한 해에 한 번은 40일 동안 절제하며 경건을 힘써 연습하자는 뜻에서 사순절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순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초창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금식했는데 이것을 본받아서 부활절 전에 금식을 했고 철저하게 기도와 신령한 훈련을 했습니다. 사순절은 이런 초대교회의 전통을 본받아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초창기 사순절이 만들어졌을 때 저녁 직전에 식사만 허용이 되었고, 육류는 어떤 것이라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14세기에 와서 많이 완화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정오의 식사와 간단한 저녁 식사가 허용이 됐습니다. 이제 금식 기도보다는 절식 기도로 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주가무를 삼갔고, 연극 관람이나 연애소설 읽는 것도 금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도 피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이런 전통을 그대로 따를 필요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경건생활을 위해 두 가지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절제입니다.

먹기는 먹되 먹고 싶은 욕망의 노예가 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적당히 쉬고 재창조를 위한 문화생활은 하되 향락과 즐기고자 하는 욕망에 빠지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무엇엔가 사로잡혀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육의 굴레에 사로잡혀 자유를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을 갖자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쫓겨 중단했던 기도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태함으로 약해진 기도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우리의 영이 더 강건해지게 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 절제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사순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사순절의 메시지를 찾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모임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특별한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특별한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내게 돌아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마치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만하던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선을 떨던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공적에 취해 살던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허물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사순절은 소위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지난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에는 특별 예식을 가졌습니다. 이 예식에서 주의 종들은 재를 성도들의 머리에 얹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기서 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재를 머리에 얹어주는 것은 방자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면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세 곳을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첫째는 군대이고, 둘째는 병원이고, 그리고 셋째는 감옥이랍니다.

이 세 곳의 공통점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보면 자기가 누구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힘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을 해 보면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보면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톨스토이는 진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깨닫는 자야말로 사나이다운 사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잊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그래서 죄 짓고,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시금 새롭게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참회하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17절에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죄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늘 주의 전에 나와서 백성들의 죄 때문에 울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죄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눈물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두 정치인의 공판이 열렸습니다. 한 사람은 한화에서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이재정 전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기업인들로부터 4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안희정씨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법정 태도는 정 반대여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재정 전의원은 성공회 신부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제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재판 석상에서 진솔한 참회를 고백해서 재판정을 통곡의 바다로 만들었답니다. 이에 비해 안희정씨는 큰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고 이것은 일종의 향토장학금으로 받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을 했답니다.

이 재정 전의원은 구치소에 들어간 뒤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됐을 것입니다. 눈물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의 참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희정씨는 구치소에 들어갔어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를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회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 여러분에게 뜨거운 눈물의 기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참회로 우리가 정결하고 거룩하게 다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셋째, 거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백성을 모아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이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을 회복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명하는 말씀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라는 말의 뜻은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패역한 이 세상과 철저하게 구별되셨듯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거룩에 대한 열망입니다.


참 연어는 신비로운 동물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태어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요? 어떤 놈들은 2년 만에 또 어떤 놈들은 심지어 5년 만에 돌아온답니다. 저 태평양 한 가운데를 휘 젖고 다니다가 알을 날 때면 저 강원도 산골짜기를 찾아옵니다. 바위가 가로막고, 수중보가 가로막고, 심지어 폭포가 가로막아도 죽기 살기로 그 자리를 찾아옵니다. 그 자리의 물의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저 뜨거운 열망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거룩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연어가 그 열망을 잃어버리면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열망을 잃어버리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처럼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우리 삶 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날리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이 열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한 삶을 위한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답변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yes”, 이 세상에서는 “No”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반대가 되면 큰일입니다.

이 세상이 유혹합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라고 유혹합니다. 이 때 우리가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음란한 자리로 나아가자고 유혹합니다. 이 때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을 말하라고 유혹합니다. 이 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손해를 봅니다. 때론 핍박도 받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거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불타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용기가 다시 솟구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이 시작됐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던 심령이 깨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심령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 사순절을 절제하며 기도하며 보내게 하옵소서.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며, 거룩을 회복케 하옵소서.